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민주노동당 권영길 원내대표, 창조한국당 이용경 원내대표가 5일 오후 박희태 국회의장을 찾아 새해 예산안 한나라당 단독 처리 등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민주노동당 권영길 원내대표, 창조한국당 이용경 원내대표가 5일 오후 박희태 국회의장을 찾아 새해 예산안 한나라당 단독 처리 등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날치기로 국회의장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고 사퇴의 대상이 됐습니다, 당장 사퇴하세요."

박희태 국회의장은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는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독설을 면전에서 들어야 했다. 5일, 국회의장실에서 진행한 야3당 원내대표와의 면담자리에서였다.

예산안·법안을 직권상정 해 날치기 통과에 일조한 박희태 의장과의 면담을 요구해 온 야 3당 원내대표들은 가감없는 발언들을 거침 없이 쏟아냈다. 이에 박 의장은 "국민들께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예산안과 법안이 날치기 처리된 지 한 달여 만에 나온 유감 표명이었다.

박지원 "당신 지역구 예산 많이 챙겨 내려가서는 올라오지도 않아"

야 3당 원내대표들은 '사과'로는 성이 차지 않는 듯 '사퇴'를 거듭 촉구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의장으로서 국회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정당한 유감 표명을 했어야 했는데, 몇 번이나 면담 신청을 해도 당신 지역구 예산을 많이 챙겨 지역구에 내려가서는 올라오지도 않았다"며 "(뿐만 아니라) 중립을 지켜야 할 의장이 특정 당의 유력인사에게 가 '미래 권력'이라는 등의 말을 했다"고 맹비난했다.

이어 박 원내대표는 "나라가 구제역으로 비상상태여서 구제역 법안을 두고 국회가 열린다 만다 하는데 국회의장이 여당 의원을 데리고 외국을 나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사퇴하고 외국 나가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다시 한 번 "존경받을 길은 국회의장을 사퇴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오는 6일부터 16일까지 유기준·주호영·최구식·김효재 한나라당 의원, 권선택 자유선진당 의원과 함께 알제리, 크로아티아, 프랑스를 방문할 예정인 박희태 의장의 '외유'에 대한 일침이다.

박 원내대표는 "(12·8 본회의 전에)원내대표와 의장이 함께했을 때, 계수조정소위를 10일까지 하고 14일·15일에 본회의에서 처리하면 국회에서 몸싸움을 하지 않고, 로텐더 홀에서 항의표시를 하겠다고 했다"며 "(이에 대해) 김무성 원내대표는 결심이 서지 않았다고 했고 의장은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박 원내대표는 "그래놓고는 (박 의장이) 비서실장을 시켜서 예산 부수 법안과 그 외 법안을 직권상정한다고 통보했다"며 "이후 날치기 처리했다"고 말했다. 흥분한 박 원내대표는 탁자를 세게 내리치기도 했다.

박희태 "국회 여야 합의해 운영해야 하는데...유감"

이 같은 '날치기 처리의 뒷이야기'에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가 놀랐다. 권 대표는 "박지원 대표께서 투표에 참여하지 않고 밖에서 농성하더라도 물리적으로 안 하겠다, 날치기 처리 하지 말라고 했다는데 이마저도 무시하고 날치기 했다는 건 정말 있을 수 없을 일"이라며 "국회의 기능을 완전히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국회라는 걸 말해주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 원내대표는 "법안을 만들고 예산을 편성하는 게 국회인데 그 두 개의 기능을 박탈하고 국회 스스로 이를 포기한다면 국회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런 국회가 있다는 것 자체가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한탄했다.

이용경 창조한국당 원내대표는 "한나라당 의원조차 예산·법안 내용을 모르면서 표결에 참여하는 식으로 의장님이 회의를 운영하니 국회가 뭔지 모르겠다, 설명 좀 해달라"며 "내용도 모르는 법안과 예산안에 찬반 투표를 하라는 등 의원들을 이렇게까지 코너로 모는지 참담하다"고 비판했다.

연이은 성토에 박희태 국회의장은 "국회는 여야가 합의해서 운영해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된 데 대해 유감스럽고 국민에게 죄송스럽다"며 "(김무성 대표와 논의할 당시) 박지원 대표의 의견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직권상정 하게 된 것에 대해서)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박 의장은 "이번 일을 거울삼아서 국민 앞에 얼굴 들 수 있는 행동을 하겠다"며 "시간에 쫓기고 기한에 너무 얽매이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크게 자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 민주노동당 권영길 원내대표, 창조한국당 이용경 원내대표, 진보신당 김정진 부대표가 5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만나 구제역과 예산 날치기 대책 등 국정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 민주노동당 권영길 원내대표, 창조한국당 이용경 원내대표, 진보신당 김정진 부대표가 5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만나 구제역과 예산 날치기 대책 등 국정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김무성 등장에 대로한 박지원, 자리 박차고 나가

박지원 원내대표는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잘못됐으면 책임을 져야지 책임도 안 지고 구제역의 비상사태에서 여당 의원을 데리고 외유 가는 게 바람직하냐"는 것이다.

박 의장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그는 "세상사 그렇게 착착되면 얼마나 좋겠냐"며 "(외유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각국의 원수를 만나도록 일정이 잡혀있어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 가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잔뜩 화가 난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기름을 부은 사람은 바로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였다. 면담자리에 김무성 원내대표가 방문한 것. 이를 본 박 원내대표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박 원내대표는 "(애초에) 김무성 대표와 함께 만나자고 비서실장이 말했지만 우리는 세배 가는 게 아니라고 거절했는데 사람을 이렇게 우롱하나, 외국 나가지 말고 사퇴하라"며 의장실을 박차고 나갔다.

박 의장은 "아무 말씀도 드릴 게 없다"며 "국민들께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급히 면담을 마무리 했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제가 와서 괜히"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면담 후에도 화가 가라앉지 않은 박지원 원내대표는 권영길 원내대표와 함께 기자간담회를 열어 "야당을 우롱하고, 국회법을 무시하고, 의장으로서 지켜야 할 중립성과 모든 것을 무시한 박 의장이 사퇴할 때까지 야 4당은 계속 투쟁하겠다"고 강조했다.


태그:#박희태 , #박지원, #날치기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