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2일 새벽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을 점거농성중인 노조원이 공장 옥상에 설치된 새총을 이용해서 경찰을 향해 볼트 등을 발사하고 있다.
 22일 새벽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을 점거농성중인 노조원이 공장 옥상에 설치된 새총을 이용해서 경찰을 향해 볼트 등을 발사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공장에서 일할 때보다 '불법 파업'을 하는 지금, 저는 한 사람의 노동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나도 같은 노동자라는 존재감을 느낍니다."

27일 저녁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후문 앞 금속노조 천막에서 만난 비정규직 노동자 A씨는 가방을 싸놓고 대기 중이었다. 공장에서 나온 지 일주일째, 그는 다시 전쟁터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어떻게든 농성장 안으로 들어갈 궁리만 하고 있었다.

A씨는 지난 21일 폐렴을 치료하기 위해 공장을 나섰다. 공장 안에서 구할 수 있는 의약품은 감기약 정도였다. 하루 세끼 통조림 참치와 소금으로만 간을 한 퍽퍽한 주먹밥을 질리도록 먹었고, 종일 페인트 냄새를 맡다가 잠이 들면 밤마다 사측의 선무방송에 깨곤 했다. 기침이 멎질 않아 일단 바깥으로 나왔지만, 아무래도 공장이 가장 편하다.

지난 5년 쌍용차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사내하청 직원이던 A씨는 파업을 하면서 비로소 자신이 정규직과 똑같은 노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애사심도 생겼다. 그는 "아직 나이도 젊고 비정규직이니까, 임금도 적은 편이니까 얼마든지 다른 공장에 가서 일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억울하다, 쌍용차를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함께 파업하는 지금, 나는 존재감을 느낀다"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을 점거농성중인 노조원들이 22일 오후 도장공장에 근접한 경찰에 맞서 바리케이드에 불을 붙이며 저항하고 있다.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을 점거농성중인 노조원들이 22일 오후 도장공장에 근접한 경찰에 맞서 바리케이드에 불을 붙이며 저항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A씨는 2005년 12월부터 쌍용차 공장에서 일했다. 그가 맡은 업무는 바디 마운트 공정으로 엔진과 내부 장비가 조립된 차에 '껍데기'를 씌우는, 완성차의 마지막 작업이다. '카이런', '액티온 스포츠' 등의 차가 그의 손을 거쳤다.

이들 차량은 쌍용차의 마지막 신차였다. 2006년 2월 쌍용차가 상하이차로 넘어간 뒤 새 차는 나오지 않았다. 입사 당시 A씨는 잔업까지 하루 12시간을 일하고 주말엔 특근까지 했지만, 시장에서 쌍용차의 수요가 줄어들면서 근무시간도 점점 감소해 올해는 잔업이 거의 없었다.

그는 "딱 최저임금에 맞춰서 임금을 받았다"고 말했다. 정규직 노동자들과 똑같은 공장에서 똑같은 근무를 해도 임금은 절반이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공정을 비정규직에게 떠넘겼고, 비정규직 노조 결성에도 반대했다.

A씨는 "예전 노조 같았으면 우리가 함께 싸우지 않았다, 이번 노조 집행부는 선출되기 전부터 '비정규직과 함께 하겠다'고 말했고 그 약속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규직 노조가 주장하는 '총고용 보장'에 대해서는 우리도 뜻이 같다"고 강조했다.

파업 현장에서는 차별이 없을까? A씨는 "정말 우리를 무시했던 정규직 노동자들은 지금 공장 안에 거의 없고 대부분 저 쪽(사측)에 가있다"고 주장하면서 "안에 있는 정규직들의 의식도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오히려 지금은 노조가 먹을거리 하나라도 비정규직을 더 챙겨준다면서 "참으로 고맙다"고 그는 말했다.

정규직 노조에게 버림받는다면?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을 점거농성중인 가운데 22일 오후 보건의료단체들이 식량, 식수, 의료진 차단 조치에 항의하며 물과 의약품을 농성중인 노조원들에게 전달하려하자 사측 직원들이 공장 출입문을 쇠사슬로 봉쇄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을 점거농성중인 가운데 22일 오후 보건의료단체들이 식량, 식수, 의료진 차단 조치에 항의하며 물과 의약품을 농성중인 노조원들에게 전달하려하자 사측 직원들이 공장 출입문을 쇠사슬로 봉쇄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이날 A씨는 회사 쪽으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30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불법파업 참여' 문제를 회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사자인 A씨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는 "사측은 지금까지 계속 '노조활동하면 자른다'는 협박을 해왔고 이미 39명 노동자 중에서 17명을 해고한 상태"라면서 "파업 대오 안에 있는 사람에겐 '씨알이 안 먹히'니까 가족에게 가압류·손해배상을 하겠다며 협박한다"고 주장했다.

