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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퇴근길이었습니다. 공중파 라디오는, 뭥미? 심심했습니다. 길은 막히고 짜증은 나는데 바로 그때 떠오르는 게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나는 꼼수다> 팟캐스트 라디오 방송이었습니다. 낯익은 음성들…. 배꼽 쥐고 웃던 중엔 '봉주 뉘우스'도 있었습니다.

"정 전 의원께서는 독수공방을 이기지 못하시고 부끄럽게도 성욕 감퇴제를 복용하고 계십니다. 그러하오니 마음 놓고 수영복 사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1. 21 봉주 3회)

남자 교도소에선 성욕 감퇴제도 나눠주나? 고백하자면 저는 김용민의 '봉주 뉘우스'를 들으면서 가장 먼저 이 생각을 했습니다. 기자질 십수 년에 팩트 확인은 병이 된 것이지요. 그리곤 "농담치곤 야하군!" 했습니다. 한동안 잊고 지냈지요.

작가 공지영씨와 평론가 진중권씨, 공연연출가 탁현민씨 등이 트위터에서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이 <나꼼수> 마녀사냥에 나섰을 때야 저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 날의 '봉주 늬우스'를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사건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이때 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략은 이렇습니다.

<나꼼수> 진행자이자 이 방송의 프로듀서인 김용민씨는 지난달 21일 업데이트 된 '봉주 3회'에서 "정 전 의원이 성욕 감퇴제를 먹고 있으니 마음 놓고 수영복 사진을 보내시라"고 선동했고, 그 뒤로 여성들이 진짜 비키니 가슴사진을 올렸으며, 심지어 주진우 <시사인> 기자는 27일 접견민원인 서신에 '관리여성 명단 빨리 넘겨라, 폭로하기 전에' '면회 희망 여배우 명단 작성하라!' '욕정해결방안 발표하라!' '관리대상 넘겨라, 부산, 광주, 이대, 숙대 모두, 폭로하기 전에!'라고 쓰고, 그걸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그랬으니 이 자들은 여성을 성적으로 모욕했다, 평소 진보적인 체하더니 완전히 마초다, 나쁜 놈들!

<조선일보>는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여성단체들이 한나라당 강용석 아나운서 성희롱 사건 때는 난리치더니 정작 <나꼼수>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느냐, '여성단체의 이중성'을 공격합니다. 민주통합당 여성정치인들에게도 화살을 겨눕니다. <나꼼수> 비키니 시위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으름장을 놓았지요. 진보진영 전체가 부도덕한 것으로 몰아갑니다. 

'관리대상'에 학교이름이 오른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성명을 냈습니다. 여성단체들과 여성정치인들도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나꼼수 진행자의 여성비하발언 유감입니다. 비키니 응원논란은 표현의 자유 문제가 아니라 여성비하발언을 하고 유통시킨 진보 남성들의 마초적 태도가 문제입니다 정봉주 전 의원의 석방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응원을 모욕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여성단체연합 대표 출신인 민주통합당의 남윤인순 최고위원이 1일 페이스북에 남긴 입장입니다. 댓글은 순식간에 여럿 달렸습니다. 여성운동가들은 모욕감을 느꼈다는 분들이 주를 이뤘으며 <나꼼수> 팀이 여성들에게 공식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1일 방송된 <나꼼수> 봉주 4회에선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습니다. 기성언론은 이를 강하게 질타했습니다. 사건이 이렇게까지 커졌는데 무책임하게 한 마디도 안 해? 몰아칩니다.

사건이 일파만파 퍼지니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나섰습니다. 김 총수는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현재 팩트(사실)와 그 인과관계가 실제와 많이 다르게 다뤄지고 있다"면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다음 방송을 통해 필요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사건은 비키니 시위를 넘어 한 남성 사진작가의 누드 시위, 40대 MBC 여기자의 비키니 시위로 계속 번지는 중입니다. 내일은 우리 앞에 또 어떤 '정봉주 구출을 위한 1인 시위 인증샷'이 올라올지 적이 궁금한 상황입니다.

나꼼수는 사과하라? 안해 씨바?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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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에 벌어진 '나꼼수 비키니 응원시위'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일단 '가카처럼' 사실관계를 꼼꼼히 따지고 싶었습니다. 실체적 진실에 더 다가가기 위한 노력인 셈이죠.

지난 20일 나와라 정봉주 사이트에 가장 먼저 비키니 응원 사진을 올린 사람은 '푸른귀'라는 닉네임을 가진 여성이었습니다. 지난달 11일 방송된 '봉주 2회'에서 나꼼수 진행자들은 '정봉주 구출을 위한 1인시위 인증샷'을 보내주면 그중 3명을 선정해 나꼼수 진행 3인방에게 밥을 살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고 했거든요. 대개는 당첨되면 식사권을 받는데 나꼼수는 식사권을 내라니, 이 또한 나꼼수만 할 수 있는 독특한 접근이다 싶었습니다.

그녀가 올린 이 비키니 응원 사진에는 "밥 사시겠네...쩝" "시사돼지 뷔페라는데 부담되시겠네!" "용기와 미모에 찬사를!" 등등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녀는 이 사진을 올리면서 "※ 타고 난 신체적 특성 탓에 다소 선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점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애들은 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인 21일 나꼼수 봉주 3회에서 김용민씨가 성욕 감퇴제를 언급하며 수영복 사진을 맘껏 보내라 한 것이지요. 그 뒤로 주 기자가 접견 민원인 서신에 "가슴사진 대박이다, 코피를 조심하라"고 쓰고 그걸 트윗으로 날렸습니다. 상황은 매우 심각해졌습니다.

