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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푸어'라는 말이 생겨나더니 '하우스푸어', '허니문푸어', 이젠 '베이비푸어'까지 나왔다.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고용불안과 전세 값 폭등 등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30대가 결혼 후 임신과 출산이 더해지면서 아이가 짐이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도대체 아이 하나 낳아 키우는 데 돈이 얼마나 들기에!

'출산비 천만 원 시대'라고들 한다. 요새 엄마들이 얼마나 극성이면 출산비가 천만 원이냐 눈살을 찌푸릴 수 있겠지만, 결혼 2년 9개월 차, 만 24개월, 6개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서울 변두리 20평대 전세 아파트에 사는 내 경험으론 과장된 말이 아니다. 굳이 가계부를 들춰 일일이 더해보지 않았지만, 대충 큰 것들만 더해 봐도 우리 집도 '출산비 천만 원 시대'에 진입한 지 오래다.

'대출 하나 없는 게 자랑은 아니다'라는 서글픈 농담이 있다. 비록 전세이긴 하지만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이 농담에 해당한다. 성실한 남편의 월급과 큰 액수는 아니지만 비정기적인 내 프리랜서 수입으로 대출금 대신 적금통장 두어 개 만들어 신혼을 시작했다. 그러나 신혼 첫 달에 임신을 하고 계획에 없던 지출이 시작됐다.

그리고 지출의 시작
▲ 설레임의 시작, 그리고 지출의 시작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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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자가진단을 한 후 어느 산부인과에 갈지 고민했다. 동네 산부인과부터 여성전문병원, 대학병원까지···. 처음 겪는 임신이라 매사가 조심스러웠지만, 대형병원은 예약도 힘들고 진료비도 비싸 제외 대상이었다(병원에 따라 기본 초음파 비용이 많게는 세배까지 차이가 났다). 그러나 입원실이 없고 24시간 분만이 불가능한 동네 작은 산부인과도 적절한 진료기관은 아니었다. 그래서 옆 동네의 중간 규모의 여성전문병원을 선택했다.

처음 산부인과 진료를 보던 날, 기본 초음파 검사로 시작해 피검사, 소변검사가 이어졌다. 결혼 전 보건소에서 무료로 산전검사를 했었지만, 몇 가지 항목이 빠졌다고 해서 부족한 검사를 해야 했다. 처음 겪는 임신, 모르니 일단 하라는 대로 했다. 산모수첩에 초음파 사진을 붙여주며 임신 초기이니 2주에 한 번씩 와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 해야 할 많은 검사도 알려주었다.

초기·중기의 태아 기형아 검사가 두 번이나 있고, 매 진료 때마다 하는 기본 초음파 외에 정밀 내부 초음파와 컬러 입체 초음파, 임신성 당뇨 검사, 막달 검사 등이 있었다. 기본 초음파 외에 거의 모든 검사가 10만 원을 훌쩍 넘겼다(35세 이상의 고령산모들에겐 100만 원 가까이 하는 양수검사도 권한다).

고민 끝에 우린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기본 초음파와 당뇨, 막달 검사만 하기로 했다. 병원에서 권하는 모든 검사들을 다 할 경우 출산 전까지 진료비 100만 원을 넘기기 십상이다(첫째와 둘째가 고작 18개월 차이일 뿐인데, 둘째 임신 때 같은 산부인과를 찾았는데 없었던 검사가 추가되어 있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만약을 대비하는 검사라고 하지만 이렇게 많은 검사가 꼭 필요한 건지, 기본 검사만 하고도 순산한 나로선 여전히 의문이다).

돈줄을 붙이고
▲ 탯줄을 자르고 돈줄을 붙이고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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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하는 데 50만~100만 원...탯줄 자르고 돈줄 붙였다

임신 기간 동안의 지출은 시작일 뿐, 탯줄을 자르기 위해 또 돈이 든다. 병원이나 조산원에서 자연분만을 할 경우, 50만 원 안팎이면 된다. 하지만 제왕절개나 가정분만의 경우 100만 원이 훨씬 넘는 비용이 든다. 탯줄을 자르고 돈줄을 붙인다더니, 탯줄을 자르자 산후조리비용이 또 들게 생겼다. 결국 우린 적금 하나를 깨야만 했다.

애 낳은 다음 날에도 밭맸다는 할머니들의 얘기는 그야말로 옛날이야기. 산후조리에도 돈이 드는 시대다.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해주시던 산후조리도 옛이야기(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해도 감사의 봉투를 따로 드려야 서로 마음 편한 시대가 되어 버렸다).

산후조리원과 산후도우미는 요즘의 일반적인 산후조리다. 산후조리원은 보통 2주에 200만 원에서 300만 원 사이이고, 산후도우미는 주 6일 출퇴근 경우 2주에 100만 원대다. 이는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산후조리원의 가격이며 2주에 500만 원을 넘는 초호화 산후조리원도 점점 늘고 있다.

나는 두 아이 모두 출퇴근 산후도우미로 산후조리를 했다. 첫째는 3주, 둘째는 4주. 산부인과 진료비와 두 번의 출산(조산원, 가정분만), 산후조리 비용을 대충 더해보니 여기까지 800만 원이 넘는다. 여기에 산부인과에서 하라는 검사까지 다 했다면?

비싸야 더 잘 팔리는 육아용품의 세계

장마철 오이 자라듯 쑥쑥 자라는 젖먹이들. 모유 수유와 천기저귀를 사용해 매달 꼬박꼬박 들어가는 분유 값과 기저귀 값 30만~40만 원을 절약했지만, 대신 엄청난 육체노동이 수반됐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에겐 먹이고 입히는 게 끝이 아니다. 알면 알수록 무시무시한 육아용품의 세계가 펼쳐진다. 유모차를 시작으로 유아 카시트, 아기 띠, 보행기, 유아 식탁의자, 각종 장난감, 옷, 신발 등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물건들은 매일매일 쏟아졌다. 없으면 없는 대로 키울 수 있지만, 알고 난 후엔 없으면 안 되는 게 육아용품이다.

