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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영(59) 전 MBC 사장이 30일 서울을 떠나 강원도 춘천시 후평동의 한 아파트로 이사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 엄 전 사장의 고향은 강원도 평창이지만, 춘천고등학교 출신으로 춘천과도 인연이 깊다. 언뜻 '낙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근 몇 개월간 그의 '행보'를 보면, 이번 춘천행은 여러 가지 '정치적 해석'을 가능케 한다.

이광재 도지사 '대법원 판결' 앞두고 돌연 춘천행... 왜? 

엄기영 전 MBC 사장.
 엄기영 전 MBC 사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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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2 지방선거와 7·28 재보궐선거를 거치면서, 엄 전 사장의 '몸값'은 대단히 높아졌다. 강원도지사를 뽑는 선거전을 앞두고, 여야는 모두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한나라당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앵커이자 최대 민영방송사 사장을 지낸 경력을 높이 샀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권에 단호히 맞선 '방송민주화 투사'의 이미지를 원했다.

엄 전 사장이 모두 고사하면서, 그를 내세워 강원도를 접수하려던 여야의 시도는 실패했다. 결국 강원도가 고향이며, 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낸 이광재 도지사가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그러나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이 도지사가 직무수행 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강원도의 정치 상황은 복잡하게 흘러가는 중이다. 오는 9월 말 대법원 판결에서 이 도지사에게 당선무효형이 확정될 경우, 강원도는 또 한 차례 선거를 치러야 한다.

엄 전 사장의 '춘천행'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도지사의 대법원 판결 일정과 그의 낙향 시기가 맞물리면서, "엄 전 사장이 강원도지사 출마 뜻을 굳힌 게 아니냐"는 해석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정치권의 러브콜을 거절하기는 했지만, 사실 엄 전 사장이 정치에 뜻을 두고 있다는 얘기는 여기저기서 들려 왔다. 본인도 직접 "(도지사든 국회의원이든) 고향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면서도, 정치 참여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7·28 재보선 당시 한나라당 선거 캠프를 방문한 일이다.

당시 엄 전 사장은 한나라당 소속 한기호(철원·화천·양구·인제), 염동열(태백·영월·평창·정선) 후보의 캠프를 차례로 방문해 구설에 올랐다. 그는 "모임에서 알고 지내는 고향 후배들의 사무소에 들러 격려한 것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정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여의도에서는 6·2 지방선거에서 패한 한나라당이 7·28 재보선에서 태백·영월 지역구에 그를 출마시키려 했다는 풍문도 있었다. 최근 엄 전 사장으로부터 근황을 전해들은 한 지인은 30일 "그가 춘천에 내려가 친구들, 동문들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한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뒷소문과 정황을 종합하면, 엄 전 사장이 정계 진출의 뜻을 서서히 굳혀가고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7·28 재보선 때 한나라당 캠프 방문, '구설수'

만약 엄 전 사장이 정치의 뜻을 굳혔다면, 유권자들의 관심은 단 한 가지 선택에 쏠릴 수 밖에 없다. 그가 무소속을 택하지 않는 이상, '어떤 당'의 간판으로 나서느냐가 최대의 관심사다.

엄 전 사장이 강원도지사 후보 하마평에 오르내릴 무렵, 그의 정치 성향을 놓고도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엄 전 사장이 민주당이나 진보 성향 보다, 한나라당이나 보수 성향과 가깝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다. MBC 사장직 사퇴 즈음 이명박 정권과 부딪힌 것은 사실이지만, '진보'를 앞세워 정치를 할 인물은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 6·2 지방선거나 7·28 재보선 당시 민주당 관계자들이 엄 전 사장에게 수 차례 출마를 권유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고 한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최근까지 "엄 전 사장이 민주당에 오셨으면 좋겠다"(3일, 라디오인터뷰)고 공개 러브콜을 보냈지만 아직 답은 듣지 못했다.

이광재 도지사의 당선무효에 관한 대법원 판결을 앞둔 그의 춘천행이 수상하게 보이는 이유다.


태그:#엄기영, #춘천, #강원도지사, #이광재,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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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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