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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한 번은 겪는 고3이라는 시간이 있습니다. 부모되어, 애써 도와주고 싶지만 매순간 자신의 선택에 의해 삶의 무늬를 만들어가는 것이 '자식'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3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옆에서 지켜보며 지지하는 일뿐입니다.

유배된 시간처럼 '대학입학'이라는 목표 하나를 향해 앞만 보고 가야 하는 아이. 공부 때문에 지루하고 힘든 일상을 보내지만 때로는 남자친구 생각에 들떠 뽀얀 얼굴이 되기도 하고, 친구와의 갈등 때문에 밤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사는는 것이 다 그런가 봅니다. 오르고, 내리고, 진지하다가도 가볍고, 슬프고 또 기쁜일이 조각보처럼 이어지는 것인가 봅니다... <기자말>

"학교 공부 12년 동안 쌓은 실력을 보여주렴"

시험장으로 향하는 수험생들
▲ 수능날 아침 시험장으로 향하는 수험생들
ⓒ 소광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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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0일. 조마조마한 하루가 시작됐다. 오전 7시, 수능시험장 정문 앞에는 선배들을 응원하려는 학교 후배들로 가득했다. '재수는 없다.', '수능대박'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수험장으로 들어서는 선배들에게 초콜릿, 사탕, 귤이 든 간식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선배들의 걸음 뒤로 "선배님, 시험 잘 보세요"라며 목청을 높였다. 선배들은 쑥스러운 듯 선물을 받아 수험장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아이 옆에 바싹 따라 걷던 부모들은 할 말을 다 못한 사람처럼 쉬 자리를 뜨지 못했다. 

수능시험장 앞에서 기도하는 엄마
▲ 고3엄마 수능시험장 앞에서 기도하는 엄마
ⓒ 소광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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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10분. 시험장 문이 닫혔다. 그제야 아침햇살이 사방으로 퍼졌다. 아이가 들어간 자리를 바라보던 부모들은 느릿느릿 자리를 떠났고, 응원하던 후배들도 밤을 지새운 흔적들을 떼어내고 자리를 정리했다. 교문 앞에서 한발도 떼지 않고 수험장을 바라보는 엄마도 있었다. 아마도 하던 기도가 끝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다시 그 자리. 오후 4시 20분. 시험장 앞은 아침보다 붐볐다. 일찍 퇴근하고 나온 아버지들의 모습도 보였다. 굳게 잠긴 철문 저 너머가 마치 한 번도 본 적 없는 바다인양 부모들은 그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10여 분이 지나자 건물 안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과 저곳을 분리했던 철문이 열리고 아이 하나가 처음으로 문밖으로 나왔다. 모인 이들 모두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시험이 끝나고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부모들
▲ 수능시험장 시험이 끝나고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부모들
ⓒ 소광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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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차례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고 단번에 아이들을 알아본 부모들은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들의 얼굴은 아침에는 하나같이 회색이더니 나올 때는 울긋불긋했다. 엄마를 보고 우는 아이, 아빠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아이, 엄마가 끌어안으니 자신도 손을 얹어 엄마를 끌어안는 아이…. 웃는 아이들도 있었다. 홀가분해서 웃는지, 허탈해도 웃는지는 몰라도 덩어리 큰 짐 하나를 내려놓은 얼굴들이었다.

나의 아이도 수능시험을 치렀다. 시험을 마치고 멀리서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딸아이의 모습이 점점 커지는 순간 나는 '큰 실수만 안 했으면….'하며 아이 표정을 살폈다. 시험을 잘 봤느냐고 물어보기가 겁났다. 조심스럽게 기분이 어떠냐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아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이 느낌. 뭔지 모르겠어, 엄마. 허무해."

수험생을 둔 부모들은 세상의 모든 신들이 자신의 아이에게 은총을 내려주길 간절히 바라며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도 수능 보는 아이들이 마치 이 세상의 주인공인 양 그들의 모습에 주목했다.

12년 동안 공부한 결과를 스스로 시험대에 올린 69만 명의 아이들. 어떤 아이는 긴장하여 복통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하며, 1교시 시험이 끝나고는 시험을 포기하고 내내 엎드려 있던 아이도 있었다고 했다. 아이들은 주위의 축복과 격려의 말을 뒤로하고 홀로 긴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면 본격적으로 입시전쟁터에 들어서게 된다.

수능시험의 결과는 이미 지원한 대학들의 수능최저등급을 맞추기 위한 조건이었고, 정시라는 높은 입시의 산을 오르기 위한 과정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아직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

시험장에서 돌아와 내심 불안해하는 딸에게 나는 가채점을 하라고 따라 다녔다. 눈이 뻐근하고 기운이 하나도 없다는 아이에게 '등급이 어떻게 나왔는가에 따라 논술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학교가 나오잖아'하며 아이를 재촉했다. 혹시라도 목표로 했던 등급이 최소 2개의 영역에서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간 넣어 놓은 7~8개의 원서들이 모두 휴지조각이 돼 버리기 때문이었다.

