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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유럽 여행에서 맥주의 새로운 맛을 알게 된 후 여러 맥주를 맛보고 돌아다녔다. 최근 한국에도 불기 시작한 크래프트 맥주 열풍으로 이제 막 새로운 맥주에 눈을 뜬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 되고자 하는 마음에 정리를 시작했다. 조금씩 축적한 개인 지식에 덧붙여 미국양조협회 등 사이트와 텍스트, 한국 비어포럼과 '맥만동' 등을 참고했다. - 기자말

인지(Perception)

'꿀꺽꿀꺽' 마시는 방법만이 전부는 아니다. 와인처럼 맥주도 여러 가지 마시는 방법이 있다. 맥주를 조금 더 색다른 방식으로 즐기고 싶다면, 오늘은 이렇게 마셔보는 게 어떨까?

맥주. 어떻게 마셔야 하나.
 맥주. 어떻게 마셔야 하나.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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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눈으로 보기(Appearance)
가장 먼저 눈으로 와 닿는 외양적인 면들. 대표적으로 맥주의 색과, 맑고 탁함의 정도인 탁도. 헤드(거품)의 부드러움과 조밀함의 정도.

2. 향(Aroma)
어떤 음식이든 미처 입에 넣기 전에 코 끝으로 느껴지는 향이 그 인상을 먼저 결정할 때가 많다. 맥주를 마시기 직전, 빠르게 스치는 찰나의 향에 집중해보자. 몰트에서 풍기는 빵, 캐러멜, 초콜릿, 커피 뿐 아니라 오렌지, 복숭아, 자몽, 망고, 솔잎 등 홉에서 뿜어져 나오는 다양한 향이 맥주의 맛과 매력을 한층 더 배가해 줄 수 있다. 이 뿐 아니라 효모가 발효 중에 만들어낸 과일, 벌꿀 등의 에스테르와 고도수 맥주에서 느낄 수 있는 깊은 알콜향 역시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향들이다.

3. 맛(Flavor)
느낄 수 있는 '맛'의 다양함으로는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크래프트 맥주다. 단맛, 신맛, 짠맛, 쓴맛, 과일맛, 초콜릿 맛, 향신료의 알싸함을 비롯해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맥주. 향과 일치하는 맛도 있지만, 특히 향과 또 다른 맛을 가진 맥주를 만날 때 놀라운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4. 질감(Mouthfeel)
혀 끝에서 느껴지는 맥주의 부드러운, 혹은 거친 질감.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탄산과 바디감(묵직함의 정도).

크래프트 맥주 고르기(Quality indicator)

요즘에는 엄청난 종류의 맥주들이 수입사들을 통해 물밀듯 들어오고 있다. 먼저 이것 저것 시음해본 뒤 맥주를 살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아쉽게도 그러기엔 멀리서 물 건너온 크래프트 맥주들은 꽤 비싸다.

그렇다 보니 평소 크래프트 맥주의 동향에 모든 안테나를 쫑긋 세우고 있지 않은 이상 이름과 상표만 보고 고르기는 쉽지 않다. 큰 맘 먹고 맥주 가게에 들렀지만 눈을 어디다 둬야 할 지 모르는 경험을 해 본 적 있다면, 여기를 주목해보자. 맥주 쇼핑을 위한 아주 기본적인 지표 셋이다.

1. 그 맥주, 도수가 얼마야? ABV% (Alcohol by Volume)
알코올의 농도다. 대부분의 주류가 그렇듯 가장 널리 통용되는 맥주 관련 지표이며, 맥주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판단 요소 중 하나.

2. 너무 쓴맛은 피하고 싶다면 꼭 체크해야 하는 IBU (International Bittering Units)
맥주의 쓴 정도를 나타내는 단위이며 홉에서 추출된 이소알파산의 농도를 나타내는 단위. 홉이 가진 알파산(Alpha Acid%)과 홉의 투입량에 의해 결정되며, 스타일에 따라서 약 10~100 정도의 범위를 가진다.

