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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는 몇 번의 정권교체를 겪으면서 정부의 현란한 말솜씨에 현혹되어 가면서 살아왔다. 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들고 나오는 타당하지 않은 타당성조사와 무슨 특수목적을 가졌는지 알기도 힘든 특수목적 고등학교의 설립, 마이스터 없는 마이스터 고등학교 신설, 이공계 인재가 떠나버린 두뇌한국 사업, 항공기 기종을 연상시키는 747 정책과 같은 브랜드만 그럴 듯한 정책의 홍수들은 그 예를 모두 열거하기도 힘들다.

대규모 국책사업은 주로 SOC 사업과 같은 형태로 이루어지는 건설 프로젝트가 주류를 이루며, 공익을 위해서 국민 세금을 국가가 집행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사업들을 집행하는 국가는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로 한정된 재원을 공익을 위해 효율적으로 재분배하는 역할을 사심 없이 수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정책적 목적이 아닌 정치적 목적이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이제 정부는 과연 선량한 관리자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왔는지 스스로 되돌아 보고 반성해야 할 때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진행되어온 많은 국책사업들은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 뒤에 정치적인 목적을 실체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라면 타당성조사 및 예비타당성조사 정도는 숫자놀음에 불과한 명분 받춰주기용 도구에 불과했다. 국가가 추진하는 사업의 타당성을 조사하는 기관이 국책연구기관이며 그 기관의 장을 대통령이 임명한다면 벌써 타당성조사의 타당성은 신뢰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예비타당성조사와 타당성조사는 정책 결정권자나 국가 통수권자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되는 사례가 많았고 지난 정부에서 집행된 고속철도사업, 지방공항 건설사업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에는 14곳의 지방공항이 있는데, 광역단체별로 보면 대전과 충남을 제외하고는 모든 지자체에 최소 1개 이상의 공항이 있는 셈이다. 감사원 감사결과 김포, 김해, 제주공항을 제외한 나머지 공항은 모두 적자이며, 그 중 9곳은 수입보다 인건비가 더 큰 황당한 재정구조를 보이며, 이것은 모두 시스템조차 없는 부실한 타당성조사에서 기인한다.

2009년 10월 8일자 조선일보 기사에는 "승객 없어도 양양행 비행기는 뜬다"는 기사를 게재한 바 있다. 양양공항엔 지난 8월 15일부터 18인승 비행기가 운항 중이지만 10월 7일까지 1회 비행에 평균 7.3명의 승객이 이용하였다고 하며, 김포에서 양양까지 손님 한 명도 없이 텅 빈 비행기만 뜰 때도 있다고 한다. 또한 이 공항에서는 2008년 11월 1일 일본발 대한항공 전세기가 착륙한 이후 340일째 대형 비행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하니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공항을 건설하는 일이 그것도 소위 전문가 집단에 의해서 타당성이 있다고 평가가 되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감사원의 한국공항공사 감사 결과에 의하면 김포, 제주, 김해를 제외한 11개 공항의 지난해 적자액은 512억원에 이르며, 여수공항 등 9곳은 지난해 수입이 인건비보다 적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사회 전체의 행정 시스템 및 감사 시스템이 전혀 작동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또 서남권 신공항건설 프로젝트니 하는 말들이 다시 들려 온다. 이것 역시 대체로 실제적 필요성보다는 해당 지역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정치적 결정에 의한 것으로 생각되며, 최근에 개항하였거나 개항 준비가 임박한 상태에서 사업을 중단한 울진공항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서남권 신공항 건설을 무조건 반대한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 영남권에는 5개 지방공항이 있는데 이 5개의 공항 중 흑자로 운영되는 김해공항을 제외한 나머지 4개 공항의 2004년 이후 누계 적자액은 602억원에 달한다. 김해공항은 작년 한 해 동안 664억원의 흑자를 기록했고, 올 상반기에도 317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김해공항에서 올린 수익으로 나머지 4개 공항을 먹여 살리는 구조라는 의미인데, 이 공항들을 그대로 둔 채 새로운 국제공항을 건설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필요하다면 김해공항을 제외한 4개의 공항을 과감하게 정리한 후 매각대금을 가지고 신공항 건설 재원으로 사용한다면 대찬성이다. 예비타당성조사와 타당성조사를 제대로 거친다는 전제조건하에 말이다.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는 정권의 불합리한 요구가 중앙정부와 행정집행기관들에 큰 압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처음부터 정권의 요구에 억지로 맞춘 타당성검토 보고서를 제출하기 때문에 그러한 공사들이 가능했던 것이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피해는 국민의 주머니에서 부담되게 되는 것이다. 

앞선 사례에서 살펴본 대형 국책사업의 타당성조사는 분명 문제가 있다. 하물며 타당성조사 조차도 이렇게 문제가 있는 마당에 4대강 사업에서는 그나마 예비타당성조사도 면제시켜 버렸다.

앞으로의 국책사업에서는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여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없도록 타당성조사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를 바란다. 물론 정부 입장에서야 수용하기가 어려운 일이겠지만 진정 국민을 위하는 정부라고 생각한다면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목민심서를 저술하신 마음을 헤아려 주기를 바란다.


태그:#타당성조사, #서남권신공항, #지방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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