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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또 다시 망나니 칼춤을 추려는 것인가?"
"기어코 김재철 시절의 악령이 되살아나고 말았다."


21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가 낸 성명서의 제목과 첫 문장이다. 이보다 상황을 잘 요약한 문장이 또 있으랴. MBC가 또 하나의 해고자를 낳았다. 장기를 살려 자신의 생각을 만화로 그린 게 MBC 사측이 내세운 해고 이유란다. 납득은커녕 한탄이 터져 나온다.

MBC 사측은 지난 19일 권성민 PD를 해고했다. 권 PD는 이미 지난해 5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 '오늘의 유머'에 개인적인 차원에서 'MBC 세월호 보도 참사'에 대해 사과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정직 6개월을 받은 뒤, 12월 복귀 때 비제작부서인 경인지사 수원총국으로 전보 조치됐다. 그리고 불과 한 달여 만에 해고란 날벼락을 맞게 됐다.

그 사유가 목불인견이다. 사측은 권 PD가 자신의 SNS에 올린 '예능국 이야기'란 만화 형식의 게시물을 문제 삼았다. "인터넷 등 온라인 공간에서 회사 명예훼손과 해사(害社) 행위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유배'라 표현했던 정직 기간에 자신이 복귀하고픈 예능국과 PD로서의 애환을 위트 있게 그린 만화는 그렇게 해고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해고를 예상치 못했을 권 PD는 지난 16일 이러한 글을 적었다.

"'언론의 자유는 국민주권 실현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고 권력에 대한 감시, 국민에게 정치적 의사 결정에 필요한 정보 제공으로 이뤄진 만큼 언론활동은 이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이번 김어준 주진우 판결문 중."

눈 밖에 난 직원들, 셋 중 하나의 관문 통과하는 중

2012년 총파업 당시의 모습.
 2012년 총파업 당시의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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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지난 20일, 최현정 MBC 아나운서의 퇴사 소식이 알려졌다. 2006년 입사한 34기 아나운서가 10년 만에 친정을 떠나 프리랜서로 나서게 됐다. 그런데, 퇴사의 과정이 석연치가 않다.

지난 2012년 파업에 앞장섰던 최 아나운서는 대기발령과 '신천교육대'로 불리는 교육발령을 받았고, 비제작부서인 사회공헌실도 거쳤다. 2013년 4월 서울남부지법이 내린 부당전보에 대한 '전보발령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승소 판결에 54명의 동료와 함께 아나운서국으로 복귀했다. 이후 지난해부턴 라디오국에서 진행이 아닌 PD일을 맡았다.

2008년 '아나테이너' 붐을 타고 서현진, 손정은, 문지애 등 선후배들과 <지피지기>란 예능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었던 최현정 아나운서. 그는 김재철 사장이 만들었던 MBC 아나운서 서바이벌 오디션 <신입사원>이란 예능에서 후배들을 교육했던 시절이 까마득하게 느껴질 법하다.

해고, 퇴사, 유배. 2012년 파업에 참여했거나 MBC 사측의 눈 밖에 난 직원들은 이 셋 중 하나의 관문을 통과하는 중이다. <지피지기>에 출연했던 아나운서 중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는 손정은 아나운서 하나다. 2012년 파업 이후 MBC를 박차고 나온 아나운서는 오상진, 문지애, 최윤영, 나경은, 박혜진, 서현진 등 총 7명으로 늘었다. 방송국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간판 아나운서들의 탈출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지난해 MBC가 해체한 교양제작국 구성원들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김재철 사장 하에서 부사장을 지냈던 현 안광한 사장이 제대로 '칼춤'을 췄다고 볼 수 있다. 사측이 신사업개발센터로 임명된 영화 <제보자>의 주인공이자 <PD수첩>의 간판인 한학수 PD에게 스케이트장 관리 업무를 배당하려 한다는 언론보도가 있었지만, 면담 이후 다른 보직을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은 언론계는 물론 방송계 전체의 어이를 상실하게 만든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쯤 되면, 막내급에 해당하는 권성민 PD가 "엠XX과 꽤 열심히 싸웠다"고 표현하며 언급한 과거 '마봉춘'(MBC)은 그 마봉춘이 아니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지난 20일 방영된 MBC 신년대토론 <2015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자>는 이를 스스로 입증하는 '셀프인증'과도 같은 방송이었다.

최경환에 읍소 신동호 아나운서, MBC의 현재

"각계각층 국민들로부터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금년에는 노동, 교육, 금융, 공공부문 등 4대 개혁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

<100분 토론>은 그렇게 정부 정책 홍보 방송으로 변질됐다. 긴급 편성된 이날 토론에서 이 정부의 경제 수장은 '동문서답'으로 일관했다. '세금폭탄'에 쏟아지는 비난을 방어하기 위해 나온 경제부총리가 자기 말만 하는 모습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을 떠올린 이들은 적지 않았다.

진행을 맡은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은 한 술 더 떴다. "빠른 시일 내에 기회가 된다면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이 자리에 다시 모시고 싶다"며 한껏 움츠렸다. 신 국장은 MBC 파업 이후 김재철-안광한 라인에서 승승장구하며 <100분 토론>과 <신동호의 시선집중>을 진행 중이다. '구 손석희 현 신동호'가 바로 MBC의 현재 위치와 위상이라고 보면 딱 맞는다.

이렇게 김재철 전 사장 이후 안광한 사장 체제에서도 복귀되지 않는 '망가진 MBC'에 대한 우려와 비판은 점점 더 거세지는 중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웅변하는 대표적인 장면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만들어줬다.

"MBC, 너희들은 어디까지 갈 것이냐"

지난 8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서울 상암동 MBC 신사옥 앞에 섰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는 "MBC 너희들은 어디까지 갈 것이냐"고 일침을 놨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목소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6일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 '단원고 2학년 대입특례…세월호 배·보상 특별법 최종합의'란 리포트는 현재의 MBC가 자행하는 왜곡·편파 보도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월호 특별법 타결 소식을 전하며 학생들의 정원 외 대학 입학의 법적 근거로 "피해가족 등의 여론을 수렴한 야당의 요구가 수용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한 것이다.

세월호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와 국민대책회의 회원들이 지난 8일 오후 상암동 MBC사옥앞에서 'MBC 보도행태 규탄 및 선체인양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 "MBC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세월호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와 국민대책회의 회원들이 지난 8일 오후 상암동 MBC사옥앞에서 'MBC 보도행태 규탄 및 선체인양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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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별법까지 정치적으로 몰아가는 MBC의 이러한 보도행태는 현 MBC가 이미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만든다. JTBC <뉴스룸>에 뒤처지고, 이제는 예능과 드라마밖에 매달릴 것이 없는 공영방송 MBC는 점점 더 정권편향적인 동시에 자사이익만을 추구하는 사익 집단으로 변해가고 있다.

사회현안은 모르쇠나 왜곡으로 일관하는 와중에도 자사 이익과 매출을 위해 광고총량제 도입 등 '방송광고 제도개선(안)' (보도라 보기 민망한)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연내에 지상파와 종편을 아우르는 '통합시청률' 조사 방식이 도입될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무한도전>과 몇 개 드라마만이 살아남을지도 모를 MBC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채널 이미지를 스스로 망가뜨리고 '기레기 MBC'로 전락한 이 공영방송이 다시금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답은 이미 나왔다. 방송 환경은 더욱 냉혹해지고, 시청자들의 눈은 높아져만 간다. 자사 식구들을 거리로 내모는 조직이자 사실까지 왜곡하는 방송사에 미래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태그:#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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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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