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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5월이 가고 6월이 왔다. 현대사의 고비마다 많은 이들의 피눈물을 자아냈던 5월이 가고, 또다른 아픔의 계절 6월이 온 것이다.

2012년 5월을 바라보는 시각은 역시 극과 극이다. 5.18과 5.23(노무현 대통령의 기일을 이렇게 표현해도 될는지 아직까지는 모르겠다)을 곤혹스럽게 바라봐야 하는 이들에게는 다행히 별 탈 없이 지나간 시간이었지만, 아직도 억울한 영령들을 잊지 못한 이들에게는 그 무탈함이 야속한 시간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여전히 5.18 기념식에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탈상은 4월 총선의 여파 때문인지 생각보다 조용히 치러졌다.

물론 혹자들은 아직 6.10이 남았다고 '6월의 한방'을 기대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그것은 한낱 자위에 불과하다. 2008년 촛불집회 이후 6월은 더 이상 6월 항쟁의 달이 아니라, 6일 현충일을 기념하고, 25일 한국전쟁 발발을 잊지 말아야 하는 호국보훈의 달이 됐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자. 누가 6월 항쟁의 승리를 이야기하고 있는가. 차마 아직 5.16까지 복권할 수는 없기에 6월에 '올인'하는 사람들만이 보일 뿐이다.

전쟁은 모든 걸 앗아간다
▲ 부서진 서울 시내 전쟁은 모든 걸 앗아간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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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는게 없다
▲ 폐허가 된 종로 남아있는게 없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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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역사의 시계를 1980년대로 완벽히 돌려버린 현 정부. 덕분에 우리는 20년 전에나 그렸던 반공 포스터를 다시 그리고 있으며 온갖 유치한 수사들을 섞어가며 반공 글짓기를 하고 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보수언론들은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글들로 '빨갱이 사냥'을 하고 있으며,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극우단체들은 책 밖으로 튀어나와 직접적으로 폭력을 휘둘러대고 있다. 6월 항쟁으로 이끌어냈던 1987년 체제의 종말이 지금 바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어찌하여 이 정부는 잃어버린 10년을 운운하면서 무려 30년 전으로 돌아갔으며, 또한 사회는 왜 이런 정부의 역주행을 그대로 용인한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명약관화하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작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근현대사 부분은 쏙 빼놓고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만 읊조리고 있으니, 역사는 뒷걸음질치고 사람들은 그것이 퇴보인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말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그러나 이 명제는 현재 대한민국에 적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가 잊히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겨우 100년 전과 마찬가지로 다시 외국자본에 휘둘리고 있으며, 전쟁의 위험은 고조되고 있고, 기득권 세력들은 독재를 미화하는 데 열심이다. 역사를 배우지 않았던 결과 두 번째 되풀이되는 역사가 희극이 아닌 비극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홀로 남은 아이들
▲ 전쟁의 기억 홀로 남은 아이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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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현재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바로 '역사를 가르치는 일'이다. 특히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근현대사를 가르쳐야 한다. 역사책이 딱딱하다면 사진을 통해서, 영화를 통해서라도 가르쳐야 한다.

이와 같은 최근의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 전시회 'AP통신이 본 격동기 서울'은 매우 뜻깊은 전시회다. 비록 외국인의 관점에서 본 서울이지만, 어쨌든 현재 우리가 잊고 있는 그 시대 우리의 민낯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이 본 격동기 서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는 그들이 시선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여기 그들의 사진 몇 장으로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 보자.

전쟁의 기억

전시회는 1945년 광복 이후 해방 정국 때부터 1960년 4.19혁명까지 서울의 극적인 순간을 사진 속에 담아놨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한국전쟁 당시 서울의 풍경이었다. 무너지고 붕괴된 서울 시가지와 폐허 속에서 두려움에 떠는 민초들의 모습. 과연 이 전쟁은 누구의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는지...

AP는 우리의 적이 누군지 찍고 싶었던 게다
▲ 누구와 싸우는가 AP는 우리의 적이 누군지 찍고 싶었던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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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공포다
▲ 포격 소리에 귀를 막은 이들 전쟁은 공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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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와 같은 끔찍한 전쟁의 참화를 경험했음에도 60년이 지난 오늘 또다시 전쟁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2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점차적으로 줄어들었던 전쟁의 가능성은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다시 높아지고 있다. 북한을 하나의 대화 상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골치 아픈 문제 덩어리로 인식한 채, 공공연히 흡수통일을 이야기함으로써 북한을 자극하고 있는 그들.

