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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터뷰>의 한 장면처럼 멋지게, 낭만적으로 남편을 인터뷰 하고자 했으나 쉽지 않았다.
 영화 <인터뷰>의 한 장면처럼 멋지게, 낭만적으로 남편을 인터뷰 하고자 했으나 쉽지 않았다.
ⓒ 시네마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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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남편을 인터뷰하다'는 부부 인터뷰 기사는 애초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마감 날짜는 다가오는데 인터뷰이가 좀처럼 취재에 응하지 않고 애를 먹였다.

소심한 성격의 그는 갖가지 이유를 들어 인터뷰를 회피했고, 나는 "얼굴이 공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로 안심을 시키며 편하게 몇 마디만 나눠달라며 설득했다. 심각한 M자형 대머리로 외모 콤플렉스가 강한 사람이니만큼 자신의 노출을 무척 꺼렸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왜 하필 자신이 인터뷰 대상이 되어야 하느냐는 말로 끝까지 반발했다. 그래서 나는 마누라 기사 쓰는 일에 적극적인 외조를 약속했던 그의 과거 약속을 상기시키며 다시 한 번 설득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한 해가 끝나던 날 가까스로 인터뷰에 성공했다. 비협조적인 인터뷰이를 취재 석상에 앉히기까지 인터뷰어의 갖은 노력과 꼼수가 발휘됐다. 제야의 감동을 함께하기 위해 사람들이 거리로, 텔레비전 앞으로 몰려들던 시간에 나는 부엌에서 종종걸음을 치며 일손을 놀리고 있었다.

인터뷰이가 취재 수락 조건으로 요구한 여러 조건 중의 하나인 뼈다귀 해장국과 닭볶음탕을 동시에 완성시키느라 시간이 촉박했던 것이다. 한 해가 바뀌는 역사적인 순간 극적으로 타결된 인터뷰 수락은 그렇게 취재원에게 모종의 금품과 향응이 제공됨으로써 가까스로 성사될 수 있었다.

술잔을 앞에 두고 진행된 인터뷰는 새벽까지 순조로웠다. 여기에서는 남편 호칭을 이하, '내연남'이라 지칭하기로 한다. '내연남'은 내 핸드폰에 입력된 남편 닉네임이다. 가장 사랑하는 딸 닉네임은 정작 '라훌라(걸림돌, 장애물이라는 뜻)'로 설정해 놓은 것을 감안하면 '내연남'이라는 호칭에 액면 그대로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부부간에 오고 간 대화지만 인터뷰 기사라는 형식을 존중하여 건조하고 사무적인 문체로 풀어 정리했다.

금품·향응 제공으로 성사된 달콤 살벌한 인터뷰... 내연남에게 묻다


: 금품과 향응이 오가는 조건이긴 하지만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라훌라(딸의 닉네임)도 마침 놀러 가고 없는 날, 인터뷰에 집중하기 더없이 좋은 분위기다. 때가 때이니 만큼 새해를 맞는 소감 한마디 해달라.
내연남 : 뭐, 열심히 돈 벌어야지. 해 놓은 것도 없이 오십이 코앞이니 아찔하다.

: 아까 김근태 고문님 분향소에 갔을 때 시내 분위기 대조적이더라. 제야 행사 준비로 도로는 통제되었지, 사람들은 쏟아져 나오지, 한쪽에선 고문후유증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신 분 분향소가 설치되었지…. 시내 분위기는 들뜨고 분향소는 슬프고….
내연남 : 그랬지. 또 거리에는 젊은이들이 활기차게 오가는데 분향소에는 주로 연세 드신 분들만 계셨다. 거기서 J선생님 뵈니까 반갑기는 한데, 괜히 죄책감 같은 것이 들더라. J선생님 머리는 하얗게 쇠셔갖고 빈소 지키고 계시는데, 여전히 그런 자리에 꼭 나오셔서 묵묵히 뒤치다꺼리하시는 모습이 미안했다.

