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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반 동안 이명박 정부는 많은 일을 시도하다가 번번이 국민의 반대와 저항에 부딪쳐 포기하거나 방향을 바꾸어야 했다. 한반도 대운하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 공기업 민영화, 의료보험 민영화 그리고 미디어법 개정 같은 것들을 더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국민이 반대한다고 해서 그것을 섣불리 포기하는 법이 없다. 우리가 보고 있듯이 한반도 대운하는 '4대강 살리기'로 리모델링 되어 나타났다. 그리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한 <PD수첩> 제작진에게 가차 없이 보복성 응징이 뒤따랐다. 공기업 민영화나 의료보험 민영화도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 포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는 매사에 집요한 편이다. 하지만 이런 모든 일들보다 훨씬 더 집착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방송장악'이다. 인수위 시절 발주된 이 작업은 대통령 취임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한시도 그 공정이 멈춰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 출범 때 여론의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형님 친구(최시중)'를 방송통신위원장에 앉혔다. 이어서 YTN에 자기 특보 출신 구본홍 사장을 밀어붙임으로써 YTN 노조원들의 격렬한 반대투쟁을 불러일으켰다. 우여곡절 끝에 구 사장이 물러나고 등장한 배석규 사장직무대행은 보도국장을 일방적으로 교체하고 돌발영상 PD를 대기발령했으며 이에 반대하는 노조원 제압을 위해 사내에 용역을 배치하는 등 온갖 무리수를 남발하고 있다.

국가기관 동원한 '방송 탈취'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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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이뿐인가? KBS 정연주 사장은 난데없이 배임죄라는 누명을 쓰고 임기 도중에 쫓겨나야 했다. 이 과정에서 정연주 사장을 지지하던 신태섭 이사는 이사직과 함께 직장(동의대)마저 그만두어야 했다. 방통위는 기민하게 이사진을 교체했고 이어서 이병순 사장 체제가 구축되었다. 결과 KBS의 정부 비판 보도는 누가 보아도 확연히 약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행히도 법원은 신태섭 이사 해임에 무효판결을 내렸고 정연주 전 사장의 배임혐의에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두 사람에 대한 조치가 탈법이었음을 확인해 주었다. 특히 정연주 사장을 배임혐의로 고발한 것은 '무고'라는 범법행위였음이 입증되었다.

정부의 KBS 장악 작업에 동원된 기관은 한둘이 아니었다. 방통위와 감사원과 검찰에 청와대까지 개입하였으니 다수의 국가기관이 공모하여 탈법을 자행한 것이었다. 이것은 '방송 장악'이라기보다 '방송 탈취'라고 해야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을 이명박 대통령이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 

이미 방통위는 지난 7월 24일 MBC 방문진 이사진을 친여 인사 일색으로 선임한 바 있다. 새로 선임된 이사 중에서 김우룡 교수는 미디어위원회의 한나라당측 위원장이었고, 최홍재 공정언론시민연대 사무처장 역시 미디어위 한나라당측 위원이자 뉴라이트 계열인 자유주의연대 출신이다. 또한 차기환 변호사도 자유주의연대 출신이며, 김광동 이사 역시 뉴라이트 성향의 교과서포럼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사람이다.

그때 이들과 함께 응모했던 이민웅 한양대 명예교수가 '김우룡 이사장 사전 내정설'을 폭로하며 전격 사퇴하는 해프닝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지난 8월 10일 '사전 내정설'대로 김우룡 이사장이 선임되었다.

김우룡 이사장은 선임되자마자 전례에도 없는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교묘히 엄기영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을 압박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가까운 후배들이다. 사랑하는 후배들에 대해 잘못 얘기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다. 때문에 진퇴에 관해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 오는 19~20일 MBC 사장 이하 임원들로부터 현안 보고를 받기로 했다. MBC에 문제가 있다면 방문진이 감독을 제대로 안 한 책임도 크다. 보고를 받은 뒤, 뭐가 문제이고 누구의 책임인지 살펴볼 것이다."(8월 13일 <PD저널>, 이사장 간담회에서)

그는 '사랑하는 후배'의 진퇴에 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MBC에 문제가 있다면 방문진이 제대로 감독하지 않은 책임이 크다'고 덧붙임으로써 새로 구성된 방문진이 모종의 역할을 할 것임을 암시해 놓았다.

그런데 그는 불과 2주도 안 되어서 '사랑하는 후배'의 진퇴를 발설한다.

"그간 (경영진이) 잘못한 책임은 물어야 한다. 이사들이 질의를 하고 추궁하는 과정에서 (엄기영 사장이) 알아서 물러나겠다고 하면 좋지 않겠느냐. 굳이 드러내지 않았지만, 내가 한 말들을 잘 들여다보면 그 속에 무슨 메시지가 담겨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이사들의 의견을 물어서 이사회에서 (경영진 교체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8월 26일 <한겨레>와 전화 통화에서)

김우룡, 곡학아세하는 전형적 폴리페서

김우룡 이사장은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작업에 구본홍, 이병순, 배석규에 이어 4번째로 기용된 인물이다. 그는 젊은 시절 MBC PD를 하다가 학계로 진출, 외국어대 교수를 역임했고 지금은 한양대 석좌교수 직을 가지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그는 <동아일보> 등에 칼럼을 게재하며 날카로운 필봉을 휘두르기도 했다.

