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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모 대학 강사로 있을 때 일이다. 일부 대학에서 교수평가제로 시끄럽던 때였다. 제자가 스승을 평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청을 높였던 일부 교수들의 분노가 지금도 생생하다. 마치 지금 동국대학교가 강의평가를 공개하자 일부 대학 교수들이 시기상조(연세대 김동훈 대외협력처장)라고 난리를 친 것처럼.

 

그러나 그들도 대세를 거스르지는 못했다.

 

결국 필자가 강의했던 대학도 교수강의평가제가 시행되었다. 학생이 자신의 성적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들었던 과목에 대한 교수강의평가를 해야만 가능하도록 되어 있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필자가 강의를 담당했던 과목에서 학생들의 평가는 냉정했다. 우려했던 결과와는 다르게 학생들은 상당히 객관적으로 평가했다.

 

필자가 받았던 강의평가 중 한 과목은 평균 이하였다. 솔직히 말해 그 과목은 매학기 강의를 했던 과목이어서 다른 과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의 준비를 소홀히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그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명의 여지는 없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물론 그 때는 강의평가가 공개되지는 않았다. 만일 강의평가가 공개되었다면? 필자는 솔직히 다음 학기 강의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처음 당했던 그 창피함은 자신에게 준엄한 채찍이 되었지, 변명의 여지는 없었다.

 

다음 학기 강의준비를 방학 동안에 시작했다. 지난 학기동안 하지 못했던 부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수업을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해 심지어 유머집까지도 공부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많은 분량의 공부를 주문했다. 한마디로 지겹도록 공부를 같이했다.

 

솔직히 적당한 오기도 생겼다. '그래, 마음 놓고 평가해 봐라'는 심정으로 학생들에게 오히려 많은 분량의 레포트를 제출하도록 했고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제외하고도 수시시험과 임시시험을 2주마다 보았다. 그것도 정규시간이 아닌 0교시에 대강당에서. 그리고 시험지는 반드시 꼼꼼하게 평가하여 점수화했고 그 결과를 즉시 알려 주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학생들은 오히려 많은 공부를 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그래서 필자는 연세대 김동훈 대외협력처장이 "강의를 평가할 때 단순히 숙제 덜 내주고 편하게 해주는 것을 좋게 평가할 수도 있다"면서 "학생과 교수 모두가 성숙했을 때 가능한 문제이며 아직은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본다"고 한 말(<경향신문> 2.27일자 기사 '동국대, 갈등 커지는 강의평가 공개')에는 조금도 동의할 수가 없다.

 

교수들과 학생들, 그렇게 미숙하거나 어리석지 않다

 

이런 논리는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다. 학생과 교수가 성숙했을 때 가능한 일이라면 그동안 미숙한 교수들이 강단에서 미숙한 강의를 해 왔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행위밖엔 되지 않는다. 미숙한 교수들이 강의를 하면서 왜 등록금은 그렇게 많이 올리는지, 매년 각종 명목으로 학교의 지원을 받아 미숙한 교수들이 미숙한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도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는 않다고 믿고 싶다. 우리나라 대학 교수들과 학생들이 그렇게 미숙하거나 어리석지 않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만일 미숙함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을 부정하고 싶은 일부 교수들의 교수답지 못한 자괴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야를 돌려보라. 몇 년 전까지도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적 논문들 중에 우리나라 교수들의 논문들도 당당히 각광받고 있지 않는가. 그것도 한 두 편의 논문도 아니고.

 

이제는 솔직하게 자신감을 가지고 나가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일부 연구하지 않는 교수들 때문에 전체 교수들이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현상이 또 다시 반복돼서는 안 된다. 만일 그 제도가 바람직한 것이고 우리가 언젠가는 지향해야 할 제도라면 적당한 시기를 탓하며 기다릴 것이 아니라 서둘러도 늦은 감이 있다고 고백하자고 말하고 싶다.

 

필자의 우둔한 생각을 돌이켜보면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만에 하나 그 당시 교수강의평가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적당한 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오히려 더 많은 강의시간을 배정받기 위해 학생들 대신 학과장 눈치나 보았을 것임이 틀림없다.

 

창피함은 잠시일지 모른다. 단지 그 창피함을 피하고자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한다면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영원히 치유할 수 없는 어리석은 우를 또 한 번 저지를 것 같다는 생각이다.


태그:#교수강의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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