: J선생님이 손잡고 반가워하시는데 나도 찡했다. 죄책감은 당연하다. 오늘 분향소로 가는데 제야 행사 준비로 도로가 통제되는 바람에 빙빙 돌아갔다. 사소한 징크스가 크게 부각되는 느낌이었다.
내연남 : 알고 보니 우리 집 가까운 전남대학교에도 분향소 차려졌었다더라. 우리가 그것을 모르고 시내로 갔으니 사람들한테 휩쓸렸던 거다. 시내를 활보하는 젊은 사람들 보면서 이런 아픈 역사가 잊히는 것이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정 사진은 왜 그렇게 밝고 환하던지 정말 찡하더라. '아! 선생님.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십시오.'

[내연남의 이야기 ① 자녀 교육] "딸 가진 부모는 조심, 또 조심해야"


: 어? 딸 문자 왔다. 12시 정각에 보낸 문자가 이제야 왔다. 라훌라가, '새해에도 엄마, 아빠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이 되자'고 한다. 처음으로 친구들이랑 1박 2일 놀러 가니까 무지 설레는 모양이다.
내연남 : 중 3 여자아이들이 보호자도 없이 1박 하는 것,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당신이 보내주자고 사정해서 마지못해 허락은 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여덟 명이서 갔다니까 조금은 안심이다.

: 처음엔 남학생들도 같이 가기로 했다가 엄마들이 기겁해서 여자들끼리만 가기로 한 거다.
내연남 : 아니, 그럼, 당신은 남자애들이랑 같이 간다는데도 허락했단 말인가. 내가 알았더라면 어림없는 일이다. 무분별한 사춘기 아닌가. 여학생들끼리 가는 것도 불안해 죽겠는데 남학생들하고 같이…, 다른 엄마들이 말렸기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다. 당신이 사춘기 남자들의 생리를 잘 몰라서 그런다. 앞으론 더 신중해라, 제발!

: 같은 반 친구들이 졸업여행 삼아 간다더라. 부모들하고 연락해서 누가 한 명 따라갈 수도 있고 묵기로 한 펜션 주인에게 전화로 당부도 할 생각이었다. 나라고 마냥 생각 없이 허락하진 않았다. 친구들이랑 그런 시간 갖는 것 나중에 즐거운 추억이 될 것이다. 당신이 좀 과민반응이다.
내연남 : 사춘기 아이들, 가장 위험한 시기다. 딸 가진 부모는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 나도 그 나이에 동네 제각에서 남자친구들이랑 밤새 고고 추고 디스코 추고 놀았다. 마을 제각에 숨어서 양말에 구멍 나도록 마루 비벼대며 춤추고 놀고 몰려다녔다. 그래도 아무 일 없이 지났다. 오히려 남들 다 노는데 내숭 떠는 애들이 나중에 보면 먼저 사고 치더라. 사춘기 때 이성에 대한 호기심 자연스러운 것이다.
내연남 : 당신 시골은 한 집 걸러 한 집이 다 친척이잖나. 집성촌이라서 별일이 안 생겼던 것이다. 나는 사춘기 때 소위 '노는 애들'이 사고 치는 것 숱하게 봤다. 과하게 노는 애들 보면 꼭 불미스런 일 저지르더라. 당신은 모른다. 사춘기 남자아이들 신체적으로 가장 왕성할 때다. 이성보다는 본능이 훨씬 활발하게 작동되는 시기인 거지. 그런 애들 틈에서 딸을 안전하게 지켜내는 것이 우리 의무다. 당신이 라훌라한테 하듯이 했다간 큰일 난다. 더 신중해라. 

: 우리 부모님도 나를 자유스럽게 키우셨다. 금기와 통제가 별로 없었다. 그래도 어긋난 자식 없더라.
내연남 : 그런 경우는 특별한 경우다. 세월도 많이 변했다. 요새 아이들이 얼마나 무서운가. 그런 환경이니 조심하자는 거다.

: 내가 친구 한 명 없이 혼자 산에 가고, 혼자 영화보고, 혼자 시장 보러 다니는 것이 스스로 너무 한심하다. 사람들이랑 두루 뭉실 어울릴 줄 모른다고 당신도 만날 타박하지 않았나. 라훌라가 나처럼 될까 두려운 거다. 그래서 친구들이랑 자주 어울리기 바랐던 거고.
내연남 : 그렇다고 한참 공부할 나이에 학원까지 끊고 놀리는 것은 좀 다시 생각해야 할 문제다. 다른 엄마들은 고등학교 간다고 빡세게 공부시킨다. 나도 지나치게 공부, 공부 하는 것은 반대지만 우리 라훌라는 심각하게 노는 편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엄마인 당신 탓이다.