물론 전쟁이 일어난다면 북한이 남한을 이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제아무리 북한이 전쟁준비를 했다고 한들 현대전의 승패는 결국 경제력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한이 북한에게 승리한다고 한들 그게 무슨 소용 있을까. 어쨌든 전쟁이 나면 북한은 그들이 소유한 재래식 무기를 모두 수도권으로 쏘아 올릴 것이고, 남한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그 피해를 떠안아야 한다. 아무리 남한과 미국이 북한을 정밀 타격할 것이라고는 하지만 북한의 모든 것을 제어할 수는 없는 바, 북한은 이왕 이렇게 된 것 하며 이판사판으로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결국 한민족의 공멸로 이어질 수 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현실 앞에서 승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통일이 어떤 가치가 있겠는가. 전시회의 사진은 결코 과거가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우리가 잘못 택할 수도 있는 가까운 우리의 미래 모습일 뿐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이상 역사는 기어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전쟁, 그 후의 기억

전쟁으로 더욱 극심해진 내분
▲ 좌우익의 갈등 전쟁으로 더욱 극심해진 내분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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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사진은 전쟁 당시 서울에서 벌어진 치열했던 '시민들 간의 싸움'이었다. 점령과 탈환, 재점령과 재탈환을 거치면서 서로를 믿을 수 없게 된 시민들과 그로 인한 갈등들.

이 사진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결국 전쟁은 하나의 공동체를 다른 방식으로 무너뜨린다. 물론 적군을 앞두고 공동체는 하나로 똘똘 뭉치겠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와 다른 소수는 가차 없이 배제되고 탄압당할 것이다. 전쟁이란 극한 상황에서는 적군과 아군, 우리 편과 너희 편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게 형성된 공동체의 성격이다. 오직 하나의 의견만 존재하는 공동체는 역시 역사적으로 퇴행할 수밖에 없다. 내부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나면 그 공동체는 경직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변화하는 외부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지배하는 자와 그 지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존재하는 우울한 사회.

북한과 전혀 다를 바 없었던 남한
▲ 독재의 추억 북한과 전혀 다를 바 없었던 남한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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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국전쟁 이후 남북한 모두 강력한 독재정권이 들어설 수 있었음은 이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전쟁을 통해 우리와 다른 이들이 모두 제거됐으니 어찌 사회가 건강할 수 있었겠는가. 남한은 한국식 민주주의, 북한은 조선식 사회주의를 주장했지만 그것은 결국 두 국가가 전쟁 이후 독재정권으로 수렴됐음을 의미할 뿐이다. 냉전체제 아래 남과 북은 겉모습만 다른 쌍둥이로서 재탄생한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 승리의 기억 역사는 반복된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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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직후 북한과 결코 많이 다르지 않았던 남한의 모습.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남한의 역사는 북한과 다른 궤적을 그리게 되는데, 그것은 결국 남한이 자본주의 체제와 함께 수용한 민주주의의 틀 때문이었다. 공식적인 사고와 획일적인 판단만이 존재했던 북한의 사회주의와 달리 남한은 어쨌든 형식적으로라도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채택함으로써 공동체 내부의 다른 목소리를 인정하게 됐는데, 그것이 역사 발전에 있어서 가장 큰 차이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남한은 스스로 독재의 틀을 깨기 시작했다.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이상 하나의 의견만 고수하는 독재는 구조적으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물론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성숙되지 않아 4.19 뒤에 다시 군사독재정부가 들어서 1980년대까지 지속됐지만, 궁극적으로 그들을 축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독재로 길들여지지 않는 시민들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2012년이다. 4.19가 일어난 지 50년이 넘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보자. 아직도 혹자들은 1950년대식 사고방식으로 사회를 통제하고자 한다. '빨갱이'를 운운하며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자 하며 과거 시민들의 힘으로 엎어뜨린 독재정부를 미화하기에 바쁘다.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이미 우리는 지난 4년을 겪으면서 그 역시도 거짓임을 보지 않았던가.

우리의 얼마 되지 않은 역사부터 가르치자. 되새김질하지 않은 역사는 반드시 반복되기 때문이다. 또 전쟁을 할 수도, 독재정부를 받아들일 수도 없지 않은가. 부디 많은 이들이 전시회를 찾아 역사의 시계를 거스르는 우리의 현실을 반추하시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AP통신이 본 격동기 서울' 전시회는 6월 10일까지 열립니다. 전시회는 원래 6월 3일까지였으나 1주일 연장됐다고 합니다.



태그:#AP통신이 본 격동기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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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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