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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높은 등록금'만은 아니다. '비리사학' 때문에 강제졸업당하고(세종대), 국립대 법인화에 반대해 정문 앞에서 고공농성을 하고(서울대), 대학내 구조조정으로 멀쩡한 학과가 없어질 위기에 처한 경우(동국대)도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렇게 한국대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학잔혹사' 현장을 추적한다. [편집자말]
동국대학교에 걸려 있는 학과 통폐합 반대 현수막들.
 동국대학교에 걸려 있는 학과 통폐합 반대 현수막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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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평가는 전체 53개 학과의 정원 대비 재학생 수, 졸업생 취업률, 입학생 성적, 교수 1인당 대학원생 수, 입학 경쟁률을 따졌다. 높은 점수를 받은 학과는 하위권 학과에서 줄어든 정원을 우선적으로 더 배분받는다. 동국대는 매년 이런 평가를 해서 학과 정원을 조정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지난 2008년 5월 <조선일보>에 실린 사설이다. 사설의 제목이 '동국대 학과 구조조정, 다른 대학 모범 보였다'이다. 이명박 정권 들어 대학의 구조조정 열풍이 더 혹독하게 대학가를 휩쓸던 때에, 동국대의 구조조정 사례를 높게 평가했다.

그해 동국대는 평가점수가 낮은 독문과, 사회학과, 물리학과, 전기공학과의 입학 정원을 15% 줄인다. 또 기계공학과, 윤리문화학과, 수학과, 철학과의 정원도 10% 감축한다. 그리고 이렇게 줄어든 학과 인원은 평가가 좋았던 컴퓨터공학과, 경영학과, 전자공학과로 배분됐다.

동국대는 이때부터 지금까지 입학성적과 경쟁률, 취업률 등으로 학과 평가를 실시해 하위학과 입학정원의 10~15%를 소위 '잘나가는 학과'에 재배정하는 '입학정원관리시스템'을 4년째 운영해 왔다. 사실상 매년 '상시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 정도로 '유연한 구조'를 가진 동국대지만 학교 측은 올해 '구조조정'이라는 '대수술'을 또 다시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학과의 정원을 줄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애는 게 골자다. 대학은 ''미래지향적 구조조정'이라고 말하지만 학생들은 그 '미래'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은 2008년 구조조정 때에도 들었던 말이기 때문이다. 3년 만에 바뀐 미래 때문에 학생들은 혼란스럽다.

"학생들 무시하는 학교 태도에 화가 난다"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동국대학교 학생들이 등교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동국대학교 학생들이 등교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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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전 9시, 충무로에서 연결되는 동국대학교 후문에 수십 명의 학생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번 학교 측이 수립한 구조조정 대상에 걸려든 학과의 재학생들이다. 폐과 소식이 언론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북한학과를 비롯해 윤리문화학과, 문예창작학과 학생들도 보인다.

이들은 중간고사를 맞아 바쁘게 지나치는 학생들을 상대로 "일방적인 학과 구조조정 막아내자"고 구호를 외쳤다. 이들 손에는 "제대했더니 우리 과가 사라졌어요", "피켓 쓰러 문창과 온 거 아니잖아요"라고 적힌 피켓들이 들려 있었다.

동국대 '학문구조개편위원회'는 지난 7월 13일 11개 학과의 통폐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예창작학과는 국어국문학과, 윤리문화학과는 철학과와 통합되고, 북한학과는 정치외교학과의 연계 전공으로 사실상 학과가 없어진다. 이들 학과는 마찬가지로 통합될 예정인 물리학과와 반도체학과를 포함, '우리의 학문을 지키기 위한 동행'(이하 동행)을 구성해 구조조정에 맞서고 있다.

등교시간 캠페인을 마친 학생들을 동국대학교 총학생회실에서 만났다. 윤리문화학과 과학생회장 이기훈(24)씨와 북한학과 부학생회장 전혜정(22)씨 그리고 문예창작학과 원재운(26)씨에게 '학과 구조조정'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무엇보다 '학교의 독단적인 결정'을 비판했다. 이기훈씨는 "분명히 학생들이 보고 있는 비전이 있고,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과는 철학과와 다른데 학교는 통합하라고 한다"며 "적어도 학생들의 생각이 어떤 건지는 좀 들어보고, 학교의 주장도 민주적인 방법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인데, 전혀 그런 모습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 번은 대학 본관에 항의 방문을 가서 '학교의 주인은 학생인데 왜 우리 의견을 듣지 않고 마음대로 바꾸려 하냐'고 항의했어요. 그랬더니 한 교직원이 학생들에게 '학교의 주인이 어떻게 학생이냐, 학교의 주인은 총장님이다'라고 오히려 저희한테 화를 냈어요. 그러면서 대학 본관을 찾아온 학생들에게 '내 집에서 당장 나가'라고 할 정도예요."