"언론은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 또 언론은 국민이 스스로 판단하고 자유스러워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언론은 보도하고 판단은 독자가 하는 것이다. 권력을 감시하고,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것이 언론의 본분이다. 비록 정부정책에 반하더라도 언론은 올바른 여론을 반영해야 한다. 비판과 반대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두 축이 아니던가." (2004년 10월 21일 <동아일보> 칼럼)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기자간담회가 지난 13일 오전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서 열렸다.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기자간담회가 지난 13일 오전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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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언론은 보도하고 판단은 독자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비판과 반대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두 축'이라고 단언했다. 이런 글을 쓸 줄 알았던 그가 지금은 국민의 광우병 위험을 제기한 <PD수첩>에 큰 문제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 사이 그의 인격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일까? 그는 시세에 따라 말을 가끔씩 바꾸는 능력을 가진 인물인 것 같다. 

그는 <세계일보>에 기고한 칼럼 때문에 방송계의 반발을 산 적이 있다. 2002년 9월 25일 그는, "한나라당이 병풍과 관련 방송4사에 공문을 보낸 것은 언론자유의 침해가 아니라 단순히 입장을 표명한 것에 불과하고, 방송 운영자가 이 같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며 오히려 방송계를 질타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나라당은, "이회창 후보 아들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라"거나 "이정연(이회창 후보 아들)씨 얼굴을 화면에 내보내지 말라" 등 상당이 노골적으로 언론에 간섭했는데도 그는 한나라당을 비호한 것이다.

아울러 그는 조중동을 신뢰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동아일보>에 실은 '동아일보 예찬론'을 읽어 보자.

"나는 동아일보를 한국의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더 타임스'가 곧 영국이라면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상징이다. 그 긴 역사에 왜 굴절과 파행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동아는 일제와 자유당 정부, 유신과 군사정권 동안 줄곧 민족의 표현기관으로서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문화주의를 제창해 왔다."

학계에 있던 그의 관심은 주로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환심을 사는 데에 있었던 것 같다. 결국 그는 '곡학아세 하는 폴리페서'라는 말을 들어도 억울해 하지 말아야 할 인물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에게 MBC 방문진 이사장 자리를 줌으로써 응분의 보답을 해준 셈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자리가 결코 명예롭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최상재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은 그가 지금 하는 일은 정권 방송 장악에 '부역'하는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김우룡 교수는 과거엔 방문진 구조가 최선의 구조라고 2001년도에는 입장을 피력했다가 최근에 와서는 구체적으로 지역 MBC사 매각방안까지 제시하면서 민영화를 주장했다. 방문진은 MBC가 공영방송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만든 기구로, 외부로부터 압력을 차단하고 제작을 간접지원하기 위한 것인데 지금 하는 행태를 보면 정권에서 요구하는 내용들을 방문진을 통해서 바로 관철시키고 바로 압력을 넣으려는 것이다. 지금 정권이 요구하는 것이 MBC의 보도 비판력을 약화시키고 상업적 경쟁을 하게 만드는 구도인데 거기에 대해 일종에 부역과 가까운 행태를 보이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8월 11일 <평화방송> 라디오 대담에서)

청와대와 여당측 방문진 이사들처럼 MBC를 장악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MBC의 신뢰도가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근 신뢰도가 떨어진 방송은 MBC가 아니라 그들이 사장을 몰아낸 KBS 아닌가? 또한 그들은 MBC의 시청률이나 광고 수입 감소를 내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MBC는 높은 시청률의 콘텐츠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방송이다. 게다가 청와대까지 나서서 'MBC사장 교체'를 운운하는데 기업이 광고를 주기란 어렵지 않겠는가? 정작 MBC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주체는 MBC를 수중에 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왜 이다지도 방송장악에 집착하는 것일까? 

MBC 노조가 지난 10일 방문진 이사회가 열리는 여의도 율촌빌딩 앞에서 부적격 이사 규탄 집회를 열었다.
 MBC 노조가 지난 10일 방문진 이사회가 열리는 여의도 율촌빌딩 앞에서 부적격 이사 규탄 집회를 열었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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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룡 이사장은 13일 "MBC의 100% 민영화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앞에서 보았듯이 그는 교묘한 화법을 구사하는 사람이다. 100% 불가능하다는 말을 민영화를 포기하겠다는 발언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실제로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MBC> 소유구조 개편 논의에 본격 착수할 뜻을 밝히며 포스코와 케이티앤지(KT&G)를 참고할 만한 민영화 모델로 제시했다.

요컨대 MBC 장악의 요체는 공영성을 포기하고 시장성을 추구하는 민영화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민영화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곧 '방송의 조중동화'를 의미한다. 그들은 방송만 장악하면 대운하도 4대강도 민영화도 그리고 개헌도 성사될 수 있다는 환상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이제 이명박 정부의 제1국정목표는 '방송장악'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말은 전혀 다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바뀐 정권에 유리하게 보도해 달라 하는 것을 원치도 않고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정권도 '방송을 장악할 수 있다. 언론을 장악할 수 있다'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7월 27일, 이명박 대통령 KBS라디오 대담방송 중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자기 임기 내내 줄기차게 지속되어 온 방송장악 기도를 모른다는 말인가? 만약 알고서 이런 말을 했다면 우리는 아주 특이한 인격의 대통령을 가진 것이다.


태그:#방송장악, #방문진,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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