숫자가 적을수록 쓴 맛이 덜하고, 커질수록 쓴 맛의 정도가 높다.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간다면, IBU는 단순하게 '쓴맛의 정도'를 나타내주는 치수이지 홉 향과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즉, IBU 수치가 크다고 해서 반드시 홉 향의 풍미가 짙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

3. 맘에 드는 색을 골라보자 SRM (Standard Reference Method)
맥주의 색을 나타내는 단위로, 숫자가 커질수록 진한 색이다. 예를 들어 SRM 3정도면 황금색 맥주(예 : 필스너, 벨지안 골든 에일)를 떠올리면 되고. 10이 넘어간다면 갈색 계열의 앰버 에일을 떠올리면 쉽다. SRM이 30 이상이라면 다크브라운에서 다크, 블랙 색상의 맥주일 테니 참고하자.

추천(Recommend)

맥주 가게에서 일하면서 손님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동시에 가장 난감한 말, '잘 나가는 것들로 추천해주세요' 그래서 준비했다. 크래프트 맥주를 이제 막 접하기 시작하는 분들이 가장 많이 알 법하면서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맥주 스타일!

1. 페일에일
잉글리시 페일에일(영국식)과 아메리칸 페일에일(미국식)로 나뉘기도 하지만, 어찌하든지 간에 에일에서 가장 기본을 담당하는 스타일의 맥주다. 옅게 불그스름한 색에 오렌지와 자몽 등의 과일 향이 솔솔 풍긴다. 라거보다는 두툼한 맛이지만, 그렇다고 전혀 부담스럽진 않다. 도무지 뭘 마셔야 할지 고민이라면 우선 페일에일 한 잔으로 걸음마 떼기를 추천한다.

2. 바이젠 / 벨지안 윗
영어 철자로 써 놓으니 조금 멀게 느껴지는 감이 있지만, 최근 수입 맥주 시장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은 계열이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 대다수는 아마 이 맥주로 새로운 맥주 세계에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바이젠은 파울라너와 바이엔슈테판으로, 벨지안 윗비어는 호가든으로 이해하면 쉽다.

이 두 스타일은 모두 맥주 재료로 '밀'이 들어가는 데 공통점이 있지만, 색이나 향, 맛 등의 나머지 특성들은 꽤 다르다. 독일식 밀 맥주인 바이젠은 파인애플 주스같이 탁한 '노오란' 색에 진한 달큰한 맛, 스멀스멀 올라오는 바나나 향과 풍부한 거품이 인상적인 반면, 탁한 흰색을 띤 벨지안 윗비어는 오렌지 향과 상큼함이 입안을 씻어준다.

3. IPA
'인디아 페일에일'의 약자로, 우리나라에선 코끼리 캐릭터가 인상적인 로스트코스트의 인디카로 유명해진 맥주 스타일. 온 세계를 뒤흔들었던 제국주의 시대 영국에서 탄생한 IPA는, 고국의 맥주를 그리워하던 인도 거주 영국인들을 위해 배로 실어 보내던 맥주에서 유래했다.

맥주가 상하지 않도록 홉을 다량으로 넣은 것이다. 특히 미국식 IPA는 신선한 홉을 아주 듬뿍 넣은 만큼 지금은 그 본고장인 영국보다도 더 다양하고 활성화돼 있어 흥미롭다. 진한 과일의 향과 동시에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쌉싸름함은 코와 혀를 동시에 마비시키고, 긴 여운마저 남긴다. 최근 몇 년 동안이나 그 뜨거운 인기가 식지 않고 있는 발라스트포인트의 스컬핀 역시 IPA 스타일!

