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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희-이씨 조선 최후의 왕녀>를 쓴 일본 여성학자 혼마 야스코가 25일 <한겨레>를 통해 소설 <덕혜옹주>의 표절의혹을 제기했다.
 <덕혜희-이씨 조선 최후의 왕녀>를 쓴 일본 여성학자 혼마 야스코가 25일 <한겨레>를 통해 소설 <덕혜옹주>의 표절의혹을 제기했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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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한 소설 <덕혜옹주>(권비영 지음, 다산책방 펴냄)가 표절시비에 휘말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소설 <덕혜옹주>가 나오기 전 나라 안팎을 통틀어 유일한 덕혜옹주 평전으로 평가받는 <덕혜희-이씨 조선 최후의 황녀>를 쓴 일본 여성학자 혼마 야스코가 국내 일간지를 통해 "소설 <덕혜옹주>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무단차용했다"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혼마 야스코의 <덕혜희-이씨 조선 최후의 황녀>는 지난 2008년 5월 번역·출간(<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역사공간 펴냄)됐고, 소설 <덕혜옹주>는 지난해 12월 출간돼 현재까지 5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다. 

혼마 야스코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무단차용... 상식의 도를 넘어"

혼마 야스코는 25일 <한겨레>에 기고한 글에서 "최근 한국에서 소설 덕혜옹주가 나왔다는 말을 듣고 급히 구해 읽어 보았다"며 "그런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소설은 난해한 소 다케유키의 시를 비롯하여 내 책의 내용을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무단차용하면서도 표현을 바꾸는 식으로 저작권법상의 그물망을 피하려 하고 있었다"고 공개적으로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그는 "타인의 저작을 이용하는 것치고는 상식의 도를 넘어선 것이었다"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책을 변조하여 한국과 일본의 거리를 넓히는 데 이용하는 소설이 나왔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덕혜옹주의 일본인 남편의 삶을 복원해 낸 것과 관련 "소 다케유키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취재하였다"며 "그리고 소 다케유키의 내면을 파악하기 위해 그의 저작물, 특히 그가 지은 시를 분석하였다"고 설명했다.

혼마 야스코는 도쿄대 문학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나가사키 현립·사립 고등학교에서 국어과 교사로 근무하다 캇스이여자대 문학부 일본문학과 전임강사로 자리를 옮겼다. 주로 여성사를 연구해온 여성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혼마 야스코가 자신의 책을 표절했다고 주장한 소설 <덕혜옹주>는 소설가 권비영(55)씨가 지난해 12월 출간한 것이다. 소설 <덕혜옹주>는 '경술국치 100주년'과 맞물리면서 올 1월부터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특히 한국출판인회의가 1월 첫째주 책 판매량을 집계한 결과, 소설 <덕혜옹주>가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제치기도 했다. 이를 두고 한 언론은 '죽은 덕혜옹주가 산 하루키를 몰아내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 상반기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소설 <덕혜옹주>였다. 종이책과 전자책 부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신경숙씨의 소설은 물론이고, 열반에 든 법정 스님의 책들까지 제친 결과다. 소설 <덕혜옹주>는 7월 현재까지 50만부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포항시립도서관은 '올해의 원북'(One Book)으로, 청주시는 '올 상반기 대표도서'로 소설 <덕혜옹주>를 선정하기도 했다.

일본 여성학자 혼마 야스코가 지난 2008년 5월 출간한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왼쪽), 작가 권비영씨가 지난해 12월 펴낸 소설 <덕혜옹주> 표지.
 일본 여성학자 혼마 야스코가 지난 2008년 5월 출간한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왼쪽), 작가 권비영씨가 지난해 12월 펴낸 소설 <덕혜옹주> 표지.
ⓒ 역사공간-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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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비영 "처음엔 상당 부분 참고했지만 번역본 출간 이후 재창작"

작가 권비영씨가 소설 <덕혜옹주>를 쓰게 된 계기는 4년 전 한 일간지의 '대한제국 재조명' 기사였다. 그는 지난 8월 <오마이뉴스>에서 마련한 '저자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연히 신문을 봤는데 거기에 우리가 잊고 있던 대한제국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는 기사가 실렸더라고요. 거기에 실린 황실 사진 중 5살 정도 되는 덕혜옹주 사진이 같이 있었는데 사진을 보는 순간에 확 빨려들어가 '이 분이 어떤 분인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이후 권씨는 덕혜옹주가 결혼생활을 했던 대마도와 덕혜옹주의 묘가 있는 홍유릉을 다니며 집필준비를 해나갔다. 그는 지난 3월 경제주간지 <이코노믹리뷰>와 한 인터뷰에서 "책을 쓰기 위해 기획부터 자료조사, 집필에 각각 1년 정도가 소요됐다"며 "일본 대마도에도 세 차례 정도 다녀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권씨가 참조할 만한 국내 자료는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혼마 야스코가 덕혜옹주의 삶을 평전 형식으로 복원해 낸 <덕혜희-이씨 조선 최후의 왕녀>를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울산대 도서관에서 그의 책을 구해 읽었다.

권씨도 언론들과 한 인터뷰 등을 통해 처음엔 혼마 야스코의 책을 많이 참조해서 소설 <덕혜옹주> 초안을 썼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엔 혼마 야스코의 책을 상당부분 참고해 소설을 썼다. 그런데 그 사이 그의 책이 한국어로 번역돼 나왔다. 비슷한 내용인데 어쩌나 싶어 허탈했다. 3, 4개월 손을 놓고 방황하다 완전히 다시 재창작을 하기로 마음을 추슬렀다. 만약 처음 썼던 작품이 그대로 출간됐더라면 분명 표절시비에 걸렸을 거다."(7월, <중앙선데이> 인터뷰)

"혼마 야스코의 번역본이 나오지 않았다면 그냥 책을 냈을 거예요. 그런데 혼마 야스코의 책이 나오는 바람에 주춤했죠."(8월, <오마이뉴스> '저자와의 대화')

혼마 야스코의 책은 지난 2008년 5월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출간됐다. 그 바람에 권씨는 4~5개월간 집필작업에서 손을 떼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재창작'을 결심하고 지난해 5월 지금의 소설 <덕혜옹주>를 거의 마무리했고, 교통사고를 당해 지난해 12월에서야 출간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일본 작가의 공개적인 문제제기로 '표절시비' 일까?

권씨의 설명에 따르면, 소설 <덕혜옹주>의 초안이 혼마 야스코의 책에 상당히 의존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혼마 야스코의 책이 덕혜옹주의 삶을 다룬 유일한 자료라는 점에서 그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혼마 야스코의 책이 국내에 번역·출간된 이후 자신의 소설 초안을 완전히 재창작했다는 것이 권씨의 주장이다.

그런데도 혼마 야스코는 소설 초안이 아닌 출간된 소설 <덕혜옹주>를 문제삼고 있다. "내 책의 내용을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무단차용하면서도 표현을 바꾸는 식으로 저작권법상의 그물망을 피해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물론 혼마 야스코는 '무단차용'의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덕혜옹주의 삶을 객관적으로 복원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덕혜희-이씨 조선 최후의 왕녀>의 저자가 공개적인 문제제기를 한 만큼 '표절시비'를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덕혜옹주 (일반판)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다산책방(2015)


태그:#덕혜옹주, #혼마 야스코, #권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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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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