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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파도>의 한 장면.
 영화 <마파도>의 한 장면.
ⓒ 코리아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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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는 환자분들의 옷차림이 다들 엇비슷하다. 옷의 색상이나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게 아니다. 다들 외출을 위해 깔끔하게 차려입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은 길거리를 걸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옷차림에 신경을 쓴다.

그런 점에서 나로도 보건지소에 오시는 분들은 체면치레가 없다.

"어머님, 머리에 웬 수건이에요?"
"아하하, 파마 좀 했네."
"엄마, 파마 하고 오지 마. 냄새가 방 안에 확 퍼지잖아. 다른 분들이 좋아하겠는가?"

여사님도 한 마디 거든다.

"알았네. 알았어.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까 침 좀 놔줘."

버스 타고 면 소재지까지 나온 김에 파마도 하고 침도 맞으면서 '일타 쌍피'(고스톱 용어)를 하려는 분들이 있다. 읍내가 아닌 면소재지조차 그 분들에겐 머나먼 이국인 까닭이다.

"어이, 나 침 맞아도 되는가?"
"예. 되죠. 왜 물으실까? 앗!"

가까이 다가서니 술 냄새가 확 풍긴다. 낯빛도 불콰하다.

"아, 뭐예요? 아버님. 술 드셨죠?"
"아니, 한 잔 먹었는데."
"한 잔이 아니신데. 언제 드셨어요?
"내가 먹으려던 게 아니고. 점심 먹으면서 친구가 약주 한 잔 주데."
"한 잔이 뭘로 한 잔인데요?"
"그냥, 밥 그릇 한 잔만 따라 먹었지."

반주가 거의 소주 반병 정도다. 그래서 반주인가 보다. 결국 퇴짜.

"다음에 술 드시지 말고 오세요."

어떤 분은 진료실 문을 들어서면서부터 호흡이 지나치게 가빠서 걱정부터 앞선다.

"헉, 헉, 나 접수 좀 해주소."
"어머님, 숨이 왜 가빠요?"
"늦을까봐 달려왔더니 이러제."
"안 늦어요. 뭘 달려오고 그래요?"

우선 침대에 눕힌다. 목덜미와 등이 땀으로 흥건하다. 안 되겠다. 우선 진료실 밖으로 퇴장.

"땀 식을 때까지 선풍기 좀 쐬고 오세요. 땀으로 젖었는데 침을 놓겠습니까?"

속옷까지 젖어서 대책이 안 서는 분들은 즉석에서 목욕탕 행을 독촉한다.

"목욕탕 가셔서 씻고 속옷도 갈아입고 오세요. 제발요."

그리고 1시간 후에 뽀송뽀송한 얼굴로 나타난다.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한 장면.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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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삶의 현장'에서 막 튀어나온 분도 계신다. 장화에 작업복 차림. 딱 봐도 물고기 좀 만지다 오신 것 같다.

"나, 어깨가 갑자기 아파서 왔네."
"일하다 오셨죠?"
"어, 방금까지 생선 일 하다가 어깨가 아파서. 빨리 좀 놔줘."
"우선, 장화 좀 벗으시고요. 세수하고 손 좀 씻고 오세요."

인근 공사장에서 일하다 오셔서 작업복이 흙으로 범벅이 된 분들도 있다. 뭐라 말은 못하지만 침대에 진흙이 묻을까봐 조마조마했다.

겉으론 멀쩡해 보이는데, 치료하다보니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기도 한다. 눈에 다래끼가 나서 온 젊은 환자다. 상황을 보니 엄지 발가락에서 피를 빼야 했다. 때는 무더운 여름. 양말을 벗으라는 말을 하다가 두터운 등산화에 두꺼운 양말을 신은 발을 보니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음, 뭔가 느낌이 오는데'

그리고 양말을 벗는 순간 아득하게 풍기는 향기. 어디까지나 자존심은 세워줘야 한다. 차마 냄새 때문이라고 말은 못 한다.

"OOO님. 이대로 피를 빼면 피부에 염증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화장실 가서 발을 씻고 오세요."
"슬리퍼가 없는데."
'에휴'

결국 2층 관사에 올라가서 내 화장실 슬리퍼를 가져다 주었다.

다들 보건지소를 편하게 생각하신다. 마을회관이라고 생각하시나 보다. 실제로 보건지소에서 웬만한 마을 사람들은 다 만날 수 있으니까. 부담감이 없으니 옷차림도 부담감이 없는 걸까? 스타일이 자유분방하다. 그래서 진료실 문을 두드리는 분들 하나하나 특출난 개성을 보여준다. 뻔하지 않아서 기대가 된다. 오늘은 또 어떤 돌발행동으로 나를 맞아주실까? 그래도 취중 진료만큼은 사양이다. 아버님, 술은 밤에 드시라구요.


태그:#나로도, #공중보건의,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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