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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 설치된 TV 모니터를 통해 연평도에서 해상사격훈련을 시작했다는 긴급속보가 보도되자 지나가는 시민들이 걱정스런 마음으로 급하게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20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 설치된 TV 모니터를 통해 연평도에서 해상사격훈련을 시작했다는 긴급속보가 보도되자 지나가는 시민들이 걱정스런 마음으로 급하게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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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불안하다. 연례적으로 해오던 군사훈련을 해놓고, 행여 북이 보복할까 걱정하다가 대응이 없다고 안도를 한다. 종전 후 처음으로 연평도 주민들은 피난을 떠나고, 서해 5도의 주민들은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방공호로 몸을 피해야 한다.

무려 35년 만에 실시된 전국 규모의 민방위훈련으로 인해 온 국민이 엄동설한에 떨어야 했다. 젊은이들은 복무기간 동결로 군복무를 더 길게 하게 됐고, 입시에 시달리는 학생들은 복고풍 안보교육의 부담까지 끌어안게 됐다. 인터넷 공간에 난데없이 70년대식 '긴급조치'가 내려질 거라는 얘기가 들린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은 과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해졌다. 안보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군 면제자들의 정권 하에서 대한민국의 안보는 두 손에 보온병 들고 행방불명됐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 불행한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고, 이 불안한 상황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정부 차원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런 '비전'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정권은 '햇볕정책' 대신에 '비핵개방 3000'을 내세웠으나, 그 정책은 연평도 폭격으로 결실(?)을 맺었다.

'비핵개방 3000'은 '북이 먼저 핵을 포기하면 경제지원을 하겠다'고 말하나, 북의 지배층은 핵을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인식한다. 그들에게 핵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지, '이대로 사느냐, 더 잘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북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제안에 북한이 응할 리 없다.

과연 MB의 '전략적 인내'는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켰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남한이 '전략적 인내'를 하는 사이에 북한은 외려 '우라늄 농축'으로 핵개발을 업그레이드 시켰고, '연평도 포격'으로 도발의 수위도 끌어올렸다.

MB의 대북정책은 실패로 끝났다. 슬슬 "MB, '비핵개방3000' 사실상 폐기"(아시아투데이 2010년 12월 10일)라는 제목을 단 기사도 흘러나온다. 이제 MB 앞에는 두 갈래의 길이 남아 있다. 하나는 '햇볕정책'으로 회귀하는 것. 하지만 그것을 '실패'로 규정한 이상, 이 길로 갈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더 강경하게 나가는 것뿐이다. MB는 이 길을 택한 모양이다. 서해안의 연평도 포격훈련, 동해안의 해상훈련, 지상군의 화력훈련 등, 신문에는 온갖 군사훈련에 관한 뉴스가 흘러넘친다. 문제는, 이런 무력시위가 뭘 위한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는 데에 있다.

이 정도면 완전히 병자호란의 상황

전략은 실종됐다. MB의 대북정책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육해공 군사훈련, 전국민 민방위훈련, 무기구입비 증액, 군복무기간 연장, 학교의 안보교육 강화, 하나 같이 국민들의 어깨 위에 경제적, 신체적, 정신적 부담을 지우는 것들뿐이다. 그러면서 "국론분열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좋다, 국민은 기꺼이 그 부담을 질 것이다. 그 대신 정부는 희생적 국민을 위해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 구체적인 전략이나 전망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화력 시범하고, 무기 구입하고, 민방위 훈련하고, 복무기간 늘리고, 안보 교육하면, 북의 태도가 변할까?

비전과 전략을 상실한 정권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썰렁하기 그지없는 힘 자랑 밖에 없다. 연평도 포격훈련으로 우리는 무엇을 얻었을까? 보수언론에서는 '주권을 행사했다'고 얼빠진 소리를 늘어놓으나, 그것은 정말 영양가 없는 자위, 수사학적 위안에 불과하다. 그런 논리라면, 대응포격을 자제함으로써 북한은 '주권을 포기했다'는 말인가? 남한의 무력시위에 북한은 외려 "한반도에서 누가 평화의 수호자이고, 누가 도발자인지 똑똑히 보라"는 대대적인 선전으로 맞섰다. 이로써 가해자가 졸지에 피해자로, 도발자가 졸지에 수호자로 돌변한 것이다.