4. 스타우트
가장 유명한 맥주 브랜드 중 하나인 기네스가 전형적인 스타우트라고 볼 수 있고, 우리나라의 하이트는 스타우트라는 이름의 흑맥주를 만들고 있기도 하다. 크림같이 부드러운 거품을 뚫고 나오는 묵직한 맛이 인상적이며 여름에 마셔도 좋지만, 특히 선선한 늦가을이나 겨울에 여간 잘 어울린다. 스타우트 역시 많은 하위 지류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단맛이 적고 볶은 몰트에서 풍기는 초콜릿과 커피의 풍미가 후각을 사로잡는다. 이젠 커피 한 잔 대신 부드럽고 진한 스타우트 한 잔은 어떨까?

맛보기(Sampler)

앞의 추천 맥주 스타일을 보고도 아직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면, 일단 펍에 가서 '샘플러'를 마셔보자. '샘플러를 마시는 건 바보짓이야!'라며 고개를 내젓는 혹자들도 있지만, 한 번에 다양한 맥주를 조금씩 맛보기엔 최선의 선택이다. 최근 문을 연 크래프트 맥주 펍에는 대부분 샘플러 메뉴가 올라 있으며, 보통 4, 5가지 스타일의 맥주를 200ml 정도의 작은 잔에 준비해준다. 우선 샘플러로 입을 촉촉하게 적신 후 맘에 드는 스타일의 맥주를 골라 천천히 마셔보자!

유행(Trend)

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크래프트맥주는 40여 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맥주 시장에서 서서히 그 발을 넓히고 있다. 스스로를 '맥주의 본고장'이라 칭하며 그토록 전통과 고집을 내세우던 유럽 내에서도 실험적인 레시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양조장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브루독, 네덜란드의 데몰렌, 덴마크의 미켈러와 투욀이 그렇다.

미켈러의 경우 바로 얼마 전 신사동에 미켈러 바를 성황리에 열기도 했다. 크래프트 맥주가 맥주계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현실! 보다 다양한 맥주들로의 접근성이 높아진다는 면에서 맥덕들 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희소식이 분명하다.

독특함(Unique)

몇백 년을 이어온 전통 맥주들과 쟁쟁한 대기업 맥주들 사이에서 조그마한 영세 크래프트 맥주들이 살아남는 것도 모자라 어느 새 트렌드를 주도하게까지 됐다. 그런 이유 가운데 맥주의 맛 말고 또 다른 건 없을까? 독특함으로 인한 차별화다. 대충 만든 듯하지만 유일무이한 마케팅이나 콘셉트들이 코와 입뿐 아니라 눈까지도 즐겁게 한다.

자기 맥주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함과 개성을 로고, 코스터, 드래프트 탭, 맥주 이름에까지 한껏 살려내고, 새겨넣는다. 궁금하게, 알고 싶어 못 배기게 만든다. 맥주 맛뿐 아니라 탭하우스의 인테리어나 콘셉트를 맛보는 것도 크래프트맥주에서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미다.

전망(View, Vision)

그렇다면 과연 한국에서의 크래프트 맥주 열풍은? 아마 요즘 들어 가장 뜨거운 시장이 아닐까. 펍을 찾는 손님들의 계층과 연령대가 이전보다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GKBF(Great Korean Beer Festiva) 등 시즌마다 열리는 크래프트 맥주 축제들도 해를 거듭할수록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그래서일까. 수많은 사람이 크래프트 맥주 속으로 첨벙첨벙 뛰어들고 있다.

