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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국무총리와 7개 부처 장관을 교체하는 중폭 개각을 단행했다. 8.8개각은 이명박 정부 집권 후반기의 국정운영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참신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6.2지방선거에서 드러난 소통과 화합 주문을 외면한 '친위내각'이라는 반응이 더 우세하다. 이번 개각의 문제점을 분야별로 긴급 진단한다.  <편집자말>

사실 '코드인사' 논란이 가장 치열하게 정치쟁점화 됐던 시기는 노무현 정권 때가 아닌가 싶다. 대통령에 의해 새로 임명된 각료의 명단이 나올 때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는 '코드인사'라는 성명이나 비난을 내놓았다. 또 보수언론은 보수언론대로 '코드인사=망국인사'라는 등식을 만들어 임명된 사람을 면면을 드러내기보다 대통령과 얼마나 친하냐를 들춰내기에 급급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 복지부 장관 임명 논란 등 임기 내내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코드인사'라는 주홍글씨가 따라다녔다. 아니다. 딱 한 번 예외가 있다. 내가 기억하기에는 홍석현씨가 주미대사에 임명되자 그가 몸담아 왔던 신문을 비롯한 보수 언론들은 '탈코드 인사, 잘된 인사'라고 추켜세웠었다.

 

이명박 정권의 인수위 시절, 한 신문에 실린 만평이 기억에 남는다. 남들은 이명박 당선자와 맞는 전기 소켓(220v 소켓)을 머리에 달고 줄을 서 있는데, 혼자 다른 소켓(110v 소켓)을 달고 겸연쩍게 구석자리에 서 있는 그림.

 

그게 신호탄이었을까? 참여정부 때는 '코드인사'라고 그렇게 비난을 퍼붓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코드가 맞지 않으면 나가라'며 과거 정권에 의해 임명된 사람들, 법에 의해 독립된 지위가 주어져 있거나 임기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조차 알아서 나라가는 강요 아닌 강요를 받아야 했다. 이런 와중에 '완장 찬 사람'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한 기관에 수장 두 명이 출근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문제는 정치철학과 관계 없는 보은·낙하산 인사

 

코드인사, 그 자체가 비난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통령과 정치철학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을 임명해서 번번이 마찰을 일으키고, 갑론을박으로 혼란만 가중시키는 것보다는 코드가 맞는 사람들을 택하는 쪽이 훨씬 더 효율적일 것이다. 보수적 이념인가, 진보적 이념인가에 상관없이 효율성만을 본다면 그렇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치 철학을 공유하는 코드인사가 비난 받지 않기 위해서는 넘어서서는 안 될 두 가지 금기가 있다.

 

첫째는 정치적 철학과 관계없는 보은인사, 패거리 인사, 낙하산 인사, 회전문 인사 등 구태의연한 인사 형태와 정치 철학을 공유하는 코드인사를 양립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인사나 개각이 있을 때마다 코드인사와 더불어 거의 모든 인사를 보은인사, 낙하산 인사, 회전문 인사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런 논란은 비단 노무현 정부에서 그친 것은 아니었다. 이명박 정권에서 야당이 된 민주당은 똑같은 논리로 이명박 정권의 개각 인사를 공격했고, 여당과 정부는 능력과 경험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고 구태의연한 답변을 모범답안처럼 내어놓고 있다.

 

개각 인사가 공유된 정치 철학에 의한 코드인사인지, 보은인사인지, 제 몸 불리기 패거리 인사인지는 임면권자인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가장 정확하게 알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보은인사, 패거리인사가 능력 위주의 코드인사로 치장되었다면 국민에게나 대통령에게나 참 불행한 일이다.

 

'기업사랑' 고백한 김태호, 총리로 적합할까

 

둘째는 법에 보장된 자율성과 독립성을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를 보장하기 위한 임기제를 어떤 일이 있더라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장차관이 임명할 수 있는 기관장 중에는 정치적 중립이나 독립성을 보호하기 위해 임기를 법으로 보장하는 장치들이 있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과거 정권이 임명한 사람이라고 해서 '코드가 맞지 않는다, 나가라', '법적으로 보장된 임기다, 못 나간다'는 논란이 끊임없는 있어 왔다.

 

여야가 합의하여 자율성과 독립성을 위해 임기제를 마련해 놓고 '코드' 운운하는 것은 법의 취지를 무색케 만드는 행위라 할 것이다. 사실 이런 논란 자체가 도지사, 시장도 대통령이 임면하는 군사 정권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8.8개각을 두고 '친이계의 득세', '친박계의 고사 작전', '친이 내각의 구성', '차기 대권 구도의 변화' 등등 정치평론가들의 많은 주장이 뉴스에 넘쳐나고 있다. 다분히 정치공학적인 이러한 평가나 예견에 끼어들 수 있을 만큼의 지식이나 난마처럼 얽힌 정치 세력을 이해할 능력을 가지지 못하는 나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발탁된 사람들이 얼마나 서민의 삶을 이해하고 바꿀 수 있을까에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치공학적 갑론을박이 다 무의미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잘하면 좋지 않겠는가?'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잘하면 좋지 않겠는가?'라는 기대가 있더라도 '그래 잘 할 거야'란 믿음이 곧바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발탁된 인사들의 면면이나 인터뷰 기사를 읽다보면 '잘 할 수 있을까?', '또 한 번 밀어붙이기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더 크게 자리하는 것을 어쩔 수 없다.

