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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억 명을 돌파, 10년 내에 중국을 추월해 세계 최대의 인구대국이 될 것이라는 인도. 그저 인도라는 곳이 어떤 곳일까 궁금해하다가 지난 2월, 인도의 에이즈 고아들을 살리기위해 애쓰는 한국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달 짜리 휴가를 거기서 보내기로 결정했다. 5월 5일부터 25일간 활동가들과 함께 지내며 겪은 에이즈 고아들 이야기와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 이야기는 휴가기간에도 기사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 기자말

90년대, 별명이 '에이즈'인 선생님이 중고등학교에 꼭 한 명씩 있었다. 선생님 중에서도 '한번 걸렸다 하면 살아날 수 없는' 가장 독하고 무서운 선생님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AIDS(후천성 면역 결핍증)에 감염되면 살아날 수 없다는 일반적인 인식과 이 질병에 대한 공포 그리고 구타를 일삼는 선생에 대한 증오가 뒤섞여 이런 별명이 만들어졌지만, 에이즈는 더 이상 '걸리면 죽는' 그런 병이 아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법(ART : AntiRetroviral Therapy) 도입 이후 에이즈 환자의 생존율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는 보고가 있고, 일각에선 에이즈를 '고혈압과 같은 평생관리 질환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런 예들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에이즈를 관리하고 있는 일부 선진국에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인 인도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아이들에겐 최고의 것만'... 에이즈 고아들이 즐거운, 조이풀 홈

메리 원레스 병원 내 조이풀 홈 전경
 메리 원레스 병원 내 조이풀 홈 전경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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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마하라슈트라주 꼴라뿌르의 메리 원레스(Mary Wanless) 병원에는 에이즈로 인해 고아가 된 아이들을 돌보는 '조이풀 홈'(Joyful Home)이란 곳이 있다.

에이즈로 인해 남편이 사망한 홀어머니 가정의 자립을 돕는 일을 하던 '써빙 프렌즈 인터내셔널'이라는 한국의 구호활동 NGO가 이 병원 운영을 맡으면서 병원 시설 일부를 리모델링, 지난해 1월부터 에이즈 고아들과 홀어머니 가정이 함께 사는 곳이 됐다.

2011년 5월 말 현재 '조이풀 홈'에는 여자아이 18명과 엄마 4명이 살고 있다. 남자아이 4명은 별도의 숙소에 있지만 전반적인 생활은 이들과 함께 하고 있으니 모두 26명이 '조이풀 홈' 식구인 셈이다.

여기 사는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에이즈와 연관돼 있다. 부모가 모두 에이즈로 사망하고 자신도 에이즈에 감염돼 있는 아이, 부부가 에이즈에 감염됐지만 남편만 먼저 사망한 가정 등 경우도 다양하다.

조이풀 홈에서 아이들은 먹고 자고 입는 것에 부족함 없이 자란다. '아이들에게 언제나 최고의 것을 줘야 한다'는 모토 때문에 헌옷은 기부 받지도 않는다. 지난달 14일 서커스 공연을 보러갔을 때도 아이들은 가장 좋은 S석에서 단체 관람했다.

아이들 꿈 위해 과외교사까지... "인도를 섬기는 아이들 됐으면"

이곳에는 6월부터 새로 시작되는 학기에 10학년이 되는 여자아이들 4명이 산다. 이 아이들은 한 고아원에 있다가 지난해 가을에 함께 조이풀 홈으로 옮겨왔다. 고아원 시설과 양육 수준이 워낙 열악하고, 무엇보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남녀가 뚜렷이 분리되지 않는 고아원에서 지내는 것이 우려돼 고아원장을 설득해 조이풀 홈으로 데려왔다.

이 4명 중 3명은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 그러나 이들은 조이풀 홈에 살면서 꿈을 갖게 됐다. 수만은 의사가, 라니, 수깐냐, 쌍기따는 간호사가 돼서 에이즈 환자들을 돌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유급당하지 않고 10학년까지 진학한 것이 용할 정도로 아이들의 성적은 좋지 못하다. 그래서 한국 활동가들이 한국식 해법을 도입했다. 방과 후 아이들을 붙잡고 공부를 가르치는 과외 선생들을 상당한 고액의 봉급을 주고 고용한 것. 과외 선생님 3명의 임무는 이 아이들이 주니어 칼리지(한국 고2·3학년에 해당)에 진학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물리적으로 좋은 환경을 제공해 육체적인 에이즈 감염을 견뎌내도록 할 뿐 아니라 꿈을 갖게 해서 에이즈 감염이 초래하는 좌절감을 이겨내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조이풀 홈'의 디렉터를 맡고 있는 강연희씨는 "우리는 아이들을 인도의 인재로, 빛을 발하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다"며 "예수님이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신 것처럼 이 아이들이 커서 인도사람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길 소망한다"고 말한다.

