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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1일 강원도 춘천시 시민들은 정부로부터 큰 '선물' 하나를 받았다. 경춘선 철도가 복선전철로 바뀌면서 춘천에서 서울까지 한 시간 조금 넘은 시간에 다녀올 길이 열린 것이다. 춘천 시민들은 크게 환호했다. 싼 요금에 수시로 서울과 춘천을 오갈 수 있는 교통편이 생긴 데다 춘천 여행이 훨씬 간편해져 관광객이 크게 늘어날 거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이 지날 무렵, 경춘선에 'ITX-청춘열차'가 들어올 거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 무언가 이상한 흐름이 감지됐다. 그렇지 않아도 경춘선 복선전철이 개통되기 이전인 2010년 9월 경춘선 유지보수업무를 민간에 위탁하는 문제로 한 차례 홍역을 앓았던 춘천시민들은 ITX-청춘열차 요금이 1만 원을 넘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철요금이 '일반전철'과 '급행전철' 모두 2600원인 것에 비해, ITX-청춘열차 요금이 무려 4배 가까이 높게 책정된 데다 다른 대중교통편으로 갈아탈 때 환승요금도 적용되지 않아 교통비가 그 이상으로 늘어날 형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동안 아무 문제 없이 잘 이용하던 급행전철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ITX-청춘열차가 대신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속았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경춘선 춘천역을 빠져나가는 일반전철. 상봉역까지만 운행한다.
 경춘선 춘천역을 빠져나가는 일반전철. 상봉역까지만 운행한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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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행전철과 ITX-청춘열차는 속도나 시간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ITX-청춘열차가 최대 속도가 180km에 달하는 '준고속열차'이기는 하지만, 경춘선 선로를 이용하는 한 제 속도를 다 내기는 어렵다. 당장 춘천시의 시의회와 시민단체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은 'ITX-청춘열차의 운임 산출 근거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ITX-청춘열차 도입을 철회하고 차라리 기존의 급행전철을 ITX-청춘열차처럼 용산까지 연장 운영하라'고 요구했다.

시민단체들은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 돈벌이에만 혈안이 돼 철도의 공공성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의 의견과 비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의 요구는 정당했지만, 이명박 정부의 '철도 선진화 계획'을 수정할 수는 없었다. 결국 요금은 9800원(춘천-용산)으로 확정됐다. 그리고 지난 달 28일 ITX-청춘열차가 개통되면서, 전철은 일반전철만 남고 급행전철은 사라졌다.

선물 하나를 받았는가 싶었는데,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반쪽은 춘천시민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는 그나마 반쪽이라도 남았으니 손해는 아니라고 하지만, 춘천시민들은 속이 영 개운치 않다. ITX-청춘열차를 이용하자니 너무 부담스럽고, 일반전철을 타고 다니자니 무언가 줬다 다시 빼앗긴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경춘선 일반전철 내부.
 경춘선 일반전철 내부.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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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 적자 해소 대책에 희생양이 된 경춘선