연평 포격훈련으로 북한은 NLL을 국제적 분쟁지역으로 각인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번에 열린 안보리 긴급회의에서는 천안함 때와는 달리 외려 남한이 가해자로 제소 당한 꼴이 됐다. 남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자제 요청을 거부하는 사이에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체면을 세워줌으로써 그들과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하게 됐다. 반면 남한이 얻은 것은 군사훈련, 군비강화, 주민대피, 전쟁위기에 따른 사회적 피로감뿐이다. 이 모두가 '주권을 행사했다'는 텅 빈 명분을 위해 우리가 치러야 했던 사회적 비용이다. 이 정도면 완전히 병자호란의 상황 아닌가?

비전을 잃은 정권에서 하는 또 하나의 일은 대북 선전공세다. 이건 정책이 아니라 거의 희극이라 할 수 있다. 일부 얼빠진 기자들은 애기봉의 크리스마스트리가 북한의 체제를 위협한다며 아예 개그의 대본을 쓰고 있다. 그런 논리라면, 휴전선 전역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하면 북한군을 무력화할 수 있을 터이니, 내년 트리 구입비를 국방예산에 반영할 일이다. 1달러 지폐 붙인 삐라가 북한체제를 위협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 삐라의 내용이 가관이다. "김정은은 사생아다." 듣자 하니, 이 개그 콘서트에 한나라당 의원들까지 출연했다고 한다.

MB의 구원은 종말론에 있는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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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정책'도 아니고, '비핵개방 3000'도 아니라면, 이제 뭐가 남았을까?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없다면, 남는 것은 단 하나, 북한이 절로 망하기를 기도하는 것뿐이다. 실제로 MB는 교민들 앞에서 "통일의 날이 가까워졌다"고 말한 바 있다. 남북관계가 정전 이후 최고로 긴장된 상황에서 튀어나온 이 '통일'이라는 말은 당연히 북한의 붕괴로 인한 흡수통일을 가리킬 게다. 실제로 최근에 공개된 '위키리크스'의 문서에서도 청와대의 한 인사가 '북한이 김정일 사후 2~3년 안에 붕괴할 것'이라 말했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북한의 붕괴가 임박했다는 보수언론의 보도 역시 쏟아지고 있다. 그 기사들을 읽어보면, 대개 외교라인에 근무하는 당성이 투철한 고위관리들이 탈북행렬에 가담하고 있다거나, 북한 주민들 사이에 한류 열풍이 일어나고 있다거나, 체제의 상징물이 방화로 전소되는 일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북한이 정말로 붕괴한다면, 북핵 문제는 저절로 풀릴 것이고, 이로써 MB 정권은 막다른 골목을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북한 붕괴론이 얼마나 근거가 있냐는 것이다.

탈북자들이 가져온 '고급정보'라 하나, 위키리크스가 보여준 것처럼 풍문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이미 황장엽을 통해 '고급정보'의 수준을 보지 않았던가. 고위관료의 탈북이 이어진다 하나, 황장엽보다 거물이 넘어왔다는 얘기는 없다. 북한주민들이 남한 방송을 보고 패션을 모방한다는 것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부터 들었던 얘기. 체제 상징물이 불탔다 하나, 과거엔 김정일의 열차가 반체제 세력의 손에 폭파됐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런 얘기들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북한에 권력세습에 따른 약간의 혼란이 있다는 정도일 게다.