수시에 지원한 거의 대부분 대학들은 수능최저등급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수능최저등급을 충족하지 못하면 논술시험에 응시할 필요가 없게 된다. 나는 앞으로 그려질 가능성들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아이의 등급을 알고 싶어했다.

나의 수능 점수는? 나의 수능 등급은?
▲ 가채점 나의 수능 점수는? 나의 수능 등급은?
ⓒ 소광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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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 원서는 1개를 넣든 100개를 넣든 수험생 마음이다. 과연 소신 있게 원서를 한 개만 넣은 아이가 몇이나 될까? 보통 대여섯 개는 기본인 것 같다. 디자이너의 꿈을 가지고 있는 내 아이는 미리 10여 개의 대학에 원서를 넣었다. 그러다 보니 지출한 원서대금도 만만치 않았다. 보통 한 대학의 원서대금은 평균 7만~8만 원 사이.

하지만 수시에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면 모두들 말하는 '입시에서 성공'하는 일.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외면하기 어려웠다. 원서를 쓰고 카드로 결제를 하면서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원서의 개수만큼 합격에 가까워지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얼토당토않은 생각마저 들었다.

아이의 점수는 언어, 외국어, 수리, 사탐 네 개의 영역 중 두 개영역이 등급 컷에 걸려 있었다.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실수 없이 정확하게 답지에 마킹했고 각 입시학원들에서 예측하는 대로 등급 컷이 나올 경우. 그리고 11월 30일에 수능점수발표에서 생각보다 낮은 등급이 나올 경우. 후자의 경우가 일어난다고 해도 지금 시점에서 내 아이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정해진 논술 시험에 응시하는 것이다. 혹시 점수가 잘 나올지 누가 알겠는가.

지방 학생들도 강남 족집게 논술학원으로 '상경'

수능시험이 끝나자마자 놀이동산이나 음식점 등 유통업계는 마케팅 일환으로 수험표를 가져오면 할인을 해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수능시험이 끝났다고 놀러나가는 학생이 몇이나 될까?

지방에 사는 아이들도 강남의 족집게 논술 학원을 찾아 상경하는 요즘이다. 나의 아이도 일 주일에 한 번씩 다니던 논술학원을 수능 이후 매일 가고 있다. '고 2때부터 논술 준비를 하면 논술전형으로 합격할 가능성이 50%이고, 수능 끝나고 논술준비를 하면 합격 가능성은 10% 미만'이라는 말도 떠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해봐야 하는 것이 지금의 수험생들 입장일 것. 단 몇 퍼센트의 가능성도 무시 못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나라의 입시이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논술 학원비로 수십만 원을 지출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대학 논술시험장을 이리저리 다니기 위해 오토바이 퀵 서비스 뒷자리에 앉아야 한다.

13일 논술시험을 실시한 성균관 대학교.시험당일 교내 차량 진입을 통제했다. 학교 주변의 교통체증은 하루종일 이어졌고, 성균관대학교 논술시험이 끝나는 시간,학교밖에서는 다른 학교 논술시험장으로 빠르게 수험생을 데려다 주기위해 오토바이 퀵들이 줄지어 있었다.
▲ 논술시험장 13일 논술시험을 실시한 성균관 대학교.시험당일 교내 차량 진입을 통제했다. 학교 주변의 교통체증은 하루종일 이어졌고, 성균관대학교 논술시험이 끝나는 시간,학교밖에서는 다른 학교 논술시험장으로 빠르게 수험생을 데려다 주기위해 오토바이 퀵들이 줄지어 있었다.
ⓒ 소광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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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주말, 내 아이도 두 곳의 대학 논술시험에 응시할 것이다. 하루에 두 곳을 뛰려면 아이는 두 배로 긴장하고 피곤도 감수해야 한다. 나는 시험시간에 맞추려고 머리를 굴려야 할 것이다.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고. 그렇다면 지하철 노선도를 머리에 그려 놔야하고, 중간에 밥을 먹이려면 도시락을 싸야 할까? 아니면 다음 시험장으로 가는 도중에 그냥 사 먹을까? 주말 날씨는 좋을까? 일기예보에서는 비 온다고 했는데···.

덧붙이는 글 |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한번은 겪는 고3이라는 시간이 있습니다. 제 딸은 고3이 되고 1년이 지난 11월 둘째 주 목요일, 그러니까 11월 10일에 수능시험을 봤습니다. 그간 공부한 것들을 하루의 시험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러나 대학으로 가는 길은 아직 멀었습니다. 지원해 놓은 대학들의 전형방법에 따라 논술시험도 봐야하고, 또 면접도 봐야 합니다. 수시 합격자 발표는 12월 중순에 있을 예정입니다. 만약에 한 개의 대학에도 합격하지 못한다면, 정시에 또 3개의 원서를 넣게 됩니다.



태그:#2011수학능력시험, #고3, #논술시험, #2012 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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