공지영씨는 지난달 28일 트위터에 글을 올려 "나꼼수의 비키니 가슴 시위 사건 매우 불쾌하며, 당연히 사과를 기다린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공씨는 "첫 번째 비키니 인증샷은 발상적으로 신선해질 수 있던 사안이었으나 결론적으로 논란거리가 됐다"며 "그것을 보수 언론들이 받고 또 장난스레 나꼼수의 멤버가 대박이라고 하면서 파장이 커져 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또 "가슴 인증샷을 옹호하는 마초들의 불쾌한 성희롱적 멘션들과 스스로 살신성인적 희생이라고 하는 여성들의 멘션까지 나오게 된 것은 경악할 만하다"며 "여성의 성징을 드러내는 석방운동을 개인적으로는 반대한다, 그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나꼼수팀과는 분명히 의견을 달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상희 민주통합당 의원도 "나꼼수는 진지한 언론이 아니기 때문에 가볍게 하다 보니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사고였다"며 "몇 명이 끼리끼리 히히덕거리는 수준의 방송이 아니고 한 번에 몇십만 명이나 듣는 라디오이기 때문에 그들도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김 의원은 "나꼼수가 갖는 사회적 영향력에 비해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라며 "의도적으로 한 발언은 아니겠지만 성희롱적 성격이 있다면 빨리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무엇보다 김 의원은 "우리 사회에 공인들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나꼼수팀은 누구 못지않은 영향을 갖고 있기에 스스로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대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습니다.

김유정 의원은 "우리도 외국처럼 과감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매우 놀랐다"며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느낌이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영역을 정치적 색깔로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김 의원은 "김용민씨의 발언에 불쾌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만일 정치인이 그런 식으로 표현했다면 당장 낙선운동의 대상이 됐을 것이며 공천대상에서 배제됐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엄숙주의 근엄함 그리고 <나꼼수>

지난해 12월 5일, <나꼼수> 멤버들이 미국 순회공연을 위해 뉴욕에 도착했을 당시.
▲ <나는꼼수다> 뉴욕 도착 지난해 12월 5일, <나꼼수> 멤버들이 미국 순회공연을 위해 뉴욕에 도착했을 당시.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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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나꼼수팀의 입장은 어떨까요? 한 관계자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시죠.

"영향력이 생겼으니 사회적 책임을 지고 공인의 자세로 살아라? 문제가 되는 발언은 하지 말아라? 싫어. <나꼼수>의 공식 채널로 사과하라? 우리가 왜?

그동안 씨바, 조또 이런 것은 왜 문제 안 삼았어? 그 뜻을 따져봐. 왜 문제 안 삼아. 욕을 매번 하고 같이 낄낄거려놓고 이제 와서 왜 근엄함과 엄숙주의를 강요하는데? <나꼼수>에게 근엄함을 강조하지마. 너희도 영향력이 생겼으니 이제 이 정도의 선은 지켜라? 우리는 너희들이 제시한 그 선을 지킬 생각이 없어요.

<나꼼수> 왜 좋아했어? 기존의 미디어 플랫폼과 달라서, 막 욕도 하고 그래서 좋아했던 거 아니야? 그래서 같이 낄낄 거리고 듣다가 이제 와서 왜 정색? 김용민 PD가 <하니TV> 뉴욕타임스에 나가서 그런 발언을 했다면 당연히 <한겨레> 차원의 사과나 해명이 있어야 하지만 <나꼼수>가 그런 거야? 아니잖아. 웃겨 진짜.

그리고 이건 꼭 써줘. 진중권씨는 <나꼼수>한테 '개그'라며. 개그프로한테 왜 그렇게 진지하게 비판하는데? 그것도 제일 먼저 나서서."

이 관계자는 "꼼수다 방송의 특성을 인정하고 들었으면서 얼마든지 해석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계속 여성비하 발언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럴 의도도 아니었고 그냥 농담을 한 것"이라며 "우리는 심의규정과 사회적 관념에 맞춰서 하는 방송이 아니라고 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강용석 성희롱 사건과 나꼼수 성희롱 사건을 비교하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완전 다르지요. 강용석은 행동을 동반한 사건이었고, 이건 김용민이 누가 올린 비키니 사진을 보고 농담을 섞어 한 마디 한 거야."

김용민씨도 3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제가 수영복 사진을 보내라고 해서 여성들이 사진을 보냈다는 <조선>과 <동아>의 보도는 명백한 오보"라고 밝혔습니다. 이 같은 사실관계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나꼼수> 관계자들을 두루 취재해본 결과, 이들은 자신들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다소 어안이 벙벙한 눈치입니다. 저잣거리에서 잡놈 셋이 앉아 무신경하게 던진 농담이었고, 그 정도는 우리 사회가 함께 웃으면서 넘어갈 줄 알았는데 그것이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으니, 뭐냐 이건? 이런 거지요.

의도하지 않았어도 드러난 결과에 대해 <나꼼수>는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입장이 나올까요? 우리가 <나꼼수> 다음 방송을 기다리는 이유입니다.


태그:#나는 꼼수다, #비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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