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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하면 아빠가 떠오르는 아이

며칠 전 퇴근해 집에 들어갔는데 고1인 큰딸이 나오더니 불쑥 편지봉투를 건네주고 방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빠 읽어 보세요"라고 적힌 편지였습니다.

저도 아이도 가끔씩 편지를 주고 받아, 이번에도 "잘 하겠다"는 일상적인 이야기려니 하고 식사를 한 뒤 편지를 펴 보았습니다.

평소 예쁜 글씨에 이모티콘까지 넣어 가며 빼곡히 정성을 담아 쓴 편지와 분위기부터 달랐습니다. A4용지 이면지에 거칠게 쓴 편지에서 흥분한 어조와 격한 감정까지 느껴졌습니다.
독서실에서 학교에서 발행하는 '보건소식'지를 보고 적은 글이 었습니다.

아이들의 금연 부탁에 몇 번씩 금연 약속을 하고도 지키지 않는 아빠에 대한 원망과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금연 후 찾아오는 시기별 이득까지 들어가면서 설득하기도 하고 '담배는 인생에 찌든 가난하고 초라한 거지들이 피우는 것'이라며 격한 반응을 보이기 했습니다. 마치 마지막 경고장 같았습니다.

공부할 시간에 흡연의 피해에 대한 글을 보고 아빠를 떠올렸을 아이를 생각하니 재자신이 아빠로서 정말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큰딸의 마지막 경고장 같은 금연편지
▲ 편지 큰딸의 마지막 경고장 같은 금연편지
ⓒ 최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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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의 신비전' 보고 충격

큰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인 것 같습니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인체의 신비전'을 관람하러 갔습니다. 그날 핸드폰이 울려 받아보니 큰 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놀라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말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인체의 신비전'을 보는데 담배 피운 사람의 폐와 피우지 않은 사람의 폐 모형이 실물처럼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검게 변한 폐를 본 아이가 놀라 울며 전화를 해서는 "아빠, 당장 담배 끊으세요"라며 울 먹였습니다. 엉겁결에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알았어, 끊을 게"라고 답했습니다.

그날 저녁에 아이는 흡연의 피해에 대해 이것저것 듣고 본 것을 늘어 놓았습니다. 꼭 '인체의 신비전'을 보고 오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때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끊어 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냥 피우자', '피면 절대 안 돼'가 머릿속에서 치열한 싸움을 하는 가운데 결국 금단현상을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생일선물은 금연패치라니

그리고 한해 한해가 가고, 몇 해 전 제 생일이었습니다. 두 딸이 사온 선물은 다름 아닌 금연패치였습니다. 예쁘고 좋은 것도 많을 텐데, 아빠하면 담배부터 생각이 났나 봅니다. 안 되겠다 싶어 다음 날부터 패치 붙이고 담배를 끊기로 또 약속했습니다.

며칠을 견디었지만 결국 또 무너졌습니다. 행여 아이들을 나무랄 때 이제 머리가 커진 아이들은 아빠도 담배를 못 끊으면서 왜 그러시냐며 대들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할 말이 없어져 아빠의 기세도 꺾입니다.

그러면서도 금연은 더 이상 지키지 못할 약속이기 때문에 이제는 약속하지 않습니다. 끊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가득합니다. 그렇지만 20여 년을 태운 담배를 꺾기가 쉽지 않습니다. 금연에 실패한 경험도 금연의 의지를 약화 시킵니다.  

떳떳한 아빠가 되기 위해 다시하는 다짐, '금연'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흡연자는 정말 설 자리도 없습니다. 담뱃값도 올린다고 하고 금연구역도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한 것은 가족은 물론 주변의 차가운 시선입니다.
금연하기 위해서는 최적의 환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거기에 큰아이의 편지처럼 아이들의 거부감은 갈수록 커져가는 것 같습니다.

20여 년 동안 피워온 담배이고 나름 고집스러운 애연가지만 다시 한번 노력해 봐야겠습니다. 금연 때마다 '한 개비만, 이게 마지막이야' 하고 했던 약속을 이번에는 꼭 지키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이들하고는 약속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이들 몰래 끊어 보려고 합니다.
어느 날 아빠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기뻐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아이들에게 담배를 보고 아빠를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우 진짜 말 좀 들어요!!"라는 아이의 편지 글처럼 이제는 아이들 말도 좀 들어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지키지 못할 약속 왜 했어' 공모글



태그:#금연,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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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주는 기쁨과 감동을 쓰고 함께 공유하고 싶어 가입했습니다. 삶에서 겪는 사소하지만 소중한 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그냥 스치는 사소한 삶에도 얼마다 깊고 따뜻한 의미가 있는지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그래서 사는 이야기와 특히 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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