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0일 행정도시 예정지 내 한 건설업체의 빈집 철거 장면. 뿌연 먼지가 일고 있다.
 지난 20일 행정도시 예정지 내 한 건설업체의 빈집 철거 장면. 뿌연 먼지가 일고 있다.
ⓒ 대전건설기계지부

관련사진보기


세계 최고 명품 행정중심복합도시를 만들겠다는 구상과는 달리 공사현장은 불법천국이었다. 행정복합도시 공사현장에선 종일 덤프트럭과 중장비 굉음이 그치지 않았다. 삼성, 포스코, 경남 등 10여 곳의 건설사에서 쉴 새 없이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활력이 넘쳐 보였지만 현장 건설노동자들의 얘기는 달랐다.

민주노총 소속 충남건설기계지부에는 지난해부터 현장 노조원들로부터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행정도시 건설현장에는 대전충남건설기계지부 소속 노조원들만 수백여 명이 일하고 있다. 현장에서 과도한 짐 싣기와 폐기물 관리 및 안전관리 소홀, 근무시간 초과 등 작업환경이 말이 아니라는 하소연이었다. 올해 초부터는 비조합원들까지 고충을 토로해 왔다. 한 덤프트럭 운전자는 '한나절만 일해도 먼지구덩이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작업복이 뿌옇고 목이 아프다'고 전해왔다.           

늘어만 가는 민원에 건설기계노조 몇몇 관계자들이 3월 초순경 현장 확인에 나섰다. 현장을 확인한 노조 관계자들은 경악했다. 

"생각보다 심각했어요. 한마디로 무법천지였어요. 일례로 먼지가 날리는 정도가 아니었어요. 맑은 날인데도 현장 곳곳이 짙은 안개가 끼어 있는 듯했어요. 세륜 시설을 제대로 갖추거나 이용하고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찾아볼 수가 없었고요. 곳곳에 산업페기물이 널려있거나 매립돼 있더군요." (충남건설기계지부 이상무 사무국장)

현장확인 나선 건설기계노조 "무법의 공사현장"

트럭 적재함 위에 철골구조로 만든 돌 거름망을 얹은 차량들. 건설사 측이 작업공정을 줄이려고 시행한 것이지만 차량 고장은 물론 운전자의 피로도 및 안전사고 위험 증가와 연료소비가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3월 16일 촬영)
 트럭 적재함 위에 철골구조로 만든 돌 거름망을 얹은 차량들. 건설사 측이 작업공정을 줄이려고 시행한 것이지만 차량 고장은 물론 운전자의 피로도 및 안전사고 위험 증가와 연료소비가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3월 16일 촬영)
ⓒ 충남건설기계지부

관련사진보기


과적에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고 있는 트럭 (3월 18일 촬영)
 과적에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고 있는 트럭 (3월 18일 촬영)
ⓒ 대전건설기계지부

관련사진보기


대전과 충남의 건설기계노조지부는 긴급회의를 열고 지난 16일부터 조직적인 현장 확인에 나섰다.

"대부분 덤프트럭이 화물적재함 위에 수백kg에 달하는 돌 거름망을 얹고 있었어요. 불법구조물이죠. 원래는 트럭에 돌을 싣기 전에 적당한 크기로 깬 다음 실어야 하는데 작업공정을 한 단계 줄인 거죠. 이게 왜 문제냐면 위험하기도 하지만 차가 쉽게 망가지고 기름은 곱절로 들어요. 작업 피로도도 엄청나구요. 지입으로 차 갖고 들어간 사람들의 생계수단이 망가지는 일이지만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항변도 못하는 거죠." (대전건설기계지부 김홍일 사무국장)

대부분 트럭이 과적을 하고 있었다. 세륜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도 드물었지만 그나마 있는 세륜 시설은 무용지물이었다. 공사차량들이 작업시간을 줄이려고 세륜장을 우회해 오고 갔다. 흙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최소한의 물을 뿌리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현장 곳곳엔 건설폐기물이 널려 있었고 폐타이어 등 건축폐기물이 매립돼 있는 곳도 있었다.  

