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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 있어도 매 들지 않겠다던 선생님이 왜?

우리 학교엔 '아름다운' 선생님이 계신다. 온화하고 자상한 성격에다 수업시간엔 아이들의 혼을 쏙 빼놓을 만큼 열정적이셔서, 동료 교사는 물론, 아이들도 좋아하고 다들 인정하는 선생님이다.

누구에게나 편견 없이 대하는 공평함, 아이들의 시덥잖은 질문조차 꼼꼼히 메모하며 답변하는 성실성,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함께 뛰어노는 자상함과 한마디로 딱 부러지는 수업에 이르기까지, 누가 봐도 교사로서의 자질을 두루 갖춘 분이다. 말하자면, 이 시대 모범 교사상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지금의 아이들은 물론, 졸업생들조차 그를 '매를 들지 않는 선생님'으로만 기억한다. 그가 보여준 교사로서의 열정과 자질에 대한 평가는 단지 매 때리지 않는다는 점 하나에 다 묻혀 버렸다. 학교 교육에서 체벌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여전하다는 방증인 셈이다.

요즘 들어 그 '천사표' 선생님의 표정이 어둡다. 얼마 전 처음으로 아이들에게 회초리를 들었다며 몹시 가슴 아파했다. 학창 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매 맞았던 기억 때문에 교사가 돼도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매를 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는 그다. 그랬던 그가 왜 매를 들게 되었을까.

수업 분위기 다잡기, 갈수록 어려워져

언제부턴가 아이들은 매에 철저히 길들여져 버렸고, 첫 만남부터 얼마간 교사를 '간 본다'. 그때 아이들 나름의 기준은 역시 '매'다. 중학교의 경우 저학년일수록 더욱 심해서, 매 때리는 교사의 수업 분위기와 그렇지 않은 수업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사진은 영화 <말죽거리잔혹사>에 나온 체벌 장면
 언제부턴가 아이들은 매에 철저히 길들여져 버렸고, 첫 만남부터 얼마간 교사를 '간 본다'. 그때 아이들 나름의 기준은 역시 '매'다. 중학교의 경우 저학년일수록 더욱 심해서, 매 때리는 교사의 수업 분위기와 그렇지 않은 수업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사진은 영화 <말죽거리잔혹사>에 나온 체벌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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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종이 울렸는데도 왁자지껄 떠들며 교실을 놀이터인 양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시나브로 많아져 수업 분위기를 다잡기가 무척 어려워졌다고 하소연한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산만한 아이들에게 자못 근엄한 표정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지적해 봐도 그때뿐, 그 효과가 채 5분도 가지 않더라는 것이다.

철저히 준비해 수업의 질로 승부하려 해도, 일단 교실 분위기가 잡히지 않으니 매우 힘들어하는 눈치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열정과 노력을 몰라주는 아이들이 조금씩 야속해지기 시작하고, 교사로서의 고민은 점점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그래 가지고는 안 될 걸요. 얘들은 때려야 말 들어요."

언제부턴가 아이들은 매에 철저히 길들여져 버렸고, 첫 만남부터 얼마간 교사를 '간 본다'. 그때 아이들 나름의 기준은 역시 '매'다. 중학교의 경우 저학년일수록 더욱 심해서, 매 때리는 교사의 수업 분위기와 그렇지 않은 수업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물론, 매 때리는 교사를 경찰에 고발하는 세태라지만, 웬만한 체벌은 여전히 '사랑의 매'로 용인되는 사회 분위기 탓에 아이들의 '눈치보기'는 계속되고 있다.

매를 들지 않은 교사 수업일수록 소란하고 산만해

매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아이들에게 질 높은 수업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 그 같은 교사도 지사적인 확고한 철학 없이는 그러한 현실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기실 매를 들지 않는 교사의 수업 때 더 산만하고 소란한 것은 매로 인해 주눅 든 수업시간을 보내고 난 아이들 나름대로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매가 무서워 졸린 눈을 비벼가며 버틴 한 시간을 매에 해방된 다른 한 시간에 보상 받는다고나 할까.

