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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9개 부처를 세종시에 옮겨놓고 나면... 세계 모든 나라가 경제 전쟁인데 지난 1년간 일하면서 경제 부처 장관을 1주일에 2~3번, 아침 조찬 새벽 같이 모여서 해외에서 연락할 것을 하고, 국내 조치할 것을 해왔습니다. 서울에 6개월 와 있어야 합니다. 이래서 정말 되겠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해 11월 27일 밤 '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 프로그램에 출연해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 수정 방침을 밝히면서 한 얘기다. 행정기관을 세종시로 이전하면 모든 나라가 경제 전쟁인데 부처장관들이 서울에 몇 개월씩 와 있어야 하는 행정비효율이 극심해 계획을 수정해야 겠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개월 동안 이 대통령의 말과는 다른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국무총리를 비롯 정부 부처 주무 장관들이 아침 밥숟가락을 놓기가 무섭게 세종시로 몰려오고 있다. 유가급등에다 환율하락, 물가인상 등 나라 전체가 전쟁 상황인데 말이다.

취임후 10여차례 방문... 정운찬 국무총리는 '세종시 총리'

정운찬 국무총리가 4일 대전에서 열린 '대전지역 2010년 신년교례회'에 참석, 인사말을 하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4일 대전에서 열린 '대전지역 2010년 신년교례회'에 참석,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조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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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국무총리는 직함을 바꿔 달아야 할 것 같다. 챙겨야할 국정현안을 챙기는 '국무총리'가 아니라 '세종시 총리'다.

정 총리는 지난 9월 취임 후 지금까지 열 번 가까이 충청지역을 방문했다. 압권은 새해 첫 집무가 시작되는 날부터 예정된 '청와대 신년교례회'마저 빠지고 '대전일보 신년 교례회'에 참석한 일이다. 폭설로 수도권 교통이 마비되는 교통대란이 일어났지만 '세종시 총리'답게 그는 대전일보 신년 교례회에 참석해 '세종시 수정안 홍보'로 집무를 시작했다. 정 총리 스스로 대전일보 신년교례회 참석은 "대통령의 뜻"이었단다. 지난 11일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한 직후 충청권을 방문한 정 총리는 이번 주말에도 세종시를 찾을 예정이다. 

주호영 특임장관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종시특임장관이다. 그는 취임 이후 아예 세종시에서 숙식을 하며 살다시피했다. 총리와 특임 장관이 이러할진대 나머지 부처 장관은 말해 뭐하랴.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등도 반기는 사람 없는 충청권을 제 집 드나들듯 오가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1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브리핑실에서 교육, 과학, 산업 등 자족기능을 강화한 세종시 수정계획 최종안을 발표하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1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브리핑실에서 교육, 과학, 산업 등 자족기능을 강화한 세종시 수정계획 최종안을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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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민들이 오는 총리, 오는 장관을 탓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들의 방문이 세종시 민심을 챙기고 듣기위한 '민심탐방'보다는 '민심교란'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해 말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은 충청권을 방문해 "세종시 원안을 고집한다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다른 지역에 줄 것"이라고 협박하고 "우리나라는 떼법과 '배째라법'이 제일 먼저"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마이뉴스> 보도를 통해 밝혀졌듯이 총리실은 지난 11일 대전MBC와 대전 KBS, 대전방송(TJB) 등 대전충남 지역방송 3사가 기획한 정운찬 국무총리 출연 '세종시 발전방안 대토론회'와 관련, 그대로 읽기만 하면 되도록 만든 방송대본까지 만들어 방송사에 제시했다. 사회자 클로징 멘트에는 "요란한 정치적, 이념적 구호보다는 과연 우리나라와 충청인의 미래에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 차분히 생각해 보아야 할 때"라고 썼다.

총리실은 또 세종시 원안에 반대하는 여론을 확산시키기 위해 연기지역 유지들을 중심으로 한 독일해외연수를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국정원은 '정치관여 금지'조항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이 충남 공주·연기 지역주민들 속으로 들어가 세종시 원안을 수정해야 한다고 대놓고 회유했다.

14일 <한겨레>가 공개한 청와대 홍보수석실 및 국무총리실의 세종시 수정안 홍보문건은 세종시 수정 여론조작의 결정판이다.  

교과부 장관이 세종시 홍보... 총력전 나선 정부 

지난 11일 정운찬 총리가 '세종시 대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대전MBC를 방문하자 자유선진당 당원들이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11일 정운찬 총리가 '세종시 대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대전MBC를 방문하자 자유선진당 당원들이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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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르면 국무총리실은 '세종시 홍보문건'을 통해 ▲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통한 칼럼 게재 ▲ KBS '뉴스라인'에 특집방송 등을, 청와대는 ▲ 다음 아고라를 통한 토론을 통해 홍보 △ 랭킹 10위 그룹의 카페와 파워블로거를 대상으로 홍보물 전파 등을 모색하도록 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와대는 또 세종시와 관련도 없는 통일부와 환경부, 농림수산식품부 등을 포함한 10개 부처 장관을 지역에 내려 보내는 총동원 홍보 동원령을 내렸단다. 그들의 손에는 일방적인 홍보지침까지 쥐어줬다.

이와 관련 한국기자협회도 지난 14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언론과 기자를 정쟁의 도구로, 더 나아가 홍보의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내용이 버젓이 정부 기관이 의뢰한 홍보 전략에 나와 있다"면서 "정부의 언론관이 이 정도 수준인지 개탄스럽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주호영 특임장관.
 주호영 특임장관.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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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지난 11일 정운찬 총리에 이어 12일부터 대전 충남은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충북은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대구 경북은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경기는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강원 지역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방문해 지역 내 언론사 간부 등을 만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협조를 당부했다. 이들은 청와대 홍보지침 그대로 "세종시 대상 기업은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등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과 관련이 없다"고 앵무새처럼 되뇌였다.

이럴 양이면 '세종시 총리' '세종시 장관'들의 행정효율을 높이기 위해 세종시로 총리실에서 장관집무실까지 중앙행정부처를 죄다 옮겨야 하지 않을까? 실제 주호영 특임장관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에 사무실까지 마련했다. 그러고도 입만 열면 행정부처를 세종시로 이전하면 안 된다고 하고 다니니 '방 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께 그가 '국민과의 대화'에서 한 얘기를 고스란히 되돌려 주고 싶다. 

"10개 부처 장관들이 죄 세종시 문제에 매달리면 유가인상에다 환율인하 등으로 안 그래도 세계 모든 나라가 경제 전쟁인데... 지난 몇 개월 일하는 동안 내각의 수반인 국무총리가 일주일이 멀다하고 세종시로 와 있습니다. 총리취임직전부터 6개월간을 세종시 수정안만 챙깁니다. 이래서 정말 되겠습니까."


태그:#세종시, #행정도시, #여론왜곡, #국무총리실,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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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세종시 수정 파문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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