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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됐다. 여러 언론에서 삼성에 노동조합이 생길 것인지 주목한다. 당장이라도 삼성 계열사 몇 곳에서 노조설립신고를 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하고 이를 막으려는 삼성의 계획도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당분간 그런 '깜짝 신고'는 없을 듯하다.

그 근거는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의 '입'이다. 복수노조 시행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그에게 "삼성에 '진짜' 노조는 언제 생기겠냐"고 물어봤다. 돌아 온 답은 "곧, 하지만 당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복수노조가 시행됐다고 언론에서 보는 것처럼 노조가 뚝딱 생기는 건 아니다"라며 "삼성에 노조를 세우려는 움직임은 계속 있어 왔고, 그걸 방해하던 장애물이 하나 치워졌을 뿐, 아직 넘어야 할 큰 산이 많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말을 신뢰하는 이유는 '삼성 노조'에 있어서 그 만큼 많이 알고 경험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삼성에서 해직된 지 벌써 16년째, 그동안 그는 복직과 삼성노조 결성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왔다.

지난 1996년 '이천전기(주)'가 삼성전자에 병합되는 과정에서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김 위원장은 해고를 당했다. 이후 2000년 '삼성그룹 해고자 복직 투쟁위원회'를 조직해 활동을 벌였으며 2005년 2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삼성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풀려날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함께 사면됐지만 이 회장과 달리 그는 복권까지 받지는 못했다.

당시 그는 국제 엠네스티에서 선정한 양심수가 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기업에 관련한 이유로 양심수가 되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지금도 삼성은 그를 상대로 6건의 고소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과 맞서는 최전선에 항상 그가 있었다는 증거다.

삼성과 싸우다 이혼까지... "복수노조, 장애물 하나 사라진 것"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삼성 수원공장 앞에서 1인시위를 펼치고 있다.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삼성 수원공장 앞에서 1인시위를 펼치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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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평 남짓한 영등포 골목의 허름한 건물에 자리 잡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는 동안 깜짝 놀란 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이혼사실이다.

김 위원장은 감옥에 가기 전인 2004년, 부인 임경옥씨와 이혼했다. 의외였다. 임씨가 삼성본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등 그와 함께 활동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해고되고 나서 오랫동안 돈을 벌수 없었다, 얘들이 셋 있는데 부모가 이혼하게 되면 조금이지만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고, 또 삼성과 싸우면서 어쩔 수 없이 맞게 될 여러 소송도 걸리는 문제였다"며 "실제로 법적인 부부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삼성이 아내에게 까지 소송을 걸지는 못했다, 정확히 이야기 하면 지금은 '사실혼'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임씨도 지난 5월 삼성에 고소를 당했다. 충남 천안 삼성LCD 탕정 사업장 기숙사에서 투신한 고 김주현씨의 죽음에 항의하는 1위 시위를 한 이유다. 그의 사생활을 밝혀도 될지 고민하는 기자에게 김 위원장은 "상관없다"며 어차피 다 고소당했고 이제 모두 알고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복수노조 시행에 의의를 부여하면서도 섣부른 기대를 경계했다. 그는 "복수노조가 시행되지 않았을 때도 조직건설의 움직임은 있었다"며 "회사의 철저한 사전 탄압으로 빛을 보지 못했지만, 이제 그런 장애물 가운데 하나가 없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복수노조 시행과 더불어 사회 인식이 변함에 따라 노조설립의 전망은 밝다고 할 수 있다"며 "반도체 공장의 죽음이 공론화 되고, 노동자들이 투신하고, 비정상적인 경영 세습이 알려지면서 삼성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점점 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 인식의 변화는 삼성 내부의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빠르게 나타난다"며 "삼성에게 노동자는 1회용 종이컵 밖에 안 되며,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삼성의 모토가 그저 제품 하나를 더 팔아먹기 위한 것임을 자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당장 노조 건설을 장담할 수 없는 이유가 남아 있다. 김 위원장은 "복수노조보다 더 큰 걸림돌이 바로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라는 신념"이라며 "폭력적이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노조를 세우려는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무노조의 신념화를 위한 세뇌 교육을 지속하는 한 삼성의 노조 건설은 결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아래에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민주노총 지원 없다, 삼성 노조 만들려면 사회연대 필요"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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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등포에 사무실은 언제 열었나?
"작년 5월에 후원금을 모아서 마련했다. 보안문제도 있고 해서 원래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 사무실에 월세를 내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연락이 없었다.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급하게 구하게 됐다. 한 달 CMS 후원이 450만 원 정도가 들어오는데 상근자 두 명 월급하고 월세를 내고 나면 거의 바닥나서 유인물 하나 찍기도 어렵다."

- 민주노총과 지난 1월에 '삼성 노조 건설을 위한 대책위'를 구성했는데 별다른 지원이 없나?
"우리가 제안해서 대책위가 만들어졌는데 현재로서는 기대할 게 많지 않다. 내 개인의 이야기라 해도 삼성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24시간 구속을 각오하고 싸우는 건데, 실제로 민주노총이 그렇게 하기 어렵다.

