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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교원대 대학본부 앞에서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18일 교원대 대학본부 앞에서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 구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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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맞은 캠퍼스는 적막했다. 학생들이 없는 빈 캠퍼스에서 노동자들은 눈을 치우고 청소를 했다. 한국교원대학교(이하 교원대) 청소노동자들은 새해 벽두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대부분의 해고 노동자들은 정년을 앞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다.

이들은 '단결 투쟁'이 쓰인 조끼와 마스크를 쓰고 복직 농성을 하고 있었다. 피켓을 잡은 두 손이 나무껍질 같았다. 기자가 방문했던 지난 18일, 해고된 15명의 교원대 청소노동자들은 대학본부 앞에서 해고자복직을 요구하며 17일째 농성중이었다.

교원대의 2011년 용역계약업체인 우림종합관리는 지난 1일 기존 34명의 청소노동자 중 17명을 계약해지했다. 해고된 17명의 청소노동자 중 15명이 노동조합 조합원이었다.

지난해 9월 10일 교원대 청소노동자 15명은 민주노총 충북지역노조에 가입했다. 이들은 2008년 노동부에서 인정한, 용역업체가 체불한 임금 1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교원대와 계약 내용 중 1시간 30분 연장근무 조항, 고혈압과 당뇨 등 노인병을 갖고 있는 청소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거부하는 조항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졌지만, 노동조합 조합원들은 계약 해지되었다. 엄동설한 아무 대책도 없이 길거리로 내몰렸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차가운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 학교에, 용역업체에 호소하는 것뿐이었다.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들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지만 지방에 있는 탓에 사람들의 관심도 언론의 지원도 없이 추운 나날이 계속됐다.

12년 동안 수술받아 쉰 6개월이 유일한 휴가

지난 1일 용역업체로부터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유순복(가명)씨. 유씨는 12년간 교원대학교 청소노동자로 일했다.
 지난 1일 용역업체로부터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유순복(가명)씨. 유씨는 12년간 교원대학교 청소노동자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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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동안 내 집 청소하듯이 일한 곳입니다. 노조 만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쫓겨나는 건 도저히 억울해서 못 참겠습니다."

교원대 12년차 청소노동자 유순복(가명·61)씨가 말했다. 유씨가 담당했던 연수동은 청소노동자들이 혀를 내두르는 곳이었다. 전국의 교장들이 연수받는 곳이기 때문에 항상 깨끗하게 유지해야만 했다. 교원대 7대 총장인 박배훈 총장은 "연수동 화장실에만 오면 기분이 좋다. 맡은 일을 성실히 해줘 고맙다"고 유씨에게 말했다고 한다.

유씨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연수동에 머무는 350명 연수생들의 시설물 청결을 담당했다. 연수생들이 빠져나간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까지는 일주일 중 가장 바쁜 날이었다. 연수생들이 이용하는 화장실은 다른 건물의 화장실보다 갑절이 컸다. 화장실 한 개를 청소하는데 1시간 30분이 걸렸다.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 8개의 화장실을 청소했다. 금요일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면 팔을 쓸 수가 없었다. 유씨는 12년 동안 4층 건물을 오르내리며 청소하다, 몇 년 전 왼쪽 무릎에 관절염이 생겼다. 1600만 원을 들여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관절염 수술을 했다. 수술하고 재활하며 걸렸던 6개월이 유씨 인생의 유일한 '휴가'였다.

12년 전 유씨의 월급은 47만 원이었다. 지난해 12월 그녀의 월급은 92만 500원이었다. 유 씨 남편 또한 청소노동자이다. 유씨가 졸지에 해고를 당하면서 수입의 절반이 감소했다. 유씨는 벌써부터 생계가 걱정이다. 현재 유씨는 계약해지를 당한 상태이지만, 복직 투쟁을 위해 매일 학교로 출근한다. 해고를 당해도 유씨가 올 수 있는 곳은 학교밖에 없었다.

교원대에서 청소노동자로 지냈던 12년 동안 그녀의 생활은 가정과 학교가 전부였다. 그녀는 12년 동안 한 번도 휴가를 가본 적이 없다. 주말이면 코피를 쏟으면서 일했지만, 그녀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지난해에 학교가 큰돈을 들여 시설물 교체를 했다. 세탁기가 생겨서, 더 이상 걸레를 손으로 빨 필요도 없어졌다. 매일 찬물에 걸레를 빨았는데 세탁기가 생겨서 좋았다. 하지만 해고되어 이제는 쓸 수가 없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 교원대에 가면 교원대법 따르라

교원대 청소노동자의 2010년 12월 급여명세서를 보면 한 달 동안 일한 실수령액은 96만 원이다.
 교원대 청소노동자의 2010년 12월 급여명세서를 보면 한 달 동안 일한 실수령액은 96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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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휴가가 없는 곳이 어디 있나. 교원대에는 무조건 휴가가 없다고 한다. 왜 없냐고 물어보면 교원대에는 청소노동자에게 휴가를 준 전례가 없다. 이게 말이 돼?"