 

김태호 총리 내정자만 하더라도, '온갖 고난을 헤치고 출세한 입지전적인 젊은 인물'이라는 평가의 뒷면에는 강성노조와 기업규제를 없애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친기업정서, 지난 정권을 퍼주기만 한 '좌파 10년 정권'으로 보는 대북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경남의 최대 행정목표는 기업이 투자하고 싶어하는 도시를 만드는 것" "강성노조와 기업 규제가 없는 지역이 바로 그런 곳". 김태호 내정자의 이런 과거 발언들은 과연 그가 총리 내정자로서 적합한 인물인가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게 한다.

 

이재오 특임장관 내정자도 논란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하다. 당장 지역민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는 공약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이 어떻게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특임장관으로 내정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 최근 물의를 빚었던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내용은 어떠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하는 일은 전부다 선(善)이니까, 국민은 따라만 오면 된다는 국가 전체주의이라는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는 곧잘 군기반장으로 불린다. 물론 공직자로서 불합리한 모순 앞에서,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들 앞에서 호통 치는 군기반장의 모습은 멋있다. 그러나 국민들을 상대로 유격장 조교의 행세를 하는 건 누구도 원치 않을 것이다.

 

김태영, 유명환... 그들은 왜 아직도 남아 있는가

 

그러나 이번 개각에서 정작 궁금한 것은 새롭게 임명된 사람들보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존재 이유다. 왜 남게 되었을까? 야당들이 김태영 국방부 장관의 유임에 대해 지적하지 않더라도, 국민들은 당연히 그가 이번 개각 대상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지난 3월 발생한 천안함 사고의 책임을 지고 많은 군 관계자들이 옷을 벗었다. 천안함 사고 이후로 남북관계가 경색됐음을 상기한다면, 군 최고 책임자인 그가 교체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물론 청와대는 군의 사기진작과 대북제재 기조 유지, 천안함 사고 신속대처 등의 이유를 들어 그를 유임시켰다고 밝혔지만, 이에 고개를 끄덕일 국민은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최근 아세아지역 포럼에서 공직자로서는 해서는 안 될 발언을 해  큰 논란을 불렀음에도 역시 이번 개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렇듯 김태영 국방부장관,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 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 이만의 환경부장관, 현인택 통일부장관에 이르기까지 야당이나 국민들의 교체 요구가 높았던 대부분의 장관들은 유임되었다.

 

'장관의 임면에 대한 권한이 대통령에 있다'라는 법의 원론을 생각한다면 유임시키던 교체하던 그것은 전적으로 대통령 권한이며 통치 행위다. 그러나 유임된 사람들의 교체 요구는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근거 없는 깎아 내리기는 더더욱 아니기에, 유임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없다면 8.8 개각은 '어이없는, 끼리끼리의 오만한 개각, 국민을 무시한 역대 최악의 개각'이라고 평가한 자유선진당의 개각 논평은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서민들이 바라보는 '대한민국호'는 불안하다. 경기가 살아난다는 진단과 달리 자영업자, 비정규직 근로자, 청년 실업자들은 점점 더 양극화의 그늘로 빠져 들고 있다. 이재오 특임장관 내정자가 유럽이나 선진국에 비해 우리 양극화는 별로 큰 문제가 아니라는 발언을 했다는 기사가 '재수생 발언' 논란에 묻혔다. 대통령을 보좌할 특임장관이 양극화에 대해 이런 진단을 내렸다니 참 황당하고 어이없다. 유럽이나 선진국의 복지 수준이나 사회 안전망을 고려하지 않은 정권두둔형 발언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불안한 구석은 서민 경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원인이야 어디에 있든 남북관계는 점점 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정부는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지만 중국의 반대에도 서해에 미국의 핵 항공모함이 들어오고 군사 훈련이 잇따르고 있다. 중국과 북한에서는 비난과 강도 높은 대응이라는 수식어가 연일 흘러나오고 한반도가 세계의 화약고가 되는 것은 아닌지, 새로운 냉전의 지각판이 부딪히는 곳이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고 우려스럽다. 

 

진정한 '친서민' 보여주지 않으면, '쇼' 비판 받을 것

 

새로운 내각은 격랑의 '대한민국호'를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다. 단지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기 위해 4대강 전도사라 불리는 이재오 특임장관을 내정하고 김태호 총리 내정자를 발탁했다면 '대한민국호'는 또 한 번 풍파를 피해 갈 수 없다. 많은 사람들 머릿속에 국무총리는 '미국산 쇠고기 총리', '행정도시 총리'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있다. 젊고 참신하다는 새 총리 내정자가 '4대강 총리'로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되는 것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 모습일 것이다.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사람만 발탁했다고 비판할 생각은 없다. 단지, 그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떠나간 사람들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대통령은 친서민 행보를 다그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권이 서민들과 코드를 맞추고 있다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새로 구성되는 행정부에서 대통령의 친서민 행보를 정책으로써 지원하지 않는다면, 이번 개각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또 한 번의 쇼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양극화 문제, 대북 문제, 이란과 리비아 등 국제 관계 등등, 너무도 중요하고 긴박한 문제들이 즐비하다. 8.8 개각에 있어서 대부분은 국민들은 아직 관망중이다. 정치 철학에 의한 코드인사인지, 보은인사인지, 몸짓 불리기 패거리 인사인지는 천천히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그 평가는 정확할 것이며 냉혹하리만치 이성적일 것이다.


태그:#8.8 개각, #양극화, #이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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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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