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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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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지나간 한 해는 만수(萬愁)의 한 해였다. 정치, 경제, 사회 그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해결되는 것 없이 시름덩어리로 점철된 만수의 한 해였다. 왼쪽 날개를 꺾어 버리겠다는 듯 오른쪽 날개(우익)만 푸드덕거리니 이데올로기의 다양성은 곤두박질치고, 민심의 소리를 가로막던 컨테이너(일명 명박산성)는 청수(廳首)의 아부처럼 보이는 공권력의 오용이었다.

끊어졌던 철로가 연결되고, 단절되었던 인적 왕래로 분단의 아픔이 서서히 아물어가는가 했더니 지난 한 해 동안 이 모든 것이 도로아미타불 되며 민족통합을 꿈꾸던 가슴을 가위에 짓눌리게 하는 묵직한 하중(荷重)으로 되는 한 해였다.

지난 한 해, 시골 쥐가 서울 쥐 흉내 낸 시간

요즘의 교과서에도 나오는지 모르지만 필자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 '시골 쥐와 서울 쥐'라는 내용의 글을 교과서에 읽었던 게 기억난다.

소띠 해가 밝아 온다.
 소띠 해가 밝아 온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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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농가에서 살며 토광 바닥에 떨어진 벼나 무말랭이 정도를 주워 먹으며 사는 시골 쥐와 휘황찬란한 서울의 양옥집 부엌에서 맛난 고기반찬을 훔쳐 먹으며 사는 서울 쥐는 친구였다.

사전 찾아보니
만수(萬愁) : [명사] 온갖 시름.
우익[右翼] : [명사] 1 새나 비행기 따위의 오른쪽 날개. 2 <군사>오른쪽에 있는 부대. 또는 대열의 오른쪽.
청수[廳首] :[명사]<역사> 재인청의 우두머리.
재인청[才人廳] :[명사]<역사> 조선 후기까지, 경기·충청·전라 세 도(道)의 직업적 민간 예능인의 연예 활동을 관장하던 기구.
명박[命薄]하다 : [형용사]운명이나 팔자가 기구하고 복이 없다.
시골 쥐를 방문한 서울 쥐가 친구인 시골 쥐가 형편없어 보이는 것들을 먹고 사는 것을 보고는 서울로 올라가면 좋은 집에 살면서 맛난 것들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며 함께 서울로 올라가 살자고 꼬드기고, 이 꼬드김에 넘어간 시골 쥐는 서울 쥐를 따라 서울로 올라간다.

서울로 올라간 첫째 날, 서울 쥐가 말한 대로 휘황찬란한 서울 풍경에 시골 쥐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천국이라도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저녁이 되어 부잣집으로 숨어 들어가 맛난 음식을 훔쳐 먹으려는 순간 누군가가 부엌으로 들어오는 인기척과 쥐를 잡으려고 풀어 놓은 고양이 소리에 혼비백산한 시골 쥐는 비록 무말랭이나 잔반 찌꺼기를 주워 먹으며 살지라도 마음 편하게 사는 게 제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금 시골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였다.

살림 밑천이던 소가 한여름 개 값도 안 되는 똥값 세월이다.
 살림 밑천이던 소가 한여름 개 값도 안 되는 똥값 세월이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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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과 삼청교육대로 상징되는 군사정권의 쇠사슬에서 벗어나 시골 쥐처럼 조금은 한가롭게, 할 말 마음껏 하며 자유가 뭔가를 조금씩 누려가던 사람들이 고기반찬으로 흔들어 보이는 경제발전의 떡밥에 넘어가 인기척에 쫓기고 고양이 발자국소리에 가슴 졸이며 사는 서울 쥐 같은 신세가 된 한 해였다.

소띠 새해, 어렵겠지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 소'처럼 쥐의 해에 일어났던 이런저런 모든 지난한 일들을 깡그리 극복하고 복구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소값이 똥값 된 세상, '우골탑'이 '성골탑' 될까 겁나

대학을 속되게 '우골탑'이라고 이르던 시절도 있었다. 우골탑이란 말은 가난한 농가에서 소를 팔아 마련한 학생의 등록금으로 세운 건물이라는 뜻으로, '대학'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소는 그만큼 농가에 있어 전 재산일 수도 있을 만큼 커다란 자산이었다. 대학이 곧 출세라는 등식이 성립되던 시대에 자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이거나 딸자식을 결혼시킬 때 커다란 재산목록으로 처분하던 게 소였는데 작금의 상황은 개값보다도 더 싼 게 소값이 되었다.

