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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8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협회에서 기자와 만나 인터뷰를 한 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
 지난 6월 28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협회에서 기자와 만나 인터뷰를 한 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
ⓒ 엄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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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모님에게 앞으로 적용될 포괄수가제로 진료를 맡기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7월 1일 정부의 포괄수가제 확대 시행'에 맞서던 의료계가 전면 방침을 바꿔 이를 '수용'했다. 위의 말은 의료계 대표로 기자회견을 한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회장의 말이다. 이 말만 놓고 보면, '제도를 수용하겠다고 기자회견까지 한 의협 회장의 생각이 왜 다른 거냐'는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아니 그게 당연하다.

사실, 기자회견을 하기로 한 지난 6월 29일 아침까지만 해도 노 회장은 명백히 '포괄수가제 확대 시행 반대' 입장이었다. 알려졌다시피 의료계는 '수술 거부'라는 초강경 카드까지 꺼내든 마당이었다. 그래서 기자는 긴급하게 노 회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지난 6월 28일 단독 인터뷰를 했다. 그 자리에서 노 회장에게 의료계의 입장과 개인의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기자가 노 회장의 인터뷰 기사를 마무리 할 때쯤 서울 대한의사협회 동아홀에서 기자회견이 열렸고, 사태는 급반전됐다. 그 사이 19대 국회에서 보건복지위 활동 예정인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 전격 의협을 방문해 노 회장 등과 대화를 나눴고,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포괄수가제 관련 설문조사 결과 찬성 여론이 우세하게 나온 것 등이 의협의 방침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기자가 한 노 회장의 인터뷰 기사는 묻히게 됐다.

하지만 궁금했다. 단 하루도 안 돼 포괄수가제에 대한 방침이 왜 바뀌었는지. 그래서 다시 노 회장에게 연락을 했고, 수용 기자회견을 한 지 3일이 지난 2일 전화 인터뷰를 다시 했다.

노 회장은 전화 인터뷰 내내 "의협의 방침은 1주일 '수술 연기'를 철회한 것 이외에는 달라진 점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문제 해결이 안 될 경우 지난 2000년에 경험했던 의료 대란이 분명히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포괄수가제(DRG)란?
환자의 진단에 기초하여 진단명 당 정액으로 진료비를 사전에 책정하는 제도이다. 의료비를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환자에 대한 의료 서비스가 감소하는 등의 부작용도 있는 제도로 유럽의 일부 나라와 미국에서는 메디케어(65세 이상 노인 및 장애자 보험)에서 적용되고 있다.
또 노 회장은 기자회견 직전에 정몽준 의원을 만난 배경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대화 자체를 거부했고, 정 전 대표와 만나기로 한 날도 보건복지부는 약속 6시간 전 일방적으로 약속을 취소하였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책임 있는 정치인의 역량이었고, 정 전 대표가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노력하기로 약속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의 노력과 역량을 믿는다"고 말했다. 
특히 노 회장은 "현재 정부는 행정력과 여론을 동원해 국민에게 포괄수가제의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협에는 (포괄수가제의 진실을 알릴) 이런 힘이 없다. 대신 정부는 포괄수가제에 대해 절대 장기전을 할 수 없다. 반면 의사들은 의료 현장에서 직접 환자들과 만나고 그 부작용을 알기 때문에 포괄수가제의 진실에 대해 장기적으로 홍보를 할 수 있다. 시간이 계속되면 분명히 포괄수가제의 부작용이 나올 것이고 피해 환자들이 나올 것이다."

한편, 노 회장은 "의협은 포괄수가제의 피해 환자들을 모아 대정부 소송을 끝까지 전개해서 정부의 왜곡된 포괄수가제의 진실을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노환규 의협 회장과 나눈 7월 2일 전화 통화와 6월 28일 직접 만나 나눈 일문일답의 주요 내용이다.

"몇 가지 조건 정부가 성실히 이행한다면 피 흘리는 사태 벌어지지 않을 것"

한 초등학생이 병원 진료를 받고 있다.
 한 초등학생이 병원 진료를 받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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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괄수가제가 7개 경증질환이 아니라 암치료 등 553개 전체 질환군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했는데 더 자세히 듣고 싶다.
"포괄수가제가 7월 1일부터 7개 질환에 대해서 전면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지 않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같은 날 553개의 질환군에 대해 신포괄수가제라는 명목으로 시범사업이 전국의 35개 지방공사의료원과 5개 적십자병원에서 추가로 실시되고 있다. 이것은 앞으로 포괄수가제를 553개 항목에 대해서도 시간을 두고 실시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아니겠는가?"

- 기자회견에서 '포괄수가제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에 관한 문제는 정부의 책임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이제 여당이 책임져야 한다. 우리는 정부에게 피 흘리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라고 했다. 어떤 뜻인가?
"피를 흘린다고 말한 것은 정부와 정면 대결구도로 나간다는 것이었다. 장기적으로 좋은 의료제도를 만들기 위해 2000년의 의료 대란이 또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이번의 몇 가지 조건을 단 것을 정부가 성실히 이행한다면 피를 흘리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수술 연기였지만, 다음엔 수술 중단이 될 것이다."

- 왜 정부와의 대화가 아니고, 정몽준 전 대표와 대화를 하였나.
"보건복지부가 대화 자체를 거부하며 약속 6시간 전 일방적으로 취소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책임 있는 정치인의 역량이었다. 정 전 대표가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노력하기로 약속하기로 하였기 때문에 그의 노력과 역량을 믿는다."

