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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한나라당 유승민·원희룡·남경필 최고위원이 잇달아 사퇴한 데 대해 홍준표 대표가 입장을 밝히기 위해 여의도 당사 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7일 오전 한나라당 유승민·원희룡·남경필 최고위원이 잇달아 사퇴한 데 대해 홍준표 대표가 입장을 밝히기 위해 여의도 당사 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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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스 폭탄'이 터져 벼랑 끝에 선 집권 여당. '재창당' 카드가 추락하는 한나라당에 날개를 달아줄까? 

한나라당은 현재 정치권의 최장수 정당이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의 이회창 대선후보와 새정치국민회의가 분가한 뒤 남은 잔류 민주당의 조순 대선후보의 합당으로 탄생한 이후 14년간 유지됐다.

보수기득권세력의 결집체답게, 민주당쪽이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민주당)-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 등으로 계속 이름을 바꿔온 데 비해, '10년 야당' 시절과 '탄핵후폭풍', '대선자금 차떼기' 사건을 겪으면서도 정권탈환에 성공했다.

그런 한나라당이 '홍준표 사퇴 압박용' 성격이 짙기는 하지만 '집단탈당'이 거론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하는가 하면, 당내 인사들이 공공연하게 '재창당 수준의 변화'를 넘어 '당 해산후 재창당'을 주장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이명박 정부의 실패에 따른 내년 총선 패배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안철수 바람'으로 '박근혜 대세론'까지 깨지면서 대선 전망까지도 극히 불투명해졌다. 여기에 민주주의의 기초인 선거를 뿌리째 흔드는 '선관위 디도스 공격'사건까지 터졌다.

"9급 비서의 단독 범행이라고 저도 믿지 않는다. 경찰이 9급 비서의 단독 범행이라고 결론을 내린다면 의혹은 더 커지고 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지 않겠느냐"는 원희룡 의원의 주장은, 재창당을 끌어내기 위한 정치적 목적을 감안하더라도 이 사건과 관련해 한나라당이 처해 있는 위기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승민, 남경필, 원희룡 최고위원의 사퇴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로 홍준표 대표를 유지 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의 변화-외피 수준의 변화라 해도-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홍 대표 스스로도 "재창당 계획이 있다. 재창당할 수 있는 로드맵과 대안을 갖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홍준표 "1996년 신한국당 창당 벤치마킹하겠다"

1995년 12월 5일 민자당이 새당명을 '신한국당'으로 사용함에 따라 중앙당사 현관에 설치됐던 민주자유당 입간판이 철거되고 있다.
 1995년 12월 5일 민자당이 새당명을 '신한국당'으로 사용함에 따라 중앙당사 현관에 설치됐던 민주자유당 입간판이 철거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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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나라당에서 거론되고 있는 '재창당'의 길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1996년 신한국당의 길이다. 1995년 지방자치제 선거에서 참패한 김영삼 대통령이 5·6공의 흔적이 강한 민주자유당이라는 당명을 버리는 한편 이우재, 이재오, 김문수 등 민중당 3인방과 홍준표, 안상수 등 신진인사를 영입했다. 이어 다음 해 2월 16대 총선에 나설 공천자 243명의 필승전진대회를 겸한 신한국당 전당대회를 열었다. 당시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이회창과 박찬종도 영입했다.

'김영삼식 새 피 수혈'을 한 신한국당은 지방선거에 이어 또 참패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15대 국회에 비해 의석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139석을 차지해 제1당이 됐고, 이후 자민련과 민주당 의원들을 끌어들여 과반수 확보에 성공했다. '박근혜의 천막당사'와 함께 현재의 한나라당이 '위기극복의 전범'으로 꼽는 대표적 사례다.

홍 대표는 7일 의원총회에서 "시스템 공천을 통해 천하의 인재를 모아 이기는 공천을 한 뒤 내년 2월 중순께 재창당한다"는 나름의 '로드맵'을 밝혔다. 홍 대표 자신이 말한대로 신한국당 창당과정을 그대로 벤치마킹한 것이다. 1996년에 김영삼 대통령과 당시 공천을 주도했던 김현철씨가 그랬듯이 재창당 과정을 통해 '물갈이'를 하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위기 때마다 당을 깨고 부수면 정당정치의 발전이 힘들어진다. 통합, 화합을 통해 재창당 수준의 한나라당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다"라는, 박 전 대표가 생각하는 최대치도 당명을 바꾸고 외부인사를 적극 수혈하는 '신한국당 방식'인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재창당' 방식인 셈이다.

탈당-당해산 과정 거친 대통합민주신당의 길

두 번째는 열린우리당이 갔던 '대통합민주신당의 길'이다. 열린우리당이 2006년 6월 지방선거에서 사상 유례없는 대패를 당한 뒤 2007년 대선승리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친노세력'을 떨어내기 위해 수십 명의 의원들이 선도 탈당했다. 이들과 민주당 탈당파가 손을 잡아 '중도개혁통합신당'을 결성했고, 여기에 시민사회세력 일부와 민주당 그리고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손학규 대표 등이 결합해 2007년 8월 대통합민주신당을 만들었다. 최종적으로는 열린우리당 해산을 거쳐 친노세력도 그대로 이동했다.

신한국당 창당처럼 기존 당이 그대로 이동한 게 아니라, 외부세력과의 결합을 강조하기 위해 탈당-해산 과정을 거친 것이다.

수도권의 소장·쇄신파 중에서 "새로운 주체들이 나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며 탈당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의원들은 이런 방식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 이들의 '탈당 검토'는 홍 대표의 사퇴를 압박하기 위한 성격이 강했지만, 최고위원들의 사퇴에도 불구하고 홍 대표가 물러나지 않음에 따라 다시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안철수 교수가 신당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신당 창당의 입지도 좁아졌다. '박세일 신당' 정도가 있지만, 세력도 크지 않고 '북한 흡수통일론'을 주장해온 그는 중도의 선을 넘어갔다는 평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

지역주의·색깔론·기득권수호라는 본질은 그대로

두 길 중 어느 것이든 외피상의 변화였을 뿐이다. 신한국당은 전신인 민주자유당처럼 호남고립 전략을 지속한 영남 지역주의 정당이었고, 당 운영 역시 '제왕적 총재'가 끌어간 후진적 정당이었다. 대통합민주신당도 당시 여권의 생존을 위한 선거용 정당이었다. 강령과 지향도 어정쩡했고, 외부 특히 젊은 세대와의 소통이 막힌 채 폐쇄적으로 운영됐다.

이들의 후신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안철수 현상'으로 표상되는 유례없는 '정당정치의 위기'를 겪고 있는데서 이같은 문제점은 그대로 확인된다.

현재 한나라당의 재창당 논의도 마찬가지다. 지역주의와 색깔론 그리고 가진 자들의 기득권 수호라는 본질은 조금도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도로 한나라당'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게다가 국민들은 창당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이미 숱하게 봐왔다. 그나마 야권은 우리 사회에서 비주류, 소수파라는 점에서 '변명'이 가능했지만, 한나라당은 주류·기득권세력이라는 점에서 이런 말을 하기도 어렵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7일 오후 국회 본관 246호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서 참석자들이 의총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7일 오후 국회 본관 246호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서 참석자들이 의총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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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나라당, #재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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