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녀산성으로 가는 길은 비류수 혼강을 건너 포자연(泡子沿)과 검가구(劍家溝)로 이어진다. 환인 시내에서 오녀산성까지 8Km 정도이며, 이곳 검가구에서 오녀산 아래까지는 버스를 갈아타고 이동한다.

▲ 오녀산산성 표지판: 유네스코 문화유산임을 표시하고 있다.
ⓒ 이상기
일부 사람들은 등산 겸해서 걸어가기도 하지만 보통은 버스를 이용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오녀산성이 우뚝하게 솟아 있다. 오녀산 정상은 높이가 823m라고 하는데 버스를 타고 해발 600m 정도까지는 오르는 것 같다. 매표소 입구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표시가 새겨진 ‘오녀산 산성’이라는 붉은 글씨가 선명하다.

▲ 관광객을 실어나르기 위해 서 있는 가마
ⓒ 이상기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열여덟 굽이(十八盤)의 길이며, 이것을 계단으로 오르면 999개라고 한다. 그 길이 멀고 가팔라서 노약자들을 위한 가마꾼들이 대기하고 있다. 우리 일행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계단을 밟아 올라간다.

오녀산성은 비류수 혼강을 끼고 우뚝 솟아있다. 삼국사기에서 주몽은 3명의 현인과 함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졸본천(卒本川: 魏書에서는 흘승골성(紇升骨城)이라고 표현)에 이르게 되는데 이 졸본천이 바로 비류수 혼강이다.

▲ 오녀산의 웅장한 모습
ⓒ 이상기
“그 토양이 비옥하고 아름다우며, 산하가 험하고 견고함을 보고 거기에 도읍을 정하려 하였다. 그러나 궁궐을 지을 겨를이 없어 비류수 높은 곳에 초막을 지어 거주지로 삼았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로 정했으니, 고(高)로써 성씨를 삼았기 때문이다. 觀其土壤肥美 山河險固 遂欲都焉 而未遑作宮室 但結廬於沸流水上居之 國號高句麗 因以高爲氏”

비류수 높은 곳 초막이 바로 흘승골성이며, 이것이 현재의 오녀산 산성이다. 그러면 오녀가 도대체 무엇일까? 표지판에 쓰여 있는 것처럼 정말로 'Five Ladies'일까? 현재까지는 이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우리의 사서를 토대로 하면 <고려사> 공민왕 조에 ‘오로산성(五老山城)’ 또는 ‘우라산성(于羅山城)’이라는 표현을 찾을 수 있다. 오로, 우라 등은 내용적인 표현이기보다는 당시 이곳 사람들이 사용하던 발음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오로’가 발음상 오녀와 좀더 가깝고 내용상 다섯 어른 정도로 해석할 수 있어 오녀가 오로와 관계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또 청나라 말기인 1908년에 나온 <회인현 향토지>에는 옛날에 다섯 명의 주둔병(屯兵)이 산위에 있어서 오녀산이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설명하고 있다. 어른, 주둔병, 여자, 셋 중 어떤게 맞을는지 앞으로 계속해서 연구해야 할 숙제이고 과제이다.

▲ 서문지를 나타내는 표지판
ⓒ 이상기
999개 계단을 올라 정상부에서 만나게 되는 문이 서문(西門)이다. 서문은 폭이 3m로 방어를 위한 옹문(瓮門)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바닥에는 계단과 주춧돌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이러한 유적은 주몽 시기에 만든 것이 아니고 후대 왕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서문에서 오른쪽으로 남문쪽을 향하다 보면 처음 만나는 것이 ‘1호 대형 건축기지(一号大型建築基址)’이다. 가로 13.5m, 세로 5m의 6칸짜리 건물로 발굴 당시 고구려 초기 도자기 등 그릇이 발견되어 고구려 초기 왕궁터로 추정된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태극정(太極亭)에 이른다.

▲ 태극정에서 바라본 비류수 혼강
ⓒ 이상기
태극정은 일종의 전망대로 동남쪽으로 굽이쳐 흐르는 혼강을 조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날은 안개가 끼어 조망이 좋지 않았다. 뿌연 안개 속에서 혼강이 모습을 잠시 드러내고, 오녀산성 역시 안개와 함께 환상 속으로 빠져 들었다.

태극정에서 조금 가면 천지(天池)라는 이름의 우물터가 나온다. 해발 800m 지점에 우물이라니? 이 우물이 바로 오녀산성의 생명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거주지 흔적이 두 군데 보인다. 온돌로 추정되는 돌이 바닥에 널려 있다.

▲ 점장대에 있는 선돌: 요녕제1경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 이상기
그리고 산상부분(山上部分)의 남쪽 끝에 일종의 조망대인 점장대가 위치한다. 오녀산성 내에서는 이곳 점장대에서의 전망이 가장 좋다. 이곳에는 한쪽으로 점장대, 다른 한쪽으로 요녕제1경(遼寧第一景)이라는 표석이 서 있다.

이곳을 돌아 북서쪽으로 가면 동문에서 내려가는 가파른 계단을 만날 수 있다. 이 길을 일선천(一線天)이라고 하며 식량의 조달 루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처음 출발했던 서문지(西門址)로 나오게 된다.

오녀산성을 구경하고 나서 우리 일행은 비류수 혼강을 좀더 가까이서 보려고 환인댐 바로 아래로 간다. 환인댐은 혼강 유역의 홍수 조절과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1958년에 시작해 1968년에 만들어졌다.

환인댐은 수력 발전을 통해 얻은 전기를 환인 지역에 공급하여, 일상생활과 공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환인댐 상류에 형성된 환룡호(桓龍湖)는 주변 경관과 어울려 아름다운 삼림(森林)공원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댐으로 인해 고구려 유적 일부가 물에 잠겨 과거의 유적을 볼 수 없는 아쉬움도 있다.

▲ 환인댐 아래에서 빨래하는 아낙네
ⓒ 이상기

▲ 팔기 위해 내놓은 말린 피라미
ⓒ 이상기
댐 아래에는 빨래하는 아낙과 경운기 엔진을 얹은 고기잡이 배도 보인다. 그 아래로는 더위를 식히기 위해 팬티바람에 수영하는 남자들의 모습도 보인다. 아마 이들은 고기잡이를 마친 후 놀이삼아 수영을 하는 것 같았다. 주변에 비린내가 진동을 한다. 피라미로 보이는 물고기가 강변에서 마르면서 나는 냄새다. 한쪽에서는 말린 피라미를 팔기도 한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기묘명현 이자의 자취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