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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의 기적'과 '조작의 기적'을 낳았던 2008년 일제고사(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한 재채점 결과 발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전수평가, 서열화하지 않겠다던 교육 당국의 의지가 어떻게 관철되는지 지켜볼 일이다.

결과도 결과지만 오는 30일 또 다른 일제고사를 앞두고 '일제고사'를 보는 우리 시각은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한번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먼저, 일제고사라는 평가의 방법이 교육적이라고 보는가? 둘째, 백번 양보해서 일제고사가 교육적인 평가방법이라 치자. 그렇다면 일제고사를 통해 아이들의 학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보는가? 셋째, 백번 더 양보해서 일제고사를 통해 아이들 학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일제고사의 평가 문항이 과연 아이들의 '학력' 혹은 '학업성취도'를 평가할 만한 문제로 이루어져 있는가?

필자는 초등학교에서 5년 동안 영어를 가르쳤다. 7차 교육과정 3, 4, 5, 6학년 영어 교과서와 교육과정을 가르쳤던 학급수와 함께 따져본다면 최소 8반씩 2년은 가르쳤으니 같은 교과서 교육과정을 16번씩은 가르친 셈이 된다. 그런데 지난 해 10월에 치러진 2008년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초등학교 6학년 영어 시험 문제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시험은 학업 성취도가 아닌 사교육 성취도 평가였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육과정에 따른 내용만 공부해서는 당황하거나 혹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시험이었기 때문이다.

첫째, 교과서의 예시 대화문에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생소한 표현이 전제 30문항 중 17문항이나 된다. 50%가 넘는 수치다. 문장수로 따지면 28문장이다. 이것은 단순한 단어의 대입 예를 들어 '진호는 11살입니다.(Jinho is 11 years old)'에서 '진호'라는 이름이나 '11살'이라는 나이 같은 단순 대입은 제외한 것들이다.

둘째, 듣고 해결해야 할 평가 문항이 너무 많다. 전체 듣기 평가 시간은 18분이다. 시험지를 나누어 받고 이름을 쓰고 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40분 중 반 이상을 문제를 듣고 푸는데 집중해야 한다. 문항수로 따지면 전체 30문항 중 20문항, 즉 66.6%가 듣기 문제이고, 객관식 문제 24문항 중 15 문항(62.5%), 주관식(수행평가라 이름 붙은) 6문항 중 5문항(83.3%)이 듣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문항이다.

물론 초등학교의 영어 교육과정은 듣고 말하기 중심이다. 의사소통 기능을 강조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아이들이 문제를 듣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평가 방식이다.

셋째, 문항수가 너무 많다. 30문항이다. 40분 시험 시간 동안, 문제를 제대로 듣고, 읽고, 풀고 답지에 맞게 표시했는지 검토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거의 1분30초에 1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초등에서 이런 식으로 시험을 본 적은 없다. 게다가 우리 나라 언어도 아닌 외국어를. 결국 이런 문제 풀이에 아주 익숙해진 학생들이 아니라면, 대부분 시험지를 끝까지 보기도 전에 시험시간이 끝나버린 꼴이다. 성취도를 보자는 것인지 시험문제연습 실력을 보자는 것인지 목적 자체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넷째, 수행평가라고 들어 있는 6개의 문항은 평상시 교육과정에서 요구하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수행평가와 거리가 멀다.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과 반응을 유도해야 할 수행평가와 정해진 답만 써넣어야 하는 단답식 문제와 구분이 가지 않게 해 놓았다.

