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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해방촌에 있는 '빈마을'의 '아랫집' 옥상에서 김수진 인턴기자와 장기투숙객 지음이 빈집 깃발을 펼쳐보이고 있다.
 서울 해방촌에 있는 '빈마을'의 '아랫집' 옥상에서 김수진 인턴기자와 장기투숙객 지음이 빈집 깃발을 펼쳐보이고 있다.
ⓒ 김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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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양한 상황과 조건 아래 함께 부대끼며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시도들이 늘고 있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아름다운 마을'은 생활공동체를 표방하며 공교육과 대안교육, 자녀교육과 부모교육, 전인적 영성수련 등이 통합된 생활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충남의 은퇴노인농장은 늘어나는 은퇴 노인들을 위한 공동체다. 노인들이 직접 농산물을 생산 판매하면서 생활하고 서로 유대를 쌓아가는 공간으로, 16년째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다. 단순히 노인들이 모여서 사는 일반적인 실버타운과는 다르다.

자아실현과 실험정신이 깃든 공동체도 있다. 연구 공간 '수유 너머'는 제도권 교육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공부를 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연구공동체다. 수유 너머의 송기태 연구원은 지난 15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사회적으로 당장 가치가 안 보이더라도,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당연시하며 또한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용산구 용산동에 '서경재'라는 주거공간까지 마련해 일종의 공동주거실험을 하고 있다.

2009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서울시 창작공간'은 서울시가 직접 지원하는 문화 예술인들을 위한 곳이다. 연희동·신당동·홍은동 등 아홉 군데 지역에 유휴지나 버려진 빌딩 등을 활용해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인들을 지원한다. 공간을 제공하는 측면이 강해 공동체적 성격은 다소 약하지만 함께 생활하는 예술인들과 지역 주민사이의 교류의 장도 마련되어 호응을 얻고 있다.

그 밖에도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모양새는 저마다 다르지만 이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결핍과 상처를 그냥두지 않고 함께 치유하려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여러 공동체 중에서 <오마이뉴스> 인턴기자들이 직접 한 곳의 구성원이 되어 생활해 보았다. 그곳에서의 체험기를 소개한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는 집

빈집 투숙객들이 빈가게에서 '1박 2일 책읽기 모임'을 하고 있다.
 빈집 투숙객들이 빈가게에서 '1박 2일 책읽기 모임'을 하고 있다.
ⓒ 김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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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누군가와 살을 맞대고 자려니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아주 어렸을 때 온 가족이 한방에서 잤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가족과 떨어져 살기 시작한 지 7년째인 나(김수진 인턴기자)는 지난 12일 다른 두 인턴기자와 함께 '빈마을'을 찾았다. 마을에 도착하자 '빈가게'에서 '1박 2일 책읽기' 모임을 하던 빈집 사람들이 기자들을 반겼다. 오전 5시까지 뒤풀이를 가장한 진한 수다가 오고 갔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 빈집의 문을 열었을 때 기자들도 어느새 빈집의 가족이 되었다.

빈집은 만인에게 열려 있는 집이다. 연애 10년 차, 결혼 6년 차 짝꿍(커플)인 지음과 살구(빈집에서는 모두 예명을 쓴다)가 2007년 한 해 동안 배낭여행을 다녀와서 "정해진 주인과 이름이 없는 집.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는 집"을 구상했다. 다른 한 친구와 의기투합해 2008년 2월, 서울 남산 아래 해방촌 4층 건물 꼭대기에 '아랫집'을 시작했다.

이후 아랫집 근방에 '옆집' '앞집' '가파른집' '하늘집'이 들어섰다. 작년에 문을 연 '빈가게'까지 더해져 '빈마을'이 되었다. 해방촌을 벗어나면 수색 부근에 '빈농집', 무주에 '산골집'이 있다. 현재 장기투숙객·단기투숙객 30여 명이 빈집을 채우고 있다. 장기투숙객은 한 달에 12만 원, 단기투숙객은 하루 3000원 이상(식비 1000원 따로)의 공간분담금을 부담해야 한다. 공간유지비는 '이 정도 받으면 최소한 적자는 나지 않겠다'는 선에서 정해졌다.

이날 이혜리 인턴기자는 옆집에, 김재민·김수진 인턴기자는 앞집에 묵었다. 장기투숙객 연두가 앞집 '손님들'을 맞았다. 앞집의 방은 총 2개, 잠을 자야 할 사람은 총 5명이었다. 큰 방에서 여자 셋이, 작은 방에서 남자 둘이 자기로 했다. 지음은 "빈집에서는 오늘 누가 어디에서 잘지 정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신경 쓰지 마라"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큰 방에는 이층침대가 하나 놓여 있었고, 바닥에는 이불이 깔려 있었다. 이 방에서는 살구·지음 커플, 연두(여), 양군(남)이 함께 지낸다. 작은 방은 작업실 겸 손님방으로 쓴다. 살구는 "외부에서 빈집을 잘 모르고 보면 '도대체 뭐하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거주하는 데 별 문제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여러 사람이 한 방에서 잠자리를 하다 보니 재미있는 일이 많이 일어난다고 했다.

