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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전자주민증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주민증에 전자칩을 장착해 지문·주민등록번호를 저장(비밀번호로 가려 둠)하고 성별·생년월일·발행번호·유효기간을 수록항목에 추가해 외부에서 이를 읽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기존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의 경우 번호가 쉽게 보여 개인정보가 노출될 우려가 있고, 새로운 주민등록증 위조 기술에 대응하기 위해 전자주민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지난달 20일 국회에 제출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2017년 말까지 만 17세 이상의 국민들은 모두 새로운 주민등록증 발급을 완료해야만 한다. 1999년, 프라이버시 침해와 예산낭비 문제가 제기돼 도입하지 못했던 전자주민증을 정부가 또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정부의 움직임에 시민사회단체는 즉각 반발하고 있다. 전자주민증 때문에 도리어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커질 뿐 아니라,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문제가 여전히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도입하려는 행정안전부와 막으려는 시민사회단체와 변호사가 한자리에 모여 전자주민증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전자주민증 관련 <주민등록법 개정법률안> 토론회'는 14일 오후 인권위 11층에서 개최됐다.

"법 개정 통해 주민증 수록 항목 얼마든지 추가 가능"

정부에서 공개한 전자주민증 예시 모형이다.
 정부에서 공개한 전자주민증 예시 모형이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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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를 맡은 좌세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개정안을 통해 수록항목이 추가되는 문제부터 짚었다. 좌 변호사는 "개정안 부칙을 보면 필수 추가항목 외에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 중 주민의 수록신청이 있는 것'이면 임의 수록사항으로 얼마든지 추가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좌 변호사는 "'주민의 신청이 있는'이라는 요건이 있지만 현행 주민등록증 발급신청서가 대통령령에 별지 서식 형태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개정안이 시행되는 경우 대통령령의 별지 서식을 개정하는 것만으로도 수록사항이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주민등록증 신청서의 빈칸을 신청자가 자필로 기록하게끔 돼 있는 신청서에 항목을 신설했을 경우, 신청서를 작성하는 이가 추가된 수록사항에 대한 별다른 의식 없이 칸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좌 변호사는 "결국 개정안은 대통령령으로 그 수록사항의 범위를 주민등록과 관련한 모든 개인정보로 사실상 확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주민등록증 정보의 전자적 처리에 대해서도 "개정안에 나와 있는 정부의 입법 제안 이유를 보면 '개인정보 유출을 방지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나와있다"며 "이는 개인정보 유출의 근본적인 이유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개인정보의 대량 유출 사건(옥션·하나로 텔레콤 등)은 개인정보를 대량으로 집중시킨 전자적 수록시스템으로 인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전자적 개인정보 집적이 도리어 정보 대량유출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좌 변호사는 "강제적으로 전자주민증을 발급받게 하는 것 또한 개인정보에 대한 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종전의 주민등록증을 그대로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본인이 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정기관의 편의적 건망증으로 전자주민증 도입 이야기 다시 나와"

토론자로 참석한 윤현식 지문날인반대 활동가는 "유일성을 갖는 주민등록번호를 출생과 동시에 일괄 부여하여 죽을 때까지 유지하도록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며 "현 상황도 이러한데 전자주민증은 수록사항을 더 늘려 과도한 정보를 수집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활동가는 "10여 년 전 통합 스마트카드(일종의 전자주민증)를 도입하려고 했던 당시 운전면허증·의료보험증·국민연금증서 등 종합적인 기능을 구현하려 했으나 시민사회의 반발로 수록내용을 축소한 바 있다"며 "당시 감사원은 그렇게 축소할 거면 전자주민증을 도입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 내렸다"고 지적했다. 즉, 행안부는 현재 통합 확장기능을 하지 않고 주민등록번호와 지문만을 전자주민증에 담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렇다면 굳이 세금을 들여서 전자주민증을 발급해야 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무수히 문제제기가 이어져왔음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자주민증 도입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기억을 삭제하는 행정기관의 편의적 건망증 때문이라고 판단된다"며 "또 정부는 전자주민증 관련 연구용역 결과물을 '오해의 소지가 있어'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국민과 소통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행안부 "전자주민증은 주민번호 확인할 필요 있을 때만 사용할 것"

14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전자주민증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14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전자주민증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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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측을 대표해 토론회 토론자로 자리한 류중근 행정안전부 전산총괄팀장은 수록항목 증가 우려에 대해 "서명, 운전면허증 등의 경우 관련법을 고쳐야만 수록 항목에 넣을 수 있다"며 "무조건 수록 정보가 무한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전자주민증은 주민번호를 확인 할 필요가 있을 때만 사용할 것으로 지문 인식은 일반적으로 쓸 일이 없다"며 "정보 유출 문제는 기술적으로 최대한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현식 활동가는 "주민번호 확인 용도 뿐인데 왜 7000억 원을 들여서 이 사업을 해야 하냐"며 "오히려 의문이 깊어진다"고 말했다. 현재는 주민번호 확인과 지문만을 넣는다고 하나 장차 그 항목을 추가해 종합적인 개인정보를 담은 카드로 유용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어딜 가서 무엇을 하든 기록에 남아 프라이버시 침해가 지대할 것이라는 게 전자주민증 도입 반대 측의 주장이다.

토론회를 참관한 행정안전부의 한 관계자는 질의응답 시간에 "지문은 다른 기관과 공동이용 대상이 아니고 전자칩에도 지문은 특징점만 수록되게 돼 정보를 가져가도 이용가치가 없다"며 "전자칩은 금융카드에서도 이미 사용하는데 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가 너무 큰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곧장 비판이 쏟아졌다. 좌 변호사는 "지문이 공동이용 대상이 아니면 이번 기회에 빼자"며 "정부의 발상법 자체가 잘못된 게 금융카드는 본인이 원해서 정보를 입력하지만, 주민증은 정부가 강제함으로서 인권 침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인데도 같은 선상에서 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장향숙 인권위 상임위원은 "주민증 이야기를 하면서 유출 되어도 필요 없는 정보라는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며 "행안부의 기본적인 자세가 안일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장 위원은 "주민등록법은 국민 개개인이 관련된 법안으로, 행안부에서 입법 예고 하기 전에 인권위에 의견 조회를 했어야 하는데 이것 조차 하지 않았다"며 "어떤 태도로 주민등록법을 개정하려는지 궁금하다"고 쏘아붙였다.


태그:#전자주민증, #주민등록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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