우직하기만 한 소, 농부들의 마음이다.
 우직하기만 한 소, 농부들의 마음이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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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만원이면 젖소 송아지 한 마리를 살 수 있다고 하니 이거야말로 한여름 똥개값보다도 못한 똥값이다. 시골 농가의 커다란 자산 목록이었던 소값이 똥값으로 전락하니 소를 팔아서 보낼 수 있던 대학도 사정이 달라졌다. 물가를 앞지르는 등록금 인상으로 똥값이 된 소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으니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도우미로 나서는 여학생들도 등장했다는 암울한 소식이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도우미로 나선 여학생들이 단순하게 심부름 정도의 아르바이트를 벗어나 웃음을 팔고 몸까지 파는 성매매까지 하고 있는 세태가 되었다고 하니 속되게 대학을 이르던 '우골탑'이 '성골탑'이라는 비아냥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니 아찔해진다.

세월이 변했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니 흘러가는 세월, 달라지는 가치관, 변하는 세태를 거부할 수는 없으나 이왕 변할 것 좀 더 곧고 곱게 변했으면 좋으련만 고약하게도 변해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깊숙하게 파인 멍에 자국에 마음이 아파온다.
 깊숙하게 파인 멍에 자국에 마음이 아파온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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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의의 전당이라고 하는 국회의사당에서 도끼날이 번뜩이고 백색분말이 풀풀 날려도 세월은 가고, 전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들을 상대로 한 연쇄 살인 같은 사퇴 강요가 끊이지 않아도 민심의 흐름은 끊이지 않으니 새해는 밝아오고 희망의 씨앗은 멸종되지 않는다. 

뚜벅뚜벅 우보(牛步)로 가자

소!

어쩌다 보니 한여름 개값보다도 못한 똥값으로 전락한 신세가 되었지만 얼마나 우직하고 믿음직스러운 동물인가.

사람들에게야 우유나 노동력을 제공해 주고, 살코기와 가죽까지 제공해 주니 우직하고 좋은 동물이지만 소의 처지에서 보는 인간들은 노동력을 착취하고 자신들을 도륙하는 위협적인 존재일 뿐일지라도 세월의 흐름에 발맞춰 뚜벅뚜벅한 발걸음으로 새해 아침으로 다가오는 게 소의 심성이며 밝아 오는 새해에 거는 희망이다. 

새해, 잘 되길 기원해 본다.
 새해, 잘 되길 기원해 본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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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어도 '속도'는 재촉되겠지만 좀 천천히 가자. 바삐 변하는 세상에 적응해야 하니 몸뚱이는 바쁠지라도 생각만이라도 우보(牛步)로 천천히 가자. 살아오며 무엇이 잘못된 것이며, 무엇을 실수한 것인지 되돌아보며 민심의 강산이 어떻게 소용돌이치며 변해가고 있는지도 두루두루 살펴보며 천천히 좀 가자.

서울 쥐처럼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현혹되어 가슴 두근거리며 사는 경제 쥐가 되지 말고 조금 덜 먹고 조금 느리더라도 사는 맛을 되새김질하는 소처럼 살아가는 맛을 우걱우걱 되새김질할 수 있는 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외연이든 내연이든 할 것 없이 지난 쥐띠 해처럼 '청수'의 아부 같은 지혜(?)와 백색분말 풀풀 날리는 반목이 거듭된다면 2009년에는 '만수(萬愁)'를 넘어 나라와 국민 꼴이 더 '명박'해진다.

끌어 주고 당겨 주며 함께 쉴 수 있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끌어 주고 당겨 주며 함께 쉴 수 있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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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에에 짓눌린 누렁소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근하신년 만사여의(謹賀新年 萬事如意)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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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기축년, #소띠 해, #만사여의, #송구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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