그는 "어떤 날은 자고 있는데 누가 손목을 살포시 잡아서 화들짝 깼다. 알고 보니 옆에서 자던 친구가 잠꼬대하느라 그런 거였다. 자면서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던 친구도 있었다(웃음)"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불 하나를 나누어 덮고 잔다는 게 참 특별한 경험이다"라고 덧붙였다.

"빈집 초기 장기투숙 친구가 하나 들어왔다. 방을 같이 썼는데, 그 친구도 거리낌 없는 성격이어서 이불 하나를 같이 덮고 잤다. 오히려 단기 투숙 식구들하고 같이 덮고 잘 때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오랫 동안 한 이불을 같이 덮고 자니까 뭔가 웃기더라. 나중에 그 느낌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다가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살구와 나란히 누워 이불을 덮은 지 얼마 안 되어 동글이(고양이)가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동글이는 원래 길고양이였는데, 빈집 투숙객이 다리에 상처가 있는 것을 보고 데려와 정성껏 돌봤다고 한다. 그 뒤로 빈집의 장기투숙객이 되었단다. 빈집에는 동글이 말고도 고양이 러니와 멍니가 아랫집에서 투숙 중이다.

잠이 들락말락 하는데 건넛방에서 지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빈집에 살면 이런 게 좋은 것 같아요." 기자는 지음이 한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빈집·빈가게·빈고... 공유의 실천이 빈집을 가능하게 한다

'빈집'에서 '옆집'의 거실(왼쪽)과 방(오른쪽) 모습
 '빈집'에서 '옆집'의 거실(왼쪽)과 방(오른쪽) 모습
ⓒ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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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동글이의 울음소리에 눈이 떠졌다. 전날 마치지 못한 책읽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빈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 식사로 떡국을 끓여 먹고 있으니, 전날 밤 함께 했던 7명이 모두 모였다. 세미나가 끝나자 빈가게는 문 열 준비로 분주해졌다. 빈가게는 정오부터 자정까지 운영한다. 커피·차부터 시작해 직접 만든 크림치즈, 요구르트도 판매한다. 간단한 식사도 할 수 있다. 재료는 공정 무역 커피·설탕·유기농 야채 등 '좋은 것만' 사용한다.

빈가게에서는 각종 워크숍도 열린다. 얼마 전에는 '나이지리아 뜨개틀'을 가지고 뜨개질 워크숍도 했다. 빈집 장기 투숙객이자 빈가게를 공동 운영하는 디온은 "가게 개업 전 공사가 한창일 때 나이지리아 출신 동네 주민이 공방인 줄 알고 들어왔다. 영어로 한참 설명하면서 뜨개틀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탄생한 나이지리아 뜨개틀은 뜨개질 하는 시간을 절반 이상 줄여주었다. 덕분에 주변에서 뜨개틀을 갖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단다. '나이지리아 뜨개틀'은 외국인이 많은 해방촌이라는 공간과 빈가게가 함께 빚어낸 특산품인 셈이다.

빈가게의 보증금 2000만 원은 '빈고'를 통해 마련됐다. 작년 여름부터 시작된 우주금융신용조합 빈고(빈마을금고)는 조합원들의 출자금으로 운영된다. 빈집을 확장할 때나, 마을 사업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3년 전, 방 세 칸짜리 집 한 채에서 시작한 빈집은 빈가게·빈고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그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빈마을 사람들이 새로운 실험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빈고 운영위원 지음은 "빈고가 아직은 (궁극적인) 견해와 의도를 숨기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빈마을 금고의 취지문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빈집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물건과 재능을 만인과 공유하며, 그로 인해 모두가 즐겁고 풍요롭습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돈 가진 것이 자랑이 아니고, 돈이 돈을 버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돈에서 비롯된 수입은 돈을 가진 사람이 아닌 우리 모두가 같이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러한 공유의 실천이 빈집을 가능하게 합니다.… 빈집은 세상 모든 사람들과 세상 모든 생명들을 다 받은 후에야, 빈집이 온 세상이 되고서야 확장을 멈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빈마을금고는 사람들의 힘을 모으고 나누고 주고 받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빈집에 대한 환상 품고 찾아온 사람들로 어려움 겪기도