[내연남의 이야기 ② 금연문제] "너무 고통스럽다... 아아!"


'서울시 간접흡연 피해방지조례'에 의해 서울광장과 청계광장, 광화문광장이 금연 구역으로 지정됐다. 새해 우리 남편도 금연에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서울시 간접흡연 피해방지조례'에 의해 서울광장과 청계광장, 광화문광장이 금연 구역으로 지정됐다. 새해 우리 남편도 금연에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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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얘기는 그만하자. 대신 당신 금연 문제 매듭짓자. 이번 금연은 석연찮은 부분이 좀 있다. 라훌라랑 나는 아빠가 막 짜증 내고 여기저기 아프다고 엄살 부려도 금단 현상이니까 우리가 다 받아주자 각오했다. 그런데 의외로 쉽게 지나는 것이 더 수상하다. 미안하지만 몰래 피우고 있지는 않은지.
내연남 : 아침에 화장실 때문에 한 대 피우는 것은 미리 양해 구했고, 정말, 도저히 못 견딜 때 한두 대 피는 것까지 하면, 하루에 약 세 개비쯤? 단박에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절망적이다. 차라리 지금처럼 몇 대씩 피우면서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방식인 것 같다.

: 당신 입으로 세 개비면 아마도 다섯 개비쯤 피우겠지. 이번이 열 번째쯤 하는 금연이다. 라훌라한테 더 이상 권위 없는 아빠 모습 보이지 마라. 대신 이렇게 술은 자주 마시니까 그걸로 위안 삼아라.
내연남 : 유일한 낙이 마누라랑 집에서 맛있는 안주 놔두고 술 한잔하는 것이었는데, 당신이 술을 끊어 버리니 내가 사는 낙이 없다. 오늘은 당신이 이렇게 대작해주니 정말 분위기 산다. 뼈다귀해장국 정말 죽여준다. 저기 'OO감자탕'에서 파는 것보다 백배 더 맛있어. 이 닭볶음탕도 역시 맛있어. 진짜 딱이다. 라훌라가 좋아하는 음식들인데 우리끼리만 먹으려니 걸린다.

: 라훌라도 저녁에 고기 구워 먹었다더라. 신경 쓰지 말고 인터뷰에 집중하자. 우리가 '남들 사는 것처럼' 살자는 취지에서 각방 살이 청산하고 합방한 지 세 달쯤 되었다. 이렇게 길게 합방을 유지하는 것이 최고 기록이다.
내연남 : 이번 기회에 합방 생활 정착시켜야 한다. 우리가 '남들 사는 것처럼' 살자고 내린 결론이니까. 17년 각방 쓰다 합쳤는데 불편한 것은 당연하다. 당신은 더 고역일 것이다. 나는 옆에서 코 골고 잘 자는데 당신은 그러질 못하니. 그래도 라훌라한테 한방에서 자는 엄마, 아빠 모습 연출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 있는 시도였다.

: 딸을 생각한다면 금연부터 해라. 라훌라가 이번엔 정말 아빠가 담배 끊을 것으로 믿는 눈치라. 그 믿음을 배신하지 말기 바란다. 
내연남 : 사실은 나 지금도 담배 때문에 죽을 지경이다. 인터뷰 기념으로 딱 한 대만 태우고 계속하면 안 되겠나? 하루아침에 갑자기 끊으라는 처사는 나한테 그냥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타의에 의해 행해진 금연 맹세는 억울한 느낌이다. 둘이서 무자비하게 몰아붙이는 바람에 약속은 했지만, 나한테 너무 고통이다. 다시는 구차하게 사정하지 않겠다. 대신 지금 딱 한 대만 피우게 해 달라. 딸한테는 절대 비밀로 하고. 

: 절대 안 된다. 그동안 당신에게 담배를 줄여보라고 수도 없이 권했었다. 우리 의견 묵살하고 그동안 줄기차게 피워댄 사람이 누군가.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담배는 절대 용납 못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피웠다는 담배, 이제 딸이 고등학교 들어갈 나이다.
내연남 : 술 들어가니까 담배가 더 아른거린다. 너무 고통스럽다. 아아!