MB정권이 북한붕괴론에 집착하는 것은, 그 외에는 길이 없다는 절망이 빚어낸 종말론 신앙으로 보인다. 물론 북한은 갑자기 붕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책의 요체는 '최선을 희망하되 최악을 대비'하는 데에 있다. 장로에게는 믿음과 소망이 중요하겠지만, 대통령에겐 이성과 대책이 필요하다. 게다가 북한의 붕괴가 과연 바람직하기만 한 상황일까? 그동안 아무 준비도 없었던 남한에게 북한의 붕괴는 종말론적 규모의 재앙이 될 것이다. 거기에 대해 MB 정권은 대책이 있는가? 뜬금없이 던진 '통일세' 신설하자는 말 한 마디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재평가되는 햇볕정책

선악의 드라마와 종말의 신앙을 통해 과연 MB는 길자연 목사 말대로 "대한민국이 기독교 국가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종교적 욕구는 교회 가서 해결하고, 정치는 맨 정신으로 할 일이다. MB 정권의 정책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비록 소수지만 한나라당 일각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가령 정두언 의원은 얼마 전 '현 정권의 대북정책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경필 의원은 어떤 방향으로 재고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말한다. '햇볕정책에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 그는 '햇볕정책'과 '비핵개방'을 적절히 혼합할 것을 요청한다.

햇볕정책은 과대평가해서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먼저 과대평가해서는 안 되는 이유. 북핵은 근본적으로 북미관계의 문제다. 북한이 위협적으로 느끼는 것은 미국. 남한은 전쟁을 벌일 의사도 후과를 감당할 능력도 없으나, 미국은 전쟁의 의사와 능력을 모두 가졌기 때문이다. 북핵은 미국에 대한 압도적인 군사력 열세를 단번에 만회하려는 제스처. 결국 북핵 협상에서 남한은 제3자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햇볕정책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기대다. 물론 햇볕정책으로 북핵을 못 막느냐는 비난 역시 그 못지않게 아스트랄하다.

이어서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는 이유. 기본적으로 남북관계의 원칙인 '햇볕정책'으로 북미관계에서 비롯된 북핵 문제의 해결을 기대하는 것은 일종의 범주오류다. 하지만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동시에 연동되어 있다. 남한은 그동안 햇볕정책을 토대로 북미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며 제한적으로나마 북미관계에 개입할 수 있었다. 경협이나 관광을 통한 경제적 지원으로 북한에 대해 어느 정도 발언권도 가질 수 있었다. 아주 역설적이게도 남북관계가 경색됐을 때 사실 MB가 내놓을 수 있었던 유일한 카드 역시 전 정권에서 만들어준 것이었다.

햇볕정책이 힘을 잃은 이유는 남북관계보다는 북미관계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두 정권 동안 미국을 통치한 것은 하필 부시 정권. 미국에서 민주당이 정권이 잡았을 즈음에는 한국에 보수정권이 들어서 있었다. 오바마라고 부시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데다가 그나마 남한에서마저 강성 정권이 들어서니, 햇볕정책은 더욱 더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남한의 이른바 '전략적 인내' 전략도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그저 상황을 더 악화시켰을 뿐이다. 그 정책은 부메랑이 되어 우라늄 농축과 연평도 포격으로 돌아왔다.

표류하는 MB호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등 지도부들이 20일 오전 서울 세종로 주한 미대사관 부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평도 사격훈련을 부추기는 미국을 규탄하며 사격훈련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등 지도부들이 20일 오전 서울 세종로 주한 미대사관 부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평도 사격훈련을 부추기는 미국을 규탄하며 사격훈련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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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권은 군사훈련과 선전공세로 구겨진 체면을 다리느라 여념이 없다. MB 정권이 강박적으로 군사대응에 집착하는 이면에는 '군 면제 정권의 안보 무능'이라는 콤플렉스가 깔려 있다. 게다가 안보 이슈는 보수여당의 지지율을 끌어 올리는 효과를 내므로, 북을 향한 무력시위의 시리즈가 '정략적'으로는 유리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과연 '전략적'으로 적절한 것일까? 남이 열심히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동안 북한은 "세계인에게 북한의 절제를 보여 줬다"고 중국의 "박수"를 받으며 태연히 대화의 카드를 내밀고 있다. 얼마나 황당한가.

