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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 어린이 날, 올해도 어김없이 '어린이 날'이 돌아왔습니다. '어린이 날'은 방정환 선생님이 중심이 된 색동회 회원들이 1923년 처음 만든 것으로 올해가 87번째입니다(출처: 색동회 홈페이지 ).

1년 중 언론매체에서 어린이들 모습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날이 바로 '어린이 날'입니다. 어른들의 욕심으로 일으키는 온갖 추태와 끔찍한 사건사고로 채우던 뉴스도 이 날만은 어린이가 주인공이 되고, 어린이 모습이 주요 뉴스거리가 됩니다. 환하게 웃는 어린이 모습만 봐도 절로 마음이 환해집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 어린이들 속 마음은 어떨까요? 과연 언론매체에 비치는 모습처럼 마냥 환하고 행복하기만 할까요? 미술 시간에 어린이들이 '요즘 내 마음'을 표현한 그림을 살펴보겠습니다(이 기사에 실린 그림은 6, 7년 전 제가 미술교과전담을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그린 마음 그림이 대부분이며 최근 그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5년, 여)
▲ '지금 나의 위치는 절벽 위. '하- 힘들다!' (5년, 여)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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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지금 나의 위치는 절벽 위. '하- 힘들다!'

'지금 나의 위치'가 '절벽 위'랍니다. 밑에는 높은 파도가 절벽 전체를 집어삼킬 듯 솟구치고 있는....... '하- 힘들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만 파도 속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뒤따라 굴러 떨어지는 돌들 모습 보이고.

벌써 십여 년 전부터 초등학생들에게 '가출하고 싶다',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 10대의 자살률이 높아지면서 초등학생 자살도 계속 늘고 있다고 합니다. 무엇이 아이들을 자살로 몰아갈까요?

(6년, 남)
▲ '머리 속에 가득찬 것들' (6년, 남)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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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머릿속에 가득찬 것들

머릿속에 '공부'와 '숙제'가 마구 뒤엉켜 있습니다. 학교에서 숙제를 무척 많이 내주는 줄 아실까봐 말씀드리면, 여기서 말하는 숙제는 바로 '학원' 숙제입니다. 고학년 아이들은 학교 쉬는 시간에는 물론이고 심지어 공부 시간에도 학원 숙제하느라 바쁩니다. 안 해가면 안한 문제 수대로 맞는 답니다.

숙제량이 만만치 않습니다. 밤늦게 집에 가서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니 숙제할 시간이 따로 없어 학교에서 해야 합니다. 학교에서도 다 못해 같은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서로 다른 쪽을 풀어서 답을 베껴가기도 합니다.

(6년, 남)
▲ '날 내버려 둬!' (6년, 남)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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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날 내버려 둬!

모범생에다가 공부도 썩 잘하는 남자 아이가 그린 그림입니다. 학교 공부는 뭐든지 잘 하고 늘 바르게 생활해 아이들이 부러워하는 이 아이에게는 이런 걱정이 전혀 없을 줄 알았습니다. 이런 그림을 그리고 나서 이 아이는 마음이 후련해졌다고 합니다. 다른 아이들도 이 아이 마음을 알았습니다. 우리 모두 다 같은 걱정과 고민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5년, 여)
▲ '피' (5년, 여)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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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

한 여자 아이가 울면서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제목도 '피'입니다. 충격적인 그림 때문에 아이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자기 반에서 자기를 자꾸 왕따시키는 '○○이를 죽이고 싶다'고 합니다.

그 당시 저는 미술교과전담 교사였는데 이 아이가 이 그림을 그리기 전까지 이 아이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뒤 아이의 얘기를 듣게 되었는데 아이는 울면서 자신이 겪은 일을 모두 얘기했습니다. 담임교사도 이 아이 마음이 이 정도였는지 잘 몰랐다고 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뒤 이 아이와 담임교사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 아이는 자신의 무거운 얘기를 털어놓은 뒤 마음이 밝아졌고, 친구들과도 다시 사이좋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면 실제로 상대방을 당장이라도 죽일 듯이 덤벼들며 싸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4년, 여)
▲ '공부만 잘 하면 뭐해? 싸가지가 없는데' (4년, 여)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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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5] 공부만 잘 하면 뭐해? 싸가지가 없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은 말에 어울리는 글씨체로 붓글씨를 써 보게 했더니, 한 아이는 이렇게 썼습니다.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싸가지가 없으면 못쓴다는 말, 분명 맞는 말이지요? 하지만 요즘은 '싸가지는 없어도 좋다, 공부만 잘해다오'하는 분위기가 대세인 것 같습니다. 이 아이가 지금 이런 잘못 돌아가는 분위기를 눈치챈 것일까요? 아니면 공부 잘 하는 반 아이 누구를 시샘하는 마음이 든 것일까요?  
             
