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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거리흡연 규제에 대해 말이 많다. 나는 흡연에 관대한 비흡연자였다. 문장이 과거형인 이유는 이제 '흡연자에게 관대하지 않은' 비흡연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흡연권 vs 비흡연권

거리흡연 규제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당신들의 길거리 흡연이 우리들의 비흡연권을 보장해주었다면 우리가 왜 길거리 흡연을 반대하겠습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흡연자를 '매너 있는 흡연자'와 '매너 없는 흡연자'로 구분한다. 매너 있는 흡연자는 실내든 실외든 담배를 꺼내기 전에 자신의 흡연이 주변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보는 흡연자들이다.

이들은 흡연할 때 되도록 다른 사람에게 연기가 가지 않도록 배려하고,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가능한 한 빨리 담배를 끄려 노력한다. 이런 매너 있는 흡연자라면 거리 흡연을 이해할 수 있다. 내가 그 연기를 마실 일이 없도록 배려해주었으니.

그런데 매너 없는 흡연자는? 거리흡연을 예로 들면 복잡한 등굣길 언덕을 오르며 '후~'하고 연기를 내뿜고 뻔히 같이 걷고 있는 사방의 사람들에게 한가득 연기를 선사한다.

문제는 같은 공간 안에 있을 때 어느 한쪽의 권리 실행을 위해 다른 한쪽의 권리를 완전히 제한해야 한다는 데 있다. 흡연자에게 원하는 장소에서 담배를 피울 권리가 있다면 비흡연자에게는 원치 않는 담배연기를 마시지 않을 권리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권리는 '흡연실'이라는 공간이 있는 문 밖을 나가는 순간 모호해진다. 상쾌한 아침, 앞 사람이 뿌리고 간 담배연기 때문에 살인 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과장일까? 주변의 비흡연자들은 그 살인충동에 공감했고 흡연자 중에서도 같은 기분을 느껴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실외에서의 흡연권 제한, 왜 어려운 일인 걸까?

흡연권에 대한 딴지 - 흡연권은 없다

도심의 거리는 그 인구 밀도가 한산한 실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웬만한 실내의 밀도를 훨씬 넘어서는 도심도 많다. 담배연기가 퍼지는 반경이 얼마나 될까? 최소한 반경 5m는 넘을 것이다. 걸어가면서 담배를 피우면 그 담배 연기가 영향을 미치는 반경은 좌우 최소 5m, 뒤로는 동선에 따라 선을 그리게 된다.

이것은 아무리 한산한 거리라도 인도를 걸을 경우 10m 앞에 지나간 흡연자의 담배연기를 고스란히 들이키며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비흡연권이 남의 연기를 들이마시지 않을 권리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즉 비흡연권이 온전하지 않으므로 흡연권 또한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정의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연기를 혼자 들이킬 수 있는 공간 또는 기꺼이 남의 담배 연기를 들이킬 의사가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에서의 흡연 권리. 이것이 흡연권이다.

나는 포켓볼을 좋아하지만 1시간만 머물러도 담배 냄새에 옷이 절어버리기 때문에 잘 가지 않고,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PC방에는 5분 이상 머무르지 않으며, 혹시라도 이런 곳에 가는 날이면 고깃집에 갈 때처럼 집에 가서 온 몸과 옷을 씻어낼 각오를 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놀이공간, 문화공간은 왜 이리도 흡연에 관대한 걸까? 지금까지 이런 곳에서 담배 피우는 것이 당연했다면 비흡연자들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인식을 해야 한다.

손님들이 섞여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은 인식 부족 때문이다. 손님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선택은 손님들의 몫이지만 업소는 그 선택사항을 준비해야 할 의무가 있다.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반씩 섞여있다면 흡연실과 비흡연실을 번갈아 이용하는 것이 공평하지 않은가? 왜 늘 '흡연실'을 이용하는 것이 당연한가? 흡연자가 한명이라고 해서 그 연기를 그 사람 혼자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당신이 '담배 한 대'에 대한 양해를 구할 때 마지못해 허락한 것은 당신의 담배연기를 기꺼이 맡겠다는 뜻이 아니다.

"저 상인의 살 1파운드를 베시오! 단,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아니되오!"

나는 이 흡연에 대한 사회의 관대한 태도와 휴대전화기 도입 초기의 무질서를 매우 비슷한 성격의 '에티켓 사각지대'라고 생각한다. 휴대전화기 소지자가 귀했던 시절, 대중교통, 공연장, 심지어는 운전 중에도 휴대전화기 사용에 대한 구체적 제한 법규나 사회 인식이 전무했다.

이것은 오래 전부터 매우 특수한 지위를 누려오던 담배에 대한 90년대 초까지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그런데 휴대전화기의 빠른 대중화는 '모티켓'(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에 대한 에티켓을 의미하는 말)과 각종 제한 법규를 통해 휴대전화 사용 예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만들었다.

그러나 담배는 오랜 방치 기간 때문인지 금연열풍, 금연구역설치, 흡연ㆍ금연실 구분 등의 조치에도 일반의 인식은 요지부동이다.

이제 식당에 들어서면 금연석이 있는지를 묻고, 상쾌한 아침에 얼굴 가득 담배 연기를 안겨주며 걷는 앞사람에게 한마디 하자. 지금의 20대까지는 '아버지'하면 담배를 떠올리고 집, 식당, 거리를 불문하고 흡연권이 당연했던 시대에 성장한 세대라고 생각한다. 불편함을 불편함이라고 말하지 못했음이, 부당함조차 느끼지 못했음이 억울하지 않은가?

거리흡연권을 보장하라 외치는 당신. 당신이 담배에서 들이킨 연기를 꿀꺽 삼켜버리지 않는 한, 당신의 거리 흡연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살 1 파운드를 베어내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덧붙이는 글 | 개인 웹사이트(http://bythewind.compuz.com)에도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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