송해근(62)씨는 작년 11월 장모님이 돌아가셔서 상을 치르기 위해 휴가를 쓰겠다고 했다. 하지만 황아무개(69) 관리소장은 "교원대에서는 상을 당했다고 휴가를 쓴 전례가 없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라"며 거부했다고 한다. 송씨는 "모친상은 5일 동안 경조휴가를 쓸 수 있는 법이 있는데 교원대 노동자는 상도 못 치르냐"고 말했다. 결국 송씨는 용역업체 이사에게 부탁해 상을 치를 수 있었다. 

또 다른 청소노동자는 지난해에 일하다 다쳐 오른쪽 팔에 깁스를 했다. 그녀는 관리소장에게 산재처리를 요구했지만, 교원대로부터 산재처리를 한 전례가 없다는 말 밖에 들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녀는 오른팔에 깁스를 하고 왼쪽팔로 청소일을 했다.

해고된 청소노동자들은 관리소장이 "그딴 식으로 일할 거면 나가 뒈져라. 산재처리하면 잘린다. 여기 못 다니게하겠다"는 등의 폭언까지 일삼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러나 황 소장은 "그들이 다 그 지역 사람들이라 잘해줬으면 잘해줬지 그런 폭언을 한 적이 없다"면서 휴가나 산재처리 등과 관련해서는 "권한이 없어서 회사와 이야기하라고 했지 전례가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교원대 청소노동자들은 주 1회 쉰다. 토요일에도 일을 했지만 학교 측은 따로 토요일 근무수당을 책정하지 않았다.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해 청소노동자들 손에 주어지는 임금은 96만2610원(2010년 12월 기준)이다. 2008년에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받았다. 지난해 9월에 노조가 생기면서 임금체불 문제와 2011년 용역업체 근로계약 문제를 해결했다.

해고된 청소노동자 박상규(62)씨는 "교원대는 근로기준법의 치외법권지역이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있나. 이제 해고되었으니 죽을 쒀서 개 줬다"고 말했다.

올해로 환갑을 맞은 박순덕(가명)씨는 "남편이 지난해에 위암수술을 받았는데 완치가 안 됐다. 37세인 아들은 글도 모르는 지적장애인이다. 세 식구 생계가 나한테 달려있는데, 해고되어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교섭 결렬에 해고노동자 천막 농성으로 대응

지난 18일 교섭 후 대책 회의 중인 교원대 청소노동자들
 지난 18일 교섭 후 대책 회의 중인 교원대 청소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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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대는 국립대학교이기 때문에 매년 청소용역업체 공개입찰을 한다. 용역업체 낙찰기준인 87.4%의 근사치에 있는 업체명을 공에 써서 넣고 추첨해 뽑는다. 1순위로 뽑힌 공이 자격을 부여받기 때문에 매년 업체가 바뀔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용역업체가 바뀌어도 고용승계가 되었지만 올해는 달랐다.

교원대 총무과 김청안 계장은 "새 업체가 들어오면서 새 팀을 꾸리기 위해서 (청소노동자들을) 계약해지한 것이다. 노동조합 조합원이기 때문에 계약 해지한 것이 아니다"면서 "동네 사람들이고 오래 일한 분들이 직장을 잃어 마음 아프다. 하지만 용역업체에게 고용승계를 강제하는 것은 경영권 침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 교원대는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해고된 청소노동자들은 김 계장과 황 관리소장에 대한 불만이 가장 컸다. 충북지역노동조합 양인철 조직국장은 "정년이 6년이나 지난 관리소장을 교원대 측이 비호하면서 청소노동자들의 학교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학교 소속도 아닌 관리소장이 업체가 바뀌어도 고용승계가 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교원대의 계약직 경비소장이었던 황 소장은 12년 전 관리소장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 일하고 있다. 유 조직국장은 "황 관리소장이 월권을 휘두르는 것에는 독단적인 부분도 있지만, 지시받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학교 측도 관리소장이 없으면 청소노동자들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고된 청소노동자들과 용역업체인 우림종합관리는 지난 18일 교섭을 진행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임금이 지난해에 비해 소폭 상승했기 때문에 임금 상승폭을 줄여 조합원들 5~6명을 추가 고용해달라는 양보안을 냈다.

그러나 양인철 조직국장은 "우림관리 측이 평화적인 분위기가 유지되면 결원이 생겼을 때 해고된 조합원들을 일용직으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교섭은 결렬되었다. 해고노동자들은 천막 농성을 통해 대응할 계획이다.

덧붙이는 글 | 구태우 기자는 <오마이뉴스> 13기 인턴기자 입니다.



태그:#청소노동자, #한국교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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