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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것을 기사로 썼다. 거짓말을 해 독자 한 명을 늘릴지 모르겠지만 엄하게 끝까지 대처하겠다."

지난 7일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기자들 앞에서 내뱉은 말들엔 가시가 잔뜩 돋아 있었다. '대통령의 입' 역할을 하는 홍보수석이 진노하며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했지만, 앞뒤가 불분명하다. 앞뒤 정황을 잘 살펴보면 그의 말은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격이다.      

그는 지난 3일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일본의 <산케이신문>에 대해 뒤늦게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고 강한 어조로 밝혔다. 하지만 당시 <산케이신문>의 기사 내용은 지난달 18일 <조선일보> 최보식 선임기자가 썼던 '대통령을 둘러싼 風聞(풍문)'이란 제목의 칼럼을 인용하며 핵심의제를 거의 그대로 파급시킨 내용이어서 <산케이>측이 반발할 만도 하다.

"왜 <조선>은 문제 삼지 않고 <산케이>만 법적 조치?"

지난 3일 일본 <산케이신문>이 '박근혜 대통령이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 누구와 만났을까?'란 제목의 기사를 실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3일 일본 <산케이신문>이 '박근혜 대통령이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 누구와 만났을까?'란 제목의 기사를 실어 논란이 되고 있다.
ⓒ 산케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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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다케시 <산케이신문> 편집국장은 10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문제가 된 기사는 한국 국회에서의 질의 응답이나 <조선일보>에 게재된 칼럼 등 공개된 정보를 중심에 놓고 이를 소개하는 형식으로 작성된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글 가운데 특히 문제가 된 정윤회씨 부분은 <조선일보>의 칼럼을 인용한 것인데, 왜 <조선일보>는 문제 삼지 않고 <산케이신문>에만 법적 조치를 취하느냐"는 불만도 흘러 나왔다.

여기서 <산케이신문>이나 <조선일보>가 내세운 의혹 등에 관해서는 굳이 언급하진 않겠다. 다만, 일련의 사태가 국민적 재난인 세월호 참사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쉽게 간과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통령의 입'과 '대통령 말 한마디'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조선일보>와 검찰의 태도를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와 검찰은 세월호 참사 이후 사고책임 논란과 함께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유병언 사냥'을 진두지휘하며 세월호 참사의 시작과 종결점이 마치 그에게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누구보다 청와대의 행보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

그래서인지 <산케이신문>에 논란의 글을 게재하도록 원인을 제공한 <조선일보>는 파장이 커지자 9일 '일 산케이의 도발… 연일 한국·박대통령 비하'란 제목의 기사에서 더욱 불을 지피며 성을 냈다. 방귀 뀐 자가 성낸다더니 꼭 그런 형태다.    

"한국 대통령을 모욕하는 기사를 게재, 물의를 일으킨 <산케이신문>은 '반한 감정 조장'이 존재 이유라는 비아냥이 일본에서 제기될 정도로 '한국 비하 기사'를 연발하고 있다."

<조선>은 자사가 내보낸 글을 인용해 보도한 일본신문의 글에 대해 청와대 홍보수석이 '책임론'을 제기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 대통령을 모욕하는 기사'라고 폄훼하는 등 가뜩이나 사나워진 양국 감정을 더욱 자극했다.

7시간 미스터리, 한·일 양국은 물론 국제적 관심거리

이와 때를 함께 해 <조선>과 손바닥을 마주치듯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곳은 서울중앙지검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정수봉)는 10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된 가토 타쯔야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에게 12일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자사 인터넷판과 TV조선을 통해 '검찰, 산케이 지국장 출국정지하고 소환 통보'란 제목의 속보기사를 주말과 휴일 내내 내보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일정과 관련한 의혹 보도로 고발된 일본 산케이신문의 가토 타쯔야 서울지국장이 출국정지 조치를 당했다"며 마치 승전보를 알리듯 환호했다. 특히 TV조선은 <특보>, <단독>을 앞세워 관련기사를 내보내면서 <산케이신문>의 법적처벌을 무겁게 해야 한다는 쪽에 방점을 찍었다.  

한일 양국의 극우·보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조선일보>와 <산케이신문>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펼치는 신경전은 가관이다. 그러나 그건 결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문제가 된 기사는 한국 국회에서 이뤄진 논의나 한국 신문의 칼럼 소개가 중심인데 명예훼손 혐의로 출석을 요구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산케이신문>의 주장을 청와대와 검찰이 어떻게 받아 넘길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가장 중요한 건 청와대가 4월 16일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해 어떤 명료한 입장을 내놓는지다. 자칫 미적거리다간 국가적 망신거리가 될 수 있다. 300명이 넘는 목숨이 무참히 수장되는 상황을 바라만 보고 있었던 대 참사의 그날, 행방이 묘연하다던 대통령의 7시간 미스터리는 한·일 양국은 물론 국제적 관심거리가 됐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 청와대 경내에 머무르며 사고 관련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지만 믿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또 검찰은 <조선일보>가 의혹을 제기한 칼럼이 국정운영의 난맥상을 지적하는 것이어서 <산케이신문> 기사 주제와는 의도가 전혀 다르다며 <조선>의 글을 거의 베끼다시피 한 <산케이>에 대해서만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하는데, 이 또한 얼마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박 대통령, 영국 <가디언>의 따끔한 충고 벌써 잊었나?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확대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확대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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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시민단체 등이 지난 6일과 7일 <산케이신문> 가토 지국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자 검찰이 그에 대해 출국정지 조치를 내렸지만, 자유수호청년단과 독도사랑회 등이 고발하지 않았더라면 검찰은 어떻게 처리했을까? 검찰이 지금처럼 보도 근거와 취재 경위 등을 조사한 뒤 형사처벌 여부를 결정한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검찰의 주장대로 <산케이>의 글이 "국가원수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인 만큼 사안도 중대하다고 판단했다"면 <조선>이 더 먼저, 자극적으로 내보낸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의 글도 같은 맥락에서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산케이신문>은 <조선일보> 칼럼 외에도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달 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한 발언과 증권가 정보지 내용을 토대로 '세월호가 침몰한 4월 16일 박 대통령이 7시간에 걸쳐 소재 불명이 됐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산케이신문> 기사의 주된 내용은 <조선일보>가 쓴 칼럼에 관한 것이지만, 청와대가 <산케이신문> 기사의 빌미를 제공한 <조선일보>의 칼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는 것은 누가 봐도 형평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청와대와 <조선>이 한통속이라는 것을 과시해주는 꼴에 다름 아니다. 상황이 이런 지경임에도 <조선>은 뻔뻔하게도 "한국 대통령을 모욕하는 기사를 게재, 물의를 일으킨 <산케이신문>이 '한국 비하 기사'를 연발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과연 같은 언론으로서 그런 자격이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표 '유체이탈' 화법이 그대로 <조선일보>의 보도에까지 옮겨 붙은 형국이다.

"서양국가에서 의심할 여지가 없는 국가적 비극에 이렇게 늑장 대응을 하고도 신용과 지위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는 국가 지도자는 결코 없을 것이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인 <가디언(The Guardian)>이 우리나라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정부의 무능한 대처능력을 바라보며 지면에 실은 칼럼을 통해 '일국의 대통령이 '살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늦어버린 타이밍을 수사의 강도로 만회하려는 행태'를 꼬집은 따가운 지적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은 '진실'은 없고 '루머'만 풍성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미스터리 7시간'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명쾌하게 답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지난 4월 16일,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한 의혹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태그:#세월호 참사, #박근혜 7시간 미스터리, #조선일보, #산케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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