최근 리차드슨의 방북에서도 미묘한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물론 미국은 리차드슨을 통한 북의 제안을 "행동으로 보이라"고 거절하고 있지만, 그 태도가 그리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이른바 '전략적 인내'를 하는 사이에 북은 더 진전된 핵 프로그램을 내놨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그것을 막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대화의 테이블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을 경우 미국은 북한이 핵보유국이 된 현실을 인정하고, 그 핵이 "불량국가"나 "테러리스트" 집단에 흘러들어가지 않게 관리하는 일이나 해야 한다. 물론 이는 미국이 참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문제는 이명박 정권이다. 북한과 대화를 하기 위해 미국은 남한에 대화의 테이블에 앉으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북으로부터 사과도 못 받은 상황에서 북과 대화를 시작한다는 것은 국가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대화를 거부하면, 스스로 '통미봉남'의 외통에 걸려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남들이 합의한 결과의 비용만 대는 신세가 될 것이다. 90년대에 북한붕괴론의 매력에 빠진 YS 정권이 결국 경수로 비용을 덤터기 쓴 것처럼, 재판 북한 붕괴론의 유혹에 빠진 MB 정권 역시 나중에 북한의 폐연료봉이나 떠안게 되지 않을까?

MB는 "국론분열"을 얘기한다. 도대체 분열될 '국론'이란 게 있기나 한 걸까? MB는 국민들에게 한 배에 타라는 명령을 내렸다. 문제는 그 배의 행선지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데에 있다. 국민들은 무력시위와 무기구입에 쓸 세금을 내고, 연장된 복무기간을 알몸으로 때우고, 군부대의 지시에 따라 타지로 피난을 떠나고, 느닷없는 사이렌 소리에 거리에서 떨고, 안보교육이라는 케케묵은 복고풍 학습에 금쪽같은 시간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다만 그런 희생으로 배를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면 최소한 그 배가 어디로 가는지는 알 권리가 있잖은가?

신뢰의 위기

미국은 북한을 신뢰하지 못한다. ①북은 정말로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는가? 아니면 ②핵을 포기하겠다는 제스처로 경제적 지원만 챙기겠다는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북한 역시 미국을 신뢰하지 못한다. ①핵을 포기하면 미국은 북의 체제를 보장해줄 것인가? 아니면 ②그들은 핵무장을 해제하여 체제를 붕괴시키겠다는 생각인가? 이 역시 아무도 모른다. 이런 상호불신 속에서 북미는 서로 먼저 행동을 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북한이든, 미국이든, 어느 한 쪽이 ②의 생각을 갖고 있다면, 이 문제는 '불가해한' 문제, 즉 애초에 풀릴 문제가 아니다.

북미가 모두 ①의 입장을 갖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문제가 풀리려면, 나아가 북미가 서로 ①의 입장을 갖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런 신뢰가 없다면, 북미 모두 선의를 갖고 있어도 '문제는 풀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신뢰를 구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 과정에서 북한에게 정치적으로 이용만 당할 위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관계 속에서 남한이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북미가 모두 ①의 입장을 갖고 있다는 전제 위에서 북미가 서로 상대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있도록 중재하는 것이리라.

'햇볕정책'은 제한적이나마 우리로 하여금 북미관계에 개입하게 해주는 유일한 정책이었다. (이보다 더 좋은 생각이 있는가?) 하지만 MB 정권은 그것을 '실패'라 규정함으로써 지금의 외통수에서 벗어날 길을 스스로 차단해 버렸다. MB 정권이 내세우는 대북정책은 문제 해결의 두 조건(=스스로 진정성을 가져야 하며 상대의 진정성을 믿어야 한다는 조건)을 모두 부정하고 있다, 이렇게 문제해결을 포기한 정책의 가장 극단적 행태가 바로 정권에서 언론에 흘리는 북한 붕괴론이다. 그것은 결국 '나의 의지는 너를 제거하는 데에 있다'는 노골적 선언에 다름 아니다.