'시정요구'에도 태연자약... 관할 업무 여부조차 모르는 행정기관 

25일. 거듭된 시정조치 요구와 현장점검에도 불구하고 불법구조물을 얹은 차량을 이용한 작업이 지속되고 있다.
 25일. 거듭된 시정조치 요구와 현장점검에도 불구하고 불법구조물을 얹은 차량을 이용한 작업이 지속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노조 관계자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관할 행정기관의 태도였다. 행정도시건설청은 연기군청으로 돌렸고, 연기군청은 행정도시예정지는 특별구역이라며 다른 상급기관에 관할을 떠밀었다. 뒤늦게 행정도시건설청과 군청 직원들이 자신들의 업무임을 인정했지만 시정조치가 내려지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필요했다.

"이런 곳은 처음입니다. 대부분 관할 행정기관에 현장의 불법사항을 알리고 시정조치를 요구하면 즉각 개선에 나섭니다. 그런데 이곳 관할 공무원들은 문제를 지적하면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해요. 단속하겠다는 답변을 얻어내기까지 꼬박 일주일이 걸렸어요." (충남건설기계지부 이상무 사무국장)

건설기계노조 관계자들은 또 누군가 노-노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현장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현장 감시활동에 본격 나서자마자 주민생계조합이 나서 가로막았어요. 원주민 중에 행정도시건설청이 주선하는 직업훈련을 마치고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일부 주민은 덤프트럭 노동자를 고용해 법인을 운영하기도 하는데 노조가 사사건건 방해해서 못해 먹겠다는 겁니다.

알고 보니 이분들은 노조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으려는 목적을 갖고 개입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더군요. 노조의 작업환경 개선 요구를 원주민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일로 받아들인 거죠. 누군가 노-노간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요." (대전건설기계지부 김홍일 사무국장)

25일. 건설현장 작업장에서 뿌연 먼지가 날리고 있다.
 25일. 건설현장 작업장에서 뿌연 먼지가 날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25일. 짐을 과도하게 실은 차량. 거듭된 시정요구와 약속에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 측은 현장을 지켜보고 있을 때만 제대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25일. 짐을 과도하게 실은 차량. 거듭된 시정요구와 약속에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 측은 현장을 지켜보고 있을 때만 제대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민주노총이 일자리 뺏으려고 개입' 악선전에 상처받은 조합원들

건설기계노조 관계자들은 일주일째 행정도시 건설현장으로 출근하고 있다. 노조관계자들이 현장을 돌며 지켜볼 때만 작업환경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함께 찾은 25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조가 처음 문제를 제기한 때보다는 많이 개선돼 있었지만 크고 작은 불법은 여전했다. 철골 돌 거름망을 얹고 다니는 트럭도, 과적 차량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과도하게 먼지가 날리는 현장도 많았다. 

한 공사현장 간부는 이날 노조관계자들이 덤프트럭을 세운 후 과적임을 지적하자 "당신들이 무슨 권한으로 작업차량을 세워 과적 여부를 확인하느냐", "이건 공사방해"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또 다른 공사현장 간부는 노조임원들이 "노동자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불법으로 이윤 챙기기에만 급급할 수 있느냐"고 비판하자 "최저입찰제에 의해 공사비가 저가 낙찰돼 법을 어기지 않으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답변했다.

이에 대해 행정복합도시 관계자는 "사업시행자인 토지공사 측과 협의해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히 조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연기군청 관계자는 "민주노총 측으로부터 차량 불법구조변경과 먼지 발생 등 여러 사안들에 대한 민원을 접수받은 후 계획을 세워 행정중심복합도시 공사현장을 중점적으로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영길 대전건설기계지부장은 "행정기관이 눈 가리고 아옹 식의 현장계도 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오는 31일 오전 11시 연기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근본적인 개선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시정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검찰 고발 등 대응수위를 높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행정복합도시 건설현장은 조합원을 비롯한 수많은 건설기계노동자들의 일터"라며 "공사과정부터 사업이 제대로 진행돼 세종시가 세계적인 명품도시로 태어나고 노동자들도 자부심을 갖게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건설기계지부의 측의 거듭된 지적에 일 주일여 만에 부착된 쇄석기의 물뿌리개. 위에 부착된 파이프가 물뿌리개다.
 건설기계지부의 측의 거듭된 지적에 일 주일여 만에 부착된 쇄석기의 물뿌리개. 위에 부착된 파이프가 물뿌리개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태그:#세종시, #건설노조, #건설기계지부, #행정중심복합도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