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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서머타임제 도입 효과와 관련한 서울대 경제연구소의 연구 용역 결과를 보고 받고 여론수렴방안에 관해 토론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이명박 대통령은 "서머타임제가 선진국처럼 가족 문화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이를 위해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에너지 절약도 절약이지만 국민들께 1시간을 되돌려주므로써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그들의 야심찬 계획이다. 정부는 서머타임제를 당장 내년 4월부터 시행하기 위해서는 10월까지 결정이 필요하다며 현재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정부의 이런 주장은 일면 합리적으로 보인다.

 

한여름 시계바늘을 1시간 당기면 사람들의 활동시간이 밝은 낮에 집중될 것이므로 전력소비량이 줄어들 것이고(정부 추정 연간 341억~653억원), 출퇴근 시간 역시 분산됨으로써 교통사고 건수가 감소하고 길에서 낭비하는 에너지가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는 그들의 주장(정부 추정 연간 808억~919억 원)은 분명 일리가 있다. 게다가 보너스로 레저·관광·외식업·유통업 등의 활성화, 범죄율의 감소 등 여러 부수적 효과가 있다지 않는가.

 

그러나 개인적으로 서머타임제도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근거는 세계의 동향이었다. 어차피 정부가 내놓는 통계들이야 책상머리의 숫자놀음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들은 그 중요한 '미디어법'에 관련된 경제효과마저 부풀리는 과감한 이들이다!), 서머타임제도에 대한 현재 세계 각국의 반응은 지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서머타임제는 많은 국가들에게 특별한 제도가 아니다. 전 세계 74개국이 이미 실행하고 있고 특히 OECD 국가 중에서는 아이슬란드, 일본, 한국만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이 모두 실행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슬란드의 경우 백야 때문에 서머타임제를 실행할 필요가 없다 하니 실제로는 일본과 한국, 두 국가만이 서머타임제를 거부하고 있는 형국이다.

 

서머타임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거부감

 

이미 많은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서머타임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 사회의 서머타임제에 대한 인식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볼 수 있듯이 매우 부정적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조사결과에에 따르면, 응답자의 38.2%가 찬성, 46%가 반대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1158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61.2%가 서머타임제 도입에 "반대한다"고 답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그 좋다는 서머타임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왜 이렇게 안 좋은 것일까?

 

서머타임제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노동계는 무엇보다 서머타임제가 실시되면 지금도 세계 수위를 다투고 있는 한국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출근 시간은 앞당겨지지만 직장 상사, 회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구조상 퇴근시간은 더욱 늦어질 수밖에 없는 바, 근무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이와 같은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정부는 노사정위원회에서 대책을 논의하고, 정시 퇴근 실천 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그 효과를 믿는 이는 드물다.

 

오히려 실천 운동을 하기 위해 더 빨리 출근하고 늦게 퇴근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의 유연성' 운운하며 기업들이 한층 강한 구조조정을 피력하는 지금, 누가 감히 정시 퇴근을 외칠 수 있겠는가(본 기자도 회식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밝을 때 퇴근한 날이 손에 꼽을 정도다).

 

결국 서머타임제의 실행과 성공 여부는 단순히 경제적 효과에 대한 광고로 담보할 수 없다. 서머타임제란 단순히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예컨대 노동환경이나 생활관습 그리고 역사적 맥락에도 닿아있기 때문이다.

 

MB정부의 서머타임을 곱게 볼 수 없는 이유

 

 

기억해보라. 우리사회에서 서머타임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아직도 기억하는 22년 전 5공화국 땡전 뉴스. 많은 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9시 뉴스 앵커가 시킨 대로 시계바늘을 돌리지 않았던가.

 

결국, 그 어떤 합리적인 설명도 없이 국가에서 까라면 까라는 식으로, 일방적으로 시계바늘을 돌렸던 이들에게 서머타임제의 기억은 곧 독재의 기억으로 치환된다. 국가는 그것이 88서울올림픽과 어울려 무슨 선진화의 도구인 양 선전했지만 우리의 신체는 서머타임제를 시간마저 쥐락펴락하려던 그들의 만행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갑자기 새벽에 일어나서 시계바늘을 돌리시는 아버지를 보았을 때의 그 뜨악함이란).

 

그런데 22년이 지난 오늘 날, MB가 또다시 서머타임제를 운운하고 나섰다. 비극적이게도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21세기 대한민국을 제5공화국으로 되돌리고 있다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그가 우연찮게 서머타임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어찌 서머타임제에 대한 여론이 좋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서머타임제의 실용성의 문제가 아니라 서머타임제를 운운한 주체의 문제다. 안 그래도 전 국민을 자신의 회사원인냥 생각하며 기업 중심을 끊임없이 천명하는 MB가 서머타임제를 외치는데 누가 그의 선의를 그대로 받아들이겠는가.

 

선진국의 가족문화? 과연 현 정부 인사들은 선진국 사람들이 몇 시에 퇴근하는지 알고 있을까? 오후 5시~6시가 되면 퇴근해서 가족과 함께 하는 그들의 삶을 그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취임하자마자 얼리버드(early bird; 일찍 일어나는 새)를 외치고 아이들의 창의적인 교육을 위해 밤 10시까지만 학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어처구니없는 그들에게 서머타임제가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일까?

 

서머타임 시행보다 국민 신뢰 회복이 우선이다

 

연간 전력 소비량을 줄이기 위해서 서머타임제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곤 청계천에다, 한강 다리에다, 서울 도심 곳곳에다가 천박한 조명들을 설치한 뒤 디자인 코리아 어쩌고저쩌고 하는 이중성을 보이는 이상, 정부의 주장은 공감을 얻을 수 없다.

 

물론, 비정규직 법안 개정을 운운하며 악어의 눈물을 흘렸지만 정작 가장 많은 비정규직을 잘라낸 곳이 공기업이나 정부부처인 사실을 상기해본다면 정부의 서머타임제 운운은 아주 사소한 에피소드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서머타임제는 현재 많은 국가들이 선택하고 있는 합리적인 제도다. 그러나 그 합리적인 정책마저도 정부의 신뢰가 담보되지 않으면 펼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서머타임제를 시행하기 위해서 정부가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는 일이다.

 

부디 현 정부가 위 정책을 무조건 밀어붙이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계몽이 아니라 합리적인 설명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잊지 않기를. 참고로, 제5공화국도 서머타임제를 2년 시행하고 포기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서머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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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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