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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대학생 경제연구모임인 '자본주의연구회' 회원 9명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고 3명을 체포한 가운데, 21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민주광장에서 한국대학생연합회 소속 대학생들이 결의대회를 열어 이명박 정부의 학생운동 탄압 중단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찰이 대학생 경제연구모임인 '자본주의연구회' 회원 9명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고 3명을 체포한 가운데, 21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민주광장에서 한국대학생연합회 소속 대학생들이 결의대회를 열어 이명박 정부의 학생운동 탄압 중단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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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주년 기념일이던 21일 아침, 남편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남편이 있는 곳은 무슨 경찰서가 아니라 서울 홍제동 대공분실이라고 했습니다. 대공분실…. 오래전 간첩을 심문하던 곳으로만 알고 있던 그곳으로 저는 남편을 만나러 갔습니다.

가는 길에 열 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집이 비슷한 시각에 압수수색을 당했고, 남편 외에도 두 명이 더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모두 '자본주의연구회 활동과 관련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라고 했고 '북의 지령을 받아 국가를 전복하기 위해 자본주의연구회를 만들었다'는 것이 공안기관의 주장이었습니다. 서울, 부산, 대구, 경기도 양주에서까지 한날 한시에 참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더군요.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수갑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남편의 손목을 보니, '아… 이 상황이 현실이구나' 하고 느껴졌습니다. 남편은 경찰의 부당한 연행에 항의하며 단식을 하고, 조사를 거부하며 묵비하겠다고 했습니다. 전날 밤, 함께 야식으로 먹었던 멸치국수가 그의 마지막 끼니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습니다.

면회하는 동안 우리를 감시하고 있던 경찰에게 남편이 왜 하필 첫 결혼기념일에 이런 일을 벌이냐고,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몇 마디 던지기에 저도 함께 거들었습니다. 우리 앞에 벌어진 이 기막힌 상황이 낡아빠진 국가보안법과 악랄한 공안기관의 소행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그렇게라도 화풀이를 하고 싶었습니다.

잠깐의 면회를 마치니, 남편 외에 연행된 또 한 분이 대공분실로 왔다는 연락을 그분의 가족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분은 이번 주에 두 돌을 맞는 딸아이와 부인이 보는 앞에서 집을 압수수색당하고 대구에서부터 서울 홍제동까지 압송되었다고 했습니다.

부인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하자 옆에 있던 딸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국가보안법이 몇몇 개인이 아니라 그들의 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이 사회 전체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새삼 크게 느껴졌습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괴물과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

그날 밤, 6명의 경찰이 저희 집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였습니다. 집 앞에서 문을 열기 전에 영장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두툼한 서류뭉치를 건네더군요. 도저히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 아니어서 대충이라도 훑어보려고 했더니 경찰들이 그걸 왜 읽느냐고 하면서 계속 방해를 해댔습니다.

집 앞에 이렇게 오래 서 있는 모습이 이웃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냐면서 빨리 들어가자고 하더군요. 죄 없는 남편이 잡혀간 것이 부끄러울 이유도 없지만, 우리 집에 대한 수색영장을 마음대로 볼 수도 없게 하는 이들의 행동에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더 오기를 내서 몇십 분 동안 집 앞에 서서 영장을 읽었습니다.

몇 시간 동안 집안을 수색하면서 그들이 가장 유심히 살펴본 것은 남편의 서재였습니다. 그동안 남편이 연구하고 강연했던 자료들과 경제학 서적들을 꺼내서 하나하나 뒤져보는 모습이 어이없기도 하고 왜인지 모르게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읽어보면 뭘 아시냐고 물었더니, "저희도 공부 많이 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특히 <자본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책을 십 분이 넘게 뒤적이고 있길래, 도대체 그 책이 뭐가 문제냐고 물었더니 "분석하려고 합니다"라고 당당히 말하더군요.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집 안을 수색하는 동안 어느 경찰관의 휴대폰이 울리더니 화면에 어린 아들 사진이 뜨는 걸 봤습니다. 이들에게도 자녀가 있을 텐데, 그 아이들이 커서 어떤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라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이런 일 하시는 거, 나중에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으시겠어요?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런 세상을 물려줄 순 없잖아요?"

그랬더니, 한 경찰이 되묻더군요.

"도대체 좋은 세상이 어떤 건데요? 이 정도면 좋은 거 아니에요?"

좋은 세상이 어떤 건지 한마디로 똑 부러지게 답해주지는 못했지만, 국가보안법이라는 괴물과는 더 이상 함께 살아갈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언제쯤 그들도 이 사실을 깨닫게 될까요?

어제 대공분실 앞에서 면담을 요청하다가 연행된 51명의 학생들이 아직도 풀려나오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들이 모두 무사히 나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도 많은 분들의 응원과 바람대로 정의가 반드시 승리할 거라 믿으며 힘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김재연 기자는 21일 아침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긴급체포된 자본주의연구회 회원 최아무개씨의 부인입니다.



태그:#자본주의연구회, #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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