경춘선에 ITX-청춘열차를 도입하게 된 것은 정부의 '코레일 선진화 정책'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2008년 10월, '3차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코레일의 경우 '6400억 원의 적자(2007년 현재)가 나고 있다'며 '경영을 효율화해서 적자를 50% 줄이지 못하면 민영화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당시 정부는 "경영효율화를 위해 노동자들을 해고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철도 요금을 인상하지는 않겠다"고 설명했다. 강력한 경영효율화로 요금 인상을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을 해고해 적자를 해소하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요금 인상은 불가피해 보였다. 말이 선진화지, 사실 그 밑에 깔린 의미는 '노동자 정리해고'와 '적자 해소를 위한 요금 인상'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정부는 2010년 12월, '코레일의 적자 해소를 위해 수익사업을 확대하는 동시에 900명의 인력을 감축한다'고 발표한다. 이때 정부는 경춘선 유지보수업무를 민간에 위탁하면서, 코레일 직원들까지 함께 넘기는 방식을 통해 감원으로 인한 반발을 줄일 계획이었다. 한 노선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전체 인력을 민간에 위탁하려는 시도는 경춘선이 처음이다. 하지만 그 계획은 곧 반대에 부딪혀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지금껏 눈치만 보고 있다. 경춘선에서 인력을 감축해 경영을 효율화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정부는 그런 방식으로, '코레일이 안고 있는 적자를 2012년에는 흑자로 전환한다'는 계획이었다. 2012년이 다 지나가려면 이제 채 일 년도 남지 않았다. 사실 어떻게 보면, 코레일로서는 지금 당장 성과를 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벌여야만 하는 형편이다. 흑자 전환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 해도, 적어도 그 가능성만큼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코레일이 준고속열차를 도입한 것 역시 경춘선이 처음이다. 경춘선은 결국 코레일이 새롭게 추진하는 수익사업의 모델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 바람에 사람들 사이에서 경춘선이 코레일 적자 해소 대책의 첫 희생양이 됐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앞으로 경춘선의 성공 여부에 따라, 다른 노선에도 ITX-청춘열차와 같은 고속화 열차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언제 어느 곳에서 또 누가 춘천시민들이 당한 것과 같은 피해를 입게 될지 알 수 없다.

경춘선 춘천역을 빠져나가는 ITX-청춘열차.
 경춘선 춘천역을 빠져나가는 ITX-청춘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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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가 크게 나아지지 않은 '준고속', 요금은 최고속

정부는 2011년 4월 '제2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을 발표하면서, 국가의 주요 철도망을 고속화하거나 준고속화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전국의 새마을호나 무궁화호가 KTX(고속열차)나 ITX(준고속열차)로 바뀌는 건 이제 시간문제다. 철도를 고속화하는 것은 요금 인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존에 운영하고 있는 열차의 요금을 조금씩 인상하는 것보다는 아예 새로운 열차를 도입하면서 요금을 다시 책정하는 게 반발이 덜한 데다, 전체 요금 체계를 완전히 뒤바꿔 놓을 수도 있다.

경춘선 ITX-청춘열차 화장실 내부. 1시간에서 1시간 20분 남짓 달리는 열차 안에서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럭셔리'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경춘선 ITX-청춘열차 화장실 내부. 1시간에서 1시간 20분 남짓 달리는 열차 안에서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럭셔리'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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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은 열차를 고속화하고 고급화하는 이유로 철도 이용 고객들의 생활수준과 요구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코레일은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생활수준이 오히려 예전만 못한 사람도 그만큼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했다. 가뜩이나 힘든 살림에, 열차를 이용하는 데서도 빈부격차를 느껴야 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경춘선처럼 같은 승강장에서 누구는 ITX를 타고 가고, 누구는 일반 전철을 타고 가야 하는 일을 경험하는 건 그리 유쾌한 것이 아니다.

코레일의 사업 논리는 냉혹하다. 아무리 높은 요금을 책정해도 고속화된 열차를 필요로 하는 고객은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런 고객들을 대상으로 열차를 운영해서 좀 더 높은 수익을 올리자는 것이다. 공공기관으로 보기 힘든 논리다. 공공기관을 선진화한다고 해서, 모든 국민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선진화'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명확하게 알아둘 필요가 있다.

능력이 돼서 높은 요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좀 더 빠르고 편안한 고속화 열차를 새로 도입하는 것까지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시민들이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이용하던 값싼 교통수단을 없애고 그 자리에 값비싼 교통수단을 들여놓을 때는 문제가 다르다. 거기에는 그에 맞는 합당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

ITX-청춘열차의 높은 요금에 춘천 시민들의 불만은 높다. 춘천시는 올해 1월 12일 고속교통망에 대한 시민 의견을 조사한 결과, 응답 가구의 83.4%가 "준고속열차(ITX-청춘열차) 운임이 비싸다"는 의견을 내놨다고 밝혔다. 수도권을 방문하는 데 경춘선을 이용한 비중은 50.5%에 달했다.