전혜정씨가 들려준 이야기는 대학이 학생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학생들은 그 교직원에게 "그럼 여기(대학본관)서 출퇴근 하시나 보죠"라고 비꼬면서 대응했지만, 학교 측의 그런 태도는 학생들에게 큰 상처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일은 또 있었다.

동국대 측은 지난 7월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면서 그 논의를 진행한 '학문구조개편위원회'의 회의록을 학생들의 끊임없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학생들은 어떤 논의를 통해 자신들의 학과가 없어지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학교는 이를 묵살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회의록 공개야, 뭐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학교가 보여주기 싫어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더 큰 문제는 그 학문구조개편위원회에 어떤 사람들이 참석하는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어떤 교수님들이 그런 논의를 하시는지 물어봤는데 학교는 '위원들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어 알려 줄 수 없다'는 거예요. 이건 뭐 학생들을 조폭으로 아는 건지."

원재운씨는 이 말을 하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대학에 공부하러, 글을 쓰러 들어왔는데 학생들이 비상대책위를 꾸리고 반대시위를 벌여야 하는 이 상황 자체가 정의롭지 못하다"라며 "등록금을 내고 학교 구성원의 한 축인 학생들이 전혀 대화에 참여할 수 없다면 이것은 동국대에 들어 온 모든 학생들에 대한 학교의 배신행위"라고 질타했다.

이어 전혜정씨도 "학과 교수님들도 저희가 전해 드리고 나서야 학과가 폐지된다는 걸 아셨다"라며 "동국대는 결국 총장과 이사회, 그리고 몇몇 교직원들과 총장 측근의 교수들로 움직이는 학교가 됐다"고 비판했다.

CEO형 총장이 득세한 학교... 총장 바뀌면 나오는 '학과 구조조정'

북한학과 폐과(정치외교학부 연계정공으로 변경)를 반대하는 한 북한학과 학생의 1인 시위.
 북한학과 폐과(정치외교학부 연계정공으로 변경)를 반대하는 한 북한학과 학생의 1인 시위.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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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훈씨는 이런 일방적인 구조조정의 문제가 끊이지 않는 이유가 CEO형 총장이 득세한 학교 운영 구조에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다른 과들도 마찬가지지만 저희 학과(윤리문화학과)는 2007년 때부터 지금 4년째 계속 싸우고 있습니다. 당시 오영교 총장이 구조조정을 했고 과가 없어질 뻔했는데 학생들이 지켰죠. 그리고 학교와 논의를 해 정원을 감축하고 새로운 전망을 세웠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또 학과를 없앤다고 해요. 그때 했던 구조조정의 결과가 성공적이었는지 아니면 실패인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인데 '미래지향적 구조조정'이라며 철학과와 통합하려 하죠.

그럼 오영교 총장이 했던 학제 개편은 잘 못됐다는 건가요? 그럼 대학이 잘 못한 걸 피해는 왜 다 학생들이 감수해야 하는 거죠? 이번에 구조조정을 다시 하려는 건 오영교 총장이 물러나고 새로 온 김희옥 총장이 자기도 뭔가 보여줘야 하니까 이름만 바꾸고 오 전 총장이 하려 했던 걸 똑같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대학이 무슨 정치권도 아니고 정권 바뀌면 정책 달라지듯이 그렇게 자기 공적 쌓기만 하려고 합니다."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냈던 오영교 전 총장은 2007년 동국대가 처음으로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영입한 'CEO형' 총장이었다. 학교 개혁을 주창하며 취임한 오 전 총장은 ▲ 대학 강의평가 100% 공개 ▲ 상시입학정원관리시스템 도입 ▲ 교수·직원 성과평가시스템 시행 등 대학 구조를 바꾸는 데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러다가 올해 초 김희옥 총장이 취임했다. 역시 전 헌법재판관 출신의 김 총장은 오 전 총장 아래 달라진 동국대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먼저 구성원들 간의 충돌 끝에 마련된 '상시입학정원관리시스템'을 폐지했다. 그리고 집어든 '메스'.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장기'(학과)들을 몸에서 떼어내려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북한학과 전혜정씨는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 북한학과가 시대적 요구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럼 지금 그런 시대적 요구가 사라졌는가?"라며 "그런 요소가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어쩌면 통일시대에 북한학은 더 중요하게 될지 모르는데, 민족사학이라는 동국대가 그저 취업률이란 문제로 구조조정 한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예창작학과 원재운씨 역시 "등단하는 동국대 출신 문인들이 줄어들자 글쓰기에 특화된 인재들을 모집하는 취지로 문예창작학과는 2001년에 예술대학에 개설됐다"라며 "입학 시험에도 실기 비중이 40%나 되고 지난 10년간 등단한 문인만 34명이나 되는 등 성과가 확실하다. 그럼에도 다시 국문과와 합친다는 건 2001년 이전 상태로 돌아가자는 것인데, 납득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학생들 "학문의 다양성 인정해 달라"... 학교 "미래를 준비해야"

