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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여파로 일자리에 비상이 걸렸다. 사상 유례없는 취업대란으로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 정규직보다 우선으로 감원 대상이 되는 한편, 인턴들이 채용돼 비정규직 일자리를 줄이고 있어 비정규직은 잠재적 실업의 공포에 떨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취업대란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비정규직의 실태와 고민, 해법에 대해 몇 차례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지난 2006년 11월 3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법, 파견근로자보호법, 노동위원회법 등 비정규직 관련 3법이 직권상정돼 처리됐다. 9명의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비정규직법 날치기 처리 규탄`플래카드를 들고 단상을 점거하고 있다.
 지난 2006년 11월 3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법, 파견근로자보호법, 노동위원회법 등 비정규직 관련 3법이 직권상정돼 처리됐다. 9명의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비정규직법 날치기 처리 규탄`플래카드를 들고 단상을 점거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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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있으되 지켜지지 않는 법이 있다.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법으로, 보호를 받았다는 이들은 거의 없다. 최근엔 정부에서 법이 잘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개정안까지 내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부가 '비정규직 보호법'이라고 부르는 3개의 비정규직 관련법(이하 비정규직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법들은 2007년 7월 법 시행 후 2년 이상 근무한 계약직(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실상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실에서 이 법은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옥죄는 역할을 했다. 기업들은 외주화·도급화 등을 통해 정규직 전환 의무를 피하고 법을 무력화시켰다.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년 이상 근무하기 전, 이들을 자유롭게 자르는 '해고의 자유'를 누렸다.

법을 폐지하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정부는 '고용안정'이라는 법의 혜택을 받은 이들이 있다고 강조한다. 공공기관·은행권·유통업체를 중심으로 무기계약직(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하지만, 기존의 정규직에 비해 차등이 있는 노동자)으로 전환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과연 정부의 주장이 맞는 걸까? 

국민은행 비정규직→ 무기계약직... "월급 적지만 근로조건 나아져"

국민은행 노조는 2009년 임·단협에서 무기계약 전환자를 위한 새로운 정규직 하위직급의 신설을 요구할 계획이다. 사진은 지난 3일 서울 소재 국민은행 한 지점의 업무 광경.
 국민은행 노조는 2009년 임·단협에서 무기계약 전환자를 위한 새로운 정규직 하위직급의 신설을 요구할 계획이다. 사진은 지난 3일 서울 소재 국민은행 한 지점의 업무 광경.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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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조건이) 나아지고 있어요."

인천의 한 국민은행 지점에서 수납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주희(가명·41)씨의 말이다. 지난 3일 오전에 만난 그는 "은행 업계에 들어온 지 17년이 됐는데, 작년에 처음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면서 복리후생이 많이 좋아졌다"고 전했다.

이씨는 지난 1992년 한 상호신용금고에 입사한 후, 여러 은행을 거쳐 2003년 7월 국민은행에 입사했다. 월급은 120만원가량으로,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 노동자보다 훨씬 적었다. 이에 대해 이씨는 "나는 애를 키우다가 입사해서 그 정도는 감수했다"면서도 "같이 일하는 친구들은 차별을 받는 것에 대해 억울해 했다"고 말했다.

이씨가 입사한 때는 은행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뽑던 시기였다. 국민은행의 경우, 1999년 6월 비정규직 비율이 전체 직원의 25%였지만, 2005년에는 45.66%에 달했다. 또한 일선 지점 창구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하는 일에 큰 차이가 없었다. 다른 은행도 마찬가지였다.

2007년 7월 비정규직법이 시행됨에 따라, 금융노조는 은행에 비정규직 차별 시정을 요구했다. 국민은행의 경우, 노조에서 무기계약직 전환을 강하게 요구해, 2008년 1월 3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노동자 5006명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이씨도 여기에 포함됐다.

