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고려대 수시 2-2에 응시했다가 탈락한 수험생 18명이 지난 17일 '전형 하자로 탈락했다'며 고려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이 소송에 참여한 학생에게 원고를 받아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고려대학교 정문 사이로 본관이 보인다.
 고려대학교 정문 사이로 본관이 보인다.
ⓒ 김한내

관련사진보기


수시모집 일정에 따라 고려대에 수시원서를 접수할 때만 해도 학교에서 내신으로는 전교 3등 안에 드는 내가 1차 선발에서 탈락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합격자 발표 결과는 나의 예상을 뛰어 넘었다. 학교에서 내신 점수로 10등 안에 드는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떨어졌고 10, 20위권 밖 학생들은 1차 선발에 합격하는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불합격 소식을 접한 뒤 처음엔 '내가 내신등급이 1.38이지만 그것보다 훨씬 내신등급이 좋은 학생들이 내가 지원한 학과에 많이 지원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차 선발에 합격한 학생 중엔 나보다 내신이 낮은 아이들도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아이들은 토익과 토플, 텝스 등 공인영어시험 성적은 물론이고 심지어 한자능력검정시험에서 딴 자격증까지 첨부한 경우가 다수였다.

고려대가 내놓은 입시요강에 따르면, 2-2수시 일반전형은 교과가 90%, 비교과가 10%이며 1차 선발에서 과 정원의 17배수를 뽑는다고 명시돼 있었기 때문에 내신이 합격의 당락을 좌우하는 데 크게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합격한 학생들의 사례로 봐선, 그들의 합격은 '비교과'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이상한 결과에 '혹시 나와 같은 경우가 많을까'하고 바로 고려대 입학처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역시나, 나와 같은 사례로 항의하는 글들이 게시판을 꽉 메우고 있었다. 개인적으론 비교과만 문제가 되는 줄 알았는데, 게시판 글들을 보니 '내신 3등급대인 외고학생은 합격하고 내신 1등급대인 일반고 학생은 탈락했다'는 글들도 꽤 있었다.

2년 동안 내신만 준비했는데, 1차 탈락이라니...

박종훈 경남도교육위원과 민태식 변호사는 지난 16일 오전 경남도교육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려대의 입시부정 의혹과 관련한 집단 소송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박종훈 경남도교육위원과 민태식 변호사는 지난 16일 오전 경남도교육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려대의 입시부정 의혹과 관련한 집단 소송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허탈했다. 1단계에서 과 정원의 17배수나 뽑는다고 했기 때문에 당연히 수시에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떨어지니 '1, 2학년 동안 내신공부 한 것이 다 헛수고였다'는 생각까지 들면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다. 이렇듯 비교과영역이 합격의 당락을 좌우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란 걸 알았다면 수시에 지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신공부 하는 시간에 차라리 공인영어시험이나 자격증시험을 공부했을 것이다.

고려대 2-2수시 일반전형 결과가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지만, 이미 결과는 발표됐고 아무리 여러 학생들이 입 모아 항의해도 당락이 번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언론들이 고려대 수시 결과에 의혹을 제기하고 해명을 하라는 내용의 보도를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 수능결과가 고려대에 지원할 수 있을 만큼 좋을지 자신 없어서 수시에 지원한 것인데, 떨어지고 나니 수능에 대한 부담이 훨씬 커졌다. 부모님들도 상심해 있는 나를 보시고는 속상해 하셨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나는 수능시험을 봤으며 다른 대학에 합격해 고려대 수시에 대해선 잊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또다시 몇몇 언론들과 시민단체, 교육단체들이 고려대 수시에 의혹을 제기하는 모습을 접하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 선생님께서 '고려대 수시에서 탈락한 이들이 심적 충격과 부당한 결과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데, 거기에 참여할 생각이 없냐'고 말씀하셨다. 부모님께서도 납득할 수 없는 결과로 마음고생을 심하게 앓았던 내 모습을 잊지 못하셨는지 '소송에 참여하라'고 격려해주셨다.

소송에 참여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물론, 나 자신이 입은 정신적 충격에 대한 피해보상 차원이지만, 그것을 넘어 공정하지 않은 고려대의 입시전형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고 이런 일이 다시는 없길 바라는 마음도 강했다.

다른 학교에 합격했지만, 고대 수시 의혹 풀고 싶다

이미 많은 언론들과 교육단체들이 지적했듯, 수시 2-2 일반전형과 관련된 고려대의 입시정책은 특목고 출신 학생을 우대했을 뿐만 아니라, 비공식적으로 고교 등급제를 적용했고 내신을 무력화 시켰다. 이는 3불 정책의 근간을 흔들고 결국엔 공교육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지방학생들을 차별했음을 이번 수시 결과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물론 최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고려대에 대해 '고교등급제를 적용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이는 쉽게 수긍할 수 없는 결과다. 실제로 외고 출신 지원자 58%가 합격한 데다, 동일 학과군에 지원한 수험생 중 교과성적이 높은 학생은 불합격하고 낮은 학생이 합격한 사례가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의 새로운 입시정책은 특목고에 혜택을 지원하여 일반계 고교 학생들을 직접적으로 차별하는 행위이며, 비교과 반영비율을 실질적으로 과대하게 높여 공교육을 무너뜨리고 사교육을 조장하는 행위다. 결국, 비교과와 관련하여 사교육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지방학생들을 기만하는 입시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소송에 참여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고 솔직히 아직까지도 소송의 승패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고려대의 입시정책이 소수 학생들을 특별대우하고 다수의 학생들을 차별하고 기만하는 행위라는 생각에는 변함없다. 또 공식적으로는 '문제없다'고 결론이 났어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혹을 누군가는 나서서 밝혀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송에 참여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다.

소송 이유, 후배들 같은 일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박종훈 경남도교육위원이 고려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장을 학생과 학부모들을 대신해서 17일 오후 창원지방법원에 접수시켰다.
 박종훈 경남도교육위원이 고려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장을 학생과 학부모들을 대신해서 17일 오후 창원지방법원에 접수시켰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이번 소송이 대학교의 특목고 우대 논란이 법정으로 이어지는 첫 사례고, 그 첫 소송이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송에 참여하는 인원은 아직 18명밖에 되지 않지만, 정의는 그것을 부정하는 다수보다 옳다고 여기고 기꺼이 실천으로 옮기는 소수에 의해 지켜진다는 믿음이 있으므로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도 고려대의 입시정책 중에서 무엇이 부당한지만 알고 있지 세세한 법률적 위반사항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박종훈 경상남도 교육위원과 민태식 변호사가 수험생의 대리인으로 참여해 소송에 힘이 되어주고 있다. 경남지역에서 시작한 소송이지만 서울 3명, 경기 5명, 부산 2명, 경남 4명, 대구·울산·인천·충북 각 1명씩 여러 지역에서 참여를 하고 있다.

고려대의 수시결과에 대해 의혹을 가지고 납득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각 지역마다 여러 명 있을 것이다. 그런 학생들이 용기를 내어 소송에 참여해준다면 소송의 규모가 커지고 사람들의 관심이 커져 아주 큰 힘이 될 것이다.

물론, 지난 17일 18명의 학생들이 이미 고려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지만 소장을 제출한 이후로도 관심 있는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계속 접수를 받고 있다. 소송의 승패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고려대의 입시정책에 대한 의혹을 풀고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 후배들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거대한 권력에 소수가 발버둥치는 무모한 소송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기 자신, 어쩌면 친구나 가족 등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가져주고 격려해 주었으면 좋겠다.


태그:#고교등급제, #고려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