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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술과 음악, 메스칼과 마리아치

결국 내가 메스칼(Mezcal)을 맛볼 수 있었던 건 멕시코 시티를 떠나기 전 날이었다. 단돈 900원이면 먹을 수 있는 멕시코산 맥주와 저렴한 테킬라에 취해 굳이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다. 테킬라의 나라에 와서 메스칼을 먹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에 반 강제로 가리발디 광장(Plaza Garibaldi)을 찾았다.

 - 가리발디 광장에 있는 메스칼 박물관에서 멕시코의 전통주 메스칼에 관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 메스칼 박물관 - 가리발디 광장에 있는 메스칼 박물관에서 멕시코의 전통주 메스칼에 관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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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발디 광장에 있는 메스칼 박물관은 그야말로 술의 향연이다. 2층에 위치한 역사관에서는 테킬라가 사실은 메스칼의 한 종류임을 알려준다. 메스칼은 용설란 수액을 이용해 만든 증류주를 뜻하는데 테킬라는 특정 주에서 생산되는 용설란 수액을 이용한 증류주다. 19세기 산업혁명과 함께 술을 만들어 내는 방식도 공업화되면서 독자적인 이름을 갖게 된 테킬라와 달리 메스칼은 여전히 수공으로 만들어지는 전통주와 같은 이미지를 갖게 됐다. 획일적인 테킬라와 달리 그 병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특히 '벌레가 들어간 고급 술'이라는 소문을 뒷받침하듯, 유충의 모습을 딴 병이 인상적이었다. 용설란의 뿌리에는 붉고 하얀 벌레가 사는데, 증류하는 과정에 섞여 들어간 벌레의 모습이 외국인들의 눈길을 끌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일부 고급 브랜드의 메스칼은 일부러 벌레가 들어간 채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메스칼 박물관 1층에 있는 바에서는 실제 메스칼을 판매하며 마실 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들어서면 술보다는 병에 눈이 갈 정도로 전시된 병들의 모습은 각양각생으로 재미있다.
 메스칼 박물관 1층에 있는 바에서는 실제 메스칼을 판매하며 마실 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들어서면 술보다는 병에 눈이 갈 정도로 전시된 병들의 모습은 각양각생으로 재미있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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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궁금한 것은 그 맛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선 1층 바에는 사방이 메스칼로 가득 채워진 방이 있다. 이곳에서는 약간의 돈을 내면 여러 가지 메스칼을 샘플로 마실 수 있다.

그 환상적인 풍경에 잠시 넋을 뺏겼다가 냉큼 바에 앉아 세 가지 종류를 주문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들이킨 첫 잔은 말 그대로 찌릿했다. 알코올에 불을 붙인 것처럼 화악 타오르는 강렬하고 거친 맛이 목을 자극한다.

살짝 이마가 찌푸려졌지만 그대로 두 번째, 세 번째 잔을 삼켰다. 그제서야 정제되지 않은 거친 알코올 속에 깃든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어떻게 보관할 것인지에 걱정은 접어둔 채, 나는 푸른 빛을 머금어 마치 보석처럼 빛나는 예쁜 병에 담긴 메스칼 한 병을 집어 들었다.

 - 스페인을 중심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민족적 요소가 결합되어 있는 이들은 돈을 받고 음악을 연주하는 프로 연주가들이다. 가리발디 광장의 역사적인 인물 사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마리아치 동상이, 이들이 얼마나 사랑 받는지를 증명해준다.
▲ 멕시코시티의 마리아치들 - 스페인을 중심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민족적 요소가 결합되어 있는 이들은 돈을 받고 음악을 연주하는 프로 연주가들이다. 가리발디 광장의 역사적인 인물 사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마리아치 동상이, 이들이 얼마나 사랑 받는지를 증명해준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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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벌개진 얼굴로 한낮의 태양이 뜨거운 가리발디 광장을 걸었다. 거리 좌우로는 역사적인 인물들의 동상이 줄을 지었는데 판초를 입고 얼굴이 파묻힐 만큼 커다란 챙 모자를 쓴 한 동상이 눈길을 끌었다. 다름 아닌 거리의 악사, 마리아치( Mariachi)의 모습이다.