노동자들을 실제로 만나 조직 할 수 없다면 지원을 해야 하는데 현재는 자력갱생하고 있는 거나 다를 바 없다. 문제는 실질적인 지원이 없으면서 현장의 움직임을 공개적으로 이야기 한다는 거다. 모든 게 비밀리에 진행되는데 어디서 노조를 세우려고 한다고 말해 버리면 어떻게 하나? 설령 그랬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런 문제의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 민주노총이 진정으로 조직을 건설하려고 한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 지금 실제로 현장에서는 노조 건설을 위한 움직임이 있나? 복수노조 시행이 가져온 변화가 있다면?
"그런 움직임이 있다고 해도 말하기 어렵다. 복수노조가 시행됐다고 해서 노조가 생기는 건 아니다. 노동조합은 두 명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데 그동안 없었던 이유가 노동자들이 그 필요성을 못 느껴서 인지, 아니면 회사가 막기 때문인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라는 기업방침이 가장 큰 문제 아니겠나? 노조를 세우려 하면 왕따 근무를 시키고 강제로 해외 발령을 하고 미행에 도감청까지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에게는 무노조 경영을 신념화 하는 교육을 실시한다.

복수노조가 시행된다고 노조를 만들 수 있고, 시행이 안 된다고 해서 못 만드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삼성이 검찰, 경찰, 언론과 만들어 놓은 권력이 폭력적으로 탄압하고 있는데 이들과 싸우는 노동자들은 혼자뿐이다. 삼성의 카르텔에 맞설 수 있는 시민사회의 연대가 절실하다. 결국 삼성의 노조 건설은 범사회적인 운동이 돼야 한다."

"사람이 죽어야 근로기준법 이야기하는 초일류 기업 삼성"

- 최근 삼성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걸린 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이 인정 되면서 또 한 번 노조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이번 법원의 판결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가?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처음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이 업무상 연관성을 인정받아 직업병으로 판결이 나왔다. 외국에서도 문제제기는 많았지만 직업병이라고 이야기 된 경우는 없다.

하지만 두 사람만 승소하고 나머지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사법부의 기회주의적인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승소한 황유미씨와 이숙영씨는 같은 라인에서 일했던 사람들이다. 한 사람이 인정되면 나머지도 자동으로 된다. 그래서 둘 다 인정해 준 거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유독 화학물질에 노출 돼왔다. 황민웅씨의 경우는 앞서 두 사람보다 더 많이 노출될 위험이 있는 엔지니어였다.

결국 법원이 모두를 다 인정할 지 못하고 일부 승소를 내린 건데, 피해자들은 오히려 희망을 가지게 됐다. 판결이 납득할 만 했으면 오히려 '안 되나보다'하고 좌절 했을 텐데, 오히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패소했으니 항소심에서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것이다."

- 최근 백혈병 판정과 더불어 삼성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과거와는 점점 달라진 다는 의견이 있다. 이런 변화가 노조 건설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물론 전망이 밝아졌다. 삼성의 실체를 몰랐을 때는 신문과 방송에 나오는 데로 한해 몇 조원의 수익을 내는 세계적인 기업일 뿐이었다. 하지만 반도체 공장의 죽음, 그곳 노동자들의 투신, 장시간 노동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삼성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한진중공업 같은 경우처럼 구조조정을 받아들이는 사회인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삼성 노동자들도 스스로를 노동자로 생각하는 자각의 과정이 최근 들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껍데기를 벗겨 보니 삼성 노동자들의 삶은 1회용 종이컵밖에 안되고,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모토는 제품을 하나라도 더 팔아보겠다는 상술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을 이건희 회장과 동격화 하며 회사를 걱정했다. 1998년 IMF때 삼성이 5만 명을 구조조정 했지만 그때는 아무도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상화이 있지만 대략 언제쯤 삼성에 노조가 건설 될 수 있을 거라 보나? 그를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게 있다면?
"그 시기는 언제 하겠다고 해서 될 문제는 아니다. 노조를 세우려는 움직임 가운데 내가 알고 있는 것 또한 극소수다. 상당한 움직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무노조 경영이라는 신념화 교육을 버텨내야 하고 회사의 탄압을 이겨내야 한다. 지금은 사회적으로 노조를 건설하라는 압박이 삼성에 가해지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연대하지 않는 노조 건설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민주노총이든 어디든 삼성과 맞서 노조를 세우려는 사람들을 적극 돕겠다, '잘려도 생활비를 마련해 주겠다'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노조가 생길 수 있다. 지금은 그런 안전망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백혈병에 걸려 노동자가 죽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20대 청년이 투신자살하는 곳이 삼성이다. 김주현씨가 사망하고 나서 지난 6월 탕정공장에 지침이 내려왔다. 하루에 12시간 이상, 월 52시간 이상 작업하지 말라는 지시였다. 세계일류, 국내 최대 기업이라는 곳이 노동자가 투신하고 나서야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장의 노동자들은 이런 지침을 비웃는다. 지금이야 그걸 지키는 게 가능할지 모르지만 또 상황이 변해 물건이 많이 팔리게 되면 그때도 지킬 수 있냐는 비웃음이다.

여기 삼성일반노조 상근자 가운데 백혈병 피해자의 유가족이 있다. 고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다. 그녀는 삼성에 노동조합이 없었기 때문에 남편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노조를 세우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여기로 왔다. 그러면서 또 '전태일노동대학'에 다니며 공부를 한다. 이런 활동에 가장 필요한 건 사회의 지원이다. 삼성에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가 나설 때 그것은 실현 가능하다."


태그:#복수노조, #삼성노조, #삼성백혈병, #김성환, #이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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