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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헬프> 포스터
 영화 <헬프> 포스터
ⓒ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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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예닐곱 살 무렵, 겨울 초입에 어떤 노인이 집으로 들어섰다. 하얀 무명 두루마기를 입고, 머리에는 갓을 썼으며, 손에는 장끼가 들려 있었다. 허연 머리털의 노인은 나의 젊은 엄마를 '마님'이라고 스스럼없이 부르는 것이었다. 당시 엄마는 서른 살이 갓 넘은 새색시였다. 그는 방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은 채 마루에서 큰절을 올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노인은 만석꾼이었던 우리 집안의 머슴이었다. 어렸지만 나는 그때의 기억과 그분의 인상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가세는 현저히 기울어버려 고향 떠나 타지인 대처로 옮겨온 형편이었다. 그런 퇴락한 집안에 들어와서도 깍듯하게 예의를 갖춘 노인의 지나친 정중함이 내게는 무척 낯설었다. 

<완득이>를 능가하는 평가를 받고 상영되고 있는 <헬프>의 시간대는 노인 이야기의 시간대와 엇비슷하다. 1963년 미국 미시시피 주의 잭슨이 영화의 시공간이다. 35대 대통령 존 에프 케네디가 댈러스에서 암살당하기 얼마 전이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인종차별철폐를 공공연하게 주장했던 시기다. 피부와 무관하게 평등은 이뤄졌던가.

스키터와 콘스탄틴

영화 <헬프(The Help)>의 한 장면.
 영화 <헬프(The Help)>의 한 장면.
ⓒ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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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스키터. 그녀는 친구들의 한결같은 생활방식에 의아해한다. 예외 없이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출산하지만, 하나같이 흑인 가정부에게 아이들을 맡긴다. 육아뿐 아니라 집안 살림까지 통째로 가정부에게 넘기고 친구들은 중산층의 우아한 삶을 살아간다. 스키터는 친구들이 못마땅하다. 뭔가 잘못됐음을 느낀다.

결혼과 안정된 생활을 미룬 스키터는 지역 신문사에서 '살림정보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한다. <헬프>는 여기서부터 스키터를 전혀 다른 세계로 인도한다. 미시시피의 주도(州都) 잭슨에서 가정부로 살아가는 흑인 여성들의 삶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작가이자 기자로 성공적인 삶을 꿈꾸는 스키터의 출간기획을 출판사에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스키터가 만나는 흑인 가정부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감추려든다. 속 시원하게 털어낼 수도 있으련만 그녀들은 굳게 입을 다물어버린다. 혹시라도 자신과 가족에게 피해가 돌아올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몸을 사리는 것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견고하게 그들을 옥죄고 있는 공포에 집단적으로 전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키터는 어릴 때부터 자신을 키워준 흑인 가정부 콘스탄틴의 행방을 엄마에게 끈질기게 캐묻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스키터의 역할 모델이었던 콘스탄틴이 느닷없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까닭을 말해주지 않는다. <헬프>가 긴 상영시간에도 그다지 지루하지 않게 여겨지는 것은 이런 장치가 부설되어 있기 때문이다.

열일곱 명 백인 아이를 기른 에이블린

영화 <헬프>의 한 장면
 영화 <헬프>의 한 장면
ⓒ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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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터의 '살림정보칼럼'을 위한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하면서 에이블린은 당돌한 백인처녀와 교감하기 시작한다. <헬프>는 이 지점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러저런 얘기를 해주던 에이블린이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말해달라는 스키터의 주문에 선뜻 응하지 않는다. 그것은 에이블린의 가슴에 남아있던 깊은 상처 때문이다.

에이블린은 장성한 아들을 두고 있었다. 아들은 불의의 사고로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사고당한 아들을 짐짝이나 짐승 다루 듯했던 백인 상급자들과 동료들에 대한 에이블린의 분노와 절망. 그녀에게 아들의 죽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자 상실의 근원으로 작용한다. 진실고백이냐 침묵고수냐, 양자택일 사이에서 그녀는 고민한다.

흥미로운 점은 백인 여성들의 이중적인 행태다. 가정살림의 모든 것을 가정부들에게 맡기면서도 면전에서 가정부들을 의심하고 욕보이는 것이다. 최소한도의 인간적인 정리나 도리 혹은 인정이란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백인들은 자기 아이들처럼 어릴 적에 흑인 가정부들 손에 양육되었지만, 나중에는 상전이 되어 그들을 지배하고 모욕한다.

스키터에게 들려주는 에이블린의 말은 구슬프고 처절하게 들린다.

"할머니는 가사 노예였고, 엄마는 하녀였으며, 저는 가정부랍니다. 한 번도 가정부 이외의 다른 삶을 꿈꿔본 적이 없어요."