'옆집'에서 투숙객들이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옆집'에서 투숙객들이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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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에서의 2박 3일은 유쾌했다. 하지만 혼자 사는데 익숙해진 기자는 '하루 이틀은 몰라도, 오랜 기간 함께 살면 불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살구는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에 물론 문제는 있다. 그 경우 당사자끼리 조율하거나 거주자 운영회 자리에서 이야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힘들 때도 많이 있지만, 지쳐 있으면 어디선가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나타나 힘을 북돋아 준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경험으로 작년 초 한 일간지에서 빈집에 대한 보도가 나간 뒤 빈집에 대한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한꺼번에 찾아왔던 일을 꼽았다. 이른바 OO일보 사태. 당시 기사를 보고 '하루에 2000원(당시 하루 공간부담금)만 내면 살 수 있는 집' 정도로 생각하고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우리는 온 사람을 막을 수도 없고, 가라고 할 수도 없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되니 빈집 식구들이 다 힘들어했다"라며, 이번에도 기사가 나간 뒤 비슷한 일이 되풀이 될까 봐 우려하기도 했다.

물론 이 시기에 들어온 사람 중에 빈집에 뿌리 내린 사람도 있다. 한 장기투숙객이 바로 그런 경우다. 그는 약 2년간 고시원에서 생활하다가 신문을 보고 빈집 문을 두드렸다. 그는 "고시원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은 '고립'이다. 고시원에서는 늘 TV를 작게라도 틀어 놓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루는 옆방 사람이 자꾸 벽을 쳤다. 조용히 해달라고 말하러 갔는데, 눈이 시뻘게진 남자가 나왔다. 무서워서 하려던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돌아왔다. 그런 생활을 더 견딜 수가 없어 빈집에 왔다"고 말했다. 그는 "빈집에서 가장 좋은 것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자주도 비슷한 시기에 빈집에 들어왔다. 그는 "(당시)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내 옆에 5~6명이 자고 있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입주 초 2~3주간 주말에는 친구네 집으로 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태가 해결되어가면서 동시에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방에 혼자 앉아 있었는데, 멍니(고양이)가 다가와서 내 무릎에 살포시 앉더라. 위안이 많이 됐다. 그러다가 봄이 되고 옥상 텃밭에 싹도 자라나고 하면서 적응하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점점 좋아지고…."

그는 이곳 삶의 방식도 마음에 든다고 했다.

"아직 채식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채식을 한다든지 화장실에서 물을 양동이에 받아둔다든지 하는 것들…. 그런 삶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는데 혼자 살 때는 잘 실천하지 못했다. 아직 완전히 몸에 익은 것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실천하는) 친구들을 보며 많이 배우고 있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최고은 작가, 우리 옆집에만 살았더라도

대부분의 빈집 사람들은 혼자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안쓰러움을 표했다. 특히 최근 홀로 사망한 1인 프로젝트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과 최고은 작가의 죽음을 무척 안타까워했다. 지음은 "달빛요정이 어떻게 생활했을지 상상이 간다. 반지하 방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 먹으며 지냈을 거다"라고 말했다. 살구는 "최고은씨·달빛요정이 빈집에서 지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다. 아니, 우리 옆집에만 살았더라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에 대해 기자가 '빈집과 같은 공간이 대안이 될 수 있겠느냐'고 묻자 살구는 아래와 같이 답했다.

"우리 빈집에도 그림을 그리는 친구가 하나 있다. 집에서 작업도 한다. 다른 친구들이 그 친구를 배려해서 조용히 하려고 한다. 그 친구도 다른 친구들하고 잘 지내며 자기 할 일을 한다. 같이 있다 보면 틀어박혀서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하는 것보다 뭔가 새로운 게 나올 가능성이 크지 않겠나.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고…. 적어도 함께 계란판을 붙여서 방음 연습실이라도 만들 수 있지 않겠나."

현재 빈집에 거주 중인 다큐멘터리 감독 슈아는 빈집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 자주의 말에 따르면 작년부터 촬영을 시작했는데, 올해 안에는 완성될 것 같다고 한다. 그는 극장에서 상영할지, 소장용으로만 간직할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말했다.

오는 26, 27일에는 빈집 3돌 기념 마을잔치가 열린다. 본래 매달 열리는 마을잔치에서 하는 일이란 '한데 모여 먹고 노는 것'이 전부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몇 가지 프로그램을 기획해 볼까 생각 중이라고 한다.

살구는 빈집의 10년 후 모습을 묻는 질문에 "빈집 초기에 생각했던 아이디어 중에도 아직 현실화하지 못한 것들이 많아요. '이렇게, 저렇게 합시다' 했던 아이디어들은 넘쳐나죠. 사람과 세월이 모자랄 뿐!"이라고 답했다.

체험을 마치고 난 뒤, 도심 속 공동주거프로젝트 빈집이 과연 파편화된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 더욱 궁금해졌다. 빈집의 10년 뒤 모습이 기대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김수진, 김재민, 이선필, 이혜리 기자는 <오마이뉴스> 13기 인턴 기자입니다.



태그:#빈집, #해방촌,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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