아이들의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현실에서 '매'는 결국 '매'를 부르게 돼 있다. 한번은 그도 교실 분위기가 소란하고 엎드려 자는 아이를 방치했다며 학교장으로부터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수업 분위기를 다잡지 못한 건 분명 당시 수업 교사의 책임이지만, 오직 그에게만 돌멩이를 던질 수 있을까.

그 어느 학교장이 체벌을 원할까마는, '양자택일' 할 수밖에 없는 교실의 현실은 모르는 체 하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라며 채찍질만 해대서는 곤란하다. 그걸 모를 리 없는 거개의 학교장들은 결국 현실 앞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위해 '웬만한' 체벌은 허용하는 수준에서 타협하게 된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기댈 해방구(?)는 자취를 감추게 되고, 교실에는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거나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등의 가혹한 구호만 펄럭이게 되는 것이다.

허구한 날 치러지는 시험 점수를 올리기 위해 다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아이들의 먼 미래를 생각해 볼 겨를을 주지 못한다. 우리 교육이 '백년지대계'는커녕 '일년지대계'도 되지 못한다는 조롱은 그래서 나오는 거다. '네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중간고사 10등'이라고 답했다는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의 꿈조차 고작 1년짜리라는 씁쓸한 현실을 읽게 된다.

교과서 놓고 가는 한은 있어도 매는 꼭 챙긴다?

어느덧 '천사표'였던 그의 손에도 대나무 뿌리로 된 회초리가 들려 있다. 교과서와 함께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교탁을 두 번 힘껏 내리치면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숨죽일 테고, 숙제 해오라는 골백번의 말보다 회초리 몇 대가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남들 다 매를 들더라도 나는 결코 때리지 않겠다'는 초심을 잃어 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배 교사랍시고 그를 나무랄 수는 없었다. '교육'과 '사랑'이라는 이름을 팔아 결코 매를 들지 않겠다는 일개 교사의 몸부림이 우리의 교육현장에서 체벌을 끝내 추방하는 나비의 날갯짓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한 청년 교사의 의지를 지금의 현실이 꺾어버렸기 때문이다.

'교과서와 분필을 놓고 가는 한이 있어도 매는 꼭 챙긴다'는 어느 선배 교사의 말이 더 이상 귀에 거슬리지 않는단다. 아이들도, 그들을 바르게 이끈다는 교사들조차도 매에 얼마나 길들여졌는지를 보여주는 솔직한 고백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 교육현장의 솔직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김 선생, 모든 게 계량화된 점수로 평가 받는 세상에서 교육이라고 예외겠어? 아이들의 시험 점수는 곧 교사들의 평가로 이어질 테고, 종국에는 급여와 신분 자체를 위협 받겠지. 결국 교사로서의 자질은 아이들의 점수와 동일시될 거야.

그렇다면, 아이들의 점수를, 그것도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이 뭐겠어. 이미 아이들은 매에 길들여진 상태에서 아이들이 반항하지 않을 정도라면 체벌의 강도와 점수는 정확히 비례한다고 할 수 있지. 내 경험으로 비춰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두들겨 맞았던 아이들도 결과만 좋으면 교사의 체벌을 '사랑의 매'로 여기게 된다는 거야. 심지어는 매를 들지 않은 교사더러 학생들을 방치했다고 손가락질을 할 정도니까.

혼자 끙끙 앓으며 고민한다고 해서 알아줄 사람 아무도 없고, 아이들도 매 무서워 공부하는 현실이니, 김 선생 과목 점수가 꼴찌가 될지도 몰라. 다른 과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점수가 나쁘면 학교장이 가만 두겠어. 학교에서 단기적인 성과로만 보자면, 아무리 좋은 수업지도안도 따끔한 회초리에 당해낼 수 없다는 말, 교사로서 기분 나쁘지만 인정해야 돼. 이래저래 아이들만 불쌍하지, 뭐."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태그:#학교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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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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