아직 술집 문을 열기에는 이른 시간이지만, 하얗고 검게 차려 입은 몇몇 악사들은 벌써부터 거리에 모여 들었다. 커다란 모자에 쫙 달라붙은 흰 옷과 부츠를 갖춰 입은 마리아치 밴드는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때때로 악기를 조율하며 멕시코 특유의 흥을 거리에 퍼뜨렸다. 그 곁을 기웃기웃 거리다 눈이 마주친 한 악사는 벌개진 내 얼굴에 윙크로 화답한다.

시계와 닫힌 문을 번갈아 보기를 여러 번, 나는 고개를 떨군 채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기에는 너무 이르기도 했지만 혼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의 세월이 지나야만, 다시 이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을까.

라틴아메리카 타워, 멕시코시티와 이별하기 좋은 곳

 - 총 45개층으로 된 높이 183m의 타워로, 높은 건물이 없는 멕시코시티 어디에서든 보인다. 지리적으로 북미에 속하지만 '라틴' 이라는 이름을 넣은 것이 멕시코의 정신이 어디에 속하는지를 잘 나타내어 준다.
▲ 라틴아메리카타워 - 총 45개층으로 된 높이 183m의 타워로, 높은 건물이 없는 멕시코시티 어디에서든 보인다. 지리적으로 북미에 속하지만 '라틴' 이라는 이름을 넣은 것이 멕시코의 정신이 어디에 속하는지를 잘 나타내어 준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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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한 가득 아쉬움을 안고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라틴아메리카 타워(Torre Latino Americana)였다. 멕시코시티의 어디에서든 보이는 이 높은 건물은 중세의 역사적인 건물들이 많은 이 고대 도시에서 거의 유일한 현대식 고층건물이다. 예술궁전 너머로 보이는 그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유달리 이질적인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는 생각까지 했으나 결론적으로 멕시코시티와 이별하기에는 이보다 좋은 곳이 없었다.

 - 라틴아메리카타워의 꼭대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멕시코 시티의 모습은 그림을 그려놓은 듯 아름답다.
▲ 멕시코시티의 전경 - 라틴아메리카타워의 꼭대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멕시코 시티의 모습은 그림을 그려놓은 듯 아름답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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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42층부터 시작되는 전망대에 도착하니 멕시코시티의 동서남북이 태평양 바다처럼 사방으로 펼쳐진다. 자로 잰 듯이 네모지게 나열된 오랜 건물들이 고대제국에 물들은 유럽의 향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비록 고대의 많은 것이 파괴되고 순수 혈통의 인디오들은 사라져갔지만 그 영혼은 아직도 고스란히 멕시코시티의 곳곳에 잠들어 있다. 수천 년을 이어온 고대인들의 지혜는 이 새로운 문명 안의 사람들에게 열정과 낭만을 선사한다.

아아. 나는 과연 이 도시를 잊을 수 있을까. 난데없이 나타난 마리아치의 풍요로운 음악에 강렬한 메스칼 한 잔을 곁들이는, 코르테스의 황금보다 아름답고 흥미로운 이 삶의 흔적들을.

간략여행정보
소칼로 광장에서 도보거리에 있는 라틴아메리카 타워는 멕시코 시티에서 가장 높은 건물임과 동시에 이 대도시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이는 유일한 장소이다. 총 43층으로 된 이 높은 타워는 42층부터 실내전망대가 시작되고 최고 층에서 계단을 통해 옥외 옥상으로 갈 수 있다. 정상에서 사방으로 펼쳐지는 파노라마 뷰는 몇 번을 봐도 지겹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멋있다.

멕시코의 풍류를 즐기고 싶다면 저녁에 문을 여는 가리발디 광장의 펍이나 식당을 방문해보자. 알싸한 메스칼에 마리아치의 흥겨운 음악이라면 이 도시를 떠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가리발디 광장 한 켠에 있는 메스칼 박물관은 보너스.
입장료는 아래와 같다.

라틴아메리카타워 전망대 : 70페소(한화 약 8천원, 2013년 1월 기준)
메스칼 박물관 : 25페소(한화 약 2천원, 2013년 1월 기준)



태그:#라틴아메리카타워, #멕시코시티, #메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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