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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 때 자살특공대 가미카제(神風)로 참여해 전사한 조선인 탁경현(卓庚鉉)을 기리는 위령비가 경남 사천에 건립되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천시는 오는 10일 '귀향 기원 위령비' 제막식을 열 예정이다. 이 위령비는 사천시 서포면 외부리 체육공원 안에 4.56m 높이로 세워졌다.

위령비가 세워진 터는 사천시가 제공했으며, 위령비 건립에 들어간 비용은 일본 여배우 구로다 후쿠미(黑田福美·52)씨가 댔다. 위령비는 우리나라 조작가가 조각했다.

앞면에는 "태평양전쟁 때 사천에서도 많은 이들이 희생되다. 전쟁 때문에 소중한 목숨을 잃은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비노니 영혼이나마 편안하게 잠드소서"라고, 뒷면에는 "평화스러운 서포에서 태어나 낯선 땅 오키나와에서 생을 마친 탁경현. 영혼이나마 그리던 고향 땅 산하로 돌아와 편안하게 잠드소서"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탁경현 귀향기념 위령비', 일본 배우 구로다 후쿠미가 추진

탁경현이 가미카제로 출격하기 전의 모습.
 탁경현이 가미카제로 출격하기 전의 모습.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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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출신인 탁경현은 미쓰야마 부미히로(光山博文)로 창씨개명 했으며, 1945년 5월 11일 전투기를 몰고 가고시마 기지에서 출격, 전사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5살.

2001년 일본에서는 숨진 한국인 가미카제의 약혼자와 살아남은 일본인 가미카제 대원의 사랑을 그린 영화 <호타루>로 제작되기도 했다. 당시 영화 속 한국인 가미카제는 탁경현을 모델로 했다.

탁경현은 일본 입명관(리쓰메이칸)중학교와 교토약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육군항공대에 입대해 가마카제에 차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그는 자살 공격 전 송별회에서 아리랑을 부르며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구로다 후쿠미씨는 지난 3월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사천에 위령비 건립 계획을 밝혔다. 당시 그가 밝힌 위령비 이름은 '한국인 탁경현 귀향기념 위령비'였다. 제막식도 그가 가미카제로 출격하기 하루 전날을 기념해 열린다.

구로다씨는 17년 전 꿈속에서 한국인 가미카제 청년의 꿈을 꾸었다고 밝혔다. 그 뒤 그는 야스쿠니 신사의 군사박물관(유슈칸)에 모셔진 탁경현의 사진을 확인하기도 했다. 여러 차례 그는 탁경현의 고향을 방문했으며, 유족과 사천시 관계자와 위령비 건립을 논의해 왔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구로다씨는 지난 3월 기자회견 때 "처음에는 자그마한 비석이라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비석은 점점 커졌다. 한·일 교류의 가교가 됐으면 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사천시의원 "탁경현은 강제 징용된 한국인과 다르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사천시의회와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사천진보연합은 6일 사천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령비 건립 반대를 촉구한다.

이정희 사천시의원(민주노동당)은 "우선 절차적으로 맞지 않다. 사천시가 총선 기간 중에 열린 시의회 임시회 때 보고를 해서 알았다. 보고 내용을 들어보니 위령비를 세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여러 의원들이 반대 의견을 냈다"고 말했다.

이 시의원은 "자료만으로 볼 때 탁경현은 소학교부터 일본에서 다녔고 가미가제로 전사했다. 당시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한국인과 다른 모습이다"며 "위령비를 세워서 관광자원으로 쓰겠다는 건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일본 여배우 구로다씨가 꿈속에 나타났다고 하는데, 그것도 믿을 수 없다. 부모를 그리는 마음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출격 전에 탁경현이 아리랑을 불렀다고 하지만 그런 사실도 믿을 수가 없다. 그는 자원에서 일본 군대에 들어갔다. 더군다나 사천시가 터를 제공한 것도 맞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위령비를 꼭 세워야 한다면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한 사과부터 먼저 해야 한다. 비문을 봐도 그런 내용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이삼수 사천시의원(무소속)은 "개인 터에 그런 비를 세워도 눈총을 받을 것인데, 사천시에서 터를 제공했다고 하니 더 문제다. 의회에서도 문제제기를 했다"면서 "당시 일본 군대에 자원 입대한 사람을 어떻게 이 나라에서 마치 유공자처럼 기릴 수 있느냐"라고 따졌다.

사천진보연합 관계자는 "일본은 사과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일도 제대로 못하는데, 자원해서 일본 군대에 들어가 일제를 위해 죽은 사람을 기리는 위령비를, 그것도 자치단체가 터를 제공해서 세운다는 것은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천 지역의 다른 시민단체 관계자는 "6일 기자회견을 통해 위령비 건립의 부당성을 알릴 것이다. 그런데도 위령비를 철거하지 않고, 더구나 제막식을 거행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 책임은 사천시가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사천시청 담당자는 "나라가 힘이 없을 때 당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일본 특공대로 차출된 것으로 안다"면서 "처음에는 탁경현 때문에 비석을 세웠지만 태평양전쟁 때 죽은 사천 출신의 영혼을 함께 위령한다는 내용으로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배우 구로다씨가 탁경현 때문에 위령비를 세우자고 했지만 실제 세운 목적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다"고 덧붙였다.


태그:#가미카제, #탁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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