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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도 못 먹었다."

 

16일 오후 6시 30분에 만난 김정수(48)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이 이렇게 하소연했다. 구제역 감염 가축 매몰지 현장을 보러 다니느라 미처 점심을 챙겨먹지 못한 것이다. 그는 지난 1월부터 경기도 파주·용인·양평·이천, 경북 영주, 강원도 원주 등에 위치한 매몰지를 둘러봤다. 구제역 사태로 가장 바쁜 사람 중 한명이 된 셈이다.

 

김 부소장은 이날도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매몰지 2곳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그는 매몰지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지역주민들이 지하수 오염 얘기를 많이 했다. 사능리의 경우 매몰지 10m 아래에 식당이 있는데 지하수를 쓴다. 그러니 식당 주인이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그리고 악취도 굉장히 심하다. 심각한 수준이다. 오는 3월은 악취의 3월이 될 것 같다. 탈취제를 쓰긴 하지만 한계가 있다."

 

김 부소장이 이날 방문한 매몰지는 경기도 남양주 진건읍 사능리 16번지와 화도읍 금남리 588-1번지. 금남리 매몰지는 하천 바로 옆에 있었다. 하천, 도로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매몰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원칙이 지켜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여름철에 홍수가 나면 하천 옆이 침식되고 제방이 무너질 수 있다. 그러면 묻혀 있던 돼지들이 밖으로 나와 물 위에 떠다닐 수밖에 없다."

 

"매몰과정에서 소와 돼지의 대우가 달랐다"

 

김 부소장은 돼지의 생매장이 매몰지 침출수 유출 사태를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매몰과정에서 소와 돼지의 대우가 달랐다"며 이렇게 말했다.

 

"소는 근육주사를 놔서 사망시킨 뒤 매몰했다. 그런데 돼지는 생매장을 많이 했다. 돼지들이 살기 위해 몸부림치다 보면 비닐이 찢기고 침출수가 새나간다. 이렇게 인도적 살처분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 2차 환경오염의 원인이 됐다고 본다."

 

김 부소장은 '정부가 돼지를 생매장한 이유가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저도 왜 그렇게 했는지 물어보고 싶다"며 "돼지가 소보다 숫자가 훨씬 많아서 일일이 주사를 놓으려면 비용이나 인력이 많이 드는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생매장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고 꼬집었다.

 

"이런 얘기가 나돌고 있더라.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촛불에 뎄지 않나? 그래서 구제역 사태가 터지자 '소만은 막아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구제역이 생긴 이후 모든 정책이 소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책대상에서 돼지가 빠지는 바람에 살처분한 돼지 숫자는 크게 늘어났다. 현장에 가서 들어보면 양돈 농가의 원한이 깊다."

 

특히 김 부소장은 지난 2008년 12월 서울시립대에서 환경부에 제출한 보고서를 근거로 "3~4월이 되면 침출수가 지금보다 두배 이상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보고서 내용을 보면 가축을 생매장한 지 두 달 후에는 1주일 후보다 침출수가 두 배 이상 많이 나온다. 지난해 12월과 올 1월에 많이 매몰했기 때문에 3~4월에 침출수 양이 많아질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특히 3~4월은 갈수기다. 하천에 물이 적을 때 고농도의 침출수가 하천에 유입되면 하천이 심각하게 오염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식수원, 상수원 오염으로 이어진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현재 매몰지에서 나올 수 있는 침출수 양이 총 6156만ℓ라고 주장했다. 이는 생수병 1억2000만 개에 해당한다. 김 부소장은 "오염된 물(침출수)이 하천에 흐른다면 그것으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며 "예기치 못한 전염병이 돌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침출수 등이 지하수에 영향을 주는 기간이 20년"

 

특히 매몰지에서 흘러나온 침출수가 식수원을 오염시킨 사례까지 확인됐다. 지난달에 김포시 월곶면 갈산리에 있는 한 가정집의 지하수에서 침출수에 오염된 물이 나온 것이다. 상하수도사업소는 근접지역의 지하수 관정을 모두 폐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소장은 "식수원 오염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날 것"이라며 "특히 4대강 사업이 식수원 오염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침출수가 본류에 유입되는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강바닥을 준설해 유속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남한강 본류를 준설하니까 유속이 2배 정도 빨라졌고, 소류력(바닥을 파는 힘)은 5배나 늘어나는 것으로 확인됐지 않나? 그런 것들이 겹치면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결과가 벌어질 수 있다."