조이풀 홈에 살고 있는 10학년 4인방 소녀들과 한국인 활동가들.
 조이풀 홈에 살고 있는 10학년 4인방 소녀들과 한국인 활동가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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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고아를 키우는 74개의 '보이지 않는 고아원'

메리 원레스 병원에서는 '조이풀 홈'에 있는 에이즈 고아들만 돌보고 있는 게 아니다. 꼴라뿌르 일대의 74개 에이즈 고아 양육 가정이 병원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CHAD(Community Health And Development) 사업으로 불리는 이 지원활동은, 에이즈 고아를 맡아 키우는 친척 가정이나 에이즈로 인해 홀어머니 가정이 된 곳을 돕는다. 다달이 밀가루, 쌀, 콩 등 각종 곡물과 설탕, 기름 등 생활에 필수적인 영양분을 공급해 에이즈 고아들의 영양 부족 상태를 예방하는 것이 1차적인 목표이고, 가정 방문을 통해 아이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에이즈나 양육과 관련된 상담까지 하고 있다.

여기 쓰이는 재정은 한국의 후원자들이 하고 있다. 에이즈 고아가 있는 한 가정 당 한 달에 10만 원 상당의 영양팩을 공급하는데, 후원자 한 명 혹은 두 명 이상이 어린이 한 명씩을 맡아 후원하는 형태다.

CHAD 활동은 사실상 2007년 1월부터 시작됐다. 상태가 나빠진 에이즈 감염 아동이 있으면 병원에 데려다 치료해주고 병세가 호전돼 집으로 퇴원하면, 후원자를 연결시켜 식량과 의약품을 지원해주는 일에서 출발해 오늘에 이르렀다.

지난 16일 기자와 저녁식사를 하던 써빙 프렌즈 인도지부장 겸 메리 원레스 병원장인 김의국씨는 "하나님이 아이들을 데려가신 지가 벌써 일년이 넘었네요?"라며 스스로도 놀라워했다.

CHAD 활동을 시작한 뒤 한 달에 한 명 꼴로 아이들이 죽어나갔고, 많을 땐 한 달에 세 번의 장례를 치렀던 적도 있었는데, 지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은 죽은 결연 아동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에이즈에 걸린 어린이라도 충분한 영양 섭취와 어느 정도 위생적인 환경만 유지해주면 생존하는 데엔 큰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서서히 입증해가고 있는 셈이다.

결연 가정이 잘돼야 아이들도 잘 커... 성공적인 염소 분양

소누와 염소들. 1년 여 전에 2마리를 받아서 불린 결과, 2마리를 팔고도 10마리가 남았다.
 소누와 염소들. 1년 여 전에 2마리를 받아서 불린 결과, 2마리를 팔고도 10마리가 남았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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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더해 CHAD팀은 에이즈 고아들을 키우는 가정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일도 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 염소를 분양, 키워서 팔 수 있게 하는 것.

꼴라뿌르 동쪽 외곽 상가와데(Sangavade) 마을에서 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13세 소년 소누는 현재 10마리의 염소를 키우고 있다. 1년 여 전에 CHAD팀이 갖다 준 건 2마리였는데 이 염소들이 새끼를 쳤고, 이 중 숫염소 2마리는 이미 시장에 내다 팔았다. 한 마리를 판 돈은 살림에 보탰고, 다른 한 마리 몫은 CHAD팀에 줬다. 

얼마 전에 새로 태어난 새끼 5마리 중에서는 숫놈 1마리만 CHAD팀에 주면 된다. 소누네는 염소를 키워 살림을 키우고, CHAD팀은 소누가 키운 숫염소를 팔아 다른 집에 분양할 염소를 산다.

소누네 살림이 나아지면, 부모가 모두 에이즈로 죽고, 자신도 감염돼 있는 소누가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재 10군데 결연 가정이 이런 식으로 염소를 분양받아 키우고 있는데, 성공적이지 못한 경우도 있다.

꼴라뿌르 남서쪽 포장도로도 없는 작은 농촌 마을에 사는 11세 소년 수닐네도 몇 달 전 염소를 분양받아 식구들이 애지중지 키웠지만 염소들이 뱀에 물려 죽는 바람에 엄마, 누나, 형, 수닐 온 식구가 3일 동안 밥을 한 끼도 못 먹을 정도로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

아빠가 에이즈로 죽고 병원비를 갚느라 온 가족이 들에서 일을 해야 했던 수닐네 가족.
 아빠가 에이즈로 죽고 병원비를 갚느라 온 가족이 들에서 일을 해야 했던 수닐네 가족.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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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CHAD팀 매니저인 아뚤 가뜨끼씨는 "염소 사업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앞으로 더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까지 염소 구입에 든 비용은 30만 루피이고 이미 회수한 금액은 20만 루피다, 각 가정에서 키우고 있는 염소들의 가치는 적어도 60만 루피니까 우리도 손해 보지 않았고, 이 일은 계속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에이즈 고아들을 키우는 각 가정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것은 이 아이들을 더욱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김의국 지부장은 "조이풀 홈과 같은 곳도 중요하지만, 각 가정에 '보이지 않는 고아원'들을 많이 만들어서 에이즈 고아들이 훌륭하게 자라나고 인도 사회에 온전히 받아들여지게 하는 것이 CHAD 활동의 목표"라고 밝혔다.


태그:#꼴라뿌르,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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