[내연남의 이야기 ③ 결혼에 대하여] 딸은 안 되고, 마누라는 괜찮다?

남편은 우리 딸이 만약에 커서 지금 자신과 비슷한 조건의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하면 "결사반대"란다. 세상의 딸을 둔 아버지가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사진은 영화 <신부의 아버지> 포스터.
 남편은 우리 딸이 만약에 커서 지금 자신과 비슷한 조건의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하면 "결사반대"란다. 세상의 딸을 둔 아버지가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사진은 영화 <신부의 아버지> 포스터.
: 당신 어린 시절과 관련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내연남 : 어릴 때 우물에 빠진 일 하고 자전거 바퀴에 다리가 끼어 다친 사건이다. 둘 다 심하게 다쳤는데 시골 돌팔이 의사가 꿰매는 바람에 발목하고 머리 정수리 부근에 상처가 크게 남았다.

: 당신은 만약에 딸이 커서 지금 당신과 비슷한 조건의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하면 어떡하겠나. 그때도 '사람만 됐으면 조건 같은 것은 문제가 아니다'라는 신조를 유지할 수 있겠나. 그 조건에는 가정환경, 성격, 경제력, 인품 등이 다 포함된다.
내연남 : 결사반대다. 경제력 없고 소심하고 게으른 녀석과 결혼하겠다는데 허락할 아빠가 누가 있나. 나도 내 자신을 조금은 파악하고 있다.

: 역시. 딸은 절대 안 준다면서 그런 남자랑 결혼한 나는 뭐냐.
내연남 : 당신에게 미안한 마음 없었다면 당신의 그 대단한 성질을 참고 살겠나. 남편 존중하는 마음이 하나도 없는 성질 사나운 마누라, 나나 되니까 받아주고 사는 거다.

: 남 성격 탓하지 마라. 남편 말이라고 무턱대고 따라야 하나. 당신은 과거에 너무 순한 여자랑 사귄 습관 때문에 나한테 적응이 안 되는 것이다. 그 여자는 당신 말이라면 자기 생각이나 의견 따위 아예 없고 무조건 따랐다고 했다. 거기에 잘못 길들여진 당신이 문제다. 그렇게 말 잘 듣는 여자 놔두고 나랑 결혼한 것이 결국 당신 최대의 실수였다. 이혼하고 혼자 됐다며? 언젠가 먼발치서 한 번 봤다더니 그때 마음 어땠나.
내연남 : 이혼한 여자는 그 여자가 아니라니까 그런다. 이혼하고 한 번 멀리서 본 여자는 대학 때 사귀었던 애고, 아까 말한 순종적이고 얌전한 여자는 졸업 후에 OO단체 활동하면서 만난 여자란 말이다. 괜히 엉뚱한 데다 붙이지 마라.

: 아, 잠시 헷갈렸다. 말로만 들었지 직접 본 적이 없다 보니까 이 여자, 저 여자가 자꾸 겹쳐서 혼동이 온다. 당신은 혹시 지금이라도 혼자가 된다면, 만약 내가 죽거나 이혼하거나 해서, 그런다면 다른 여자 또 만날 것 같은가.
내연남 : 아니. 편하게 혼자 살지 뭐 하러 또 여자한테 시달리나. 여자라면 이제 지겹다.

: 그런 사람이 여자들하고 놀러다녔나. 여자라면 나한테 질려 지긋지긋하다더니 옛날에 여자들 차에다 가득 싣고 야외 놀러 나갔다가 나한테 딱 걸린 것 기억할 것이다.
내연남 : '여자'들이 아니고 회사 동료들이었다. 회사 내 소규모 모임이었다. 그때 내가 뭘 어쨌다고 나를 그렇게 몰아세웠는지 지금도 억울하다.

: 그때 당신은 회사에서 여자들하고 그런 모임 만들 만한 이유가 없었다. 남자 사원들 관리하는 팀장이었던 당신이 뭐 한다고 여자 사원들 틈에 몰려다니나. 우리 이혼하려다가 친구 OO이 방해로 무산됐었다. 그때 이혼 못한 것 때로 후회하나.
내연남 : 완전 그때 코미디였다. 하필이면 당신 친구가 이혼 서류 접수창구에 근무하는 바람에 두 번이나 이혼이 거절 당했지. 하하하! 정말 그때 생각하면 웃음밖에 안 나온다. 그때 이혼했더라면 당신한테 시달리지 않는 대신 평생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못 먹고 살았겠지. 근데, 그때 우리 왜 이혼하려고 했었지?