(6년, 여)
▲ '도권아, 사랑해' (6년, 여)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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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6] 도권아 사랑해

도권이란 아이는 이 글씨를 쓴 여자 아이와 같은 반에 있는 남자친구 이름입니다. 다른 표현시간에는 시큰둥해도 도권이를 사랑한다는 표현은 꽤 적극적이고 열심히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아이는 '도권이를 좋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건이니까요.

아이들에게도 누구를 좋아하는 일은 목숨을 걸 일입니다. 사귀다가 주고받은 커플반지를 빼주고 쿨하게 헤어지는 커플도 있지만, 대부분 헤어진 충격으로 공부고 밥이고 생각이 없습니다. 이럴 땐 세월만이 약이지요.

(6년,남)
▲ '놀고 싶다' (6년,남)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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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7] 놀고 싶다

이 말보다 우리 아이들이 더 간절하게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을까요? 이 말은 이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바라는 말입니다. 학교에서 보면 아이들은 날마다 시도때도 없이 '선생님, 놀아요!', '놀아요!' 노래를 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정해놓은 교육과정 진도 나가지 말고 하루쯤 푹 놀게 하고 싶은데, 교사는 정해진 교육과정 지도하고 월급받는 신세라서 아이들이 놀자고 해서 무작정 놀게 할 수 만은 없습니다. 놀자는 아이들을 뿌리칠 때마다 늘 가슴이 아려옵니다.

(6년,남)
▲ '돈' (6년,남)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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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8] 돈

가장 쓰고 싶은 말을 써 보라고 했더니 '돈'을 썼습니다. 돈! 애 어른, 지위 높낮이를 따지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 없습니다. 공무원 중 가장 월급을 많이 받는 대통령도 돈 때문에 한번씩 난리를 치릅니다. 옛날에 비해 요즘 우리 아이들을 참으로 괴롭히는 물건, 괴물입니다.

돈 있고 없고가 단박에 표시 나는 요즈음, 돈 없는 부모를 만난 아이들은 돈 있는 부모를 만난 아이 앞에 그만 기가 죽고 맙니다. 아이들 중에 이 다음에 돈 많은 남자(여자)와 결혼하겠다는 아이도 많습니다.

(6년, 남)
▲ '자유' (6년, 남)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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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9] 자유

이 역시 요즘 우리 아이들이 가장 바라는 것입니다. 미술 시간에도 교사가 일방적으로 주제를 정해주지 말고, '자유화'를 그리게 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체육시간에도 교사가 정해 주는 활동 말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을 달라고 합니다.

실제로 '자유화'를 그리게 하고, '자유시간'을 주면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아이는 거의 없습니다. 몇 분도 안 돼 '선생님, 우리 뭐하고 놀아요?', '이거 해도 돼요?'하면서 교사 주변을 맴돕니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어른의 리모컨대로만 움직이는 로봇입니다.

(6년, 여)
▲ '내가 새라면' (6년, 여)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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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0] 내가 새라면... 날아다니기를 바라며...

아이들은 날아다닐 수 있는 새가 되고 싶어합니다. 닫혀진 공간에서 벗어나 푸른 하늘을 맘껏 훨훨 날아보는 꿈을 꿉니다. 이 그림을 그린 아이는 이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만은 새가 된 기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제가 그동안 만난  어린이들 세상은 오색찬란하지 않습니다. 영롱하거나 순백색이지도 않습니다. 어른들이 갖고 있는 만큼의 걱정과 고민과 슬픔을 아이도 똑같이 갖고 있습니다.

여든 일곱 번째 어린이 날인 오늘, 그 어떤 화려하고 넘치는 선물보다 우리 아이들 마음 속에 있는 걱정, 근심, 슬픔, 고통, 미워하는 마음부터 귀 기울여서 덜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어린이날, #어린이마음, #그림으로읽는어린이마음, #마음그리기, #초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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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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