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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니메이션을 구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무엇일까? 부드러운 움직임이나 뮤지컬적 구성, 가족애에 대한 강조 등을 꼽을 수 있지만, 핵심은 미국 애니메이션 대부분이 캐릭터 중심으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으로 스토리와 액션에 많은 비중을 두기도 하지만, 근본은 캐릭터에 있다. 물론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도 캐릭터의 중요성은 상당하다. 캐릭터의 호감도가 작품의 흥행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 애니메이션은 커다란 사건이 있고 치밀한 설정이 존재한다. 반면에 미국 애니메이션은 캐릭터를 중심에 배치하고 캐릭터의 특성에 기댄 에피소드로 극을 이끌어간다.

- 박인하, <월트 디즈니 vs 미야자키 하야오> 중에서

 

전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을 미국과 일본이 양분하다시피 하고 있다는 것쯤은 굳이 애니메이션 마니아가 아니어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의 차별점이 뭐냐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전문가나 마니아층을 제외하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레 겁 먹을 필요는 없다. "만화나 인형을 이용하여 그것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촬영한 영화"란 사전적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애니메이션 분야의 역사가 일천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개괄하는 데 그리 많은 수고가 필요하지 않다. 관련 서적을 몇 권 읽고 나면 대략의 윤곽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그중에 박인하의 <월트 디즈니 vs 미야자키 하야오>도 포함된다. 이 책은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을 각각 대표하는 월트 디즈니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개인사 외에도 애니메이션의 역사와 이론을 중층적으로 서술하고 있어 저자가 배치해 놓은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애니메이션의 어제, 오늘, 미래의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서두에 인용한 대목도 이 책의 일부이다. 물론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의 차별점이 전부 설명되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기술적인 측면(예컨대 리미티드 기법)만 강조한 대답이 아니란 점이 마음에 든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일본 애니메이션은 커다란 사건이 있고 치밀한 설정이 존재하는 반면 미국 애니메이션은 캐릭터를 중심에 배치하고 캐릭터의 특성에 기댄 에피소드로 극을 이끌어간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예전에 즐겨 보았던 미국 애니메이션들(톰과 제리, 미키마우스, 도널드 덕 등등)을 회상하면 내러티브(인과 관계로 엮인 실제적, 허구적인 이야기)는 온데간데없이 익살스런 캐릭터들만 잔뜩 떠오르는 반면 일본 애니메이션들은 상대적으로 내러티브의 복원률이 높은 편이다.

 

최근 EBS와 케이블에서 재방영되는 70, 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은하철도 999, 캔디, 미래소년 코난 등등)을 보고 있노라면 마들렌 과자 한 조각으로 기억을 되살리는 마르셀(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주인공)처럼 지금 내가 보는 바로 그 장면을 응시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곤 한다.

 

단정하긴 어렵지만 이를 통해 내러티브가 결여된 이미지보다 내러티브가 결합된 이미지가 좀더 복원하기 쉽다는 유추를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미국 애니메이션이 내러티브를 결여하고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알라딘> <미녀와 야수> <인어공주> <라이언 킹> <토이 스토리> 등과 같은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나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는 <심슨 가족(The Simpsons)> 등은 딱히 내러티브가 약하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오늘 인용한 대목을 일률적으로 적용할 경우 자칫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다. 캐릭터에 강점을 보이는 미국 애니메이션과 정교한 내러티브가 강점인 일본 애니메이션 사이에서 과연 한국 애니메이션은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꿈과 환상을 만들어파는 사업가 월트 디즈니 vs 인간가치를 꿈꾸게 하는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박인하 지음, 페퍼민트(숨비소리)(2006)


태그:#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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