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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재료로 그릇이 넘쳐나는 복성루의 짬뽕은 이 곳의 주력메뉴다.
 신선한 재료로 그릇이 넘쳐나는 복성루의 짬뽕은 이 곳의 주력메뉴다.
ⓒ 네이버 블로그 '까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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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국보급·명불허전·극강의 맛·성지순례….

이 모든 단어가 한 곳의 식당에, 그 중 한 메뉴를 향해 쏟아지는 찬사라면 쉽게 믿길까. 그런데 이 메뉴, 어지간히 부지런해선 구경조차 할 수 없단다. 도대체 그 실체가 무엇일까. 바로 군산에서 맛보는 '복성루'표 볶음밥이란다.

TV를 통해서도 여러 차례 소개된 중화요리점 복성루의 특화메뉴는 바로 짬뽕이다. 바다와 접한 도시답게 그릇이 터져나갈 듯 쌓인 각종 조개와 탱탱한 해산물, 그것만으로도 부족한지 고명의 수준을 넘어선 양의 돼지고기까지.

그릇이 넘쳐나도록 퍼주는 정성. 이걸 어떻게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은 정도의 양이다. 또한 국물에서 배어 나오는 은은한 불 맛까지. 전국의 맛객 고수들이 인정한 맛 그 자체란다.

그런데 그런 이들 사이에서도 소수만이 맛본 비장의 메뉴가 바로 볶음밥이란다. '볶음밥이 도대체 어떻기에'라고 고개를 갸웃거릴 만하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맛조차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 볶음밥

낡은 건물은 세월의 흐름을 알려 준다. 군산에는 지난 세월을 추억케 하는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
 낡은 건물은 세월의 흐름을 알려 준다. 군산에는 지난 세월을 추억케 하는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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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의 운영시간은 오전 11부터 오후 4시까지다. 하지만 4시 이전이라도 그날 준비한 재료가 떨어지면 바로 문을 닫는다. 더 중요한 건 볶음밥은 11시 이전, 정확히는 오전 10시 30분부터 50분 사이, 즉 20여 분 사이에 입장한 손님만 주문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무슨 배짱이기에…'라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많은 사람이 몰려서 이곳 주인이 밥 볶을 시간이 없기에 내린 조치란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억울하면 일찍 오는 수밖에. 물론 오후 3시 이후 주문이 가능할 때도 있지만, 그건 그야말로 천운(?)이 따라야 한단다.

그러니 그 희소성만으로도 이곳의 볶음밥은 많은 이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사정이야 그렇다 치고 도대체 무슨 맛이기에? 밥알에 불 맛이 담긴 정도야 인천 차이나타운에 가도 맛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일었다.

이런저런 조건이 따라주어 감사한 마음으로 떠난 여행길. 금강 하굿둑을 걸어 군산에 도착하자 이미 어둠에 물든 도시. 간신히 물어물어 찜질방을 찾아, 이내 힘든 몸을 눕히고 말았다. 아무래도 편치만은 않은 잠자리. 일찍 눈을 뜨고서 가장 먼저 든 고민은 아침식사를 어떻게 해결 할까였다.

그때 머리를 스치는 생각. 군산에 왔으니 그 유명하다는 복성루 볶음밥에 도전해보자! 이렇게 이른 시간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마음을 먹자 몸이 급해졌다. 도대체 어느 곳인지 모르니 9시 이전 길을 나선 것이다. 혹 이곳 주민들이 모른다면 PC방이라도 찾을 요량이었다. 그런데 맙소사!

우연히 들른 숙소가 복성루 옆, 행운이 따르다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볶음밥, 함께 내오는 짜장과 국물의 양도 넉넉하다.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볶음밥, 함께 내오는 짜장과 국물의 양도 넉넉하다.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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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질방을 나서자 과장없이 두어 번 엎어지면 될 자리, 3미터 전방에 복성루가 나타난 것이었다. 이거야말로 천운이 따른 것은 아닐까.

시간은 고작 9시. 별수 없이 군산 시내를 떠돌았다. 30여 년 전 초등학생 시절 와보곤 처음인 도시. 이렇게 큰 도시가 지방에 있다니 하던 아득한 느낌. 그러나 지금은, 아직 옛 모습을 간직한 도시이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각광 받는다는 군산, 그만큼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골목마다 보이는 70년대식 방범창살 사이로 곧 맛보게 될 볶음밥의 이미지가 겹쳐 떠오르는 건, 모두의 고픈 시절 향수 한구석에 중국집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복성루의 외관 모습 역시 그 시절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정도로 낡은 건물인가 싶을 정도다. 10시 20분 경 살며시 문을 열고 안을 살피자 들어와서 기다리라는 말이 들린다. 실내는 아직 휑하다. 잠시 후면 합석은 기본, 길게 줄을 서야 한다는 말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몇 개 안 되는 낡은 탁자, 시간을 벗 삼아 건너온 흔적이 역력하다.

