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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명달 할머니의 안방에 마련된 빈소에 영정과 국화꽃이 놓여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 채수영씨가 김우명달 할머니의 영정을 들고 앞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위안부 할머니가 꽃상여를 타고 하늘나라로 갔다.

14일 오전 지리산의 한 자락에 있는 경남 산청군 금서면 지막리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십자가와 예수상을 붙인 꽃상여를 메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 꽃상여를 탄 주인공은 김우명달 할머니. 올해 89세인 김 할머니는 지병을 앓다가 지난 12일 저녁 운명했으며, 3일장으로 이날 장례가 치러진 것.

▲ 마을 사람들이 안방에 있던 시신을 들고 나와 상여에 놓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 김우명달 할머니의 운구가 진행되자 마을사람들이 부둥켜 안고 울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김 할머니가 평소 다녔던 금서교회 장성덕 목사의 안내로 장례식이 열렸다. 할머니가 혼자 살았던 집 안방에 마련되었던 조그마한 빈소에는 성경책과 국화꽃이 놓여 있었다.

김 할머니는 이곳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산청읍의 한 동네에서 태어났는데, 30여 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함께 이곳에 와서 살았다. (사)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되어 만주 봉천에서 모진 고통을 겪으시고 해방 후에도 온갖 후유증으로 고생하셨다.

이날 장례식에는 강주혜 정대협 사무처장을 비롯해,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경남모임'(아래 경남모임) 소속 회원들이 참석해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았다. 김 할머니의 친정 조카들이 상주 역할을 했다.

▲ 김우명달 할머니의 장례식에는 만장이 1개가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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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명달 할머니가 살았던 집 안방. 김 할머니의 시신이 든 각을 받쳤던 나무토막이 그대로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경남모임' 소속 채수영씨가 할머니의 영정을 들고, 마을주민들이 상여를 메고 뒤를 이었다. 마을 주민이 만장을 들고 맨 앞에 섰으며, 주민과 신도들이 뒤를 따랐다. 마을주민들은 "불쌍하다"는 말을 하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할머니가 살아 있을 때 도우미로 활동했던 양난희(45·함양)씨는 "할머니께 틈틈이 와서 놀기도 하고 반찬도 해드렸으며 가까운데 놀러 가기도 했다"면서 "언젠가 병원에 간 적이 있었는데 할머니께서는 과거를 숨기고 싶으셨는지 의사한테 과거를 말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 김우명달 할머니가 심은 것으로 보이는 파가 집 한 귀퉁이에서 자라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 김우명달 할머니의 집 대문에는 우편함이 주인을 잃은 채 쓸쓸한 모습으로 걸려 있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장성덕 금서교회 목사는 "훌륭한 할머니셨다. 남의 말도 절대 하지 않으셨다. 교인들도 할머니를 잘 모시기도 했다"면서 "할머니는 이전의 아픔에 대해 전혀 내색하지 않으셨고, 불평도 없었다"고 말했다.

또 장 목사는 "할머니는 늘 편안하게 죽기를 바랐는데, 그동안 친정 조카들이 보약도 해드리기도 했다"면서 "생활도 근검절약했는데 우리들이 본받을 점이 많았다"라고 덧붙였다.

꽃상여를 메고 옮기면서 앞소리꾼은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북망산천 나는 간다. 내가 살던 우리 동네 우리 집도 하직하고. 우리 친구 다 버리고 나는 간다"라고 말하자, 상여꾼들이 "어허 어허 어허야 월가리 넘자 너얼"이라며 장단을 맞추었다.

▲ 김우명달 할머니가 혼자 살았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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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명달 할머니를 태운 꽃상여는 마을 앞을 지나 마을 뒷산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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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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