 

김 부소장은 "올해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2차 환경오염문제만 드러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침출수 등으로 인한 2차 환경오염문제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는 얘기다.

 

"침출수 등이 지하수에 영향을 주는 기간이 20년이다. 지하수 이동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문제가 장기간 나타날 수 있다. 특히 구제역 바이러스가 물 속에서 200km까지 이동한다는 보고서가 있다고 한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나라 전역이 위험하게 된다."

 

김 부소장은 "일단 침출수 등이 심각한 곳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며 "경북 영주의 경우처럼 액체비료탱크를 통해 사체를 관리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제역 바이러스가 어떤 상태인지 아무도 모른다"

 

김 부소장에 따르면,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은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은 지역에 구제역 바이러스가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는 데 있다. 김 부소장은 "있어도 없다"는 말로 정부의 구제역 대처 양상을  꼬집었다.

 

"축산농민이 신고하지 않으면 구제역 바이러스는 없는 것이 된다. 농민이 신고한 이후에야 구제역 바이러스의 유무를 확인하고 매몰처분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국가시스템의 작동이 농민의 신고여부에 달려 있는 셈이다. 이렇게 농민의 신고에 의해서만 구제역 대처가 이루어지고 과학적인 예찰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초기에 잡을 수 없다. 농민이 신고할 때면 이미 구제역이 증폭된 상태다. 이명박 정부가 구제역 초기 대응에 완전히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 부소장은 "현재 구제역 바이러스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며 "농민이 신고하면 양성-음성 여부를 판단해 매몰처분하고 있지 '바이러스 밀도가 얼마다'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라고 지적했다.

 

김 부소장은 "불가능한 게 아니라 정부가 안하고 있다"고 질타한 뒤, "엄한 데는 힘도 잘 쓰는데 정작 필요한 데는 왜 무능력한지 모르겠다"며 "정부가 있긴 한데 정부가 뭐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 부소장은 "사전에 구제역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광역도별로 예방과 예찰, 진단, 감독이 이루어지는 분권형 방역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며 "특히 지역대학이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무원에게 맡기면 실적 위주로 흐르기 때문에 제대로 안된다. 각 대학에 방제센터를 두고 예찰활동을 하도록 하고 그 결과를 계속 축적해야 한다. 이렇게 과학적으로 하지 않으면 백신 개발도 못한다. 대응방안도 마련하지 못하고 뒷북행정만 하게 된다."

 

"구제역이 미친 사회경제적 영향도 조사해야"

 

 

김 부소장이 몸담고 있는 시민환경연구소는 지난 14일 '구제역·AI 시민조사단'을 발족시켰다. 시민조사단은 ▲구제역·AI 방역체제 ▲살처분 매몰지의 2차 환경오염 ▲구제역·AI 발생지역 사회·경제적 영향 등을 분석·평가하고, ▲구제역·AI 관련 법제도 개선 방안 ▲지속가능한 축산 방안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

 

김 부소장은 "구제역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이 엄청나다"며 "파주는 가축이 사라져 많은 실업자가 생겼고, 화천은 축제를 준비했다고 취소하는 등 간접적인 영향까지 포함하면 피해액은 몇 십 조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부소장은 "이천은 지역에서 키우는 돼지의 95%를 살처분해 양돈산업의 기반 자체가 무너졌다"며 "이렇게 구제역은 지역경제 치명적이기 때문에 구제역이 미친 사회경제적 효과를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부소장은 "시민조사단은 현재 현장조사를 위한 매뉴얼을 만들고, 신고센터를 통해 신고를 받고 있다"며 "신고가 접수된 지역은 직접 현장에 가서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편 김 부소장은 17일 정운천 한나라당 구제역대책특위 위원장의 '침출수 퇴비화' 발언과 관련 "아주 무책임한 얘기이자 말장난"이라며 "(여권이) 이 사안을 얼마나 가볍고 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비판했다.

 

김 부소장은 "물론 침출수에 다른 것들을 넣어서 액체비료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구제역 바이러스가 있는지 없는지,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해야 하는데 (퇴비화 발언은) 그런 중요한 문제를 축소시킨다"고 지적했다.


태그:#구제역 사태, #김정수, #시민환경연구소, #구제역·AI 시민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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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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