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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수가제란?
특정 질환의 진료비용(진찰, 검사, 수술비 등)을 의료기관별로 정액으로 미리정해 놓은 진료비정산제도. 예를 들어 치질수술을 원하는 환자가 병의원을 이용하면 20만 원, 종합병원 이상 상급병원에서는 30만 원을 내는 식이다. 다시 말해 정액진료비만 내면 되는 것. 진료정찰제, 묶음진료비, 정액진료비 등으로 부를 수 있다.

이번에 시행되는 포괄수가제는 백내장, 편도, 항문(치질), 탈장, 맹장, 제왕절개분만, 자궁 및 자궁 부속기(난소·난관 등) 7개 질병 군에 제한적으로 시행된다. 기존에는 진찰 → 검사 → 수술 → 입원가료 등 진료단계마다 진료비를 매겨 이를 합산(행위별수가제)했으나 포괄수가제는 통으로 묶어서 정액진료비를 내면 된다. 환자의 진료비 부담이 줄고, 과잉진료를 막을 수 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일부 의료인들은 서비스 질이 하락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올해 7월 1일부터 맹장, 탈장, 치질, 백내장, 편도, 제왕절개, 자궁제거 등 7개 질환의 입원진료에 대해 일종의 정찰진료비 제도인 '포괄수가제'를 확대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예를 들어 맹장수술 환자는 정해진 비용만 내면 며칠을 입원하든, 어느 병원에서 치료를 받든 같은 진료비를 내면 된다.2002년부터 병의원과 종합병원이 선택적으로 참여해왔던 제도를 오는 7월부터는 모든 병·의원급에, 2013년 7월부터는 상급 종합병원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대한의사협회 등 공급자 단체가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그간 정찰진료비 제도는 1997년부터 2001년까지 8개 질환에 대해 1차 시범사업을 진행했고, 2001년부터는 당연 적용을 추진했으나 당시에도 대한의사협회 등 공급자 단체의 반발로 시행이 사실상 유보된 바 있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의사협회는 당시와 같이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 '의료수가를 현실화하기 전에는 수용할 수 없다', '서비스 질이 하락하게 된다', '환자의 선택권을 제한한다' 등의 논리로 반대하고 있다. 이는 포괄수가제가 사실상 의사와 병원의 진료수입에 영향을 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16일 윤용선 대한의사협회 보험·의무 전문위원은 'MBN 뉴스투데이' 이슈짚어보기에 출연해 "포괄수가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7월 1일부터 의무 강제시행을 반대하는 것이다"이라며 "강제화 할 때는 각각의 행위별 수가가 이미 현실화 됐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현재 의료수가는 원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합의' 무력화하려는 대한의사협회

대한의사협회 누리집 첫 화면. '국민을 내 가족처럼 환자를 내 생명처럼'이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대한의사협회 누리집 첫 화면. '국민을 내 가족처럼 환자를 내 생명처럼'이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 대한의사협회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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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는 지난 5월 초 노환규 신임회장이 당선된 뒤 다소 이해하기 힘든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전임집행부가 사실상 시행에 합의했던 ▲만성질환관리제도 ▲의료분쟁조정중재원제도 ▲포괄수가제에 대해 그간의 합의를 모두 무위로 돌리며 반대에 나섰다.

물론 전임집행부 시절에도 이들 제도의 '시행 합의'에 이르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포괄수가제 역시 대한의사협회 등 이익단체의 요구를 수렴하고 의견 조정과 협의를 지속하며 겨우 시행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환자나 시민의 입장에서는 의료인 단체의 요구로 인해 '반쪽 짜리 제도'로 전락한  부분도 있어 내심 불만이 컸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경우 '의료사고 입증책임' 문제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도 의료인 단체는 '건강보험정책조정심의위원회'(건정심) 등 '사회적 합의' 틀을 활용해 자신들의 이익은 최대한 관철해오면서도 정작 최종 시행단계에서는 '사회적 합의'를 무력화하려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복건복지부(복지부)도 심사평가원(심평원)도, 국민건강보험공단도 공급자 단체의 반응에 훨씬 민감하다. 최근 포괄수가제 확대시행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 보건의료정책이 어떤 환경에서 설계되고, 이해가 조정되는지, 시민들에게 좋은 정책이 시행되기 위해 어떤 벽을 넘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의료인단체가 '협치'를 통한 정책조정 결과를 이렇게 매번 거부해도 되는 것일까. 그러면 처음부터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논의구조나 '협치'에 참여하지 말든가, 룰이 있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도출된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집행부가 바뀐 대한의사협회는 '합의'의 규칙도 깨고 '전면 반대와 거부'를 하면서 '룰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지금껏 대한의사협회가 참여해 만들어진 '사회적 합의'와 '보건의료정책'은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만 유효한 것일까. 이런 대한의사협회의 행태는 이기적인 밥그릇 챙기기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대한의사협회는 제도거부에 따른 국민편익의 파행책임을 복지부나 정부에게만 돌리고 있다.