: 치정관계였다. 당신이 여자들이랑 놀러갔다 들켜 놓고도 반성의 기미가 안 보였기 때문이었다. 회사 모임이라고 변명만 늘어놓고. 그래서 내가 아예 이혼하고 모임 더욱 활성화시키라 그랬다. 두 번째는 당신이 회사 동료 둘하고 허구한 날 술만 마시니까 내가 이혼하고 아예 그 남자들이랑 같이 살아버리라고 그랬던 거고. 유책배우자는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이다.
내연남 : 그랬구나. 별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그렇게 사람을 몰아붙이고 난리가 아니었다. 난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다.

[내연남의 이야기 ④ 이 남자의 프러포즈] "아가씨 때 당신 이러지 않았어!"

"마누라 기사 쓰는 일에 적극적인 외조"를 약속했던 남편, 나의 내연남을 인터뷰하면서 우리 부부의 달콤 살벌한 이야기를 묻고 들어봤다. 사진은 부부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내조의 여왕>의 한 장면.
 "마누라 기사 쓰는 일에 적극적인 외조"를 약속했던 남편, 나의 내연남을 인터뷰하면서 우리 부부의 달콤 살벌한 이야기를 묻고 들어봤다. 사진은 부부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내조의 여왕>의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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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처음 본 것이 'OO사' 절이었는데 당신이 그날 사람들 몰래 나한테 시 써서 쥐여주고 간 것 생각나나. 당신은 워낙 기억력이 없는 사람이라.
내연남 : 아무리 기억력 없어도 그것은 생각나지. 내 자작시였다. 당신 보고 첫눈에 반해서 즉흥적으로 썼던 것이다. 단숨에 써내려갔다. 그땐 당신이 엄청 순하고 다소곳한 여자로 보였다. 첫인상은 그랬는데 지금 당신 성격은 완전 반대다.

: 당신 땜에 나 그 절에서 일한 몇 달치 공양주보살 임금도 못 받고 왔다. 뻔질나게 드나들며 사람 꼬드겨서 하산시킨 사람이 당신이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성격이었다.
내연남 : 아가씨 때는 당신 성격 이러지 않았어. 그땐 진짜 성격 좋아 보였다. 내 말마다 이렇게 다꿍다꿍 대들지도 않았다. 절에서 당신 처음 봤을 때는 정말 요즘 세상에 저런 얌전한 처자가 다 있나 무척 감동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완전 바뀌었다. 

; 그럼, 결혼에 찌들어서 변했나 보다. 저번에 장기수 선생님이신 S선생님이 그러셨잖은가. "미경이 쟤는 내가 감옥에서 막 나와 처음 봤을 때랑 지금이랑 하나도 안 변했어. 20여 년을 한결같은 모습이야. 그때도 꼭 저랬거든" 하셨다.
내연남 : 그것은 당신이 여전히 철이 없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었다. 그래서 내가 S선생님께 '제 머리가 이렇게 벗겨진 것이 철없는 마누라 때문이다'고 하소연 했더니 수긍하시더라.

: 그런 당신이 옛날엔 프러포즈한다고 나한테 또 시를 한 수 지어서 줬는데 거기가 어디였는지 기억나나. 난 시 제목도 다 기억하고 있는데.
내연남: 부여 '고란사'라는 절이었다. 시 내용은 전혀 생각 안 난다.

: 당신은 하여간 근사한 선물 하나 할 줄 모르고 중요한 순간마다 시 나부랭이로 때우곤 했다. 결혼하고는 내 생일선물도 해마다 도서상품권이었다. 아무리 내가 책 좋아한다고.
내연남 : 처음에만 그랬다. 어느 해인가 당신이 책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금은보화도 좋아한다고 항의해서 다음부터는 도서상품권 안 했다. 형편 되는 대로 괜찮은 선물도 몇 번 한 것 같은데 아닌가. 처음 잘못 너무 오래 우려먹는다. 작년에는 당신 생일에 진주목걸이 선물했다. 내가 아무리 기억력 없다고 너무 그러지 마라.