선거를 치르느라 전 정권의 정책을 비난하는 것은 흔이 있는 일이다. 하지만 햇볕정책은 우리에게 허용된 유일한 옵션이기에, 선거만 끝나면 이 정권도 결국 그 궤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그 후에 벌어진 상황은 '이 정권 사람들에게도 생각은 있겠지'라는 내 소박한 믿음을 사정없이 비웃었다. 그 결과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연평도 포격. 물론 연평도 포격의 윤리적, 도덕적 책임은 북한에게 있다. 하지만 그것과 별도로 우리 영토의 피폭을 초래한 전략적 오류의 책임은 그 '누군가'에게 물어야 한다.   참을 만큼 참았다
'전략적 인내'의 목적은 북한을 고립시켜 말 잘 듣게 만드는 데에 있을 게다. 하지만 북한은 애초에 자력갱생의 고립주의 경제를 가진데다 배후에 중국이라는 시장을 업고 있어, 경제제재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실제로 모든 가능한 제재를 가했지만 지난 몇 년 간 북한경제는 근소한 성장세를 기록했다고 한다). '전략적 인내'의 한계가 드러난 이상, 대북정책을 재고할 때가 됐다. 물론 당장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기는 어려울 게다. 연평도 포격으로 우리는 화가 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분노가 가라앉으면, 어차피 다시 대화를 해야 한다.

보수주의자가 정책에 보수적 색채를 가미하거나, 진보주의자가 정책에 진보적 색채를 가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책의 근간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외교문제, 특히 남북문제에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독일의 사민당과 기민당은 그 모든 대립에도 불구하고 동독문제에 관해서는 일관된 정책을 고수해 왔다. 그 결과 통일의 씨앗은 사민당이 뿌렸지만, 열매는 기민당이 거두었다. 우리는 어떤가? 사실상 국가간의 약속이라고 할 수 있는 합의를 정권 바뀌었다고 그대로 폐기해 버리지 않았던가. 믿지 못할 놈이 어디 북한만이던가?

"전략적 인내"를 해 왔단다. 전략적으로 참고 참다가 연평도에서 뺨 맞았으면 이제 그만 참아도 된다. "국론을 분열"시키지 말란다. 근데 언제 우리에게 '국론'이란 게 있었던가? 비핵개방 3000이 국론인가? 그 역시 정권 바뀌면 폐기 될 거. 우리가 왜 그것을 '국론'으로 모셔야 하나. 지금 필요한 것은 남북관계에 대해 합리적 '비전', 정권은 교체되어도 변하지 않을 '원칙'을 마련하는 일이다. 그런 '비전'과 '원칙'이 얻어지고, 거기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거든, 그때 그것을 비로소 '국론'이라 부르자.

덧붙이는 글 | 남북관계에 관한 한 대한민국호(號)는 방향을 잃어버렸다. 이럴 때에 적절한 의제설정으로 합리적 정책을 수립하고, 그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끄는 게 언론의 임무.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의 보수언론들은 방향을 잃은 MB 정권의 대북 분풀이에 선무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북한을 비판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나, 신문이라면 가져야 할 최소한의 격조가 있어야 한다. '전직 김정일 요리사의 충격 증언. 김정일, 기쁨조에게 옷 벗으라 명령.' 이런 것도 독자가 알 권리가 있는 정보라 할 수 있을까? 이 정도면 신문이 아니라 '선데이 서울'이다.

나라가 통째로 70년대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신문을 보니, 'AN2기' 얘기까지 나온다. 30여 년 만에 듣는 정겨운 이름이다. 그 비행기가 레이더에도 걸리지 않는 스텔스기로, 북한군 특수부대요원 10만 명을 달 없는 밤에 운동장이나 골프장에 내려놓을 수 있단다. 조종을 해 본 내 경험으로 말하건대, 조종사가 야밤에 달랑 야시경 하나 쓰고 그런 비행기를 목표지점으로 몰고 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물론 운 좋게 운동장이나 골프장을 발견하면 거기에 착륙을 할 수도 있을 게다. 물론 거기에 탄 북한군 특수부대 요원들의 생명은 보장 못하겠다.

MB가 '국격'을 말했던가? 그의 집권 3년 만에 대한민국의 국격은 30년 전으로 돌아갔다. 그는 '잃어버린 10년'을 말했던가? 그의 정부는 일거에 30년 이상을 까먹었다. 수준 좀 높이자. 그리고 철 좀 들자. 유치해서 못 봐주겠다.



태그:#햇볕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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