이씨는 "정규직만큼 능력이 되는데 단순 업무만 시키고, 임금은 여전히 적고, 승진이 잘 안 되는 부분이 불만"이라면서도 "고용안정이 됐고, 학자금·사택 지원 등 복리후생이 정규직과 같아졌다, 전반적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무기계약직 = 저임금·고용불안·승진 불가능... 그나마 노조 노력 덕분

서울대병원 사례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온전한 정규직으로 전환한 거의 유일한 사례다. 사진은 지난 2007년 10월 서울대병원 노조 집회 모습이다.
 서울대병원 사례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온전한 정규직으로 전환한 거의 유일한 사례다. 사진은 지난 2007년 10월 서울대병원 노조 집회 모습이다.
ⓒ 서울대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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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 노조는 2009년 임·단협에서 무기계약 전환자를 위한 새로운 정규직 하위직급의 신설을 요구할 계획이다. 이 경우, 국민은행 사례는 비정규직 차별 시정과 근로조건 개선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조의 요구가 실현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류현숙 금융노조 국민은행지부 대외·평등 본부장은 "노조가 강력히 요구하지 않았다면, 현재 수준의 처우개선은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고,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비정규직의 계약해지 가능성도 있었다"며 "현재 노조의 요구에 은행 쪽의 반응은 없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노조가 추진하고 있는 새로운 정규직 하위직급 신설은 부산은행·우리투자증권·현대증권 등의 금융권과 한국철도공사의 역무원 등 일부 공공부문에서 이뤄진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는 무기계약직 전환 사례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 무기계약직 전환은 기존 정규직과 다른 직군을 신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은행과 이마트·홈플러스 등의 유통업체, 대부분의 공공부문이 그렇다. 고용불안이 다소 해소되고, 임금 등의 근로조건이 조금 개선됐을 뿐, 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차별은 여전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에 의뢰한 '무기계약직 근로자 노동인권상황 실태조사(2008년 11월)' 결과에 따르면, 무기계약 전환자들은 여전히 적은 임금·고용불안·불가능하거나 제한된 승진 구조에 대해 큰 불만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무기계약 전환자의 평균 월급은 157만9천원으로 기간제 노동자(150만3천원)와 큰 차이가 없었으나, 정규직 전환자(238만6천원)와는 큰 차이를 보였다. 또한 무기계약자의 89.6%가 "승진이 불가능하거나 제한이 있다"고 밝혔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대표는 "무기계약 전환자들은 여전히 고용불안을 느낀다"며 "무기계약직이 고용이 정년까지 보장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방적인 계약해지가 가능하고 정규직보다 해고 사유가 광범위하다"고 밝혔다.

해고 위기에 처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열악한 삶 계속"

민주노총 비대위는 지난달 16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파견허용업무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에 대해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민주노총 비대위는 지난달 16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파견허용업무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에 대해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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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계약직 전환 사례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은 공공부문이다.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통해 2007년 12월 기준으로 6만7천여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불만은 상당히 높다. 무기계약 전환자 중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비정규직 문제를 개선시킬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복수응답(전체 200%)임에도 4.5%에 불과했다. 가장 많은 대답은 "차별 여전"(44.8%), "외주화가 늘어날 것"(44.6%), "계약해지 발생"(45%) 등의 순이었다.

이에 대해 조상덕 전국평생교육노동조합 위원장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후, 임금이 그대로이고 여전히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폴리텍대학 교사인 그는 2007년 10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그의 월급은 약 110만원으로 비정규직일 때와 큰 차이가 없다. 정규직은 교수지만, 조 위원장과 같은 무기계약 전환자는 교수가 될 수 없다.

또한 그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으면서도 현재 해고의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가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무기계약 전환자 126명 중 10% 가량을 줄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은 인턴을 채용하는데, 실업자들을 재취업시키는 우리는 실업자가 되게 생겼다"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지만, 비정규직과 다를 게 없는 열악한 삶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기계약 전환자 김수아(가명·40)씨는 "비정규직법으로 차별만 고착화됐다"고 강조했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민진(가명·33)씨는 "비정규직법으로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사람이 거의 없고, (나는) 정규직 전환돼도 이전 경력은 전혀 인정을 못 받는 등 차별을 받았다"며 "비정규직법이 성과가 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태그:#비정규직, #무기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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