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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이 나의 해임 과정에서 이명박 정권의 하수인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지난 8주 동안 증언해왔다('정연주의 증언' 13 - 20회 참조). 감사원 감사와 관련하여 아직 할 이야기가 더 남아 있는데, 오늘은 MBC에 불어 닥치고 있는 감사원의 '미친바람'에 대해 이야기해야 겠다.

감사원이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김우룡)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예비감사가 1월 29일부터, 그리고 본감사가 2월부터 시작된다고 언론에서 보도했으니, 감사원의 '미친바람'이 마침내 MBC를 휘감기 시작한 셈이다. "예비감사가 끝나면 감사의 목적을 정할 것"이라고 감사원 관계자가 밝혔다는데, 이미 감사 목적을 다 정해놓고 있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참 뻔뻔스럽다. 이명박 정권 아래서는 어째 모두가 이 모양인지.

2000년 10월 광운대 특강에서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했다"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한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는 "BBK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을 뒤집었다. 앞의 말은 동영상에 기록이 되어 있고, 뒤의 말은 대선 기간 중에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한 말이다. 두 말 가운데 하나는 거짓이 분명한데, 그러고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세종시와 관련해서도 말을 뒤집은 게 어디 한두 번인가.

그런 대통령을 닮아서인가. 이 정권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 조직들은 두 말을 하는데 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과거와는 다른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행태나, 완전 딴판의 논리를 대는 '조중동'의 모습도 그렇고, 한나라당 인사들의 발언도 그렇다. 신영철 대법관 때 한 소리와, 피디수첩 무죄 판결 때 나온 주장이 완전 반대다. 

감사원 동원한 옥죄기, 나의 해임과정과 너무 닮았다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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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은 감사원법상 MBC를 직접 감사할 권한이 없다. 감사원법에는 감사대상을 '대표자가 정부에 의해 임명되거나 임명 승인된 단체'로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에 의해 사장이 선임되는 MBC는 감사원의 직접 감사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방문진 구성과 성향으로 보아, 방문진을 통해 우회적으로 MBC의 자료를 상당부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MBC를 만신창이로 만든다는 정치감사의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1일 나온 MBC 노조 성명서를 보니 한 여당 쪽 방문진 이사는 "MBC가 공정성을 잃었는데도 방문진이 관리를 못했다는 점을 감사원이 지적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감사과정에서 무슨 자료를 요청하고,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감사의 칼끝이 어디로 향할지 뻔히 다 보인다.

더욱이 지금 전개되고 있는 꼴이 내가 해임될 때의 모양새와 많이 닮았다. 지난해 10월 중순, 보수단체인 '방송개혁시민연대'에서 방문진에 대한 감사 청구가 있었는데, 이는 나의 해임을 위해 동원된 감사원의 특별감사가 뉴라이트 3개 단체의 감사청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많이 닮았다. 그리고 KBS 내부의 반정연주 세력이 감사원에 여러 가지 소문과 내부 정보를 많이 제공한 것처럼, MBC에도 그런 부류가 있어, MBC 내의 이런 저런 정보와 소문을 많이 퍼트려 왔다. 이번 감사에서 이들의 역할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여기에다 지난해 12월 이후 공석이 된 보도·제작·편성 본부장 임명을 둘러싸고 혼란과 공백이 50일 이상 장기화되고 있어 어떤 형태로건 매듭을 지을 필요가 생기게 되었고, 어떤 형태로건 매듭을 짓는다면 'MBC 장악'의 형태로 갈 것은 참으로 자명하다. 이왕 칼을 빼어든 것인데, 누구 좋은 일을 하겠는가. 더군다나, 6월 2일 지자체 선거에서 삐거덕할 경우 바로 레임덕으로 갈 수 있으니, 지금보다 더 '완벽한 방송장악'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겠는가.

게다가, KBS를 보면, 방송장악이 뭐 그리 대단히 힘들거나 후폭풍이 거센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함직도 하다. 정치 검찰, 감사원, 국세청, 방송통신위원회 등 권력기관을 총동원하여 온갖 무리를 저지르며 나를 사장 자리에서 축출했지만,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특보 출신이 사장으로 진출한 지금의 KBS는, 뉴스는 말할 것도 없고, '열린 음악회'에다 '미수다' '과학카페' 등 오락·교양 프로그램까지 동원하여 정권 찬양에 올인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터다.

정권의 '방송장악'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그리고 정연주 꼴은 어떤가. 1심에서 배임죄에 대해 무죄 판결 나오고, 해임과 관련해서는 '해임 취소 판결'이 나오긴 했지만, 그는 KBS에서 사라졌고, KBS는 정권의 수중에 들어가버렸다. 1년 이상 재판하면서 임기는 이미 끝나버렸고, 그 재판도 이제 겨우 1심이 끝난 정도니, 다 끝나려면 아직도 한 세월이 남아 있다. 그러니 무리를 하건 어쩌건 미운털 박힌 사장 축출하고, KBS까지 장악하는 '실질 성과'를 거뒀으니, 방송 독립이네,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 보장이네 하는 명분 따위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랬기에 신재민(문화관광체육부 차관)이 그랬지.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KBS 사장을 해임할 수 있다"면서 "만약 해임 사유가 정당하지 않다고 여기면 무효소송을 해서 법원에서 판단하도록 하면 된다"고.