곧이어 보리차를 내온다. 언제부터인가 식당에서 정수기 물이 아닌 보리차를 내오면 황송할 정도로 고맙다. 맛은 예상대로 깊다. 미리 나온 단무지를 집어본다. 달달한 맛이 아니라 짭조름하다. 이 역시 옛 맛에 가깝다. 흔한 중국산 김치 대신 직접 담근 깍두기를 내오는 것도 믿음이 간다. 그때 문이 열리며 종업원과 잘 아는 듯한 동네 총각이 들어선다.

"워메~ 아침까지 달렸더니 죽겠구먼. 볶음밥 하나 줘 봐유."
"뭔 술을 그렇게 마신댜아. 그라문 얼큰한 짬뽕을 먹어야지. 뭔 볶음밥이랴."
"아~ 지금 아니면 못 먹잖여. 대신 짬뽕 국물 좀 많이 줘 보드라고."

충남 서천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둔 탓이라, 전북과 충남의 사투리가 오묘하게 섞여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말투가, 서울에 계신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본적에 남아있는 서천이라는 지명이 다시금 떠오른다. 이어 밀려드는 사람들. 그때 기다리던 볶음밥이 등장했다.

밥알에 아로새겨진 것은 불 맛이 아닌 추억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볶음밥, 함께 내오는 짜장과 국물의 양도 넉넉하다.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볶음밥, 함께 내오는 짜장과 국물의 양도 넉넉하다.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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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는, 고소하다. 밥 위에 얹힌 '달걀 프라이'의 색 또한 조화롭다. 센 불에 재빠르게 익혀내 밑은 바삭하고 위는 촉촉하다. 곁들여 볶은 돼지고기는 큼직큼직하다. 한 숟갈을 떠먹어 본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코로 느꼈던 고소함이 증폭되어 입속으로 밀려든다.

밥알은 불 맛 정도가 아니라 가볍게 탄내까지 풍기고 있다. 분명 맛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촌스럽다'는 단어가 떠오르는 것일까. 왜 자꾸 기억이 저 멀리로 날아가는 것일까. 하루해를 꼬박 채우며 놀던 어린 기억들. 연신 코를 들여 마시던 새까만 동네 아이들. 동네 자장면집을 지날 때마다 수없이 돌아보던 공복감들. 그리고 중국 음식을 싫어한다며 철없는 아들이 게걸스레 비워내는 모습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젊은 모습들.

이곳의 볶음밥을 맛본 이들이 표한 찬사는 정당한 듯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고 싶다. 촌스러웠다고. 정직하게 촌스러웠고, 맛있게 촌스러웠다고.

함께 내온 자장 소스와 짬뽕 국물의 양 또한 인심 좋게 넉넉하다. 자장 소스를 맛본다. 이 또한 요즘 맛과 다르다. 다소 짠 쪽에 가깝다. 감미료를 배제한 맛이다. 자장에 섞인 돼지고기 양도 푸짐하다. 짬뽕을 맛보지 못한 아쉬움을 국물로 대신한다. 이 역시 불 맛이 은은하다. 맵기만 한 폭탄 짬뽕, 고추 짬뽕 등과는 다른 정통의 맛이다. 국물에 담긴 오징어를 씹자 냉동이 아닌 싱싱함이 씹힌다.

어느덧 자리를 털고 일어설 때다. 10시 55분에 입장한 손님 한 명은 볶음밥이 안 된다는 말에 입을 삐죽였지만, 푸짐한 양의 짬뽕에 "어~어!"를 연발한다. 이날 볶음밥을 맛볼 수 있던 이는 모두 다섯 명. 선택받지 못한 손님들의 시선은 부러움일까 시샘일까.

허영만 화백의 <식객> '고구마' 편에선 재가한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준비한 고구마가 나온다. 세상 모든 것에 문을 닫은 사형수에게도 맛은 어머니의 이름으로 기억된다. 맛은 혀가 아닌, 머리가 아닌 가슴 깊은 곳에 새겨진다. 때문에 추억을 일깨우는 음식을 하는 집을 일컬어 '맛 집'이라 한다. 추억의 공통분모 앞에 때때로 우리는 어린아이가 된다.


태그:#복성루, #볶음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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