- 포괄수가제 반대는 계속되는 것인가? 만약 정몽준 전 대표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거나 약속을 지키려 해도 여러 이유로 무산이 될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법을 바꿔야 하는 것은 국회를 통과해야 하지만, 다른 여러 가지 포괄수가제 개선 협의체를 만들어서 수가조정을 하는 등의 문제는 정부의 노력만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므로 쉽게 무산되지는 않을 것이다."

- 정몽준 의원 한 사람이 할 수 있을까?
"포괄수가제 문제는 현재는 의료계의 일이지만 곧 정치적인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의 일이 된다. 정치인들이 관심 안 가진다면 이것이 곧 정치인의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현재 의협은 1주일 수술 연기를 철회한 것 이외에는 달라진 점이 전혀 없다. 한 가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문제 해결이 안 되면 의료 대란은 분명히 온다는 것이다."

"포괄수가제 실시로 민영의료보험이 취하는 이득 연간 조 단위 넘을 것"

한 병원의 수술실
 한 병원의 수술실
ⓒ 김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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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로 대표되는 언론사들이 이번 포괄수가제의 찬성에 열을 올리는 것 같다. 노 대표도 블로그나 페이스북을 통해 <중앙일보>를 전면적으로 비판했는데, <중앙일보>가 포괄수가제와 어떤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인가?"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중앙일보>는 삼성 계열의 신문사다. 그리고 삼성그룹은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민영 의료보험을 거느리고 있다. 의협이 공식적으로 포괄수가제를 반대하고 나선 이후 매일 최소 1건 이상의 포괄수가제 찬성 기사가 <중앙일보>를 통해 보도되고 연일 의협에 대한 과도한 비판 기사가 쏟아졌다. 지나치게 편향된 의견은 모종의 관련성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중앙일보>가 정도를 걷는 언론사라고 생각하고 지지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많이 실망을 하게 되었다."

-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민간 보험회사와 포괄수가제가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인가?
"포괄수가제가 시행될 경우 국가 보험재정뿐만 아니라 민영의료보험(실손보상보험)이 지출하는 비용도 크게 줄어들게 된다. 환자본인부담금이 감소하기 때문에 민영의료보험회사들이 지출하는 보험금 지급 비용도 크게 감소할 것이다. 포괄수가제가 전체 질환으로 확대된다면 아마도 민영의료보험이 취하는 이득이 연간 조 단위가 넘게 될 것이다.

즉 포괄수가제 도입으로 환자의 진료 선택권은 제한되지만, 민영보험사에는 큰 이득이 될 수밖에 없다. 최근 임채민 복지부 장관이 건강보험이 100% 보장을 못하니 개인이 민간보험을 들어 보완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는데, 결국 포괄수가제도 민영의료보험사를 도와주는 결과가 될 것이다."

- 포괄수가제가 의료민영화로 가기 위한 초석일 수도 있다는 소리로 들린다.
"그렇다. 의협 회장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은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의협, 정직하지 않은 정부와 끝까지 싸울 것"

노환규 의협 회장
 노환규 의협 회장
ⓒ 엄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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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각에서는 정부가 포괄수가제를 수년 전부터 매우 체계적으로 준비해왔고, 의사들의 반대는 일시적이고 산발적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노 회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사태가 정권을 위협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어떤 뜻인가?"기본적으로 정부의 가장 필요한 덕목은 국민들에 대한 정직함이다. 그런데 이번 포괄수가제 사태를 겪으면서 정부 기관인 보건복지부와 심사평가원은 통계 자료를 왜곡하고 의사들을 매도하는 등 매우 부정직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의사가 현 정부를 지지했지만, 포괄수가제 이외에도 현 정부가 보여주는 일련의 거짓을 일삼는 태도를 보고 많은 실망을 했다.

의약분업보다도 더 국민 건강에 해가 될 수 있는 포괄수가제와 같은 제도를 전면 시행하는데 있어서 단 한번의 공청회도 열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했다. 선진국들은 포괄수가의 수가를 책정하는 데 있어서 정부와 의협이 오랫동안 협의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의협과 협의조차도 하지 않았다. 국민에게 정직하지 않고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정권은 그 자체로도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의협은 거짓말을 하는 정부에 의연히 맞서서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릴 것이다."

- 정부는 포괄수가제도를 끝까지 밀어붙일 태세다. 의협의 향후 대응 방안은 무엇인가?

"현재 정부는 행정력과 여론을 동원해 국민들에게 포괄수가제의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의협에는  (포괄수가제의 진실을 알릴) 이런 힘이 없다. 대신 정부는 포괄수가제에 대해 절대 장기전을 할 수 없다. 반면 의사들은 의료 현장에서 직접 환자들과 만나고 그 부작용을 알기 때문에 포괄수가제의 진실에 대해 장기적으로 홍보를 할 수 있다.

시간이 계속되면 분명히 포괄수가제의 부작용이 나올 것이고 피해 환자들이 나올 것이다. 의협은 포괄수가제 피해 환자들을 모아 대정부 소송을 끝까지 전개해서 왜곡된 포괄수가제의 진실을 알릴 것이다."


태그:#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포괄수가제, #정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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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면허의사(의사+한의사). 한국의사한의사 복수면허자협회 학술이사. 올바른 의학정보의 전달을 위해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의학과 한의학을 아우르는 통합의학적 관점에서 다양한 건강 정보를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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