이 과정에서 다시한번 드러났듯이, 정치 검찰의 기소 자체가 형벌적인 것이고, 재판 과정이 고통일 수밖에 없다. 정치 검찰의 기소 이전에 이미 피의사실의 언론 플레이를 통해, 특히 검·언 복합체의 환상적 조합에 의해 피의자는 만신창이가 되고 인격은 처절하게 살해된다. 그리고 기소된 후 재판과정에서 당사자는 세상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외롭게, 그리고 많은 인내심이 필요한 긴 터널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니 이 이상 좋은 결과가 어디에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수구적 정권과 운명을 함께 하는 이들의 머리 속에 왜 없겠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늘이 두 쪽이 나더라도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참된 것은 참된 것이다. 그래서 역사와 하늘로부터 위안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 역사와 하늘의 위안을 믿는다. 그리고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런 선택이 역사 발전에 아주 작은 밑거름이, 아주 작은 씨앗이 되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MBC 후배들에게 당부한다

그런데 그렇게 작은 씨앗이 나중에 역사 발전으로 자라나게 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심판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역사에 꼼꼼하게 기록하고 증언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그래서 MBC 후배들에게 당부한다. 감사원의 MBC 방문진 감사와 관련하여 감사원의 누가 어떤 감사 자료를 요청하고, 어떤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는지, 명징하게 기록하고 역사 앞에 증언해야 한다. 그들이 어떻게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정권의 정치목적에 부역했는지를 역사 앞에 증언해야 한다.

정치권력과 정권은 투표를 통해 심판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검찰, 감사원, 국세청 등 권력기관은 국민이 직접 심판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살아가게 되어 있고, 또 정권이 바뀌면 다시 변신하여 새 권력에 봉사하면서 국민의 눈을 멀게 한다.

그런 더러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권력에 기생하고 봉사한 '영혼 없는 무리들'에 대해서는 역사의 이름으로 엄정하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그들의 행태를 낱낱이 기록하고 증언해야 하며, 언젠가 역사의 청문회에 그들을 모두 불러 세워야 한다.

MBC 후배들이 해야 할 몫이 또 하나 있다. KBS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것이다. 이름만 '노동조합'일 뿐, 실제로는 KBS 기득권의 최후 보루처럼 되어버린, 그리고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수구 집단의 가치를 많이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KBS 노조의 길을 따라 간다면, 결과는 뻔한 것이다.

결국 KBS든, MBC든 마지막으로 지켜내는 것은 구성원들의 몫이다. MBC 구성원들이 감사원 감사부터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면 그 뒤에 오는 일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한 한 방편은 MBC가 감사원을 감사하고 비판하는 언론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검찰, 감사원, 국세청 등 권력기관들이 지금처럼 방자하게 권력의 하수인으로 온갖 칼을 휘두를 수 있는 배경에는 이들 권력기관을 감시하고, 그들의 비리나 부패나 모순을 적극적으로 파헤치는 견제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제도 아래서는 유일한 견제세력이 언론인데, 검찰과는 거의 일심동체처럼 되어버렸고, 나머지 권력기관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비판, 견제 역할을 해오지 못했다. MBC를 비롯하여 깨어있는 매체들이 그 역할을 담당해 내야 한다.

엄 사장, 그 자리에서 꿋꿋하게 버티시라

엄기영 MBC 사장
 엄기영 MBC 사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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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엄기영 사장에게 거듭 당부드리고 싶다. 나의 경험으로 보아, 엄 사장에게도 이제는 마지막 장렬하게 전사할 때까지 그 자리에서 당당하고 꿋꿋하게 버티는 일 외에 다른 선택의 길은 없는 듯하다.

그렇게 장렬하게 전사하기 이전에 스스로 물러나거나 타협해버리면, 지금까지 쌓아온 명예와 자존심은 일순간 물거품처럼 되어버린다. 정권과 수구집단의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겁박 앞에서 당당하고 꿋꿋하게 자신을 지켜나가는 길이 때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영혼과 마음은 평안하고 자유롭다. 그 길이 바른 길이기 때문이다.

감사원 직원들에게도 감사 전문집단으로서의 자존심과 명예를 조금이라도 지켜달라는 말을 하고 싶다. 시키는 일이니 어쩔 수 없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라고 변명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당신들이 2008년 6월부터 8월초까지 KBS에서 했던 행태들, 즉 정해진 정치적 목표를 향해 자료를 꿰어 맞추고, 왜곡하고, 심지어 거짓말까지 한, 그 부역행위가 역사에서 지워질 리 없다. 적어도 KBS 안에서 그것을 직접 경험한 직원들은 당신들의 그 만행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역사 앞에 저지른 그 수치스러운 일들을 조금이라도 뉘우친다면, 이제라도 정권의 목적에 봉사하는 그런 일들을 멈추기를 호소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은 반드시 역사의 법정, 역사의 청문회 앞에서 심판받게 될 것이며, 이 시대 감사원에 근무했다는 사실 자체가 두고두고 치욕스러운 일이 되고 말 것이다.

*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태그:#정연주, #엄기영, #KBS, #MBC, #감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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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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