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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농지는 원래 논이 밭보다 좋은 땅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땅값은 논보다는 밭이 비싸지요. 왜냐면 논에다 아파트를 지으려면 이런저런 귀찮은 절차를 많이 거쳐야 하는데 밭은 아파트로 만들기 쉽거든요. 사람들이 농지 사서 골프장을 무조건 짓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요. 농지들을 일단 골프장으로 만들었다가 잘 안되면 아파트로 만들면 되니까요."

조선시대까지 국가의 근본으로 대접받았던 농업. 그러나 해방 이후 한국의 농지와 농업인구는 꾸준히 감소해왔다. 2010년 한국에서 농업은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을까. <88만원 세대> 저자인 우석훈 박사는 한국을 '농업하기 정말 어려운 나라'라고 설명했다.

우 박사는 지난 8일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농업경제학'을 주제로 열린 '응용경제학' 두 번째 시간에 "농산물이 '녹색 무기'로 쓰이는 현대에 식량 자급률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올해 하반기에 채소 가격이 크게 오른 것을 거론하며 "4대강 산업으로 인해 서울 근교의 채소 공급이 위축돼 내년에는 채소 가격이 크게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농업지원 예산, 정작 농민들은 못 받아

우석훈 박사가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응용경제학' 수업을 하고 있다.
 우석훈 박사가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응용경제학' 수업을 하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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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OECD 국가 중 노르웨이, 칠레와 함께 농업 분야 총생산 가운데 정부 지원이 기여한 비중이 가장 큰 국가에 속한다. 정부가 높은 비중의 지원을 하는데도 농업 비중은 점점 줄고 농민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에 참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 박사는 "정부 정책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구분해야 할 것은 농업과 농촌은 같지 않다는 점입니다. 참여정부의 농업정책은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울에 살면서 농촌에서 주말 농장을 하는 사람을 많이 늘리자는 것이었습니다. 농업은 1차 산업이고 농촌에 가는 것은 건설업에 해당하는 3차 산업입니다. 1차 산업에 갈 예산들이 3차 산업으로 간 셈이죠."

농업 자체에 지원되어야 할 예산이 다른 곳으로 빠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08년, 실질적으로 농사를 짓지 않는 땅 부자들이 농업 보조금을 수령했다가 들통난 쌀 직불금 사건이 대표적인 예. 우 박사는 "참여정부의 목표가 6헥타르(1만 8천평)의 농지를 경영하는 전문농업인력 2만 명을 만드는 것이었다"며 "이런 식으로 큰 규모의 농업을 장려하면 정작 농민들은 돈을 벌기 어렵다"고 말했다.

"6헥타르 넓이의 농지를 부부가 경영하려면 기계가 있어야 하고 제초제와 농약을 많이 쳐야합니다. 버는 돈을 기계 만드는 사람들, 농약 만드는 사람들에게 줘야 하지요. 농약은 대부분 석유화학 계열의 대기업에서 만듭니다. 농업에 가야하는 보조금이 다 그쪽으로 흘러가는 셈이지요."

한국의 식량 자급률, 쌀 빼면 1%

그렇다면 한국의 농업은 어떤 수준일까. 우 박사는 "한국의 농산물 중 자국 내에서 소화하는 비율은 약 24%정도"라고 설명했다. 이 수치는 그나마 쌀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 쌀을 제외하면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식량을 칼로리로 계산하면 미국이 혼자서 전세계를 다 먹여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식량이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는 겁니다. 미국한테 '형님'이라고 안 부르면 식량을 안 파는 날이 올 수도 있는 것이죠."

농업 강국인 프랑스도 미국과 비슷한 경우. 프랑스에서 생산되는 식량으로 전 유럽이 살 수 있는 수준이지만 독일 등 유럽의 선진국들은 프랑스에 먹거리를 의존하지 않으려고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우 박사는 "일조량이 부족해 포도를 키울 수 없는 기후를 가진 독일은 상대적으로 평지보다 일조량이 많은 절벽에서 자라는 포도종으로 와인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독일에서는 기후조건을 극복한 이 와인에 '아이스와인'이라는 이름을 붙여 고가에 판매하고 있다.

우 박사는 "식량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수입하면 도시 근처에서 채소를 공급하는 근교 농업 이외에는 다 말라죽게 된다"고 말했다. 근교 농업은 상추, 토마토 등 냉동보관이 불가능한 채소를 소비가 많은 도시 근처에서 재배하는 농업 형태를 말한다. 비교적 유기농 농법으로 전환하기 쉬운 것이 특징이다.

"내년에는 채소값이 많이 오를 겁니다. 수도권 유기농 채소 공급의 70%가 두물머리라고 하는 경기도 양평 양수리에서 공급되는데 이 곳이 4대강 사업 때문에 없어지거든요. 그러면 수도권 유기농 채소는 30%가 남습니다. 그런데 서울은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가장 구매력있는 지역이거든요. 그러니까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광주나 부산 같은 데서는 채소 구하기 어려워질 거에요. 거기 갈 채소가 다 서울로 올테니까요. 근교 농업도 못 지키는 나라는 농업 하기 정말 어려운 나라입니다. 이 문제가 심각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수강생들이 우석훈 박사의 '응용경제학'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수강생들이 우석훈 박사의 '응용경제학'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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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품질 중심의 정책 필요해

우 박사는 한국의 농업을 살리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며 유기농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영국산 호밀을 예로 들었다. 영국산 호밀은 세계적으로 품질을 인정받는 농산물 중 하나. 1980년대 말, 영국은 자국 내에서 광우병 환자가 발생하고 다른 나라들이 자국의 농산물 수입을 꺼려하자 DEFRA(Department for Environment, Food and Rural Affairs)라는 정부 부처를 신설했다. 한국 식으로 설명하면 식품을 중심으로 환경부, 식약청, 농림부를 합쳐놓은 셈이다.

우 박사는 "영국은 DEFRA를 통해 농산물 생산 기준을 매우 높게 책정해서 관리했다"며 "이러한 정부의 노력을 통해 영국 농산물은 국제적인 신뢰를 받게 되었고 수출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사실 한국에서 이렇게 하기는 좀 어려워요. 일단 한국의 환경부는 대통령이랑 너무 친하고요. 식약청은 의사들 힘이 너무 세고, 농림부는 정운천 전 장관 이후로 뭐 하고 있는지 아무도 신경 안 쓰잖아요. 그런데 한국도 이렇게 식품 중심으로 가야합니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소비자들이 국가 정책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되지요."

우 박사는 "수출을 많이 하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이 농업 수출국이 되면 우리도 국민의 10% 정도가 농업에 종사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강의를 마쳤다.


태그:#우석훈, #응용경제학, #농업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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