코레일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ITX-청춘열차는 전철과는 다른 준고속열차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에 맞는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시민은 없다. 문제는 그동안 다수의 시민들이 폭넓게 누려오던 혜택을 빼앗아가면서 별다른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요금이 현실에 맞지 않게 너무 높게 책정됐다는 것도 분명히 따져봐야 할 문제다.

코레일의 한 관계자는 "준고속열차가 무궁화호보다 상위에 있는 차종이기 때문에 그보다 높은 요금을 책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늬만 준고속인 열차를 다른 열차와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춘천시민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코레일이 하는 일에 박수만 치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 항의와 비난은 당연하다. 코레일은 현재 시민단체들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여 현재 ITX-청춘열차에 30% 할인요금을 적용하고 있다.

그 할인요금을 두고, 앞서 말한 관계자는 "사실상 요금을 30% 인하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할인요금은 어디까지나 할인요금일 뿐이다. 코레일은 30% 할인요금을 언제까지 적용할지 분명하게 정해 놓지 않은 상태에서, "앞으로 물가 인상 등 철도운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기존의 철도운임 체계와 연동하여 탄력적으로 할인율을 조정할 계획이다"라고만 밝히고 있다.

경춘선 ITX-청춘열차 내부.
 경춘선 ITX-청춘열차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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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을 선진화할 게 아니라 시민 편의를 선진화해야

어쩌다 여행길에 한 번씩 ITX-청춘열차를 타는 사람들에겐 요금 할인이 무슨 큰 혜택처럼 보이겠지만, 춘천시민들 중에 수시로 경춘선을 이용해야 하는 사람들에겐 이처럼 모호한 요금 정책도 없다. 언젠가 9800원이나 그 이상의 요금을 물고 열차를 이용해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30% 할인된 요금으로 ITX-청춘열차를 계속 이용해야 할지 말지 판단하기 어렵다.

'이용'은 결국 '수용'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 요금을 100% 지불해야 하는 날이 오더라도 더 이상 ITX-청춘열차를 거부하기 힘들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춘천시민들은 30% 요금 할인을 두고 그냥 '꼼수'라고들 말하고 있다. 춘천시와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는 지금 ITX-청춘열차 거부 운동을 벌이고 있다.

ITX-청춘열차가 얼마나 높은 수익을 낼지도 의문이다. 코레일은 서울이나 경기도 지역의 고객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ITX-청춘열차를 운영하게 되면, 그쪽에서 좀 더 많은 수요가 발생할 거라는 희망이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의 생각은 다르다. 춘천시민연대와 춘천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코레일이 새 열차(ITX-청춘열차)를 도입하는 데만 1650억 원이 더 들었지만, 비싼 요금으로 이용객이 외면한다면 또 다시 시민의 혈세가 낭비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ITX-청춘열차의 요금이 비싸다는 생각은 춘천 시민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에 살면서 강원도 여행을 하던 중에 춘천역에서 ITX-청춘열차를 타게 된 최보균(26)씨는 자신이 지불한 요금 6900원(용산 도착)이 할인 가격이라는 걸 몰랐다가 원래 가격이 9800원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 가격에는 자주 이용하기 힘들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업무 차 춘천에 들렀다가 되돌아가는 이문호(58)씨는 "(할인요금도) 전철에 비해 지나치게 비싼 요금이다"라며, "춘천에 사는 지인들이 타지 말라고 해서 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는 '선진화'를 '경영효율화(그것도 인력감축에 중점을 둔)'와 거의 같은 의미로 쓰고 있다. 말 따로 몸 따로 노는 격이다. 선진화는 그런 데 쓰는 말이 아니다. 선진화는 무언가 앞서나가는 것이다. 진보와 흡사하다. 말 그대로 뜻 그대로 공공기관을 선진화하고 싶다면,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사항을 국민이 요구하기에 앞서 정책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확인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 춘천에서 일어나는 일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금방 알 수 있다.

2월 28일 ITX-청춘열차 개통일을 맞아 춘천역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 회원들.
 2월 28일 ITX-청춘열차 개통일을 맞아 춘천역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 회원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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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경춘선, #ITX, #코레일, #준고속, #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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