포괄수가제 추진하면 병원문 닫겠다고?

7개 질병군 포괄수가제도 발전방안 연구(충북대·서울대 산학협력단, 2009)
 7개 질병군 포괄수가제도 발전방안 연구(충북대·서울대 산학협력단, 2009)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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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국민들의 편익이 걸려있던 의료정책에 대해 대한의사협회가 보인 입장과 반응을 보면, 노환규 집행부만 뭐라고 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노환규 회장이 취임하고 나서 대한의사협회의 최근 행보는 유독 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회장이 직접 언론에 나와 "포괄수가제를 정부가 계획대로 추진하면 '진료 거부'까지 고려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또 처음부터 정부의 중요 정책파트너로 참여했던 만성질환관리제도, 의료분쟁조정중재원제도, 포괄수가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간단히 뒤엎었다. 

물론 의료인들 중에도 의료인으로서의 '품격'과 '명예'를 중시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대한의사협회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내부자정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념적 편향"... 시민단체 공격하는 의사집단

한편, 최근 대한의사협회가 심사평가원에 항의 공문을 보내 시민·소비자 환자단체의 대표성 시비를 걸고, 이들 단체를 '이념적으로 편향된' 단체로 거론한 것은 문제가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포괄수가제 시행을 앞두고 건강세상네트워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실련), 녹색소비자시민연대, 한국환자단체연합회(환자단체연합) 등 시민·환자·소비자 단체와 간담회를 진행한 것을 두고 대한의사협회는 심평원에 항의공문을 보내 "간담회는 매우 부적절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이는 '부당한 요구'다.

더 놀라운 점은 의협이 "정책간담회에 초청된 시민·환자·소비자 단체가 시민·소비자, 나아가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대표성이 있는 단체들인지 의구심이 든다"며 참여한 시민단체의 대표성을 문제 삼은 것이다. 만약 그들의 주장처럼 경실련, 환자단체연합, 녹색소비자시민연대, 건강세상네트워크의 대표성에 문제가 있다면, 대한의사협회는 대표성이 있는 단체, 더욱 공신력 있는 단체가 어디인지 밝혀야 할 것이다.

대한의사협회의 기자회견문. 이 기자회견문을 통해 대한의사협회는 "이것은 국민의 생명이 달린 문제"라며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포괄수가제의 확대는 절대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강행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의 기자회견문. 이 기자회견문을 통해 대한의사협회는 "이것은 국민의 생명이 달린 문제"라며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포괄수가제의 확대는 절대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강행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 대한의사협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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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는 이들 단체들이 '이념적으로 편향된 단체'라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와 정책적 소견이 다르다고 해서 이들 단체들에게 '색깔론'을 씌우는 것을 대한의사협회가 이들 단체와 대화와 토론, 정책협의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보아도 되는 것인가.

더욱 코미디 같은 사실은 심평원 시민단체간담회 이후인 지난 16일, 대한의사협회가 이 단체들을 초청해 대한의사협회 내부간담회를 진행했다는 점이다. 대한의사협회 스스로 '이념적으로 편향된 단체'라고 비난해 놓고, 대한의사협회가 주관하는 정책간담회에는 선별적으로 몇몇 단체를 지정해 초청한 것이다. 물론 내부 간담회에 단체를 초청하는 건 자체적으로 결정할 일이지만 시민, 소비자, 환자단체에 대해 '자의적' 기준을 들어 함부로 시민운동의 경험과 역사를 폄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대한의사협회라는 공신력 있는 단체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최근 대한의사협회의 무리한 행보는 결국 그들의 주장에 대한 공신력을 떨어뜨렸다.

환자이자 시민인 우리는 그들이 선택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우리보고 '진료비도 더 내고, 의료인에게 존경심도 요구하고, 장인으로서의 권위도 인정하라'고 강변하지는 말아달라. 대한의사협회가 국민들로부터 지지와 신뢰를 회복하려면 지도부의 변화와 결단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박용덕 기자는 건강세상네트워크 사무국장입니다. 비슷한 기사가 <프레시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 해 중복송고를 허용합니다.



태그:#포괄수가제, #의사협회, #진료비정액제, #건강세상네트워크, #노환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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