'피켓 쓰러 문창과 들어온 거 아니잖아요' 1인 시위 중인 문창과 학생. 동국대 문창과는 국어국문학과와 통합이 추진되고 있다.
 '피켓 쓰러 문창과 들어온 거 아니잖아요' 1인 시위 중인 문창과 학생. 동국대 문창과는 국어국문학과와 통합이 추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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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이런 구조조정이 결국은 대학을 취업률과 입시경쟁률로 평가하는 잘못된 잣대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평가가 낮아 교육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대학은 무리한 구조조정으로 그 점수를 만회할 수밖에 없다는 것. 또 스펙경쟁에 밀려 소수의 전공자만 있는 학문이 사라지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동국대에는 특수화 된 학과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정원이 적은 소수학과죠. 비주류 학과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인문학이 취업이 잘 안 되기 때문에 교육부의 지원을 받기 어렵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작은 과들을 합쳐 큰 과로 통폐합시키려는 것 같습니다. 교육부가 특성화 전략에 성공한 대학을 지원하는데 동국대는 그거에 실패하고 이제 (지원 받을 수 있는 건) 구조조정밖에 안 남은 거죠." (이기훈)

"신자유주의가 시작되면서 대학이 취업률과 스펙 경쟁의 장이 된 시대적 흐름은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그것에 맞춰 구조조정을 하는 건 미래지향적이 아니라 현실지향적인 게 아닌 게 아닐까요? 학문의 가치가 다양하다는 걸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학생들이 공부 좀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세요. 학생들이 총장들 성과 싸움에 휘말려서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시험기간에 이렇게 싸워야 하는 게 참...

대학을 기업화 하려면 제대로 기업화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기업은 돈을 주는 자본, 사장의 뜻대로 하죠. 총장과 교수 임금 다 학생들 등록금으로 주고 있어요. 학생들이 돈 주고 부리는 사람들인데, 이들이 학생들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하니까 화가 나요." (원재운)

"북한학과는 정말 없어지면 안 되는 과예요. 학교에서는 전과생이 많고 입시경쟁률이 낮으니까 없애야 한다고 하지만 대학원에서 북한학을 전공하는 선배들은 학부 과정에서부터 북한학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세요. 단순히 학교가 받는 지원 예산을 위해, 학교 평가 점수를 높이기 위해 없애기에는 한국사회에서 정말 중요한 학문입니다. 입시를 준비하는 중고등 학생들 중에 우리 과를 정해 놓고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폐과 안 되게 해 달라는 메일을 받았는데, 그렇게 되면 그 친구들에게 정말 미안할 거 같아요." (전혜정)

이러한 학생들의 반발에 동국대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현재 의견을 수렴하는 기간이고 올 연말까지 개편안을 확정해 2013년에나 시행할 계획"이라며 "지금은 의견 수렴과정에서 일부 학생들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인데 앞으로 의견을 모아 종합적으로 토론하고 다시 학문구조개편위원회에서 심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위원회에서 검토한 이후에도 미래학자나, 대학학제구조 외부전문가들에게 객관적인 검증, 검토 작업을 거쳐야 하는 등 아직 많은 단계가 남아 있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 관계자는 이번 학과 구조조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와 관련해 "각 학과마다 특성이 있기 때문에 그 효과는 각각 다르지만 공통적인 점이 있다면 유사한 학문을 좀 더 크고 경쟁력있게 정원을 늘리면 어떻겠냐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학교가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개별적인 학문구조를 인문학과 공학,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어떻게 융합된 학과로 갈 수 있겠는가를 연구해야 미래 사회에 대응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동국대에선 학생이 주어가 될 수 없다? 

대학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며 앞서 소개한 2008년 동국대의 구조조정을 칭찬했던 <조선일보>의 사설의 또 한 부분이 떠올랐다.

"우리 대학들은 너나없이 사회 인력 수요는 따지지도 않고 잡화점처럼 학과를 이것저것 다 차려놓는 데 급급했다. 대학마다 법대, 공대 없는 곳이 없고 영문학과, 전기공학과 없으면 대학이 아닌 것처럼 여겨왔다.(중략)

산업기술과 사회구조가 워낙 빠르게 변화해 대학이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은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학은 항상 대학 학과와 전공을 사회 변화에 맞춰 구조조정해 나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대학은 고학력 실업자 양성소가 될 가능성이 있다."

동국대 관계자의 말과 <조선일보> 사설에는 공통적으로 '대학'과 '사회'가 등장한다. 하지만 '학생'은 주어가 되지 못한다. 학생들은 그저 '고학력 실업자'가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묻혀 항변의 목소리도 내기 어려운 현실에 서 있다.


태그:#동국대, #구조조정, #대학 잔혹사, #북한학과, #문예창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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