[내연남의 이야기 ⑤ 새해 덕담?] "결혼이 구속? 그 말은 딸 아닌 내게 해당"


: 내가 원래 서운한 감정이 오래간다. 다음 질문은, 인제 우리도 낼모레 오십인데 혹 당신이 갑자기 쓰러진다거나 불의의 사고로 죽는다거나 할 것에 대비해서 미리 남기고 싶은 말은 어떤 것들인지. 
내연남 : 유산 많이 남기지 못해 미안하다. 경제적인 능력이 전무한 당신 생각하면 충분히 벌어놓고 죽어야겠다는 일념뿐이다. 당신은 저기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이 일하는 중간 중간에 강제로 춤추고 그러는 장면 볼 때마다 안쓰러워 못 견디는 사람이다. 사람들 다 쳐다보는데 일하다 말고 갑자기 단체 율동을 해야 하는 것, 당신은 굶어 죽고 말지 못할 일이라고 늘 말하지 않았나. 내가 자칫 이 상태로 죽으면 우리 마누라가 마트에서 억지로 춤추고 있을지 모른다고 상상하면 가슴 아프다. 적지만 연금하고 보험 잘 관리하면 아끼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라훌라는 당신이 알아서 잘 키울 테니 별로 걱정 안 한다.

: 분위기 다운된다. 이제 정말 새해가 밝아 오고 있다. 딸 없이 둘이서만 새해를 맞는 것이 처음인 것 같다. 한 해를 시작하는 시점에 나랑 딸한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내연남 : 당신도 이제 나이 한 살 더 먹었으니 좀 더 너그럽고 긍정적으로 살도록 노력 하면 좋겠다. 당신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우리도 힘들지만 당신 자신을 너무 힘들게 한다. 딸은 좀 더 공부에 전념했으면 좋겠다. 엄마가 문제다. 고등학교 들어갈 아이를 그렇게 방치해도 되나. 지나치게 공부만 강요하는 것은 나도 반대지만 지금 라훌라는 너무 느긋하다.

: 하도 험한 일들이 만연하다 보니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 좀 즐겁게 살게 하고 싶을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두려운 아이 미래는 바로 나처럼 되는 것이다. 친구 한 명 없이 외롭게. 어차피 고등학교 들어가면 공부에 찌들어 살 텐데 미리부터 들볶고 싶지 않다.
내연남 : 당신 생각이 그렇게 완고하니 나야 뭐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아빠인 내 의견도 좀 수렴해주라. 특별하게 잘하는 것도 없는 아이니 더욱 공부라도 해야 하지 않나. 당신 그 이상한 양육방식 난 좀 그런다. 뭐, 아이더러 '공부는 안 해도 좋으니 노는 자리 빠지지 말라'니 세상에 그런 엄마가 어디 있나.   

: 현재도 미래에도 아이가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다음에 커서 절실하지 않으면 굳이 결혼하지 말라 했다. 그랬더니 알았다고 하더라.
내연남 : 딸한테 기왕이면 좋은 말 좀 해라. 그래서 내가 당신을 불안해하는 거다. 결혼 후 죽 남편 휘어잡고 제 맘대로 사는 당신이 뭐가 억울해서 딸한테 결혼이 구속이니 어쩌니 그런 소리를 하나. 그런 말은 나한테 해당하는 말이다.

: 나이가 먹다 보니 우발적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더라. 그래서 나중을 대비해서 그런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유언도 남겼다. '약자 위에 군림하지 말고 강자 앞에 비굴하지 마라'고. 충분히 알겠다고 하더라. 당신도 그런 식으로 가장 집약적인 유언 한마디 딸에게 남긴다면 뭐라고 하겠나.
내연남 : 자신 이름 "김OO에 담긴 뜻처럼, '올곧은 인간이 되어라."

: 이제 날도 밝아오고 우리 이야기도 끝맺어야 할 때 됐다. 새해에는 금연 꼭 성공하고 건강 유지하기 바란다.
내연남 : 그래야지. 당신도 앞으로 좋은 기사 많이 쓰기 바란다.


태그:#부부, #2012, #금연, #청소년 ,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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