역시나 문제는 가격. 국산과 수입용품의 가격 차이는 어느 제품이나 있겠지만, 육아용품의 경우 그 차이가 꽤 크다. 대표적인 육아용품이자 큰돈이 들어가는 유모차를 살펴보면 10만 원대 국산 유모차서부터 100만 원은 우습다는 수입용품까지 가격도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동네 소아과나 놀이터에서 고가의 수입 유모차를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값비싼 연년생 수입 유모차
▲ 결국엔 사고 말다 값비싼 연년생 수입 유모차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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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애는 20만 원대 국산 유모차를 사용했지만, 연년생을 낳으면서 이런저런 궁리 끝에 60만 원 대 수입 유모차를 샀다. 가격의 부담이 있었지만, 덕분에 오토바이가 튀어나오는 골목시장도 가고, 바깥바람도 쐰다.

여기에 때마다 맞춰야 하는 예방접종비에 한철 입히고 나면 작아져 새로 사야만 하는 옷에 신발까지, 지출은 늘어만 간다. 애들 옷은 다 비싸다더니 양말도 계절이 돌아오기 무섭게 작아져 새로 사야만 한다. 장난감도 아이가 클수록 그만큼 비싸진다. 딸랑이 하나면 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우리집 첫째가 놀이터에서 세발전거만 보면 막무가내로 좋다며 올라탄다.

궁색한 출산 장려 정책, 눈물겹다

자, 여기까지 천만 원 넘기고도 남지 않았겠는가? 직장 여성일 경우, 임신·출산을 위해 휴직을 했을 때 수입이 마이너스가 되는 것을 감안하면 체감하는 출산비 부담은 더 크다.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출산·육아비용은 더욱 커지는 '베이비푸어'시대다.

물론 정부와 지역단체에서 해주는 눈물겨운 출산장려정책이 있기는 하다. 산부인과에서 발급하는 임신확인서를 받은 산모에게 지급하는 고운맘카드 제도와 출산축하금, 아이사랑카드, 산후도우미, 보육료 지원, 필수예방접종 무료 등 지원이 있지만 지역에 따라 편차가 심하다.

우리가 혜택을 본 출산장려정책은 고운맘카드 두 번(이마저도 산부인과에서 초기 비싼 검사가 끝난 후 임신확인서를 늦게 발급해줘 다 쓰지 못한 채 출산을 했다)과 둘째를 낳고 받은 출산축하금 30만 원, 12개월까지 매월 5만 원씩의 육아지원금, 보건소에서 맞은 영유아 필수예방접종이 전부다.

이렇게 재미난 걸!
▲ 중고면 어때 이렇게 재미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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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쑥스러웠지만... 이젠 대놓고 '아나바다운동'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격으로 끝도 없이 들어가는 육아비용. 당장은 출산을 위해 적금을 깼지만, 마냥 적금 하나 없이 지출만 하며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일이다. 둘째를 낳고 나니 가계부는 더 휘청거리고, 나는 더 아줌마가 되어 첫째 때부터 이용해온 벼룩시장을 더 적극 활용하고 있다.

우리집은 유모차, 주니어 카시트, 블록 장난감, 옷 몇 벌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육아용품이 중고다. 위로 자녀를 둔 형제가 없어 딱히 아이 용품을 물려받을 데가 없었던 우리는 인터넷과 동네, 성당 벼룩시장을 총 동원해 보행기, 스윙, 장난감, 식탁의자, 카시트, 아기 띠 등을 구입했다.

처음엔 말하기 쑥스러웠지만, 이젠 대놓고 애들 옷 좀 물려 달라 주위에 광고를 하고, 안면을 튼 동네 엄마들과 물물교환도 시도하고 있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아나바다 육아용품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중고를 입고 쓰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벌써 명품으로 치장한 강남의 아이들과 비교돼 좀 미안하기도 하지만, 아이의 웃음은 그 어떤 명품보다 빛이 난다.

하지만 아나바다 육아용품이 베이비푸어 시대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경제전문가들은 베이비푸어가 되지 않으려면 출산을 계획적으로, 즉 대출이 있을 경우 출산을 미루라고 조언한다. 학자금대출, 결혼자금대출, 전세대출, 굴비 엮듯 성인이 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 엮은 대출을 언제 다 갚고 홀가분하게 아이를 낳으란 말인가.

아무리 아나바다로 육아용품을 해결한다 해도 이미 출산비용만으로 천만 원 시대가 돼 버렸고, 매월 30만 원씩 든다는 어린이집을 보라. 아이가 커 가면서 드는 거대한 교육비는 계산도 전에 대출이라는 단어가 자동으로 엮어지려 한다.

딱 이만큼인가
▲ 가장의 무게 딱 이만큼인가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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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지금까진 대출없이 적금만 깨며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용감하게 '최고의 유산은 다복한 형제애'라며 '제 밥그릇은 타고 난다'고 주장하며 하나 더 낳자고 남편을 설득 중이지만 그러기엔 어깨가 너무 무겁다는 남편의 말에 셋째 생각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가난의 시대라고 하지만 희망마저 가난해진 시대를 살고 있는 현실이 서글프기만 하다. 이 가난의 시대가 나에게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아이를 키울수록, 대물림해주는 못난 부모가 될 것만 같아서 아이들에게 한없이 미안해진다.


태그:#베이비푸어, #출산장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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