화장실 때문에 쫓겨난 미니와 흑백 관계

영화 <헬프(The Help)>의 한 장면.
 영화 <헬프(The Help)>의 한 장면.
ⓒ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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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는 뛰어난 요리사이며, 입담 좋은 가정부다. 그녀가 가정부로 일하는 집주인 힐리는 미니가 집안 화장실을 쓸까 봐 휴지 길이까지 일일이 확인한다. 급한 볼 일을 집안 화장실에서 보았다는 희한한 이유로 끝내 해고되는 미니. 힐리는 흑인이 세균을 옮긴다며 흑인용 옥외 화장실을 따로 만들자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일이 50년 전에 세계의 제국 아메리카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이란 게 믿어지지 않았다. 맏딸이 가정부 일을 시작하던 날 미니는 딸에게 말한다.

"주인에게 절대 저항하지 마라.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해라."

이것은 백인과 흑인 가정부의 관계가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가 아니라, 주인과 노예의 관계임을 입증한다. 꼭 100년 전인 1863년 있었던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이 무색하기 이를 데 없다.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자유와 평등의 기반 위에 서 있는 미국을 위해 투쟁하자!"는 연설이 100년 세월이 지난 뒤에도 전혀 실현되지 않은 미국.

미니는 자신을 내쫓은 악덕주인 힐리를 향해 '하이킥'을 날린다. 너무도 담대하고 누구도 생각해낼 수 없는 방식으로 통쾌한 보복을 감행하는 미니. 여기서 영화는 위태로운 곡예를 보여주지만, 미니는 인간에게 고유한 고백과 속죄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낸다.

못다 한 이야기

영화 <헬프(The Help)>의 한 장면.
 영화 <헬프(The Help)>의 한 장면.
ⓒ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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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에서 백인 여성들은 희화적으로 그려진다. 금발머리에 뽀얗고 하얀 피부, 말끔한 정장차림과 자선사업, 우아한 파티와 사교모임. 하지만 가장 고귀하고 의미 있는 인간영혼이 그들에게는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셀리아 푸트는 이런 여자들과 상이한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백인 여성들과 똑같아 보이지만 매우 이질적인 영혼을 가진 셀리아.

그녀는 미니와 공감하면서 가정부와 평등한 인간관계를 만들어간다. 같은 식탁에서 식사하고, 하나하나 요리를 배워가고, 삶의 부족한 지혜를 채운다. 그녀들의 유쾌하고 상큼한 수다와 소통은 셀리아와 남편의 관계를 확고하고 건강하게 만들어준다. 셀리아와 미니, 에이블린과 스키터가 짝을 이루어 흑백 혼성조합을 이루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미니만 화장실 문제로 모욕당하는 게 아니다. 에이블린의 주인도 가정부와의 간접접촉을 극도로 꺼린다. 에이블린만을 위한 별도의 화장실을 만들어주고 기뻐하는 주인 내외. 그런데 백인 여성들은 간접접촉은 그토록 꺼리면서 가정부들이 해주는 요리와 빨래, 청소에는 아무런 거부반응이 없다. 그들이 그렇게 둔하고 어리석은 여자들이란 말인가.

자기 아이가 밤새 울어대도 가정부가 올 때까지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는 백인 여성들. 열두 시간 넘도록 똥에 절은 기저귀를 방치한 채 일상의 소소한 쾌락을 좇는 골빈 여성들이라니. 그런 까닭에 아이는 집에서 쫓겨나는 에이블린에게 한사코 매달린다. 에이블린은 평소에 아이한테 들려준 말을 되풀이하면서 아이를 달랜다.

"너는 친절하고, 똑똑하며, 소중하다!"

우리는 차별하지 않는가

영화 <헬프(The Help)>의 한 장면.
 영화 <헬프(The Help)>의 한 장면.
ⓒ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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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는 여러 모로 미국의 지난날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케네디의 암살(1963)과 군산복합체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존슨의 집권과 재선(1964), 통킹 만 사건(1964)을 통한 베트남전쟁 참전, 흑인인권을 부르짖은 킹 목사 암살(1968)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이런 혼란스러운 시간대를 살아간 미시시피 잭슨 흑백 여성들의 삶을 간결하게 드러낸다.

가정부들이 속내를 털어놓는 계기가 되는 인종탄압을 자극적인 장면 없이 처리하는 감독 솜씨도 볼 만하다. 시종일관 시끄럽고 활기차며 소란스러운 영화지만, <헬프>는 우리 안에 잠재해 있는 차별의 그늘을 깊이 있게 숙고하도록 인도한다. 비록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영화는 명확하게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객석의 동의를 얻어낸다.

우리는 피부색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가. 우리보다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허다한 사람들에게 완전한 평등권을 부여하고 있는가. 우리는 차별을 대물림하면서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래전에 우리 집을 찾았던 노인의 명복과 평안을 기원한다. 부디 그곳에서는 머슴이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가시기를. 우리 모두 소중하기에!


태그:#흑인 가정부, #백인여성, #미시시피 잭슨, #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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