공장 내 폭력행위에 대해서도 A씨는 사측의 책임을 강조했다. 사측에서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만들고 시설을 파괴하면서 "조합원들이 공장 기물을 파손한다"고 뒤집어씌운다는 주장이다. 그는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쓸 돈으로 노동자들 밀린 월급이나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러다가 정말 회사가 파산하면 농성 중인 노동자들은 물론 남은 비해고 노동자나 외부하청 노동자들이 함께 죽는 것 아니냐"고 질문했다. 그의 답변은 "어차피 지금 쌍용차는 공적자금 투입 없이 회생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나올 이유가 없습니다. 노조가 (공장 안에서) 빠진다고 해서 정상화될 수 있는 회사가 아닙니다. 가진 돈도 없고 신차를 만들 기술도 없어요. 사측이 회사를 쪼개 팔아서 '먹튀'할 생각이 아니라면, 우리와 함께 공적자금 투입을 요구해야 합니다."

A씨는 공권력 투입을 "사측의 마지막 카드"라고 표현했다. 회유도 하고 협박도 했지만 노조가 물러서지 않기 때문에 꺼내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것.

그러면서 그는 "실제로 공권력을 투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직접 겪은 쌍용차 공장 안이 말 그대로 화약고이기 때문이다. 인화성 물질이 많은 공장이 통제 불능의 상황에 놓인다면 화재와 폭발이 일어나 수십명이 죽어나가는 '제2의 용산참사'가 불보듯 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쌍용차 투쟁은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22일 오후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노조원들이 점거농성중인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내 공터에 진압작전시 경찰특공대를 태우고 투입될 방염처리된 특수 컨테이너 박스가 준비되어 있다.
 22일 오후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노조원들이 점거농성중인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내 공터에 진압작전시 경찰특공대를 태우고 투입될 방염처리된 특수 컨테이너 박스가 준비되어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A씨는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이번 쌍용차 투쟁에 대해 자부심이 컸다. 원청과 하청이 이렇게 연대해서 싸운 적이 있느냐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굴뚝에 올라간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쌍용차가 침체된 현재의 노동운동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고, 연대하러 온 동지들도 오히려 새 힘을 받고 간다고 그는 자랑스레 말했다. 그가 공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A씨는 "우리가 무너지면 현대·기아·대우 줄줄이 구조조정이 시작될 것이다, 그 쪽 노동자들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와 연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쌍용차 노사 갈등 때문에 우리도 죽어난다"는 외부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마음도 그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 노동자들이 그렇게 힘든데 상황을 이렇게 만드는 사측 때문에 더 열 받는다"고 말했다.

물론,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결정적인 막판 교섭의 순간에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그 역시 알고 있다. 그러나 당장은 노조를 믿는다.

무엇보다 "일단 노조를 믿는 수밖에 다른 희망이 없기 때문"이지만, 그의 믿음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명분 때문에라도 쌍용차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 뒤통수를 치지는 못한다는 생각이다. 비정규직을 '팔아먹은' 노조와 누가 연대하겠냐는 것이다.

A씨는 지금의 상황이 쌍용차 사측은 물론 노조에게도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쌍용차 평택공장 맞은편에 있는 이젠택 공장을 예로 들면서 "그동안 지역에 장기투쟁 사업장이 숱하게 많았지만 쌍용차 노조가 해준 게 하나도 없다, 이젠택에서 연대하러 왔는데 미안하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쌍용차 노조가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노조가 길고 긴 파업에서 이긴 뒤에도 쌍용차의 투쟁은 끝이 아니다. 안으로는 수십년 함께 기름밥을 먹던 동료들끼리 얼굴을 맞대고 싸웠던 '노노 갈등'을 봉합해야 하고, 동시에 바깥으로는 이곳저곳 연대해서 그동안 쌍용차를 도와준 동지들에게 빚을 갚아야 한다. 그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한참 남았다"고 했다.

물론 지금은 이 투쟁부터 끝내야 한다. 지금 A씨의 소망은 파업에서 이기고 난 뒤 함께 싸운 동료들과 함께 모여 모든 것을 잊고 삼겹살을 구워먹는 것이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물도 전기도 의약품도 끊긴 공장으로 돌아가려고, 그는 지금도 대기 중이다.


태그:#쌍용차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