외국인 오너들이 운영하고 외국인 고객들이 많이 찾던 이태원과 신사동 일대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펍들이 하나 둘 생겨나더니, 청담동과 강남 한복판을 넘어 이제는 지방에도 그 수가 부쩍 늘었다. 브루어리 쪽도 마찬가지다. 이전까진 서울과 수도권 중심이었던 데 비해 충북 음성의 코리아크래프트 브루어리, 순창 장앤크래프트브루어리 같은 중대형급 브루어리들부터, 부산의 갈매기 브루잉과 아키투 브루잉, 울산 트레비 등도 지방에 터를 잡고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맥주저장통.
 맥주저장통.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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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Worrying)

하지만 지난 기사의 '실패(Failure)' 파트에서 살펴봤듯 우리는 지난 독일식 브로이하우스 열풍에서 실패한 경험이 있다. 사실 지금 뛰어드는 사람들 중에도 맥주에 대한 열정이나 사랑보다는 사업적 전망을 먼저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한편 수입 맥주의 맥주 시장 잠식 우려 등의 이유로 몇 년 사이 조금이나마 주세법이 완화됐다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게다가 이번부터 관할이 국세청에서 식약청으로 이전됨에 따라, 설비 기준 뿐 아니라 위생적 측면의 관리까지 더더욱 까다롭게 되었다. 더욱이 크래프트 맥주 씬(업계)이 소위 '힙(최신 유행)'한 것으로 떠오르면서 너도 나도 뛰어드는 통에, 공급이 수요를 훨씬 웃도는 과잉 상태가 돼 가고 있다는 지적과 우려의 시선 역시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기대(expectation)

온라인 맥주 커뮤니티들에서 수 차례씩 열띤 토론들이 이어진다.
드디어 본격적인 크래프트 씬이 열렸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이 역시 잠깐 스쳐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지 않겠느냐, 올해가 최대 분수령일 테니 우선 섣부른 판단은 유보해야 한다, 말들이 많다. 재밌는 것은 그럼에도, 다수의 맥덕은 아직 희망과 기대를 걸어봄 직하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왜?(why)

맥주는 막걸리와 다르게 우리네 전통 술도 아니고, 더욱이 대기업 라거들이 아닌 크래프트맥주는 이제야 막 더디게 한 발씩 내딛고 있는 작고 작은 시장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우려되는 요소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 그런데 왜들 이렇게 긍정적인 미래를 기대하고 있는 걸까? '소비자들의 변화' 때문이다.

기존 맥덕 뿐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새로운 맥주의 맛에 눈을 뜨고, 보다 다양한 것을 갈망하고 있다. 이렇게 눈에 띄게 달라진 소비 형태는 이제 맥주 시장의 전체적인 흐름을 움직인다. 100여 년간 지속해오던 '독식'의 흐름이 비로소 바뀌고 있다. 더욱이 십년 전과는 다르게 꼭 규모가 크거나 TV, 신문 광고 등 전통적인 매체를 통한 대대적 홍보가 아니고서도 소비자와 소통이 가능한 작은 통로들이 많이 열려있다.

홈페이지 뿐 아니라 특히 페이스북 등의 SNS는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브루어들의 직접적이고 끊임없는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목말라하는지를 파악함으로써 함께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맥주를 '갖고 놀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이 어느 정도는 준비된 것이다.

제로 시장(Zero)

혹자들은 한국 크래프트 맥주 시장을 '제로'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제로 선에서 출발하는 가이드라인을 조심스럽고 완벽하게만 만들어낸다면, 발화점을 제대로 찾아낸다면 제로는 곧 무한의 가능성을 지닌 것이기도 하다. 이제 시작인 우리에겐 가능성이 열려있고, 실제로 열정을 가진 많은 브루어들이 쉼 없이 두드려보면서 돌다리를 만들고 있다.

여기에 맥주를 좋아하는 소비자들이 단순히 맥주를 마시는 일 뿐 아니라 스스로 맥주 마니아(Beer Activist)가 돼 준다면, 한국의 맥주 문화도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이미 충분히 달라지고 있다. 마셔라 부어라 취하는 문화에서 가볍게 즐기는 문화로, 또 그 맛있는 문화 안에서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날이 부디 가깝기를! 팬으로서 기대한다. 맛있는 바람이 분다.


태그:#크래프트비어, #수제맥주, #IPA, #미켈러, #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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