언어는 창조적인 인간의 활동 중 하나다. 그것은 외국어를 습득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배운 것을 끌어다가 새롭게 문장을 창조해 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문제제기를 가볍게 보실 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전혀 영어 사교육을 받지 않은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에게 교과서 영어를 가르쳐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이들이 전혀 다른 언어의 체계를 받아들이는 것을 얼마나 어떻게 힘들어하는지, 그 과정이 왜 자연스러운 놀이의 과정이 되어야 하는지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교과서에 나온 지문을 달달 외워서 시험을 보던 학력고사에서 교과서 지문 밖에서 출제되어 아이들의 문제해결능력을 평가하는 수학능력시험으로 문항 개발의 관점이 달라진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초등학교 6학년, 이제 겨우 영어를 배운 지 192시간(3학년 34시간, 4학년 34시간, 5/6학년 64시간씩, 192시간은 초등학교 40분 수업 시간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60분을 1시간으로 잡을 경우 더 적은 시간이다)이 채 안된 아이들에게 그간 배운 것을 모두 기억하고 이를 총동원해서 새로운 구문을 만들어 사용하고 이를 이해하여 문제를 해결하라고 한 것은 너무나 지나친 요구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외국어 영역 수학능력시험을 보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영어 사교육비만 몇 조원에 달하는 현실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웬만큼 시간 들여 공 들여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카세트 녹음기가 아니다. 한 번 들려주면 기억했다가 재생할 수 있는 아이는 없다. 자신의 지난 날을 조금만 떠올려봐도 단어 하나 외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아이들이 느끼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그렇기에 지난 2008년 성취도 평가는 학업성취도 평가가 아니라 사교육 성취도 평가였던 것이다. 이런 사교육 성취도 평가를 '진단평가'라는 명목으로 다시 시행하려고 하는 교육 당국은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더구나 이를 점수화 서열화해서 결과를 발표하겠다는 비교육적 발상을 철회해야 할 것이다.

<7차교육과정 총론>
라. 학교에서 실시하는 평가 활동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고려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⑶ 교과의 평가는 선다형 일변도의 지필 검사를 지양하고, 서술형 주관식 평가와 표현 및 태도의 관찰 평가가 조화롭게 이루어지도록 한다.
⑹ 학교와 교사는 학교에서 가르친 내용과 기능을 평가하도록 유의한다. 학생이 학교에서 배울 기회를 마련해 주지 않고, 학교 밖의 교육 수단을 통해서 익힐 수밖에 없는 내용과 기능은 평가하지 않도록 유의한다.

<초등학교 3학년~6학년 1학기 영어교육과정 대화문에 나오지 않았던 문장>
<듣기 2번> Can we get it?
          How about this kitty cat?
<듣기 3번> I wanted to go skiing.
          But I couldn't.
          It rained all day long.
<듣기 4번> I want to buy some carnations for my mom.
          Anything else?
          I want some flowers for my friend's birthday.
<듣기 6번> Oh, you had the Olympic Games this year.
          Not really.
<듣기 7번> Why not?
          Get some rest.
<듣기 8번> Let's buy a birthday present for Julie.
<듣기 9번> How's it going?
          What's the date today?
<듣기10번> What colors do you like?
<듣기11번> Who's your favorite player?
<듣기12번> Don't worry about it. (예문 4번)
<듣기13번> Thanks a lot (예문 3번)
<읽기18번> I was happy today because I had music class.
          I had Korean, science, and art classes, too.
<읽기21번> It's the second Sunday in November.
<읽기23번> It's very good for you.(예문3)
          It's time to go to school.(예문4)
<수행평가 1> I want to go to the library.
          Will you call me on Saturday before you go?
<수행평가 3> I went to Disneyland with my grandfather.
<수행평가 4> What do you hope to get as a present?
          I hope to get a watch.

영어 지문이 빽빽했던 옛날 교과서와 지금 초등학교 영어 교과서는 많이 다르다. 색이 들어간 것도 있지만, 교과서 내용에 '지문'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각 단원 1차시와 2차시에 배우게 되는 예시 대화문이 시디나 테이프 형태로 아이들에게 제공된다. 위의 문장은 3학년부터 6학년까지 교육과정이 제시하고 있는 이 대화문에는 나오지 않았거나, 여기 저기서 나왔는데 새롭게 연결 지으면서 새로운 구문이 된 것들이다.


태그:#일제고사,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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